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19/162)


  • 〈 19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축제가 끝나고 벨투리안은 오크들의 마을에서 지내는데 익숙해졌다. 손님으로 받아들여져서 일까, 오크들은 거칠었지만 친절했다. 처음에는 벨투리안의 두 다른 모습에 어색함을 느끼는 이들도 여럿 있었지만(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적응해갔다.

    오크들은 생각과는 다르게 상당히 짓궂은 이들이 많았는데, 벨투리안은 덕분에 작을 때나 클 때나 놀림에 시달렸다. 짜증내던 벨투리안도 결국 그러려니 넘기게 되었으니 그들의 친화력도 상상 이상이었다.

    “흐앗!”


    작은 벨투리안이 위로 도약하여 솜뭉치를 휘둘렀다. 종달새처럼 가뿐하게 날아오르던 벨투리안이 솜뭉치를 휘두르자 검에서 엄청난 중량이 돌아오며 생하울라를 향해 내리 꽂혔다. 물론 생하울라는 땅바닥에 솜뭉치가 닿기도 전에 이미 작은 벨투리안의 뒤에서 맨손으로 벨투리안의 뒷목을 잡았다.

    “으, 으앗. 놔주시오.”

    생하울라가 벨투리안을 놔주자 벨투리안은 요령 좋게 뒹굴지 않고 자세를 취해 땅바닥에 착지했다.


    “거, 훈련 중에는 장난하지 좀 마시오.”


    “장난으로 보였나? 그렇게 빈틈을 보이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는 뼈저린 교훈을 알려주기 위한  훈련 방식이.”


    “흥, 말은 번드러지는 군.”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오후에 율라티에가 순례를 떠나니 나는  쪽을  배웅하러 가겠네.”

    “그가?”

    시간이 지나면서 벨투리안은 여러 오크들과 친분을 나누기도 했지만 율라티에와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겉모습과 다르게 굉장히 공손하고 예의 바른 오크였고, 동시에 무뚝뚝하며 금욕적이었다.


    전장의 순례자는 모두 그런가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생하울라가 거나하게 술에 취한 모습을 보고 의문을 접었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그와는 가끔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나 하는 정도의 친분 밖에 나누지 못했다.

    “그래, 자네까지 올 필요는 없네. 그 놈,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라 배웅 할 사람도 많지 않을 거야.”


    “그래, 그럼 나는 뭐 뒷산에서 찬거리라도 잡아오겠네.”

    “흠, 뒷산이라….”

    “뭔가 문제라도 있는가?”


    “아니, 곧 인간들의 사절단이 올 예정이라서 말이지. 아마 그 아래쪽을 통과해서 올 거 같은데….”


    “인간이라고?”


    “말했듯이 서리 갈기 부족은 여러 곳과 교류를 나누고 있어서 말이지. 저기 서쪽 볼타르 왕국의 가르니메 영지에서 올 걸세.”

    “뭐 중요한 일인가?”


    “중요하지, 이곳에서 구하기 힘든 물자는  쪽에서 얻어야 하니까. 뭐 만난다고 큰 문제 될 건 없겠지만 혹시라도 자네가 당황할까봐.”

    “당황?”

    “자네 일족이 아닌 인간을 만나보는  처음일 테니.”

    “흥, 고작 그런 일에 당황하지는 않네. 내가 어린 아이로 보이나?”

    벨투리안은 말을 내뱉고는 곧 후회했다. 생하울라의 표정이 자신을 놀려먹을 때의 그것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허허, 그럼 세상에 이렇게 작고 귀여운 어른도 있던가?”

    “내 말을 말아야지.”

    “벌써 삐진 겐가? 어른이라면 이 정도 농은 쉽게 쉽게 넘길 텐데 말이야. 역시 아직은 어린애가 맞는  같은데?”


    “헛소리 그만하쇼. 나는 이만 가볼 테니.”


    생하울라는 웃으면서 계속 농으로 대답했다.

    “삐진 거 달래려면 내 인형이라도 하나 사줘야겠군. 무슨 인형이 좋은가?  인형?”

    “당신처럼 못생긴 오크 인형은 없나?”

    “나처럼 잘생긴 오크는 인형으로 만들기 쉽지 않을  같군. 킬킬.  아무튼 간에 사절단이 도착하려면 아마 이삼 일은 더 있어야 할 테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되네. 혹시나 해서 미리 얘기해둔거야.”

    “되었네. 율라티에에게 안부 전해주게나.”


    “그러지.”


    대화를 마친 벨투리안은 집으로 돌아가 사냥 도구들을 챙겼다. 사냥 도구라고 해봐야 작은 활과 화살과  잡동사니가 전부였지만. 활은 얼마 전에 생하울라가 구해다 준 것이었다. 어려진 자신의 모습에 맞게 작은 크기로 만들어 진 것으로 마을의 대장장이가 만들어  것이었다. 활을 만드는 데는 자신이 온 첫날 쪼개 버렸던 나무를 썼다고 했다.

    덕분에 이런 모습으로도 활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활에 적응이  되었지만 훈련을 거듭하다 보니 원래 모습일 때처럼 능숙하게 다를  있게 되었다. 원래 모습일 때  활 또한 만들어 달라 할까 고민했지만, 오크 마을에 있던 기성품으로도 충분히 쓸 수 있었고 뭣보다 나중에 떠날  가져갈  없는 크기일 테니 그냥 단념해버렸다.

    검은 집에 두고 왔다. 사냥을 할 때 가져가기엔 너무 커서 불편하고 방해만 되었다. 후드는 걸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 굳이 꽁꽁 싸매고 나다닐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조차도 뼈가 아릴 추위였지만 벨투리안에게는 따뜻한 날씨에 가까웠다.


    벨투리안은 사냥감을 찾기 위해 뒷산을 둘러 다녔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야생 동물들이 예전보다는 적지만 어느 정도 돌아온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이런 몸으로 멧돼지나 사슴 같은  동물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몸으로 쏘는 화살로 한 방에 죽일 수도 없고 그러지 못한다면 되려 자신이 위험해질 테니까 말이다. 뭣보다 잡아도 들고  수가 없다. 노리는 것은 토끼나  같은 작은 동물들이다.

    벨투리안이 기척을 숨기고, 눈발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이동하던 중, 갑자기 새들이 날아올랐다. 벨투리안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화살을 쏘아 올렸고  마리의 새가 땅에 떨어졌다. 주의 깊게 떨어지는 방향을 확인하고 곧장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떨어진 두 마리의 새를 모두 찾은 벨투리안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도면 벌써 오늘 사냥은 성공한 거 다름없었다. 만족스러운 성과였지만 여기서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새는 됐으니 이제 들짐승이라도  마리 잡아가면 좋을 텐데. 새끼 사슴이 최고였지만 잡기도, 마주치기도 힘들 테니 토끼가 좋을 것이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곧바로 새를 잡은 것과는 다르게 토끼는 두어 시간이 지나도록 찾지 못했다. 한번은 족제비를 발견했지만 너무 빨라서 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놓치고 말았다. 그러던 중이었다.

    푸스럭

    토끼였다. 토끼가 자신을 눈치 채기 전에 곧바로 잡아야 했다. 신중하게 토끼에게 조준을 하고 활을 당기는 중이었다.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걸 느낀 것은 벨투리안 만은 아닌지 토끼는 곧바로 뜯던 풀을 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제길!“


    벨투리안도 곧바로 활을 쐈지만 닿지 않았다. 벨투리안은 토끼가 달려간 방향으로 쭉 달리기 시작했다. 토끼는 줄곧 산 아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쪽은 서리 갈기 부족으로 향하는 길목이 있는 곳이었다. 어차피 오늘 사냥을 더하기는 무리였으니 토끼를 쫓아 내려가기로 했다. 잡으면 좋고, 아니면 그대로 마을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벨투리안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토끼가 내려가다가 순간적으로 무언갈 보고 멈춘 것이었다. 토끼는 오랜 시간 멈춰 있지 않고 바로 점프했지만 벨투리안은 놓치지 않았다. 점토끼는 점프 하던 도중 허공에서 머리에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그리고 그대로 길목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벨투리안이 잡은 것은 토끼만이 아니었나 보다. 길목으로 나와 토끼를 주워 가려고 하는 벨투리안을 보고 있는 것이 있었다.

    “너는… 누구냐?”


    화살을 맞은 토끼의 조금 멀리서 벨투리안을 바라보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청년이 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소년은 작은 벨투리안처럼 금발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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