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끊기지 않을 인연
쯔르레이는 이렇게 변한 자신의 몸이 얼마나 나약한지, 그리고 자신의 몸이 변할 때 얼마나 무방비한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항상 주변에 숨고 은신할 곳이 많은 산을 위주로 동선을 짜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
한번은 숲에서 적당한 숨을 곳을 찾지 못해 풀숲으로 몸을 대충 가린 채 변한 적도 있었다.
만약 자신이 ‘벨투리안’의 몸이었다면 나무를 베어서라도 숨을 곳을 만들었겠지만 당시에 자신은 ‘쯔르레이’의 몸이었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직까진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마주친 적은 없었으나 언제까지 그 행운이 계속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천만다행으로 이번에는 적당히 숨을만한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추격자가 오지 않는 한, 오늘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이런 몸이란 걸 아레히에게 알렸으니 괜히 추격자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친구는 무례하지만 어리석은 놈은 아니었다. 평소라면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쯔르레이 또한 흥분한 상태였기에 눈치 채는 것이 느렸다.
동굴 속에 들어가자 동물의 배설물 냄새와 시체 썩은 내가 났다. 그러나 안에서 동물의 기척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우... 아니, 이건 늑대군. 지금은 없다. 거처를 옮겼나? 아냐. 날씨가 풀리기 시작한 지금 굳이 거처를 옮기려고 하진 않을 거야. 이 냄새는 하루가 되지 않은 냄새다. 단체로 사냥을 나갔군. 여섯... 아니 다섯인가.’
쯔르레이는 침착하게 동굴의 주인의 정체를 파악해냈다. 늑대들이 사냥에 돌아오는 것은 아마 한참 뒤의 때 일거라고 쯔르레이는 생각했지만, 그것이 자신이 안전하게 변신을 끝낸 후 일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나. 쯔르레이는 동굴의 입구 쪽에 불을 피우기로 했다. 눈에 띄는 일이지만 추적자가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추적자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여행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일까지 생각해서는 방도가 없었다. 쯔르레이는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워 입구를 막았다. 화상을 각오하지 않는 다면 쉽게 들어올 수는 없을 것이다. 나뭇가지들이 눈으로 젖어있는데다가 부싯돌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곱고 자그마한 손 때문이었다.
곧 자정이 될 것이다. 쯔르레이는 등에 매어둔 대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자신의, ‘벨투리안’의 옷을 꺼내고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을 벗어 가방 속에 넣었다. 어리고 작은 소녀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드러낸 그 언밸런스한 모습은 일견 배덕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나 쯔르레이는 그저 불편할 뿐이었다.
이 몸은 나약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쯔르레이의 몸은 오히려 그 나이대의 소녀들보다 훨씬 더 강인한 편이었지만 벨투리안의 몸과는 비교할 것이 못되었기에 쯔르레이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곧 쯔르레이에게 익숙한 고열이 찾아왔다. 온 몸이 불타는 듯 한 뿜어져 나오는 열이 소녀의 몸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러나 쯔르레이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열 때문에 얼굴이 지나치게 빨개지긴 했지만 편안한 모습이었다.
약 5분 여 간의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게 변해있었다. 더 이상 쯔르레이는 없었다. 그저 강인한 벨투리안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모든 열이 사라지고 진정되자 벨투리안은 꺼내두었던 자신의 옷을 챙겨 입었다. 변화가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열이 사라졌다. 열보다는 가녀린 쯔르레이의 모습이 더욱 고통이었다. 벨투리안에게는 그 모습이 가장 굴욕적이었다.
아직 늑대들은 오지 않은 듯 했다. 어차피 늑대의 동굴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으니 그는 그대로 늑대들에게 다시 동굴을 돌려줄 셈이었다. 침입자가 생겼으니 결국 늑대들은 거처를 옮기겠지만, 그렇다고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이곳에 있으면 늑대와 괜한 실랑이를 벌이게 될 뿐이었다.
늑대가 있는 숲이니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벨투리안은 잠을 포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몸이 커졌을 때 최대한 많이 움직여두는 것이 좋았다.
더 멀리 갈 수 있게, 더 자신을 실감할 수 있게.
프롤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