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챕터 14 그들의 사정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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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아아앙!!!!
연한 황금빛이 덧씌워진 기간트의 검이 땅을 갈랐다.
오러의 발동과 함께 기간트의 성능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골이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그게 이세우의 죽음을 의미하진 않았다.
다람쥐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던 이세우는 기간트의 검에 닿기 직전에 그곳을 피했다.
“여기다. 여기.”
어마어마한 위력을 선보이는 기간트에 탑승한 파이크란 영주와 맨몸인 이세우.
누가 봐도 이세우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파이크란 영주의 눈을 피해서 숨거나 도망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세우는 숨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 자신의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줬다.
“이노옴!”
이세우의 그런 모습이 파이크란 영주의 화를 더 돋웠다.
너 따위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니 좀 더 분발해라.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세우의 행동이, 그렇게 느껴졌다.
흥분한 파이크란 영주가 기간트의 몸을 돌려, 이세우를 공격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이번에도 귀청이 터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골이 생겼다.
이번에도 이세우는 무사했다.
“여기라니까!”
또다시 자신의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세우.
“으아아아아!”
파이크란 영주가 다시 기간트의 몸을 돌려 이세우를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그럴 때마다 이세우는 보란 듯이 그곳을 빠져나갔다.
오러까지 사용하며 기간트의 성능을 높인 파이크란 영주는 이세우의 몸에 작은 상처도 내지 못했다.
“하악- 하악- 왜, 왜 맞출 수 없는 거지? 저 미꾸라지 같은 놈이 무슨 마법을 부리기에···.”
흥분한 상태에서 너무 격렬하게 움직인 탓일까?
파이크란 영주는 빠르게 지쳐갔다.
오러도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그것은 곧 기간트의 성능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에 반해 피하기만 하던 이세우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이제는 이세우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쳤던 파이크란 영주가 반사적으로 기간트의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파이크란 영주의 힘이 많이 줄어든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폭음이 줄어들었다.
폭음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간트가 공격할 때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시커먼 골이 생겼다.
그런데 지금의 공격은 4미터 깊이의 골을 만들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네가 너무 불쌍해서 두고 볼 수가 없다. 이러면 나한테 득 될 것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해서 네 문제점을 친절하게 설명해 줄게. 귀 활짝 열고 잘 들어라. 첫째, 넌··· 느려. 느려도 너무 느리다고. 그렇게 느려서야 거북이도 못 잡겠다.”
“이놈이 진짜!”
진짜 힘이 다 빠졌는지, 소리만 지를 뿐 기간트를 움직이지 않는 파이크란 영주.
“둘째, 동작이 너무 정직해. ‘나 지금 공격해요. 이번엔 여길 공격해요.’ 라고 친절하게 다 알려준다고. 그런 뻔하고 단순한 공격을 어떻게 안 피해? 그걸 그냥 맞아주는 게 널 모욕하는 거라고 생각될 정도라니까.”
이젠 화를 낼 힘도 없는지.
아니면 이세우의 친절한 설명에 정말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파이크란 영주.
“셋째. 이게 제일 중요해. 넌 겁나 못 싸워. 코흘리개 꼬마도 너보다 잘 싸우겠다. 네가 지금 타고 있는 거, 기간트라고 하나? 그걸 왜 네가 타고 있냐? 다른 사람이 탔으면 너보다 10배 아니 100배는 더 잘 쓸 것 같은데.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 같은 기간트, 네가 쓰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 그게 진정으로···. 아, 그리고···.”
이세우는 아직 할 말이 많다는 듯 계속해서 파이크란 영주의 단점을 떠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지금껏 조용히 듣고만 있었던 것은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였고 이젠 힘을 다 회복했다는 듯, 괴성을 지르며 기간트를 움직이는 파이크란 영주.
‘아버지···.’
이세우의 모습에서, 항상 자신을 꾸짖기만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굼벵이가 기어가는 듯한 그 느린 검은 뭐냐? 파이크란 너 검술 수련을 하고 있기는 한 거냐? 뭐 하고 있다고? 그런데도···. 하아-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그러고도 네가 내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느냐! 나에게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다면···. 허허- 내 뒤를 이어 영주가 될 놈이 이렇게 한심할 줄이야. 재능이 없으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란 말이다! 노력을! 네놈이 내 아들이라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칭찬 한마디를 들으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했다.
그런데 타고난 재능이 형편없다보니 노력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듣기는커녕 무능력한데 노력까지 하지 않는다는 꾸지람만 들었다.
그런 꾸지람을 몇 번 듣다보니 이런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꾸지람을 듣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내가 뭘 하든, 아버지는 마음에 안 들어 할 거다.
다른 의미로, 내가 망나니짓을 해도, 아들이 나 하나뿐이기에 다음 영주는 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파이크란은 결국 삐뚤어지고 말았다.
하루가 다르게 삐뚤어지는 파이크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전대 영주는 결국 울화병으로 단명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주가 된 파이크란은 아버지의 잔재를 지워버리려는 듯, 아버지의 오른팔이자, 아버지 못지않게 쓴 소리를 늘어놓던 록슬리를 단장직에서 파직시켰다.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록슬리가 영주성이 있는 직영지에 계속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 짜증이 났다.
그래서 드록스 산과 인접하고 있는 3등급 마을로 쫓아 보냈다.
이때만 해도 드록스 산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3등급 마을로 쫓아낸 록슬리가 드록스 산을 정찰하다가 박유나를 만나게 될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뭐? 이계인 성녀?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록슬리는 충성스러웠다.
파이크란 영주에 의해서 단장직에서 물러난 것도 모자라 3등급 마을로 쫓겨났지만 박유나를 만난 것이나 박유나가 신성력을 각성하고 성물까지 사용하던 것을 숨기지 않았다.
파이크란 영주에게 상세하게 보고했다.
록슬리의 보고를 받은 파이크란 영주는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중앙에 박유나의 존재를 알리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파이크란 영주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아니 증오했다.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가 충성을 다하던 국왕도 싫었다.
수백 년 동안 탄생하지 않았던 성녀의 탄생을 국왕에게 보고하고 싶지 않았다.
성녀의 탄생을 알게 된 국왕이 신성 왕국과 협상하여 이득을 취할 게 뻔했다.
그게 싫었던 파이크란 영주는 아버지 생전에는 이를 갈며 싸우던 귀족파에 이계인 성녀의 탄생을 알렸다.
파이크란 영주가 속한 라티아 왕국이 국왕파와 귀족파로 파벌 싸움을 하는 것처럼.
삼신(빛의 신 아그레파와 대지의 신 쥴리어스 그리고 바다의 신 헤이달)을 모시는 신성 왕국 역시 파벌 싸움을 하고 있었다.
파이크란 영주로부터 이계인 성녀의 탄생을 보고 받은 귀족파는 신성 왕국을 다스리는 알렉산더 교왕의 반대 파벌에 이 소식을 전했다.
그리하여···.
각설하고.
이세우에게서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를 본 파이크란 영주가 모든 오러를 끌어올렸다.
“으아아아아아아!!!!”
기간트의 검을 연하게 감싸고 있던 황금빛이 진해졌다.
“죽어!!!!”
기간트가 지면을 힘껏 박차며 공중으로 점프했다.
지금까지의 공격 방식으로는,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이세우를 맞출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파이크란 영주는 공격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이번 공격에 자신의 모든 오러를 건 파이크란 영주가,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필살기를 펼쳤다.
콰가가가가가가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이세우가 있던 곳과 그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이번에야 말로···.”
공격의 위력을 줄이는 대신 공격 범위를 늘리는 필살기를 사용한 파이크란 영주는 이세우의 죽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너 정말··· 멍청하구나.”
기간트와 한참 떨어진 곳에 이세우가 멀쩡하게 서 있었다.
“어, 어떻게?! 그걸 어떻게 피한 거지?”
대답대신 피식- 하고 웃기만 하는 이세우.
얼핏 보면 이세우가 이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겠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줬다. 이세우, 참으로 대단하다.]
‘이게 다 저놈이 멍청해서 가능했어. 저놈이 눈치가 빠르거나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알았다면···.’
정상적으로 싸워서는 기간트를 탄 파이크란 영주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혼자라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지만 박유나를 비롯한 일행들을 데리고선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박유나를 비롯한 일행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킬 방법이 있었다.
문제는 그 방법를 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이크란 영주의 관심을 자신에게 쏠리게 한 후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이때만 해도 크게 다칠 줄 알았다.
그만큼 기간트라는 존재는 대단했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태세우스와 박유나의 초능력으로 살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만 있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파이크란 영주는 단순했다.
아니 멍청했다.
파이크란 영주와 오래 싸우지 않고도 그의 성향이 어떻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파이크란 영주와 힘들게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간파한 이세우는 일부러 파이크란 영주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랬더니 예상대로, 파이크란 영주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식하게 힘만 쓰며 공격했다.
그리하여 지금 보듯이, 기간트의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쉽네. 블랙 오크의 코어가 하나만 더 있었으면···.’
파이크란 영주에게는 움직임이 느리네 어쩌네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느린 것은 아니었다.
움직임이 단순하고 정직한 것은 맞지만 느린 것은 아니었다.
태세우스가 블랙 오크의 코어로 마법의 위력을 높이지 않았다면 파이크란 영주 아니 기간트에게 당했을 것이다.
반대로 블랙 오크의 코어가 하나만 더 있었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기간트를 박살냈을 것이다.
※ ※ ※ ※
“대주교님의 말씀대로, 한심하군. 저런 자가 영주라니. 테무론 영지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뻔 하군.”
알미니의 말을 듣고 있던 렉티온이 말했다.
“알미니님. 슬슬 준비할까요?”
“신성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으니 준비하지.”
알미니가 꼼짝하지 못하는 기간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파이크란 형제. 고맙소. 파티안 형제의 죽음으로 너무 흥분해서 하마터면 큰 실책을 저지를 뻔했는데. 그대 덕분에···.”
알미니의 시선이 박유나에게로 향했다.
“다른 놈은 다 죽여도 저 이계인 성녀만큼은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예!”
이세우와 파이크란 영주가 싸우는 동안 신성력을 회복한 알미니와 렉티온 그리고 제노미오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찰나.
쿠우우우웅!
새로운 기간트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