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3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33/162)


  • 〈 33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쯔르레이가 나무 위에서 작게 호흡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물론 실제로는 쯔르레이는 아르만 루드빅을 죽인 전적이 있으니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쯔르레이 자신의 기억 안에서 사람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맞았다.


    평소 다른 오크들과 대련할 때에는 결코 그렇게 무게를 끝까지 올려 쳐박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련이었고 쯔르레이에게는 노련한 오크 전사들에게서도 힘조절을 하면서 상대할 수 있는 무력이 있었으니. 이전까지 전력으로 상대한 건 오직 생하울라와의 대결 뿐이었다.


    상대를 찍어 누른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손대중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 뿐이었다. 쯔르레이는 지금  감촉이 손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어설픈 죄책감 같은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란 참으로 쉽게 부숴진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무에서 내려온 쯔르레이는 옷을 벗었고 곧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벨투리안의 날이었다.


    ~


    며칠  셰이먼 숲을 도착한  마을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벨투리안은 곤경에 빠졌다. 지금까지 벨투리안이 들른 마을은 대부분 시골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숲에서 충분히 먹을 것을 공급할 수 있게  후로는 그나마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음! 음…. 신분증을 보여라. 짐은 이게 다인가? 좋아, 통과!”

    마을의 입구에서는 경비병들이 서서 마을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짐과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아니,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라고 하면 마을이 아니라 도시였다. 그러나 벨투리안에게는 어떠한 신분도 없었다. 그것은 물론 쯔르레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들어가야 하지?

    지금까지 처럼 아예 들어가지 않고 버티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수해로 가는데에는 아직도 한참이나 먼 거리가 남아있었고 그 시간을 전부 숲에서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벌써 씻지 않은 날도 오래되었다. 날씨가 추운 지방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괜찮았지만 이제부터는 슬슬 씻지 않으면 악취가 날게 분명했다.

    처음 벨투리안이 떠올린 방법은 뇌물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벨투리안에게는 많은 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애초에 벨투리안은 화폐의 가치조차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른 마을에서 사냥감을 팔아서 어느정도 돈을 받긴 했다. 그러나 화폐가치조자 잘모르는 벨투리안은 흥정도 없이 전부 상대방이 제시한 금액에 팔아버렸고 그 받은 돈도 대부분 음식물을 사는데 소비했다. 남은 돈도 마을에서 물자를 보충하는데 써야 했다.

    즉 벨투리안에게는 뇌물로 줄만한 돈도 별로 없었다. 애초에 경비병이 뇌물을 받을거란 보장 또한 없었고.

    골치가 아팠다. 산 속에서 혼자 살 때는 이런 귀찮은 일은 없었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 신분을 증명할 필요 또한 없었다. 방법을 강구해야했다. 그러던 도중 마을에서 멀찍이 서서 방법을 생각하던 벨투리안에게 체구가 몹시 작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이, 형씨. 혹시 마을에 못들어가서 고민하고 있나?”

    “… 넌 누구지?”


    “당신 같은 사람 몰래 들여다보내주는 사람이지. 어때 흥미 있나?”


    “어떻게?”


    “헤헤, 당연한거지만 이게 없으면 곤란하지, 이게. 얼마나 있어?”

    남자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서 가리켰다. 세상 물정 모르는 벨투리안에게도 그게 돈을 의미한다는 건 뻔해보였다.


    “미안하지만 돈은 없다.”


    “뭐? 쳇, 돈도 안들고 다닌다고? 웃기고 있네.”

    남자는 돈이 없다는 벨투리안에게 노골적으로 흥미가 사라졌다는 듯 막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던 중,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잠시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이, 지금이라도… 어?”

    그러나  곳에 이미 벨투리안은 없었다. 남자는 당황했지만 이내 곧 다시 고개를 돌려 화를 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벨투리안이 조용히 뒤따르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벨투리안은 계속해서 조용히 남자를 따라다녔다. 남자는 벨투리안처럼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명 찾아 똑같은 제안을 했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어이! 이게 뭐야! 말이랑은 다르잖아!”


    남자가 사기꾼이었다는 것이다.


    남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성벽을 몰래 들어갈 수 있다는 개구멍이 있다고 말했고, 돈을 받고 그를 안내해줬다. 그렇지만 사실  개구멍은 굉장히 작아서 체구가 작은 그 남자나, 어린아이 정도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속은 사람은 굉장히 억울해 보였지만 체구가 작은 남자는 이미 개구멍 속으로 도망쳤다. 속은 남자는 화를 내며 성벽을 발로 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병사들이 다가오자 도망을 쳐버렸다.

    ‘경비병들을 끌어들인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는 속도였다.


    그러나 벨투리안에게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개구멍은 ‘어린아이’라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그 모습으로 도시를 들어가는 건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벨투리안은 숲으로 돌아가 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 벨투리안은 다시 쯔르레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다시 성벽으로 돌아가서 개구멍이 숨겨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모습이라면 여유롭게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쯔르레이는 안의 기척을 살펴보며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성벽은 생각보다 컸던지 개구멍은 생각보다 길었다. 개구멍에서 나오자 딱 봐도 인적이 드문 골목이 나왔다. 다행히도 주변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늦은 밤이었기에 쯔르레이는 조용하고 어두운 거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쯔르레이가 대로로 나오자 그 예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쯔르레이가 나온 길은 이른 바 밤의 거리라는 곳이었다. 남자들을 유혹하는 매춘부들이 길가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험상궂은 남자들이 술잔을 나누는 모습은 쯔르레이에게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개구멍이란 시점에서 예상을 해야 했다. 적어도 정상적인 거리로 연결되지는 않을거란 것을. 그러나 세상 물정 모르는 쯔르레이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작은 모습의 쯔르레이가 거리를 걷고 있자 점차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거대한 검을 짊어진 작은 아이의 모습은 후드로는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쯔르레이는 시선에서 평소 느끼던 것보다 더욱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우선 어디든 잠을 잘 곳을 찾아야 했다. 피로를 확 풀 수 있는 휴식을 원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힘들어 보였다. 쯔르레이는 우선  거리를 나서서 밤이슬을 피할  있는 곳이라도 찾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일은 항상 그랬 듯이 쯔르레이의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쯔르레이에게 용병처럼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와 물었다.

    “어디 잘 곳이라도 찾고 있나? 꼬마 아가씨?”


    쯔르레이는 마지막 말이 들려온 순간 깨달았다. 이 여자는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후드를 쓰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이 어린 여자애라는 걸 깨달았을까? 여자가 자신의 정체를 단숨에 눈치챌 수 있는 실력자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뭐든 간에 정상적인 접근은 아니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도망가잖아! 빨리 잡아!”

    여자의 외침에 주변에 있던 용병들이 모두 쯔르레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여자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들에게 붙잡혀서 좋을 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각까지  가도 당연히 그래 보이지 않는가.

    쯔르레이는 멍청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곧바로 골목으로 들어가 기척을 숨겼고  추격자들은 방향을 잃었다.


    “제길, 놓쳤잖아! 귀족가 꼬맹이 맞아? 뭐가 저렇게 빨라!”


    “그러니까 내가 바로 덮치자고 했잖아! 괜히 유인이니 뭐니 말 걸다가 망했어.”

    “덮치다가 상처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수배서에는 절대 상처 입히지 말라고 써있었다고. 실수로 다치기라도 하면 곧바로 절반이야, 절반!”

    “어찌됐건 반은 받는 거잖아. 망할 좀 더 찾아보라고.”

    수배서…?

    쯔르레이에게서 곧바로 떠오른 건 그 전의 숲에서의 일이었다. 도망쳐 나온 것이 문제가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수배서까지 쓴다니. 자신이 그 여자를 살려주기 까지 했는데 이건 좀 억울하지 않은가. 물론 수배서를 쓴 건 보상을 하기 위해서 였지만 쯔르레이로서는 알 수 없었고, 설사 알았더라도 사절할 쓸데없는 짓이었다.


    아무튼, 상황이 곤란해졌다. 이럴 거라고 생각했으면 애초에 이 도시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다.


    이대로 라면 잠도 잘 수 없었다. 아무리 쯔르레이라고 해도 잠을 자면서 까지 기척을 숨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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