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13/162)



〈 13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이… 이 멍청이가!”


그리고 작은 벨투리안은 진지하게 화를 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화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이렇게 열이 오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얼굴이 잔뜩 빨개졌다.


“당신은 바보인가? 무게가 없으면 이딴 낡은 칼로  어쩌란 거야! 네놈의 괴물 같은 힘이라면 솜뭉치로 때려도 적이 죽겠지만 난 아니란 말이다! 이딴  들고 뭘 때려도 아무 상처 하나 안 난단 말이다!”

벨투리안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가 쥐어 준다는 힘이란  이런 엉터리 칼 하나라면 그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자신은 뭐가 되는가? 물론 그를 따라와서 정보도 얻었고 그와의 동행 역시 나쁘진 않았다. 친구가 생긴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이게 처음부터 이런 바보 같은 기만으로 시작한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연한 얘기다. 칼에 무게가 없다면, 그건 무기가 아니다. 무게는 곧 힘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칼이라고 할지라도 솜털만한 무게라면 아무 것도 벨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게  빠진 대검이라니! 우스운 소리다. 검을 들  있다고 해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벨투리안은 한 손으로 검자루를 쥔 채 마구 휘둘렀다. 파공음조차 나지 않았다. 벨투리안은 휘두르면서 느꼈다. 정확히 검자루에는 정상적인 무게가 있었다.


하지만 검날은, 전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완전 無  자체였다. 이런 걸로는 토끼  마리도 잡을 수 없다. 돌맹이를 던지는 게 나을 거다. 울분에 찬 벨투리안이 생하울라를 향해 칼을 집어던졌다.


그런데 벨투리안의 상상과는 다르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하울라가 솜털과 다를 바 없는 칼을 피했다. 이것이 바로 벨투리안이 예상하지 못한 첫 번째 이변이었다. 당연히 그걸 붙잡을 줄 알았는데, 생하울라는 정말 위험한 물건을 대하는 것처럼 피해버렸다.

두 번째 이변은 검이었다. 솜털이랑 다를 바 없는 검을 그가 피하자 당연하다는 듯 검은 뒤로 날아갔다. 그는  쪽에 서있었기에 그대로 집 밖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날아간 검은 그대로 뒤에 있던 나무에 꽂혀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솜뭉치를 날린다고 나무에 박힐 수는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곧 이어 세 번째 이변이 일어났다.


검은 나무에 꽂힌 채로 멈추지 않았다. 검이 나무에 꽂힌  그대로 나무를 갈라버린 것이다. 아래로 쭉. 검에 맞은 불행한 나무는 검이 박힌 곳을 기점으로 세로로 갈라져버렸다. 얼빠진 벨투리안을 향해 생하울라가 말했다.


“이거 꽤 해 볼만 하겠군. 자넨 재능이 있어. 벌써 하나의 무고한 생명을 박살 내지 않았나.”

생하울라의 유쾌한 말에 얼이 빠진 벨투리안이 횡설수설하면서 말했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이건 뭐, 뭐지? 분명 솜뭉치 같은 칼이었는데… 어떻게 나무가….”

“이름 괜찮군. 앞으로 저 칼은 솜뭉치라고 부를까?”


“이름이 중요한  아니잖소!”


벨투리안이 다시금 화를 냈다. 이번엔 말투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저런 칼이었으면 처음부터 제대로 말해야 할 거 아니오!”


“직접 휘둘러보고 깨닫는 게 좋을 때가 있지. 무기라면 더더욱.”

“위험하잖소! 만약 당신이 맞았으면 어떡할려고!”

“내가 어린애가 투정 부리 듯 던지는 칼에 맞을  같아 보이나?”


분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겨우 그런 눈 먼 칼에 맞은 생하울라가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그리고 이제 딱히 설명도 필요해 보이지 않는 군. 벌써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농담 마시오. 저건 어쩌다  거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건 차근차근 알아 가면 되겠지. 저걸 썼다는 게 중요하네.”

“…화를 내서 미안하오.”


벨투리안은 자신이 아까 저지를 추태를 사과했다. 물론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차분하게 계속 설명을 들었더라면 그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적반하장 격으로 화를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하울라는 웃으며 손사래 쳤다.

“괜찮네. 신경 쓰지 말게나. 유쾌했으니.”


“유쾌?”

“자네는 흥분하면 반말을 하는 군?”


생하울라의 놀림에 벨투리안의 얼굴이 다시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자신조차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버릇이었다. 벨투리안은 뭔가 반박하려고 말을 꺼냈다. ‘그건…! 그러니까…. 그게….’ 하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미안하오. 내가 잘못했소.”

“자네는 의외로 쓸데없는 거에 신경을 많이 쓴단 말이야. 나는 괜찮으니까 사과하지 않아도 되네. 말투가 무슨 문제겠는가. 하하!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계속 그렇게 말해도 괜찮네. 오히려 유쾌하지.”


“내가 안 괜찮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칼, ‘솜뭉치’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잠깐, 정말 그 이름으로 부를 거요?”


“괜찮은 이름 아닌가.”


“당신 이름 센스는 최악이야.”


생슈크레를 생각했다. 생하울라는 킬킬 대며 답했다. 그거 아쉽군!

“아무튼 이 칼은 자네 말대로 솜뭉치만큼이나 가볍다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한다면 사용자가 생각한대로 무게를 조절  수 있지. 물론 자네가 한 것처럼 쉽게 되지는 않아. 자네가 바로 이 칼의 무게를 바꾼 건 놀라운 일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이건 고대의 유산이라네. 어느 연금술사가 만들었다고도 하고, 용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 아마 어떤 놀라운 마법적인 무언가라도 들어있지 않을까?”


“어딜 가나  족속들이 빠지는 곳이 없군.”

“하지만 자네가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지.”

분명 그러했다. 솜뭉치만큼 가볍기에 벨투리안이 어린 모습일 때도 들 수 있었고 순간적으로 무게를 조절한다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다루기 힘들 것이고.”


생하울라가 나무에서 검을 뽑아내며 말했다.

“내가 그걸 가르쳐야겠지.”


“부탁하오. 나는 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 활이나 덫 같은 거라면 몰라도.”

“글세. 이걸 평범한 검처럼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을 거야. 아무리 놀라운 능력이 있다 해도 날이 이런 상태니. 한번 수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날을 건드리지도 못했어. 오히려 검보다는 둔기로 취급하는 게 좋을 거야.”

생하울라가 뽑아낸 검으로 그대로 나무를 후려쳤다. 이미 속이 세로로 갈라졌던 나무는 칼에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베였다, 라기 보단 부서졌다, 라고 봐야 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생하울라가 벨투리안에게 다시 검은 던져주었다. 벨투리안은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검을 받았다.

“자네의 작고 가벼운 몸이 도움이 될 걸세. 내가 자네의 스승이 되어주지.”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려 하지?”


벨투리안이 물었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나와 당신은 만난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은 인연이오. 내가 슈라헤의 마지막 남은 생존자라고 해도 당신의 그 선의는 이해하기 힘드오.”

생하울라는 전장의 순례자이다. 전장의 순례자는 오크들의 신관 같은 존재로, 신이 없는 오크들의 전장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죽음을 기리는 존재였다. 그들은 가장 위대한 전사의 목숨을 취할 자였고 전투의 스페셜리스트이다. 전쟁과 전투에 관해서 배운다면 그보다 가장 적합한 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가 벨투리안에게 말했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가장 위대한 전사의 목숨을 취할 자라고.”


“그런?”

“용의 수급을 취할 자는 그런 자리에 어울리는 존재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요. 나는 용에게 복수할 생각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소. 있다 한들 그런 존재에게 복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벨투리안은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보인다, 전사여. 너의 눈에는 끓고 있는 무언가가 담겨있지. 그것이 증오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나?”

“...나는 전사가 아니오. 사냥꾼이지.”

“늦었네. 너무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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