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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32/162)


  • 〈 32화 〉늑대 걸음을 굽히지 말아라

    숲 속에서 야영지를 향해 화살들이 빗발쳐 날아왔다. 미처 마차에 들어가지 못한 여자를 보호하면서 엘핀이 외쳤다.

    “모두, 전투 태세!”


    병사들은 노련했다. 야영을 한다고 해서 긴장을 풀지도 않았고, 무장을 전부 해제한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대처하고 화살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쯔르레이 쪽은 상황이 달랐다.

    엘핀이 보호하고 있는 여자와, 마차 주변에 있어서 급하게 바로 마차 안으로 대피한 다른 비전투인원들과는 달리 살짝 멀리 떨어져있  쯔르레이와 메이드, 그리고 아티고는 곧바로 암살자와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쯔르레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쯔르레이는 아티고가 암살자와 겨루는 사이에 곧바로 달아났다. 지금은 엘핀도 안티고도 자신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이었다. 쯔르레이는 곧바로 모닥불을 향해 달려가 밧줄에 묶인 손을 집어넣었다.

    “아악!”


    끔찍한 고통이 손을 달궜다. 하지만 곧 불은 그쳤고 밧줄은 불타서 끊어졌다.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사이에 금세 암살자를 해치운 아티고가 메이드를 업고 나타났다.


    “제길…! 너도 한패냐!”

    그러나 메이드를 신경쓰고 있는 기사의 검에 맞을 쯔르레이가 아니었다.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한 쯔르레이는 곧장 자기 짐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 짐을 챙겼다.

    “연막이다!”


    상황은 쯔르레이에게 더욱 유리하게 돌아갔다. 암살자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야영지를 연기로 가득 채운 것이다. 그들은 여러 명이 모여서 엘핀을 연막 속에 가두어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핀은 그런 같잖은 수로 쓰러질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연막 속에서 여섯 명이나 되는 암살자와 겨루고 있었고, 심지어 이기고 있었다. 쯔르레이에게는 보였다.


    물론 쯔르레이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의 안전이었다. 짐은 모두 챙겼고  또한 찾았다. 엘핀이 자신을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쯔르레이를 잡을 수 있는 사람 또한 없었다.

    오해를 낳은 채 도망치는 건 상책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그대로 남아있을 바엔 도망치는 게 나았다. 자정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도, 도와줘요!”


    그러나 쯔르레이는 발을 멈췄다.


    순간적으로 연막이 걷힌 야영지의 가장자리였다. 연막 때문에 엘핀과 떨어져 버린걸까. 자신을 도와줬던 마음씨 착한 여자가 암살자에게 붙잡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쯔르레이는 지체하지 않았다. 기척은 숨긴 그대로 암살자에게 달려갔다. 옆에 있는 나무를 발로 차고 도약했다. 극도로 가벼웠던 검에 무게가 깃들고 쯔르레이의 가벼운 몸이 그 무게에 매달려 날아가 정확하게 암살자의 몸을 찍어눌렀다.

    암살자는 대처할 새도 없이 그대로 무게에 깔려 비명을 지르며 뭉개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 안의 내장이 모두 뭉개졌을 것이다. 그 감촉에 쯔르레이는 당황하지 않았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한 여자는 겁에 질린 채로 암살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쯔르레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도, 도와준….”

    쯔르레이는  이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떠났다.


    “고마… 고마워…요.”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듯 했다.

    ~

    “면목이 없습니다. 영애! 모두 제 불찰입니다.”


    “아니에요, 엘핀. 덕분에 모두가 살았는걸요.”

    모든 사건이 일단락 되었고 상황이 정리되자 휘리엘 울펜슈타인은 기사단장 엘핀 세이피어스를 불렀다.


    모든 암살자를 해치웠고 몇 명은 사로잡았다. 사상자 또한 없었다. 문제라면 엘핀, 자신의 실수로 영애를 죽을 위기에 쳐하게  것이다. 그는 침통한 얼굴로 사죄했다.


    “하지만 제가 영애를 놓쳤기 때문에 영애가 죽을 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이렇게 살아있는 걸요. 꼴은 좀 더럽지만요.”


    흙바닥에서 구른 덕분인지 영애의 옷매무새는 더럽고 지저분해져있었다. 팔에는 긁힌 상처까지 생겨있었다.  딴에는 농담을 한 듯 보였지만 엘핀에게는 오히려 죄책감만 자극한 꼴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제 불찰에 대한 처벌을 받겠습니다.”

    “부디 그러지 마세요, 나를 위해서라도요, 엘핀.”

    “정말… 무사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엘핀이 말했다.

    “아무래도 도망친  녀석에게 신경을 쏳게 하고 습격할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험이 부족해 눈 앞의 함정에 정신 팔려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영애. 정말이지 드릴 말이 없습니다.”

    “아뇨, 그건 아닐거에요.  아이는 적이 아니었어요?”

    “네?”


    엘핀이 당황했다.


    “연막 때문에 제가 엘핀과 떨어졌을 때, 암살자가 저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저를 구해줬어요.”


    “그 녀석이… 어떻게 영애를 구해줬다는 겁니까??”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갑자기 날아와 거대한 검으로 암살자를 그대로 찍어버렸어요.”


    “…찍어버렸다고요.”

    엘핀이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검은 분명 사람을 공격하는데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쯔르레이는 어린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암살자를   순간에 물리쳤다는 얘기는 현실성이 떨어졌다.

    “맞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보태는 이가 있었다. 옆에서 부상자들을 수습하던 아티고가 끼어들어서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 보아라.”

    “말 그대로 입니다. 처음에 놈을 놓치고 저도 그 녀석이 암살자와 한 패인가 생각했습니다. 공격했지만 녀석은 도망갔고요. 그런데 그 녀석이… 영애가 위험에 쳐했을  그 장난감 같던 칼로 암살자를 찍어눌렀습니다. 놀랍게도 그 칼에 맞은 암살자는 지금 내장이 전부 뭉개져 죽어 가는 중이고요.”


    “그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엘핀에게 있어서, 그리고 아티고에게 있어서도 의문이었다. 수상하긴 했지만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던 검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칼로 어떻게? 그 녀석의 힘이 그렇게 셌던걸까? 하지만 그렇게 힘이 셌다면 밧줄을 직접 끊고 달아났을 것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그 아이에게 큰 은혜를 입었어요. 반드시 찾아내서 보상해줘야 겠어요. 엘핀이 때린 것 까지도.”

    엘핀이 느낀 것은 패배감이었다. 자신이 첩자라고 생각해서 폭행한 소녀에게 엄청난 빚을 진 것에. 그저 단순한 빚이 아니라 자신이 다하지 못한 책임을 대신 수행해 준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실수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영애.”

    엘핀과의 대화가 끝나자 여자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사건이 있었으니 이제는 그녀도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티고!”

    “네, 단장님!”


    “수도에 도착하면 그 녀석의 수배서를 내라. 폭력적인 행위 없이, 상처가 없게 잡아오라고… 그런 얼굴이니 대충 귀족가의 가출한 영애라고 속이면  거다.”


    “수배서라고요? 하지만…알 겠습니다.”

    그러나 엘핀에게는 역시 곱게 쯔르레이를 잡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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