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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9/162)


  • 〈 9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모든 이야기를 들은 생하울라는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작은 벨투리안은 주변에서 대충 긁어모은 눈을 냄비에 넣고 불 위에 올렸다. 녹은 눈이 점차 끓기 시작했다.


    벨투리안은 뜨거운 물을 생하울라에게 건넸다. 생하울라는 받은 물을 온도도 신경 쓰지 않고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벨투리안에게는 무리인 일이었다. 이런 몸 상태가 아니었더라고 무리였을 테지. 이윽고 입가심을 마친 생하울라가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겠네. 나는 용과 같은 신화적인 이야기나 마법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는 전혀 모른다네. 그래서 자네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군.”

    “믿지 않아도 상관없소. 애초에 우리가 친구 같은 관계인 것도 아...”

    생하울라가 벨투리안의 말을 끊고 외쳤다.


    “아닐 리가 없지, 그래! 애초에 자네의 말을 확인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 무슨 소리요?”

    “밤까지 기다려 보면 확실하지 않겠나. 자네의 저주가 정말인지 아닌지.”

    “저주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요?”


    “그래, 사실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군.”

    둘의 이야기는 그대로 끊겼다. 벨투리안은 어차피 내일 몸이 돌아오는 대로 자신의 오두막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을 배신했던 친구 아레히를 찾는다고 생각했지만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당장은 재정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하울라는 벨투리안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벨투리안으로서는 전혀 알  없는 일이었다.

    대화가 끝난 이후로 특별한 이변은 없었다. 벨투리안의 거처는 생하울라와  자신이 같이 들어가긴 무리가 있는 크기였기에 생하울라는 주변의 눈을 치우고 대충 자리를 만들어 누웠다. 아무래도 밤이 올 때까지 한숨  생각인 듯 보였다. 인간이라면 얼어 죽기 딱 좋은 행동이었지만 강인한 오크인 그에게는 별 상관없는 문제인 듯하다.


    벨투리안은 그가 자고 있을 때 떠날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금방 잡힐 것이라 판단하고 포기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자신을 공격하진 않겠지. 그렇게 믿어야 했다. 벨투리안은 생하울라처럼 밤이 오기 전까지 잠이나 자기로 했다.

    벨투리안이 잠에서 깬 것은 자정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벨투리안은 달과 별의 위치를 보기도 전에 시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런 몸이 되고 나서 부터 자연스럽게 변하는 시간이 언제일지를 느낄 수 있었다. 생하울라는 아직 자고 있는 듯 보였다.


    “이보시오.”

    벨투리안은 생하울라를 깨웠다. 처음에 말을 걸어서 깨우려고 했지만 생하울라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벨투리안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어깨가 마치 돌덩이 같았다. 3분쯤 그의 어깨를 계속 치면서 말을 걸자 생하울라가 눈을 뜨곤 말했다.


    “벌써 자정인가?”

    “곧.”


    생하울라가 밤하늘을 보고는 생각했다. 정확하군. 벨투리안은 그런 생하울라에게 거처를 가리키면서 다시 말을 걸었다.


    “난 변화가 끝날 때 까지 저 곳에 들어가 있을 거요.”

    “변화를 직접 볼 수는 없는 건가?”


    “당신이 나의 수치심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오.”


    생하울라는  말에 그 변화라는 것이 알몸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미안하네.” 그는 자신의 무례를 사과했다.


    어차피 벨투리안이 거처 안에서 그를 피해 도망 갈 수도 없었으니 생하울라는 직접 보는 것을 쉽게 포기했다. 설사 도망가더라도 그는 충분히 도망치는 벨투리안을 잡을 능력이 있었다. 벨투리안 역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말한 것이었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던 간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소.”


    생하울라는 동의했다. 벨투리안은 거처로 들어가 옷을 벗어 알몸이 되었다. 이윽고 자정이 되었다.

    “끅... 흐윽...”

    평소라면 벌써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바깥에 생하울라가 있다. 벨투리안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신경줄을 붙잡았다. 비명은 없었으나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5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5분이 지나자 모든 열이 원래 없었던 것 마냥 사라지고 자신의 원래 몸으로 돌아왔다. 벨투리안은 옷을 걸치고 거처를 나섰다.

    “사실이었군.”

    생하울라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매일 산에 울려 퍼지던 비명 소리는 자네의 것이었군.”

    “들렸소?”


    벨투리안은 당황해서 물었다. 만약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기 전이었다면 벨투리안의 작은 뺨이 빨개졌을 것이다.


    “걱정 말게. 산 아래에선 들리지 않았을 거야. 원래 그렇게 매일 고통스러운 건가?”

    “첫날보다는 약해졌소. 갈수록 약해지는 것 같군.”

    아까는 굉장히 어색해 보였던 무뚝뚝한 말투는, 모습이 바뀌니 제 원래 모습을 되찾은 마냥 자연스러웠다. 물론 실제로도 그것이 맞았지만.

    “지금은 괜찮은 건가? 산을 내려 갈  있겠나?”


    “몸은 괜찮소. 그런데 산을 내려간다니 그건 무슨 소리요?”


    “물론 서리 갈기 부족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거지.”

    벨투리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당신의 부족으로 간단 말이오?” 그러나 생하울라는 막무가내였다.


    ‘그럼 아무 기다리는 이도 없고, 갈 필요도 없는 오두막으로 돌아간단 말이냐? 나는 슈라헤 일족의 친구로서 너를 도울 의무가 있다. 서리 갈기 부족에는 주술사가 있으니 마법적인 조언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하울라는 그런 말들로 설득을 시도했다. 벨투리안은 그런 생하울라의 말에 아직도 자신을 나약한 어린 여자애로 보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벨투리안은 아직까지도 그가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하울라의 압도적인 무력이 되려 그의 안전성의 보증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주술사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혹했지만 다른 오크들을 믿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벨투리안은 그에게 상투적인 거절의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생하울라의 이어지는 말에 벨투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거절의 말을 집어넣고 반문했다.

    “자네가 어떤 모습이던 간에 스스로를 지킬  있는 힘을 주겠네.”


    “소녀의 모습일 때도?”

    “소녀의 모습일 때도.”


    생하울라는 속으로 작은 환호를 외쳤다. 이게 정답이었군. 그건 분명 벨투리안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였다. 생하울라는 벨투리안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벨투리안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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