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21/162)


  • 〈 21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그래서 저희는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정확하게 듣고 싶습니다만.”


    안테른 남작은 딱 봐도  자리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테른 남작의 남작이란 직위는 애초에 전쟁의 공으로 받은 단승 작위로 애초에는 평민이었던 자이다. 그런 그에게는 이런 상황 자체가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벨투리안의 짧은 자기소개가 끝나자 아르만은 작은 소리로 ‘요정….’이라고 멍한 얼굴로 말했다. 작은 목소리여서 다른 이들은 듣지 못했지만 바로 옆에 있던 안테른 남작(반쯤 미친  바라보는 표정으로 아르만을 보았다.)과 귀가 좋은 생하울라는 들어버렸다.

    안테른 남작은 어째서 인간의 아이가 오크의 마을에 있는지를 물었고 생카울레는 우선 말한대로 자리를 파하고 여독을 정리한 후에 다시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안테른 남작 역시 동의했다. 아르만은 상황파악을 못하고 다시 입을 열려했지만 안테른 남작이 몸소 그의 입을 닥치게 해주어 대화가 더 길어지는 상황은 면했다.


    드디어 긴 대화가 끝나자 투르는 생하울라와 같이 집으로 돌아갔고, 인간들도 오크들이 안내해준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내리기 전에는 항상 달팽이가 고개를 내미는 법이지.”

    “자네 그 헛소리 좀 안하면 안 되겠나?”


    “뭐 어쩌겠나. 이미 다 들킨 것을.”

    “제길, 재수가 없으려니…. 토끼 한 마리 잡자고 이런.”

    “것보다 앞에서 한 행동들은 일부러 한 건가?”


    “무슨 행동?”


    “자네 아주 겁먹은 어린 아이처럼 있었잖나. 아주 나는 낯가림 많은 아이에요 티를 다 내던데.”


    실제로 후드를 손으로 팍 눌러써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퍽 귀엽고 겁 많은 아이 같았다.


    “망할 얼굴 숨기려고  거잖아! 애초에 거길 나가면  되는 거였어! 종일 숨어있기라도 하면 될 것을…!”

    “이미 모습을 들킨 시점에서  도련님은 어떻게든 자네를 찾으려고 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자네를 보는 눈길이 보통이 아니던데? 자네를 보고 무려 ‘요정’이라고 하던데.”

    벨투리안은 진심으로 소름이 돋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이런 애새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래의 자신은 우락부락한 아저씨였다. 그런데 요정이라니!


    “진심으로 기분 나빠….”


    “그 말을 그 애송이 면전에서 해주면 아주 좋아죽을 거 같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오?”


    “자네는 그냥 집에 있게나. 적당히 내가 둘러댈 테니까.”


    “어떤 식으로?”

    “뭐 고아  명 주워다 제자로 기르고 있다고 하면 되겠지. 그 안테른이란 자는 아마 이걸로  말  할 걸세. 문제는 그 도련님이지.”

    “그 놈이 왜?”

    “가끔 그런 놈이 있는데….  하나에 꽂히면 뒤도 안보고 막나가는 놈 말이야. 남작이나 다른 사람들이  놈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적어도 정상은 아닌 거 같더군.”


    “정상이 아니지! 요정 같은 헛소리를 하고 있는데!”


    물론 요정은 실존하고 있지만, 벨투리안이 말하는 헛소리라는 건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뭐 자네는 아까 하던 대로 겁 많고 낯가리는 아이나 연기하고 있게나. 일단은 내가 자네 보호자니까 내 선에서 해결해보겠네.”


    “…부탁하네.”

    생하울라와 벨투리안의 대화는 이런 과정이었다.  때 안테른 남작과 아르만의 상황은 이러했다.


    “납치당한 게 분명해요!”

    “대체 아까부터 계속해서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생하울라님은 그럴 분이 아니시다!”


    “오크를 무슨 수로 믿습니까? 아까 그 아이가 겁먹어 하는 걸 못 보셨습니까? 저보고 구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줬잖아요.”

    “너 그 망상병 아직도 못 고쳤냐? 그냥 딱 봐도 그냥 낯가리고 있던데. 네가 바깥에서 만난 아이라고 했지? 네가 요정이니 뭐니 이상한 헛소리해서  무서워하는 거겠지!”


    “그럴 리가 없어요. 확실합니다. 제가 구해줘야 해요.”

    “하, 말을 말자…. 나중에 족장님이랑 얘기할 때  닥치고나 있어라, 제발.”

    아르만은 부당하다는 듯 바라봤지만 더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이 놈이 이렇게 쉽게 수긍할 리가 없는데….’

    “진짜 하지 말아라. 괜히 시비 걸어서 문제 생기면  끝장이야. 오크들은 자기 일에 관여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알았다고요.”


    전혀 알아들은 것 같지 않았지만 본인이 알았다는데 더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일단 안테른 남작은 아르만의 검술 스승이었기에 이렇게 막 대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르만이 자신보다 신분이 높았기에 안테른이 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한숨을 깊게 쉰 안테른은 대충 알아 들었겠거니 하고 결국 더 말하기를 포기했다.


    다시 원래 상황으로 돌아와서, 생카울레 족장과 생하울라, 안테른과 아르만이 원탁을 둘러 싸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로서는 인간의 아이가 어째서 오크의 마을에서 있는지 자세한 연유를 들어야 할  같습니다. 물론 저는 생하울라님이 그럴 거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어떠한 범죄에 연류 되었는지 가족은 어떻게 된 건지 알아 봐야 하니까요.”

    “별거 아닌 이야기를 이렇게 풀게 될 줄은 몰랐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생하울라는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을 넉살 좋게 넘기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투르와 만난 건  달 쯤 전이라네. 자네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만, 생 산맥에는 슈라헤라고 하는 일족이 살고 있다네. 저기  산맥을 아래로 잇는 슈라헤 산맥과 같은 이름을 지닌 이들이지. 여기 서리 갈기 부족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었는데 불행히도 세 달 쯤 전에 갑작스런 눈사태로 마을이 그대로 멸망해버렸다네.

    설산에 살던 이들이니만큼 그런 사고의 대비는 철저했을 텐데 그 날 기후가 이상할 정도로 강하게 변해 그들 또한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거 같다고 추측하고 있네. 우리도 갑작스런 기후 이상 때문에  달간 산에 제대로 오르지 못했지. 달이 지나서야 산에 오를  있게 되었고 내가  때 자진해서 그들을 찾으러 갔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모두가 눈에 파묻혀 죽은 끔찍한 상황이었고, 거기에서 투르는 혼자서 눈에 파묻힌 마을을 지키고 있었네.”


    “끔찍한 일이군요.”


    “투르를 거기 혼자 두고 올 수 없어 데리고 와서 그 후로 쭉 같이 지내고 있다네. 처음에는 입도 잘 안 열었지만 곧 마음을 열어줬지. 다행이야. 재능이 있어서 검이나 활 같은 걸 좀 가르쳐줬더니 최근에는 혼자 나가서 토끼 같은 것도 잡아오고 그런다네.”


    “정말 잘하신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생하울라의 얼굴에는 마치 딸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안테른 남작 또한 생하울라가 들려준 미담에 마음이 따뜻해진 듯 미소를 지었다.

    물론 반쯤은 거짓말이었지만.


    누가 그러했던가, 전부가 거짓인 것 보다는 진실에 거짓을 섞는 것이 더 사람을 속이기 쉽다고. 생하울라가 지어낸 얘기는 절반 정도는 사실이었으니 속이는 것은 더욱 어렵지 않았다. 그의 미소마저도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네, 그럼 얘기는 여기서… 끝내도록,”

    “납치한 게 아닙니까?


    아르만이 대화를 끝내려고 하는 안테른 남작의 말을 끊고 난입했다. 안테른 남작은 얼굴에 낭패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지금 무슨 망발이냐! 어서 사과드리지 못하겠느냐?!”


    “아니오, 스승님. 저 자의 말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아까 본 투르의 얼굴은 아주 흰 피부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설산에 사는 민족들의 얼굴은 절대 그렇게 아주 깔끔하게 하얗지 않습니다. 그런 고운 피부는 귀족의 아이에게서나 볼  있는 얼굴입니다. 설사 태어나기를 흰 피부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오래 산 생활을 하면 그렇게 유지 될 수 없습니다.”


    다짜고짜 투르를 이름으로 부르는 무례함은 차치하더라도 아르만의 지적은 정확했다. 실제로 원래 몸의 벨투리안의 피부 역시 갈색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몸의 피부색은 확실히 이런 설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하울라 역시 이런 논리적인 지적 정도는 예상했다. 그에 대한 대답도 이미 준비해왔다.

    “이런 얘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투르는 사생아라네.”


    “사생아라고요?”


    “그래, 슈라헤라는 일족은 사실 굉장히 다른 이들에게 배타적인 이들일세. 그런데 그 일족의 아내가 있는  남자가 산 아래서 우연히 일족이 아닌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다네. 그 아이가 바로 투르일세. 여자가 병으로 죽은 후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돌아갔지. 남자는 어찌됐던 다시 일족에 받아들여졌지만 투르는 그렇지 못해서 사실상 집에서 갇혀서 자랐다네. 투르의 그 흰 피부는 어머니의 것이네.”


     모든 이야기는 어제 벨투리안과 생하울라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생각해낸 것이었다. 상대가 트집을 잡을 요소를 최대한 생각해내 그에 걸맞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다. 생하울라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다.

    안테른 남작은 얘기를 듣고 굉장히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이런 얘기는 결코 쉽게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르만이 억지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르만은 안테른의 바람과는 달리 대화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믿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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