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8/162)


  • 〈 8화 〉서릿발 아래의 사자들이여

    생하울라와 벨투리안은 벨투리안의 거처 앞에 불을 피우고 앉았다. 벨투리안은 이전에 잡아둔 들쥐 두 마리의 가죽을 벗기고 나뭇가지에 꽂아 불 위에 올렸다. 용의 습격 이후, 산맥의 동물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 이런 작은 쥐 고기도 감지덕지인 마당이었다. 둘은 고기가 다 익을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고기가 익자 벨투리안이 입을 열었다.


    “드시오.”

    “고맙네.”


    생하울라는 아직 식지 않아 뜨거운 쥐 구이를 그대로 한입에 넣어버렸다. 아무런 양념도 되지 않아 그다지 맛은 없었으나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뜨거운 쥐 구이를 과일 씹듯 먹으면서 벨투리안을 관찰했다.


    벨투리안은 뜨거운 쥐 구이를 입김을 호호 불어 조금씩 뜯어 먹었다. 작은 입으로 야금야금 쥐 고기를 먹어 가는 것이 아까 죽은 쥐의 가죽을 벗길 때의 능숙한 모습과는 달리 어설퍼보였다.

    마침내 작은 벨투리안이 쥐 고기를 뼈만 남기고 모두 먹어치웠을 때가 되어 서야 생하울라는 물었다.


    “그래, 자네 이름은 뭔가?”

    “내 이름은 벨투리안이오. 슈라헤 산맥의 슈라헤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요. 만약, 생 산맥에서 살아남은 자가 없다면.”

    생하울라는 흥미로운 얼굴로 벨투리안을 보았다. 지금은 사라진 일족 슈라헤의 마을이  곳이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소녀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얼굴은 결코 슈라헤라고 보기는 어려운, 전혀 다른 인종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답을 들었다면 이제는 내가 물을 차례인가? 당신이 슈라헤의 친구라는  무슨 소리지? 일족은 그대의 전사들을 존중하나 녹색 피부를 가진 자들과는 악수를 나누지 않소. 나는 당신의 말을 믿을  없군.”

    “너는 정말로 슈라헤의, 슈라헤 산맥의 아이로구나. 듣던 대로 꽉 막히고 과거에서 하나도 배우지 못했군.”


    일족을 모욕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벨투리안은 딱히 화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침묵할 뿐이었다. 그 부터가 당장 그 일족의 피해자가 아니었는가. 그러나 그 고요한 침묵이 생하울라에게는 신선해보였다.


    “화를 내지 않는군? 그대들, 일족의 자존심만큼은 슈라헤 산맥이든 생 산맥이든 별 차이가 없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틀린 말도 아닐뿐더러, 이미 스러진 자들의 변명을 해서 무엇 하겠소? 그리고 나는 아이가 아니오.”

    벨투리안이 화를 낸 건 오히려 자신을 아이 취급한 것에 대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벨투리안의 말에 생하울라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반응했다.

    “그래, 그 이야기를 들어야겠지. 어떻게 그들이 스러졌는지를. 그러나 너는 나를 전혀 믿지 못하고 있구나.”


    “내 어떻게 당신을 믿겠소? 우리는 피부색마저도 다른데.”


    “그렇게 따지자면 자네 역시 슈라헤 일족과도 피부색이 다른데 말이지?”

    벨투리안의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 그의 모습은 확실히 슈라헤는 아니었으나 그런 식으로 반박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괜찮네. 오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어린 자네가 살아오면서  모든 사람들의 수보다 많을 테니. 특별한 일은 아니지.”


    생하울라는 관대하게 벨투리안의 무례를 넘어갔다.

    “자네가 내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것 역시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야. 생 산맥의 슈라헤는 슈라헤 산맥의 슈라헤와는 달리 이미 많은 것을 바꾸고 있었으니까.  인연은 아니나 과거 난 그들에게 작은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고 그때 일을 계기로 그들과 친분을 맺었지.

    그들은 산맥 속에서 계속 박혀있으면 계속해서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산맥 아래쪽에 있는 서리 갈기 부족과 만나기 시작했다. 나는 서리갈기 부족의 손님으로서, 그리고 슈라헤 일족과의 친구로서 그 둘의 교역을 중개하는 입장이었다. 슈라헤가 소리 소문 없이 한 순간에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야.”

    “서리 갈기 부족이란?”


    “자네의 예상대로, 오크의 부족일세. 생 산맥의 슈라헤들은 아마 너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겠지. 결코 환영 받을 수 없는 이야기일 테니.”

    벨투리안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늘 바깥을 배척했던 이들이 다른 종족과의 교류를 했다는 것은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오크가 굳이 거짓말을 하며 그를 설득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이 사내가 보여준 힘을 생각해보면 거짓과 진실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모습을 들킨 시점에서 모든 생사여탈권은  오크에게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손님이란 건, 당신은 서리 갈기 부족의 오크가 아니란 건가?”

    “그렇지. 나는 부족 없이 떠돌아다니는 전장의 순례자요, 오크들의 신관일세. 아까 말했던 대로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의 인연 덕에 서리 갈기 부족과 슈라헤 사이의 접선을 돕게 되었지.”


    “…당신의 친구도 죽었겠군, 그럼. 미안하오.”

    “자네가 미안해할 것 없네. 어린 자네가 무슨 일을  수 있었겠는가?”

    벨투리안은 결국 일족의 이야기를 말하기로 결정했다. 기실, 숨길 이유도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정말로 어린 아이가 아니오. 아직은 당신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지만, 일족이 멸망했는데 이런 얘기 좀 한다고 문제 생길 것은 없겠지.”

    생하울라는 벨투리안의 말에 눈을 빛냈다.

    “내가  이런 모습인지, 어째서 슈라헤의 마지막 인간이 이런  피부를 가졌는지 얘기해주겠소. 어떻게 우리가 멸망했는지.”


    그것은 용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내와 어리지 않은 아이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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