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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60/162)


  • 〈 60화 〉쓰디 쓴 그 이름 위에 군림하여

    벨투리안은 그제서야 물었다. 분하지만 이 흑마법사에게서 고문으로는 아무런 정보도 알아낼 수 없었다. 저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냈지만 고문의 결과도 아닌, 흑마법사가 알아서 내뱉은 정보였고 그나마도 벨투리안으로서는 확실한 판단을  수 없었다.


    결국 벨투리안은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원하는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벨투리안은 이미 흑마법사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었다. 불행히도 벨투리안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눈치채기에 벨투리안은 너무 순진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후후, 세미는 그저 아가씨와 함께 가고 싶은  뿐인데요?”

    “장난 치지마!”

    벨투리안이 장난스러운 태도에 대해 소리를 쳤지만 이미 수차례 폭력에도 아랑곳 않던 세르미나카에게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장난이 아닌데?  목적은 방금 말한 게 맞아. 자네와 같이 가는 게 내 목적이야. 어째서냐고? 이유는 말해주고 싶지 않은 걸?”


    “내가 설마 네 말을 그대로 따를 거라고 생각했다면….”


    “물론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네. 하지만 그만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하! 설사 네가 울푸레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다고 해도 내가…!”

    “네 어머니라면 어떨까?”


    “뭐…?”


    순간 세르미나카의 입에서 나온 얘기에 벨투리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여기에 자신의 어머니의 얘기가 나오는 건가? 전혀 관련도 상관도 없는 이야기었다.


    일찍이 벨투리안의 어머니는 벨투리안의 어린 시절 병으로 죽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왔다. 그 아버지도 벨투리안이 어린 시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만약 벨투리안을 동요시키기 위해 아무런 얘기나 꺼낸 거라면 벨투리안도 결코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네 어머니가 자네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뭐?”


    “말 그대로일세. 자네 아버지가 어떻게 말을 해놨는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야. 자네는 사생아지?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자네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알고 있고. 하지만 자네 어머니는 살아있네. 그리고 나는 자네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네.”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내 어머니는 이미 죽었어! 설사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으면 오산이다.”

    “하지만 당황하고 있군.”

    “….”

    사실이었다. 얼굴 하나 모르는 어미에게 실제로 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어째서 자신에 관한 정보, 자신이 사생아이고, 아버지가 대장장이였다는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건 지 명백히 당황하고 있었다.


    과거 생하울라와 같이 했던 웃기지도 않던 연극의 내용이 떠올랐다. 연극에서 자신은 사생아였고 어머니는 죽었다. 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르미나카는 저주까지 언급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저주와 관련이 있다고? 들어오는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믿을  없고, 동시에 충격적이라 벨투리안은 온전히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저주와 관련이 있다고?”

    “자네가 저주에 걸리게  이유가 어미의 죄악과 관련이 있다면 자네는 어떡할 생각인가?”

    “그만! 그만!  말은 어느  하나  뿐이다. 아까부터 계속 날 동요시키기 위해 헛소리를 하고 있을 뿐이야! 네 말은 증거가 없다!”

    벨투리안은 증거를 요구했다. 그래, 이 모든 이야기는 전부 헛소리일 뿐이었다. 증거가 있기 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세르미나카 역시 이를 알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증거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간단하군. 자네는 지금 빙룡을 찾아갈 생각을 하고 있지.”


    “어떻게 알았지, 그건?”


    “하녀들 사이에도 네트워크란 게 있지. 아가씨가 도서관에서 뭘 했는지는 세미도 알고 있어요~.”

    “그래… 그래서?”

    세르미나카, 세미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은 흑마법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귀엽고 순진한 미소였다.


    “빙룡은 거짓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가장 강한 거짓의 봉인자니까.”


    그러나 세미의 웃음은  교활한 악마처럼 기울어졌다. 세미가 다시 말하는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가장 끔찍한 계약을 치루기 위해 계약자에게 속삭이는 악마의 모습과도 같았다.

    “같이 빙룡에게 가서 물어보자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

    자정이 지났다.


    쯔르레이는 그새 벨투리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잠에 들지 못한 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 어린 시절 이후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있다고?

    애초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기에 딱히 원망이나 호기심이 느껴 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죄악이 자신의 저주와 관련이 있다니… 그 후로 세르미나카가 입을 열지 않아 아무 것도 모르지만  말이 사실이라면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오로지 의문 뿐이었다.

    옆에 누워서 태평하게 자고 있는 세르미나카를 보았다. 이곳에 오기 위한 장비나 식량들도 사실은 모두 세미가 준비하는 걸 도와줬다.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놈의 속셈이 무엇인지.

    “…!”

    그때였다. 바깥에서 인기척을 느낀 것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인기척은 아직 거리가 있었지만 곧  산장에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벨투리안은 발로 침낭을 걷어차 세미를 깨웠다.


    “아얏! 무슨 일이야?!”

    “누군가 오고 있다.”

    “아아… 귀찮은 일이군.”


    “얼굴을 가려.”

    벨투리안이 세미의 얼굴을 가리게 했다. 모습이 변하는 자신을 일행으로 특정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한 최소한의 방비였다.


    벨투리안이 솜뭉치를 들고 전투 태세로 준비했다. 누가 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위험한 이들일지도 몰랐다. 다행히 저 짐 덩어리 흑마법사는 공격을 당해도 알아서 회복하니 지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곧 벨투리안의 긴장을 깨고 산장의 문이 열렸다.

    “응? 사람이 있네?”


    산장의 문이 열리고 보이는 것은 세 명의 사람이었다. 여자가 하나 남자가 둘이었다.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산적처럼 험상궂은 얼굴이었지만 표정만큼은 푸근해 보였다. 세  모두 무장한 상태였지만 전투 태세로 보이지는 않았다.

    “누구냐?”


    “어어, 이보시게. 칼 내리게나. 우리 위험한 사람 아니야.”


    벨투리안은 그런 말만 듣고 칼을 내릴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믿지?”


    “우리 입장에서는 자네가 더 위험해보이는데…. 우린 평범한 용병일세.”

    아직 긴장을 늦출 수는 없지만 남자의 말이 거짓말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결국 벨투리안은 칼을 내렸다. 당장 상대방은 전투 태세가 아니었고, 굳이 이런 곳에서 까지 노략질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스스로를 용병이라고 밝힌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산장에 짐을 내려두기 시작했다. 일행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짐을 모두 내린  벨투리안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왕 이렇게 본 거 통성명이나 하지 않겠나? 내 이름은 마르코일세. 북지의 꽃미남 마르코! 이쪽 선머슴 같은 여자는 큐빗트, 여기 멍청이는 아폴리온일세.”

    “마르코 죽을래?!”

    “형님, 아무리 그래도 꽃미남은 좀….”


    남자의 넉살좋은 인사에 태클을 거는 일행의 모습에 벨투리안도 어느 정도 안심했다. 물론 긴장을 놓치는 않았다. 저런 모습을 보이고는 공격해올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었다. 칼은 내렸지만 손을 떼지는 않았다.


    “벨투리안.”

    “아하, 그게 자네 이름인가? 무뚝뚝한 사람이구만. 거기 옆에 그 아이는….”

    “저는 세미라고 해요.”


    “허어, 여자아이였구만…. 이렇게 위험한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오다니….”

    아무래도 마르코는 어린 아이가 이런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것에 꽤나 충격 받은 모양이었다.


    “신경꺼라.”

    “흠… 알겠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미안하네.”

    인사가 끝나자 벨투리안은 다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세미의 침낭도 끌고  옆에 누였다. 공격을 당하는 건 상관 없었지만 납치라도 당하면 곤란했다. 아마 오늘 밤은 그리 편하게 자지는 못할 것이다. 세미는 다시 침낭에 들어가 바로 잠에 들었고 벨투리안도 앉은 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기척은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용병들은 벨투리안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거짓은 아니었던 듯, 자리를 준비하고는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벨투리안은 세 사람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제대로 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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