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11/162)


  • 〈 11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생하울라.”

    “당신의 손님은 그대의 친절을 기억할거요. 생카울레.”


    생하울라와 작은 벨투리안은 서리 갈기 부족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족장의 집으로 안내되었다. 족장의 집이라고 해봐야 다른 오크들의 집과는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목조건물이었다.


    작은 벨투리안은 계속해서 후드를 쓰고 있는 상태였다. 마을에 들어갈 때, 오크 경비병들이 얼굴을 보이라고 할 거라 생각하여 걱정했으나 생하울라의 얼굴을 본 그들은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얼핏 바라본 그들의 눈 속에는 생하울라에 대한 경외가 엿보였다.

    “신뢰 받고 있군, 당신은.”

    “보잘 것 없는 명성 때문이지. 특별한 것은 아닐세.”

    둘은 그대로 안내해 주는 경비병을 따라 족장의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다른 많은 오크들이 생하울라를 알아보고 멀리서 인사를 건넸고, 생하울라 역시 그들의 인사에 가볍게 응대해주었다. 그들은 후드를 쓰고 있는 작은 벨투리안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보였으나 굳이 다가와서 그의 정체를 묻진 않았다. 벨투리안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족장의 집에 들어서자 족장이 건네는 환영의 인사에 맞춰 생하울라 역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족장은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생하울라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오크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근육질의 녹색 몸이 그를 결코 나약해 보이지 않게 하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소. 허나 이 작은 손님에게도 생 산맥의 붉은 망치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나?”


    “제가 너무 성급했군요. 저는 서리 갈기 부족의 족장인 생카울레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꼬마 아가씨.”

    작은 벨투리안은 흠칫하며 놀랐다. 오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그의 정중한 말투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아직 후드를 벗지도 않았는데 그의 모습이 한눈에 꿰뚫려 보인 것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벨투리안은 경계를 멈추지 않은 채 후드를 벗고 인사했다.


    “벨투리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꼬마 아가씨가 아닙니다.”

    얼핏 보면 치기 어린 소녀가 불평하는 것처럼 들릴만한 말이었지만, 벨투리안의 대답에는 강인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규정하는 말이었다.


    “미안하군. 내가 실례를 범했네. 너의 눈 속에는 전사의 혼이 들어있구나.


    벨투리안의 의지에 생카울레 역시 말투를 바꿔 대답해주었다. 벨투리안 역시 정중하게 그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둘의 대화가 끝나자 생하울라가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생하울라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다시 말했다.


    “나는 이런 대화를 하는데 영 재능이 없어서 말이지. 그대가 물어보면 대답하는 식으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군.


    “확실히 이번에는 얘기할 게 있나 보군요. 매번 허탕만 치시더니.”

    생카울레가 고개를 돌려 다시 벨투리안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선  어린 전사의 얘기를 들려주시지요. 아니, 이 얘기는 생하울라님이 아니라 본인에게서 듣는  가장 좋겠군요. 어린 전사여, 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순간 벨투리안은 망설였지만 이내 입을 열기로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생하울라가 말할 것이었고 애초에 이 이야기를 하러 온 곳이 아닌가.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숨길만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내 이름은 벨투리안입니다. 나는 멸망한 일족 슈라헤의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로군, 전사여. 너의 말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내 모습이 이러하니 당신의 의심 또한 합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증명  수도 없으며 증명 할 필요 또한 없습니다. 나의 이 모습은 용의 저주 때문입니다.”

    “용의 저주?”

    생카울레가 생하울라를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그의 원래 모습은 저런 어린 아가씨의 모습이 아니라네. 나는 마법과 주술에는 문외한이기에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지만 그는 하루가 끝나는 시간, 달이 하늘 끝에 걸리는 때에 모습이 바뀐다네.”


    생카울레는 생하울라의 말을 듣고 벨투리안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벨투리안 역시 생하울라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지금까지의 일들을 정리해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생카울레가 되물었다.

    “전사여, 혹시 그 용은 재앙을 조각하는 울푸레였나?”

    벨투리안과 생하울라가 놀라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도 궁금하군. 나 역시 어떤 용인지는 듣지 못했는데.”


    벨투리안은 생하울라에게도 용의 이름을 말하진 않았다. 슈라헤가 용의 이름으로 멸망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용의 이름이 함부로 말하고 다닐만한 종류의 것이라 고는 생각할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생하울라를 완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만약 자네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로군.”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란 것은 내가 보증하겠네. 적어도 그가 매일 모습이 바뀌는 저주에 걸렸단 것은 확실해. 직접 확인했네.”

    생카울레는 계속 말없이 앉아 있었다. 생하울라의 재촉도 무시하고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옆에 있는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석양이 지지 않는 전장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슈라헤 일족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이었습니다. 거리를 생각한다면 편지가 쓰인 시점은 아마 몇 개월 전의 일이었겠죠.”


    “알마티에가?”

    “예. 알마티에가 보낸 서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생카울레는 서랍에서 찾아낸 두루마기를 꺼내 그대로 책상에 놓고 펼친 채 읽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새가 날아왔다. 눈이 부실  밝은 빛이었다.  새는 우리에게 생 산맥의 울푸레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에게 대답해  것이 없었다. 어째서 하필 우둔한 우리에게 그런 말을 물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너희 부족과 연이 있단 것을 알고 온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능히 우리 모두를 한 순간에 취할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물론 그렇게 된다 해도 우리는 손에서 무기를 놓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주의하도록. 초월적인 존재가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것이 너희 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는 알 수 없다.’ 이상입니다.”


    “황금색 새….”

    “공교롭게도 자네의 머리칼과 같은 빛깔이로군.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허나 내 원래 머리색은 이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울푸레라는 용에 의해서 변이 되었단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는 군.”

    벨투리안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얻어낸 정보에 대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용의 저주만으로도 골치 아픈 일인데 여기에서 무언가 다른 초월체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저주가 그와 관련이 있을지는 물론 모르는 일이었지만 아니라고 확정 지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서가 생긴 것은 분명했다.


    “말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생카울레.”


    “자네가 슈라헤의 마지막 생존자라면 우린 그들과의 맺은 동료의 연으로써 자네를 도와야  의무가 있네.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생하울라가 말했다.


    “그럼 이제 한 가지만 더 말하면 되겠군.”

    “아직 무언가 더 말할 것이 남았습니까?”


    “부탁 한 가지만 하겠소. 생카울레.”

    “당신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그리고 생하울라는 그 거대한 손으로 벨투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벨투리안은 저항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당분간 이 놈과 같이 이 마을에 머물 수 있을까?”

    생카울레는 흔쾌히 허락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