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나흘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벨투리안의 상처는 모두 아물었다. 경이로운 회복력이었다. 양아우테는 자신 정도의 능력으로는 이를 해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치 새의 깃털 처럼 자라났던 머리는 모두 원래 모양대로 돌아와 있었다.
생하울라는 그 시간 동안 벨투리안의 곁을 지키며 경과를 관찰했다. 불가사의하게도 벨투리안의 몸 상태는 이미 정상이었다. 창백했던 얼굴 또한 이미 혈색을 되찾았고 심장 또한 멀쩡하게 뛰고 있었다. 그 동안 벨투리안이 먹은 것은 억지로 흘려보낸 물 뿐이었다.
그리고 닷새째, 벨투리안이 손이 움찔하고 움직였다. 생하울라는 놓치지 않았다. 곧 벨투리안의 입에서 신음소리와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무… 물, 물….”
생하울라는 곧바로 벨투리안의 입에 물을 흘려보내주었다. 물을 마신 벨투리안은 곧 다시 정신을 잃고 잠들어 버렸다.
벨투리안이 완전히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다음 날이었다. 자신을 간병하고 있는 생하울라를 보며 벨투리안이 말했다.
“나는 살았나…? 아니면… 죽지 못했나?”
“후자 쪽에 가깝겠군.”
생하울라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돌아온 걸 환영하네.”
벨투리안은 웃지 않았다. 대답하지도 않았다.
~
생하울라는 그 동안 있던 일을 모두 말해줬다. 그러나 벨투리안에게는 어쩐지 그 이야기가 모두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 놈을 죽였다고?”
“놈은 솜뭉치에 복부가 갈려 죽었고, 그 곳에서 그 검을 다룰 수 있는 건 자네 뿐이니까. 내 감각을 피해서 모든 일을 처리 할 수 있는 자가 없다면 그렇겠지.”
“기억이 없네.”
“자네의 머리가 깃털처럼 변한 것도 모르나?”
“깃털?”
“내가 발견했을 때, 자네의 머리는 마치 새의 깃털처럼 변해있었다네.”
벨투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완전히 모르는 이야기였다. 문득 갑자기 생카울레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철 부리….”
“음?”
“강철 부리의 부족이 만났다고 했어. 금색빛을 지닌 거대한 새를… 기억나는가?”
생하울라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그래, 기억나는 군. 무언가 관련이 있다고 봐야 겠어.”
“그들은 어디에 있지?”
“바곱 산맥.”
벨투리안은 알지 못하는 지명이었다.
“볼타르 왕국을 넘어, 간티아 제국을 지나 신의 땅과 마경을 막는 바곱 산맥 아래의 석양이 지지 않는 전장에 그들이 있다.”
벨투리안은 처음으로 길을 잡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해야 할 일?”
“자네는 눈치챘는지 모르겠군. 자네 그 몸, 아직 한 번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네.”
“뭐…?”
“평생 그 몸으로 고정된건지, 아니면 자네가 죽을 위기에 빠져서 무언가 변한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네.”
벨투리안은 의외로 침착했다. 겉으로 느끼기에는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죽었다 살아난게 거짓말일 정도로 멀쩡했다. 그런데 아직 자신이 이 몸으로 고정되었다고?
“그런가.”
“침착하군.”
“그럴지도.”
기이할 정도로 벨투리안은 평정을 유지했다. 평소 생하울라가 놀리면 금방 빨개지던 얼굴은 평온했고, 화 또한 내지 않았다. 생하울라는 그런 벨투리안에게 별 말 하지 않고 좀 더 쉬라고 말하였다. 벨투리안은 대꾸 없이 눈을 감았다.
자정이 되자 벨투리안의 몸은 그간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거짓말인 거처럼 원래의 몸으로 돌아갔다. 무표정하던 벨투리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라리 변하지 않는게 좀 더 편할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게 되었군.”
그건 조롱이었다.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자신의 저주받은 신체에 대해서? 아니, 그건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 자체에 대한 조롱이었다.
“잠든 사이에 많이 유쾌해졌군 그래.”
“아까 말했던가. 내가 갑자기 그 모습으로 변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그런데 벨투리안의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벨투리안은 곧장 일어나 알몸인 채로 자신의 사냥용 단검을 들고 말했다.
“실험해보면 되지.”
생하울라가 말릴 새도 없이 자신의 한쪽 팔에 칼을 꽂아 넣었다.
“자네…!”
“걱정말게, 죽을 정도는 아니야.”
벨투리안이 비웃듯이 말했다.
“그건 이미 해봤으니까.”
정신을 차린 벨투리안은 조금 변한 것 같았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냉소적으로 만든 것일까. 그 목소리에는 지독한 자기혐오가 담겨있었다. 생하울라는 그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실험이 헛된 것은 아니었을까, 벨투리안의 몸에서 평소처럼 강한 열이 뿜어져나왔다. 그의 변화를 직접 보게 된 것은 생하울라도 처음이었다. 거대하고 강인한 몸이 수축하여 한없이 여리고, 가녀리고, 아름다운 어린 육체로 화한다. 평소보다 더욱 빠르게.
어린 모습이 된 벨투리안이 여전히 피가 흐르는, 그러나 눈에 띄게 흐르는 피가 줄어든 자신의 팔을 보더니 꾀꼬리처럼 웃었다.
“아하하하…!”
천진하게 웃는 모양새는 그 겉모습에 지극히 어울렸지만, 자신의 피가 흐르는 팔을 보고 하니 마치 흡혈귀처럼 소름 돋는 모습이었다.
“피를 흘리면 변하는 건가? 싸울 때, 이젠 상처조차 입으면 안되겠군. 아하하!”
그 웃음은 벨투리안이 저주를 받은 이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는 것이었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웃는 벨투리안을 보고 생하울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벨투리안의 실험을 빙자한 자해는 계속되었다. 피투성이의 벨투리안이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단순히 피를 흘린다고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몸이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로 심한 상처에, 많은 양의 피를 흘려야 모습이 변했다. 그리고 한 번 변한 모습은 당분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많은 피를 흘릴 수록 더 많은 날을 변해있었다.
실험은 당연하게도 반대로도 행해졌다. 자신이 어린 모습일 때, 벨투리안은 망설임 없이 복부에 칼을 찔러넣었다. 벨투리안은 사흘 간을 쓰러져있었지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상처가 심하면 심할 수록 더 빨리 낫는다는 걸 깨달은 벨투리안은 훈련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어린 모습일 때와 큰 모습일 때를 가리지 않고 마치 죽을 듯이 훈련하였다. 그 효과는 확실히 대단하여 성취 또한 대단했다.
죽었다 살아 돌아온 지 한 달 쯤 될 때에는, 그 전에 배운 것의 두세 배 이상의 발전을 이뤄냈다. 훈련을 돕기 위해 부른 오크 셋을 작은 몸으로 순식간에 쳐부순 것으로 그것을 증명했다.
“자네 몸은 어릴 때도 강인하네. 작은 신체와 체력, 근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 것은 단순히 어리다고 보기 힘들 정도야.”
“그래봐야지.”
생채기가 잔뜩 난 채로 오크들을 쓰러트린 벨투리안이 빈정거렸다.
“이 정도로 용을 잡아? 웃기지도 않는 군.”
“애초에 자네 목적은 그게 아니지 않았나?”
“하지만 너는 말했지. 용을 잡을 전사라고. 이런 어린애 장난이나 하면서?”
생하울라는 침묵했다. 그건 벨투리안이 애써 무시하던 이야기였다. 처음이야 바보 같이 그 말을 믿었지만 곧이곧대로 생각하는 걸 그만두자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애기임을 생하울라 또한 모를 리 없다고.
“너, 뭔가 알고 있지.”
“빨리 걷는 달팽이는 달팽이일까?”
생하울라는 평소처럼 선문답을 했다. 그게 생하울라가 말을 돌리는 것임을 벨투리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
“뭔가 알고 있으니까 그런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면서 날 데려온거군.”
“비가 오는 아침에는 닭이 울지 않는다고 하네.”
생하울라의 눈에서 벨투리안의 뒤에 쓰러진 오크가 일어나는 게 비췄다.
“걱정말게. 자네에겐 고마워하고 있으니까.”
쓰러졌던 오크가 일어나 벨투리안을 덮치는 걸 벨투리안은 가볍게 피하고 솜뭉치를 휘둘렀다. 오크는 엄청난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날아갔다. 벨투리안 또한 멀쩡하진 않았다. 벨투리안의 아기자기한 손은 이미 쓸릴 대로 쓸려서 피투성이였다. 이 정도 상처는 몇 시간이면 낫는다.
아낄 필요가 없는 몸이었다.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