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14/162)


  • 〈 14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크읏...!”


    “손힘이 약해! 팔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해라!”

    큰 벨투리안과 생하울라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서 검과 도끼를 맞대며 대련하고 있었다.


    벨투리안은 그와 검을 맞대면서 매 순간 깨달았다. 확실히 그는 전투의 프로였다. 지금 그는 그의 도끼를 들어서 벨투리안을 상대해주고 있지만, 만약 그가 도끼를 들지 않은  손의 상태였을지라도 벨투리안은 그를 이길  없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네 실력은 늑대 한 마리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수준이다! 늑대가 무어냐! 네놈은 어린 개새끼 한 마리 보다 느리고, 늙은 고양이보다 나약하다! 앞으로도 계속  꼬라지라면 네 그 지린내 나는 몸뚱이는 목이 잘린 채 더러운 구더기들한테 겁탈 당할 거다. 네 놈은 피학성애자인가?! 몸의 균형을 유지해라!”

    생하울라는 한손으로 그 거대한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벨투리안을 압박했다. 벨투리안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욕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매번 대련을  때마다 그가 대련을 하고 있는 건지 전쟁을 하고 있는 건지 구분 할  없었다. 대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몸이 반 토막 날 거라는 상상에 벨투리안을 덮쳤다.


    처음 둘이 훈련을 시작했을 때, 벨투리안이 깨달은 것은 생하울라가 전쟁과 전투에 대해서는 프로일지언정, 검술의 프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생하울라가 가르쳐 주는 것은 검술이 아니었다. 자신은 검술이란 것에 대해서 완전 문외한이었지만 적어도 그가 가르쳐 주는 것이 검술이 아니라는 것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가르쳐 주는 것은 철저한 실전이었다. 그는 첫날부터 자신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분명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생하울라는 철저하게 벨투리안에게 맞춰서 그를 공격했다. 매번 벨투리안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수준의, 그러나 반드시 지는 것은 아닌 수준의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첫 대련이 끝난 후, 벨투리안의 검술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역시 검술 같은 것을 배운 적은 없네만, 나는 검을 들어도  대륙에서 가장 강한 검사와 동수로 싸울 수 있다. 나도 모르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것은 죽지 않는 법과 죽이는 방법뿐이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정답이었다. 벨투리안의 검, 일명 ‘솜뭉치’는 정상적인 검술로 다룰 수 있는 검도 아니었고, 벨투리안 역시 그런 상태였다. 그가 필요한 것은 검로도 정해져 있지 않고 무언가의 비전 또한 없는 마구잡이식 검술, 아니 그냥 휘두르는 법 그 자체였다.

    작은 벨투리안인 날에는 신체 단련을 하며 생하울라의 도움을 받아 검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큰 벨투리안인 날에는 훈련 시간 내내 그와 무기를 맞대며 싸웠다. 생하울라는 훈련 시간 내내 그가 평생 들어본 적도 없던 모욕과 독설을 내뱉었으나 벨투리안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생하울라는 뛰어난 스승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교본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맞춰주면서 하는 실전과 다를  없는 대련은 그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수고했네.”

    “헉, 헉......”


    하루의 훈련이 모두 끝났다. 생하울라는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벨투리안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벨투리안의 건장한 육체는 이미 온몸이 땀으로 물들어있었다. 생하울라에게 매번 죽을 것과 같은 기세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번도 피가 나는 상처를 입은 적이 없었다.


    “가서 좀 쉬게나. 나는 숙부님을  만나 뵙고 올 테니.”


    “다녀오시오.”

    벨투리안은 일어서 검을 짚은 채로 숨을 골랐다. 몸이  진정되고 나면 집으로 가서 몸을 녹일 생각이었다. 평소라면 좀 더 남아서 검을 다루는 연습이라도 했겠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무리인  같았다. 호흡이 편안해지자 벨투리안은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봐.”

    집에 도착하자 그 앞에 서있는 오크 한 명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생하울라가 손님을 데려왔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졌으나 생하울라와 벨투리안 모두 집 주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아는 이들은 적었다. 애초에 오크들 대부분이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한몫했다.

    그는 오크 특유의 탄탄하고 거대한 몸을 갖고 있었다. 생하울라만큼은 아니었지만 역시 벨투리안의 원래 모습보다도 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카울레와 같이 늙어 보이진 않았다. 아마도 그보다 훨씬 젊은 오크일 것이다. 수염은 없었고 대머리였다.


    “생하울라님께서는 안계시나?”

    “그는 생카울레님을 뵈러 가셨다. 방금 전에 향했으니 돌아오는 것은 조금 걸릴 것 같군.”


    “이런 엇갈렸군.”

    그는 낭패라는 듯 얘기하고는 다시 벨투리안에게 말을 걸어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양만챠우라 하네. 서리 갈기 부족의 전사이자 양아우테의 아들이지.”

    “벨투리안이라 하오.”

    “네가 가진 건 사자의 이름이로군. 소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인데.”

    “사자?”

    벨투리안이 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네 놈의 이름, 벨투리안. 지금은 사멸한 연금술사의 언어다. ‘암사자’라는 뜻이다. 암사자는 무리를 이끄는 사냥꾼의 왕이지.”


    벨투리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뜻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필 암사자라니, 지금 와서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꺼림직한 뜻이었다. 애초에 자신의 이름은 원래 일족의 언어로 지어진 것이었으니. 참고로 일족의 언어로는 털복숭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군. 그럼 나는 이만 들어가도록 하지.”

    “미안하네. 내가 너무 오래 그대를 붙잡고 있었군. 잘 있게나, 사자의 이름을 가진 자여.”

    벨투리안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자리를 찾아 누웠다. 평소라면 생하울라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밥을 먹고 쉬다가 잠들겠지만 오늘은 피곤했기에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몸이 변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어있으니 그 때 적당히 남은 거라도 먹으면  것이다. 벨투리안은 금세 잠이 들었다.


    ~

    벨투리안은 평소처럼 자정이 되기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집안을 확인해봤는데 아직 생하울라는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얼마 후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동안 벨투리안이 이를 악물고 고열을 참아 넘기자 모든 변화가 끝났다. 열로 인한 고통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알몸이 된 작은 벨투리안은 다시 옷을 입었다. 물론 원래의 몸으로 입던 옷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었던 작은 가죽옷도 아니었다. 이곳에 온  얼마 안 되서 생하울라가 옷을 갖다 준 것이다.

    작은, 아마도 어린 오크의 것일 옷은 오크 나름대로의 전통성을 갖고 있었다. 벨투리안에게는 낯설었지만 자신이 만든 옷보다는 훨씬 나았고 무엇보다 활동하기가 굉장히 편했기에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벨투리안은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낭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하울라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요리된 음식이 없던 것이다. 어제 만들어둔 것은 아침에 이미 다 먹어버렸다.


    빌어먹을. 벨투리안은 공복감을 느끼며 훈련할 때도 하지 않은 욕설을 작게 내뱉었다. 어쩔 수 없이 되는 대로 저장해둔 말린 과일을 꺼내 씹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쉬웠다. 생하울라는 말린 과일을 가지고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어이! 일어났나?”

    말린 과일을 먹고 있는 도중 생하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에 들어온 그는 곧장 벨투리안이 있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상당히 거나하게 취한 모습이었다.

    “꽤나 늦었군 그래.”

    “미안하네. 아우테놈이 놔줄 생각을  해서...  좀  잔 했네.”


    생하울라가 껄껄 웃으며 자신의 작은 동거인에게 변명했다. 벨투리안이 혀를 차며 답했다.

    “잠이나 자게나.”

    “그 전에 잠깐 얘기할 게 있다네.”


    “뭔가?”

    “다른 놈들과 얘기를  해봤는데 말이지, 자네에 대해서. 일단 자네를 부족 전체의 손님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네.”


    생하울라는 벨투리안이 꺼내둔 말린 과일 꾸러미를 가져가서는 전부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아직 다 먹지 못한 벨투리안이 다시 과일 꾸러미를 가져왔지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벨투리안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 찼다.

    “아, 이거 먹고 있었나? 미안하네. 하하하! 아무튼 말이지…. 자네를 부족 전체의 손님으로 받아들이려면 우선 자네가 부족 전체와 인사를 나눠야 되거든. 일종의 환영식 비슷한 거지. 근데 그렇게  거면 자네 몸의 상태 또한 얘기해야  거야.”


    “그건 필수적인 건가?”


    “나 혼자만의 손님으로 남는다고 해도 지내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거야.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을 거고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마을에서 보호 받지는 못하겠지.”

    “보호 같은 것은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소. 다만….”


    “다만?”


    “그쪽에서 나를 손님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나는 마땅히 예의를 차려 나 또한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거겠지.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았으니까.”


    물론 벨투리안이 받은 것들은 대부분 생하울라 개인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이 인연이 마을과 마을 사이의 연에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벨투리안은 서리 갈기 부족의 은혜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잘 생각했네. 여기 마을 놈들은 대쪽 같아서 어디 가서 말할 놈들도 아니니까 말이지….”

    생하울라는 그 말을 끝으로 식탁에 엎어졌다. 취해서 난동을 부린 것은 아니니 심한 주사는 아니었지만 벨투리안에게는 심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벨투리안은 그를 팍팍 때리면서 말했다.

    “이보게, 자리에 가서 자게나.”

    물론 만취한 상태인 생하울라는 겨우  정도에 깨어나지 않았다. 벨투리안은 말린 과일을 뺏긴 원한도 있고 해서  세게 때렸는데도 생하울라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칼이라도 갖다 대면 깨어날려나. 그건 후환이 두려우니 하지 않기로 했다.


    벨투리안은 생하울라의 잠자리에서 이불을 가져와 대충 덮어주었다. 이 정도면 도리는 다한 셈이다. 벨투리안은 찬장을 뒤져 말린 육포 몇 조각을 챙겨 잠자리로 향했다.  먹다가 배가 차면 다시 잠자리에 들 생각이다. 부엌에서 생하울라가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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