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18/162)


  • 〈 18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누구?”


    “중간에 내 말을 어떻게 믿냐고 묻던  오크 말이오.”

    “흠, 율라티에 말인가? 그는 뛰어난 전사지.”

    “당신과 비교하면?”

    “그가 다섯이 있으면 겨뤄볼만하지.”

    “놀라운 자신감이군.”

    그러나 그런 말이 무색하게도 생하울라의 말에는 그 어떤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다. 농담처럼 들리지도 않았고, 오만함 또한 없었다. 벨투리안 또한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나처럼 서리 갈기 부족의 손님일세. 순례자가 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중인데, 오크치고는 똑똑한 놈이지.”


    “마치 오크들이 멍청하다는 듯 얘기하는 군.”

    “사실 내가 좀 똑똑해서, 어지간한 놈들은 다 멍청해 보인다네.”

    생하울라의 시답잖은 농담을 무시하고 벨투리안은 다시 물을 들이켰다. 이런 몸이 된 이후로 평소보다 더 자주 갈증을 느꼈다.

    “저기 아까 자네 말을 의심한 친구가 있군.”


    생하울라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그 곳에는 그 말대로 생카울레의 연설 중에 이의를 제기한 오크 율라티에가 있었다.

    “한  불러볼까?”

    “불러서 무엇하게.”


    “어이 이보게! 율라티에! 이쪽 와서 한잔 받지 않겠나?”

    율라티에는 생하울라의 부름에 당황한 기색도 없이 곧바로 와서 잔을 댔다.

    “그래, 그래, 한잔 받게나.”

    “감사합니다. 생하울라님.”

    율라티에는 오크답지 않게 단정한 태도로 술을 마셨다. 겉보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예법 같은 건  하나도 모르는 벨투리안에게도 율라티에의 자세는 꽤나 그럴싸해보였다.


    “전장의 순례자를 뵙습니다.”


    “순례의 길에는 잘 들고 있는가?”

    “아직도 눈을 감은 채 더듬을 뿐입니다.”


    “천천히 하게. 서두른다고 눈이 뜨이는 건 아니야.”

    율라티에는 잔을 모두 비운 후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생하울라도 딱히 뭔가 얘기할 것이 있어 부른 것은 아닌 듯 순순히 보내줬다. 율라티에는 가기 전, 벨투리안을 잠시 곁눈질하다 이내 눈을 돌려버렸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네만.”


    “무엇인가?”

    “그 전장의 순례자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이오? 뭔가 시험이라도 치르는 건가?”


    “비슷하네. 순례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명예와 공훈을 쌓아야 하지. 그리고 여러 오크 부족들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모두가 순례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모든 일을  끝내고 모든 자격을 갖췄을 때, 그리고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길을 찾게 되고 그리 하면 그가 스스로를 전장의 순례자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네.”

    “자네도… 그리 하였나?”

    질문을 하던 벨투리안은 곧 크게 ‘하암’하고 하품을 하였다. 상당히 졸린 모양인지 생하울라의 알기 어려운 설명도 적당히 넘기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반항하지 않았다. 무거운 눈꺼풀이 감기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만 자게나. 축제도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신경 쓸 이도 없을거야.”


    벨투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벨투리안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에 빠지고 말았으니. 생하울라가 자신의 로브를 덮어주었다.

    “지금은 자세나. 찔레나무 가시 숨기 듯 자세나….”

    생하울라는 답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벨투리안은 그에 맞춰 살짝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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