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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34/162)


  • 〈 34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그때였다.

    “쉿, 이쪽으로.”


    누군가가 쯔르레이의 은신을 찾아내고 잡아당겼다. 단단한 손을 가진 후드를 쓴 남자였다. 도망쳐야 함이 분명하지만 쯔르레이의 팔을 잡아당기는 그 손길에 그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아, 쯔르레이는 무심코 끌려갔다.


    남자는 뒷골목을 매우 잘 알고 있는지 금세 쯔르레이를 쫓는 이들을 뿌리쳐버렸다. 남자가 휴 하고 한숨 돌리면서 인기척 없는 곳에 도착하자 쯔르레이는 남자의 팔에서 손을 빼고 물었다.


    “너는 누구지?”


    “워워워, 이럴 때는 보통 하는 말이 있지 않나? 안녕하세요? 로 시작해서 반갑습니다로 잇고 감사합니다!에 덕분에 살았어요! 하는 기분 좋은 말들!”


    남자는 유쾌했다. 그러나 그건 쯔르레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이번에는 말로만 묻지 않았다. 칼을 들고 다시금 말했다.

    “너는 누구지?”


    “하하, 거참 성질 급한 아가씨로군. 아아, 잠시만, 검은 거두라고. 나는 적이 아니니까.”

    “너는 누구지?”


    “거 꽉 막혔구만, 그래. 그래 그래  이름 먼저 말해주도록 하지. 내 이름을 불타르 세너맨! 이 도시 콜테르의 뒷골목을 누비는 어린이들의 친구이자 부랑자의 벗! 때로는 길을 잃은 돈들을 올바른 곳으로 찾아 주는 일도 하지.”

    쯔르레이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좀도둑이군.”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불타르는 기분 나쁠 것도 없다는 듯이 웃어재꼈다. 붉게 타오르는 듯한 머리칼에 황금색 눈빛을 지닌 다부진 모습의 청년은 세상 구김살 없다는 듯 웃어 보이는 모습이 호감이었다. 물론 쯔르레이의 추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가씨는….”

    “아직 안끝났다.  어떻게 찾았지?”


    “아하, 아가씨 숨어있던거? 딱 봐도 아가씨 미모가 그림자로는 안가려지던… 아, 알았어. 알았다고. 제대로 대답해주지. 아가씨 여기 처음 와보지? 여기 지리에 익숙한  같지가 않던데, 여기 오래 산 놈들이면 어느 정도는 다 눈치 챘을 걸? 기척을 숨기는 건 익숙해 보였지만 주변 배경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티가 난다고? 뭐, 내가 눈이 좋은 것도 있지만 말이야!”

    …맹점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쯔르레이는 도시라는 곳은 처음이었고 뒷골목도 처음이었다. 처음 와봤다는 것보다는 아예 처음  지형이라는 것이 쯔르레이의 은신에 빈틈을 만든 것이다. 그 빈틈에는 쯔르레이가 아직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다는 것도 있었고,

    ‘어지간한 강자가 아니라면 꿰뚫어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그건 사실이 맞았다. 만약 숲이었다면 저런 남자한테 까지 들킬 수준의 은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쯔르레이는 경험이 미천했고 그렇기에 어딘가에서 빈틈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발견한 게 차라리 다행이다. 오만해져선 안돼.’


    “날 도운 이유는 뭐지?”


    마지막으로 쯔르레이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아까 용병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자신에게 수배서가 붙었다고 한다. 돈이 걸린 일 일텐데 좀도둑이 자신을 도와준다? 이해할 수 없는 얘기였다.


    “어허,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 이거 섭하네~ 이쪽은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도와준건데.”

    “이유.”

    “까탈스러운 아가씨야 아주. 이유는 별거 없어. 아까 말하지 않았나? 나는 어린이들의 친구라고!”

    순간 쯔르레이는 울컥했다. 아까부터 자꾸 아가씨니 어쩌니 하는 말이 계속 거슬렸는데 어린애라고 아예 단정지어 버리니까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이유 또한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되었다.

    “나는 애가 아냐.”

    “아하, 우리 에띠르도 자주 그렇게 말을 하곤 하지. 하지만 이 오라버님의 눈으로 보면 아가씨 정도는….”

    “닥쳐.”


    쯔르레이가 그대로 불타르의 정강이를 차버렸다.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은 듯, 불타르는 순간 윽 하고 신음을 삼켰다.

    “아가씨 너무한 거 아냐? 내가 구해줬는데 그래도!”

    “이유 말해, 제대로 된.”

    “그 수배서 때문에 그러는 거지?”


    역시 알고 있었나.

    불타르는 자신의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말했다.

    “이 수배서 거짓말이지?”

    수배서는 매우 유려한 솜씨로 그려진 자신, 쯔르레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쯔르레이는 입을 닫았다.

    “이거 수배서 나오자마자 엄청나게 화제였다고, 이 주변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귀족 아가씨가 갑자기 가출을 했다 하고 찾아오면 돈도 엄청나게 준다는 데 말이지. 수배서 그림이 너무 예뻐서 수배서가 팔리고 있을 수준이라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말이야.”

    “….”

    “그도 그럴게, 글도 못 읽는 귀족 아가씨는 없거든.”


    들켰다.


    그 말 그래도 쯔르레이는 글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이냐 아니냐 하는 얘기에 입을 닫은건데, 생각보다 더 티가 난 건지 불타르는 곧바로 눈치채버린 것이다. 확실히 눈썰미가 좋다는  인정해야   같았다.

    “수배서에는 아예 상처조차 입히지 말고 데려오라는 얘기가 있지만 수상하거든, 이거~. 애초에 귀족 아가씨도 아닌 애를 데려다 어떻게 하는 걸지도 알  없고 말이야. 아까부터 말했지만 나는 어린이들의 친구라고. 이런 일을 두고 볼 순 없었어. 그 뿐이야.”

    “도움은… 고맙다고 하지. 하지만 널 완전히 믿는 건 아니야.”

    “하하, 드디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네. 장족의 발전이군. 그래서 아가씨 이제부터 어떻게 할 계획?”


    “잘 곳을 찾을 생각인데.”


    “그렇다면 우리 집에 오지 않겠어? 어린애 한명 정도 재워 줄 자리는 있는데 말이야.”


    “아까부터 자꾸 그러는데, 나는 애가 아니,”


    “아하, 그럼 그렇죠. 우리 아가씨는 다 컸으니까 말이에요.”

    쯔르레이는 다시 불타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번에는 정말 쎄게 들어간 건지 불타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다리를 감쌌다.


    ~

    불타르의 집은 반쯤 쓰러져 가는 폐가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집을 소개시켜 주냐고 욕이라도 하겠지만 쯔르레이에게는 감지덕지였다.


    “그러고보니 아직 이름 못들었네. 수배서에는 이름이 안 쓰여 있어서 말이야. 아가씨 이름은…”


    불타르는 고개를 돌려 쯔르레이에게 말을 걸다 그대로 조용해졌다. 쯔르레이가 집에 들어온 순간 후드를 벗어 후드 속으로 어렴풋이만 보이던 얼굴이 확 드러난 것이다.


    “맙소사, 수배서 그림이 과장이 아니었군. 오히려 실물이 훨씬 아름다운데.”

    “흥.”

    반쯤 넋을 잃은 불타르의 칭찬에도 쯔르레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 들어봐야 쯔르레이에게는 칭찬도 아니었고 전혀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짜증이 날 뿐이었다.

    “내 이름은 쯔르레이다. 투르라고 부르면 된다.”

    “쯔르레이? 신기한 이름이군. 북쪽 지방에서 왔나?”

    “그래.”


    “그 수배서는 무슨 일 때문에 붙여준 건지 혹시 짐작 가는 바 있어?”

    “아니”

    “내가 비밀이 많은 아가씨를 구했군.”


    “닥쳐.”


    둘의 대화는 대체로 이렇게 이어졌다. 쯔르레이의 짧고 거친 단답에도 불구하고 불타르는 전혀 개의치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가 얇은 이불을 가져와서 쯔르레이에게 잠자리르 안내해주고 말했다.

    “그럼 아가씨는 이쪽에서 자면 돼. 아가씨가 걱정하지 않도록 나는 저기 멀리서 있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물론 쯔르레이는 애초에 그를 완전히 믿지 않고 경계하고 있었다. 불타르에게서는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것 만을 믿고 경계를 풀었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없었다. 오늘 밤 쯔르레이의 잠은 아주 얕을 것이다.

    눈을 감고 여장조차 풀지 않은 채 앉은 채로 쯔르레이는 잠을 잘 준비를 했다. 불타르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쯔르레이의 모습을 보고도 별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이 들기 전, 문득 쯔르레이가 불타르에게 물었다.

    “에띠르는 누구지?”


    “내 여동생.”

    “집에는 왜 없지? 나갔나?”


    “없어. 죽었거든.”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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