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35/162)


  • 〈 35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쯔르레이가 잠에서   막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할 때였다. 불편한 자세로 자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했지만 피로했던 전날보단 나았다. 불타르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건지 코를 골면서 뒤척이고 있었다.

    쯔르레이는 가방에서 팔려고 준비했던 웅담을 꺼내보았다.

    곰을 잡게 된 건 우연이었다. 벨투리안이 물자 보충을 위해 작은 마을에 들렀을 때, 우연히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위협하던 곰을 잡게 된 것이었다. 곰을 잡아주자 마을 사람들은 감사 인사를 하며  고기를 고아서 식사를 대접해주었고 가죽과 고기를 비롯한 물건들을 사들여줬지만, 쓸개 만큼은 마을에서 살 수 없을 정도의 고가의 물품이었고 벨투리안은 그걸 말려서 큰 도시에 가서 팔려고 준비해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모습으로 밖에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질게 분명했다. 벨투리안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까지 기다릴까…? 하지만 이 도시에서 더 오래 있는  원하지 않았다. 신분증이 없으니 결국 나갈 때도 원래의 그 개구멍을 이용해야  텐데 그럼 최대한 오늘 안에 일을 해결하고 자정이 되기 전에 나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암… 뭐야 벌써 일어났나? 잠  못자면 키가 더 안자랄텐데?”


    시끄러운 녀석이 깨어났다. 잠을 자는 동안 결국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으니 그럭저럭 믿을만한 놈처럼 보이지만, 그거랑 별개로 영 시답잖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쯔르레이는 결국 불타르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응? 뭔가  불타르님에게 볼일이라도?”


    “이걸  수 있는 곳이 있나?”

    “오, 이건… 웅담이군? 세상에 이 귀한 걸 어디서 가져왔대?”

    “파는 걸 도와주면  금액의 일부는 너한테 주도록 하지.”


    “하하, 그런 일이라면 맡겨달라고. 휴, 오늘은 고기 먹겠는 걸.”

    불타르는 다행히도 흔쾌히 쯔르레이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좀도둑이라는 자기소개를 들은 만큼, 그가 웅담을 갖고 도망치는 거나 돈을 속이고  거라는 것도 어느 정도 고려해봤지만 불타르가 정말 돈을 원한다면 자신을 팔아넘기는 게 아마 더 좋은 돈벌이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믿어 보기로 했다.

    “같이 안가도 괜찮나? 내가 들고 튈 수도 있는 노릇인데?”

    “네가 그걸 들고 도망칠 거라면 밤에 날 팔아 넘겼겠지. 이 검을 들고 밖에 나가면 어제랑 똑같은 일이 생길 테니 너한테 맡기겠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이걸 팔아봐야 정상 가격의 절반 정도밖에 못받을거다. 나 같은 놈들이 이용하는 곳은 다 그러거든.”


    불타르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쯔르레이에게는 예상한 바였다.


    “상관없다.”

    “뭐 본인이 상관 없다고 하니 내가 더  말은 없지. 20퍼센트는 내 몫이야.”


    불타르는 말을 마치고는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가 돌아온 것은 슬슬 쯔르레이가 정말 그가 도망친 게 아닌지 하고 의심할 정도의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였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며 자랑했다.

    “휴우! 봐라! 이 영롱한 금화를!”

    불타르가 가져온 돈은 전부 금화 세 개와 은화 여덟 개였다.

    “원래대로라면 금화 여섯 개는 받아야겠지만 아무래도 장물 파는 곳에 넘기면 가격이 많이 떨어진단 말이지. 그래도  정도면 꽤 잘 받은 셈이야. 아무튼 여기서 은화는 전부 내 몫이야.  여기 돈.”

    “한가지 더 부탁해도 되나?”

    “음? 또 팔게 있었나?”

    “이 돈으로 전부 말린 과일이나 육포 같은 걸 사다  수 있겠나?”


    그러자 불타르의 표정이 굉장히 기묘하게 변했다. 쯔르레이는 자신이 뭔가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당황한  한 그는 결국  밖으로 말을 꺼냈다.

    “제정신이야?”

    “….”

    “이 돈이면  저 가방을 수십 개는 채우고도 남을 만큼 육포를  수… 맙소사.”


    불타르는 뭔가 깨달았다는  외쳤다.

    “너 이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구나.”

    정곡이었다. 쯔르레이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세상에,대체 지금까지 여행을 혼자 어떻게 다닌거야? 진짜 귀족 아가씨인데 내가 헛다리 짚기라도 한 건가?”

    “그런거 몰라도 다니는데 지장은 없다.”


    쯔르레이가 달아오른 얼굴로 반박했지만, 반박을 위한 반박이었을 뿐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보였다. 적어도 자랑할 얘기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나, 대충 설명해 줄 테니까  들으라고.”

    결국 불타르는 쯔르레이에게 즉석으로 화폐 강의를 해주었다. 좀도둑치고 그의 말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조리 있어서 알아듣기 쉬웠다. 그리고  강의 덕분에 지금까지 쯔르레이가 얼마나 바가지를 쓰고 사기를 당했는지도 알  있었고. 벨투리안이 곰을 잡아 준 마을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부였다.


    “아무튼 네가 필요한 물자들을 사는 데에는 은화 세 개면 충분하고도 남아. 원한다면  누더기 같은 옷도  바꿀 수 있겠지. 뭐? 됐다고? 흠…  지금 여유롭게 옷을 사고 있을 때가 아니긴 하지. 그럼 얘기한 대로 물건 사다줄게. 넌 진짜 나같이 친절하고 멋진 오라버니를 만난 데 아야, 때리지 마 야! 아무튼 고맙게 여겨야 하는 거라고.”

    불타르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쯔르레이를 잘 도와줬고 그의 친절이 아니었으면 쯔르레이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도시를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타르의 말투에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쯔르레이가 부끄러워 하는 걸 수도 있고.


    결국 불타르 덕분에 쯔르레이는 화폐 가치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 계속 여행하는데 무리가 없을 자금도 얻었고 식량 또한 다시 채울 수 있었다.  하나 도시에 들어온 목적인 씻는 것은 해결하지 못했으나 이는 나중에 강에서 라도 어떻게 해결하면  일이었다. 끝내 쯔르레이는 불타르에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마웠다.”


    “하하, 이 정도로 뭘 그러시나. 아가씨야말로 고마웠어~ 덕분에 당분간은 배곯을 일 없겠군 그래.”

    “손 줘 봐.”


    “손? 어이쿠 벌써 고백이라도 하는 건 조금 이른 거 같지 않은… 아가씨, 이럴 필요는 없는데.”


    쯔르레이가 불타르에게 건네준 것은 남은 금화의 하나였다.


    “어차피 나한테는 별 필요 없어. 내 수배서에는 이보다 더 많은 금화가 적혀있음을 알고 있다.”


    “이러지 않아도 돼, 아가씨.”


    “됐다. 받아둬.”

    끝내 사양하는 불타르에게 쯔르레이는 억지로 금화를 쥐어주었다. 이는 그 도움에 대한 보답보다는 순수한 선의로 자신을 도와준 불타르에 대한 감사의 증거였다. 쯔르레이는 세상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순수한 선의라는 것이 얼마나 보기 힘든 건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생하울라 조차도 단순히 선의로만 자신을 도와준 것은 아니었으니.

    “조심해서 나가라고, 아가씨. 이 도시, 콜테르에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이 불타르를 찾아.  값은 톡톡히 할 테니까.”


    “믿음직스럽네.”

    쯔르레이의 말투는 퉁명스러워 정말 믿음직스럽다는 얘기로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불타르는 정말 기쁘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럼 아디오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붙잡히지 않게 조심하라고!”

    “아가씨 아니라고.”


    물론 마지막까지 쯔르레이를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쯔르레이는 밤이 오기 전에 도시를 나가기로 계획했다. 목표는 원래 들어왔던 개구멍이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콜테르를 나가면 일은 다 끝난다. 당분간은 도시로 들어갈 필요도 없을테지.

    불타르 덕분에 빠르게 일을 끝내고 나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밤에 벌였던 실수를 다시 재탕하지 않기 위해 쯔르레이는 시작부터 기척을 숨기고 거리를 나아갔다. 아직 밤이 오기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오히려 덕분에 은신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단 한번은 봤던 길이었기에 조금 헤맸지만 결국 쯔르레이는 너무 늦기 전에 개구멍이 있던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하하, 길이 없어진 데 당황하셨나, 꼬마 아가씨?”

    개구멍은 없었다. 그리고 온통 검은 옷으로 몸을 뒤덮은  남자가 나타났다.


    “…누구냐.”


    “후후, 내 이름이 궁금한건가? 예의범절이 바르지 못한 아이구나.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게 예의라는 얘기는 엘핀 녀석에게 못들었나 보지?”

    엘핀… 그 기사의 이름이었다. 쯔르레이는 긴장했다. 놈이 쯔르레이의 은신을 꿰뚫어본 것은 단순히 불타르와 같은 요행이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느낄 수 있었다. 남자에게서는 강렬한 악의와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고 결코 그 실력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내 이름은 휘리오비치. 자네가 뭉개버린  암살자의 주인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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