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16/162)


  • 〈 16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돌아왔나? 이거  좀 보게나.”

    집에 돌아온 벨투리안을 반긴 것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생하울라였다. 어젯밤 그렇게 취해서 잠들었는데도 숙취는 보이지 않았다. 오크의 강인함 때문인가. 벨투리안은 생하울라에게 다가가서 그가 만든 스튜의 맛을 봤다.

    “괜찮아. 맛있네.”

    “그거 다행이군. 어디 갔었나?”

    “그냥 주변  돌아보고 왔네. 양만챠우라는 오크를 만났어.”


    “아, 아우테의 아들놈이군.”


    “아는가?”

    “괴짜일세. 좀 있다 만나러  주술사가 바로 그 놈 애비인 아우테인데, 아버지가 주술사라 그런 건지 별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지. 머리도 스스로 깎은 걸세.”

    오크에게 대머리는 특별한 머리스타일은 아니었다. 전투에 있어서 머리카락이 불편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기에 그들은 이미지와는 달리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는 편이었고 아예 밀어버리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생 산맥은 굉장히 추운 지방이었고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서 오크들도 대부분은 머리를 기르는 편이었다. 양만챠우의 머리 스타일은 확실히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좀 이상한 말을 하더군. 이 모습에 맞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나 뭐라나.”

    “생슈크레는 어떤가? 전에도 말했듯이 꽤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전에도 말했듯이, 싫어.”


    “단호하기는.”

    쓸데없는 잡담이 오가는 사이 생하울라가 아침 식사 준비를 끝냈다. 비축해둔 고기와 말린 과일을 함께 구워낸 것과 육포를 넣고 이런저런 향신료를 넣어 끓인 스튜였다. 밤에 먹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든 맛이었다. 벨투리안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제는 말하는 것을 까먹었는데 말이지, 오늘 훈련은 하지 않을 걸세. 부족과의 인사는 밤에 하니까 체력을 보존해두는 게 좋을 거야.”

    “겨우 인사인데?”


    “겨우 인사가 아닐세. 오크족의 인사라고. 밤새 술을 마시고 춤을 추기도 한다. 오랜만의 만찬이라고 먼 곳에 까지 가서 고기를 공수해왔다고. 지금 네 몸이 그러니 그렇게 오래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는 깨어 있어야 할  아닌가.”


    “고기?”

    “서리갈기 부족은 슈라헤와만 교류를 했던 건 아니야. 끝자락에 있는 인간들의 도시와도 교류를 하고 있지. 자네가 오고 다음  바로 이야기를 해서 가져왔지.”

    “갑자기 나타난 까마귀 떼는  때문인가.”


    “생 산맥에 사는 놈들은 꽤나 영리하고 예민하지.”

    고기의 이야기는 둘째 치고 훈련에 대해서는 생하울라의 말이 맞았다.  모습일 때는 보다 쉽게 피곤해지고 빠르게 졸음이 왔다. 훈련으로 체력을 빼놨다간 도중에 잠들어 버릴지도 몰랐다. 벨투리안은 순순히 동의하기로 했다. 생하울라는 계속해서 인사의 과정을 얘기해주었다.


    “환영식이나 다름없다고 말한 만큼 크게 신경 쓸 건 없네. 이야기 자체는 자네가 도착하기 전에 숙부께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거야. 자네와 내가 도착하면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그대로 먹고 마시면 되네. 자정이 되면 자네는 집에 돌아가서 변하고 다시 와서 인사를 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는 잠들면  된다. 변한 모습을 보이고 두 번째 인사를 하면 그대로 끝이야. 원한다면 더 먹고 마셔도 되지만 자네에게 그런 체력이 남아있을지는 잘 모르겠군.”

    “애초에 나는 술을 안 마신다만.”


    “한 잔은 해야 할 거야. 처음 인사를 나누고 연회의 시작은 손님의  술잔으로 알리는 것이니.”

    “불합리한 전통인데.”


    “아무래도 전통을 구상한 사람은 자네 같은 손님이 있을 거라 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거야.”


    식사가 끝나고 벨투리안은 자연스럽게 식기를 치우고 정리했다. 요리를 하는 것이 생하울라였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눈을 녹인 물로 식기를 헹구고 닦아냈다. 부엌에는 주술로 이루어진 불 피우는 도구가 있어서 쉽게 물을 구하고 요리  수 있었다. 평생을 마법과 주술 과는 연관 없이 살아온 벨투리안이었기에 처음 봤을 때는 꽤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설거지가 끝나자 다시  일이 없어졌다. 인사는 밤에 시작되니 아직 한참이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마음 같아선 검을 다루는 연습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체력을 보존해둬야 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벨투리안은 난로 앞에 앉아서 멍 때리기 시작했다.


    과거에 자신의 오두막집에서 살 때도 사냥을 나갈 때가 아니면 크게  일이 없었기에 항상 이렇게 지내곤 했었다. 불꽃이 일렁이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 시간 때우기에는 적절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보다 못한 생하울라가 말을 걸었다.


    “자네 할 일 없나?”

    “이 구석에서 뭐 할게 있다고 그러나.”

    “정 할게 없으면 취미 생활이라도 찾아보는  어떤가? 요리라면 내가 가르쳐 줄  있는데.”

    “요리 가르칠 때는 뭐 늑대 밥만도 못한 쓰레기라고 욕할 텐가?”


    “자네 삐졌나?”

    “아니야.”


    생하울라의 장난스런 물음에 벨투리안이 불쾌감을 표했다. 훈련할 때는 가만히 있었으나 며칠을 계속해서 그런 모욕과 독설을 들었으니 기분이 나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훈련이야, 생사를 가리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니 어쩔  없지만, 요리는 그런 게 아니잖은가. 나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

    “요리를 하는 것도 생사를 가리는 상황에 대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굶어 죽지 않으려면 자네가 하던 대로 대충 구워서 먹기만 해도 된다네. 하지만 결국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기 마련이지.”

    벨투리안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생하울라가 훈련처럼 독설을 내뱉지만 않는다면 기분 상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 배워보겠소.”

    “탁월한 선택이네.”

    ~

    벨투리안이 한참을 기본기와 요리 재료와 도구에 대해서 배우고 난 후 처음 만들게 된 요리는 간단한 스튜였다. 생하울라는 전투에서와 달리 상냥하게 가르쳐줬지만 엄격한 스승이었다. 세밀한 불 조절로 한참을 씨름한 끝에 완성한 스튜는 생각보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반은 내가 만든 거나 마찬가지지만 말이지.”


    “초치지 말게나. 한번 먹어보게.”


    벨투리안의 재촉에 생하울라가 한 스푼 스튜를 떠서 입에 넣었다.


    “흠, 이건...”


    “어떤가? 괜찮은가?”


    “직접 먹어보게나.”

    생하울라가 그대로 스튜를 떠서 벨투리안의 입에 넣어주었다. 갑자기 뜨거운 스튜가 입 안에 들어와 당황한 벨투리안은 안절부절 하며 하악대다가 겨우 스튜를 삼켰다.

    “갑자기 넣으면 어쩌란 건가! 뜨겁지 않은가!”


    “미안하네. 그래서 맛은 어떤가?”

    “...당신이 한 거랑 다르군.”

    별로 맛없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오늘 첫 요리를 하는 이의 스튜였으니 이미 오랜 시간 요리를 해온 생하울라의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당연했다. 이성적으로는 벨투리안도 알고 있었지만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치고는 괜찮은 수준이야. 적어도 이전의 쥐고기 보다는 먹을 만하네.”

    “그러고 보니 그때 당신, 한입에 먹어치웠었지 그걸.”


    “호의로 준 건데 안 먹고 버릴 수도 없잖은가. 아무튼 처음치고 괜찮단 건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니까 걱정 말게나. 요리는 하다 보면 늘게 돼있어.”

    생하울라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일단  스튜는 내일까진 먹어야겠군. 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벨투리안의 얼굴이 약간 찡그러졌다. 속으로는 요리를 배운다고  걸 약간 후회하고 있었다. 배우지 않았더라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생하울라의 스튜를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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