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클로에 린다
클로에 린다는 항상 사교계의 화두에 오르는 인물이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전자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었고, 후자는 그녀의 가정사와 문란한 인간관계 때문이었다.
린다 후작가의 가주이자, 클로에의 하나뿐인 오라비 에드윈 린다는 그런 제 여동생 덕분에 오늘도 집사가 헐레벌떡 가져온 저급 가십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가십지의 첫 장부터 보이는 클로에의 모습에 에드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은 또 무슨 소식을 마주하게 될까, 예상 가능한 두려움이 들었다.
가십지의 첫 줄을 읽자마자 에드윈은 손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곧바로 집사를 시켜 제도에 있다는 클로에를 후작저로 불러들였다.
제 오라비가 부를 걸 미리 알기라도 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클로에가 나긋한 태도로 후작저의 집무실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반성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클로에, 도대체 뭐가 문제야?”
“뭐가요?”
천연덕스러운 클로에의 물음에 에드윈은 가십지를 테이블 위로 펼쳤다. 그것은 이미 그의 손에서 한차례 엉망으로 구겨진 후였다. 에드윈은 그녀에게 보라는 듯 그것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가십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는 사진 속 클로에는 사교계의 바람둥이라 불리는 데미안 호르세와 함께 오페라 극장 앞에 서 있었다. 지난달 가십지에는 분명 레번트 자작 영식이 그녀의 옆에 있던 걸로 에드윈은 기억한다.
가십지의 첫 줄에는 공작 부인의 은밀한 나들이 어쩌구로 시작하는, 클로에를 향한 음탕하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걸려 있었다.
당장 이 가십지의 발행처를 재기불능으로 만들고 말리라 마음먹은 에드윈은 애써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클로에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엉망으로 살 건데.”
그의 물음에 클로에는 손끝으로 가십지를 들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이 남자는 별로더라고요. 멋대로 제 손목을 잡아서 정이 뚝 떨어졌어요.”
“클로에. 지금 장난하자는 거 아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에드윈은 머릿속으로 제 여동생의 손목을 함부로 잡은 데미안인지 뭔지의 손을 발로 뭉개 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런 제 오라버니를 아는지 모르는지 클로에는 에드윈이 보란 듯이 손에서 가십지를 살랑살랑 흔들다 떨어뜨리고는 비딱하게 웃어보였다.
“숙녀가 오페라 극장에 에스코트도 없이 가면 사람들이 욕을 한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옆에 남자가 없어도 욕을 하고, 있어도 욕을 하고.”
“그게 너한테 이미 남편이 있어서 욕하는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
“그 남자와 내가 정략결혼 한 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사내들은 다들 결혼하고서 정부도 애인도 두는데, 여자는 그러면 안 되나요?”
“클로에 린다!”
에드윈의 입에서 그답지 않게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창백하게 질린 클로에가 손으로 두 귀를 막은 채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내 앞에서 소리 지르지 말아요!”
내내 느긋했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클로에의 날 선 반응에 에드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언제나 여유롭게 굴던 그의 여동생이 예민하게 굴 때,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미치광이나 다름없던 제 아비가 그녀에게 했던 짓을 떠올리게 만들 때.
그 아비라던 작자가 클로에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오라비인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파르라니 떨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에드윈이 그녀에게 사과했다.
“…큰 소리 낸 건, 미안하다.”
그가 답답하다는 듯이 크라바트를 끄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싫다고 하면 언제든지 거부할 수도 있던 결혼이었어. 나는 네게 록스턴 경을 강요하지 않았고, 록스턴 경도 너의 의사를 존중했지.”
클로에는 제게 적당히 신사적이고, 적당한 빈도로 마주칠 뿐인 제 남편을 떠올렸다. 그러나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단정했던 그의 소맷자락뿐이었다.
그를 마주쳤던 건 공식적인 자리에서뿐이고, 그때마다 형식적인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의 팔에 손을 올렸던 게 다니까.
이든 록스턴. 그는 클로에의 남편이자, 북부의 제왕이라 불리는 록스턴 공작가의 젊은 주인이다. 선대 공작이 그에게 일찍 작위를 양위하였기 때문에 클로에와 결혼하기 전의 그는 유일한 미혼 공작이기도 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클로에에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탄탄한 집안이며, 훤칠한 외모며 빠지는 것이 없는 사내였다.
평판이 바닥을 치는 클로에가 그 이든 록스턴과 혼담이 오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녀의 가문 덕분이었다.
제도의 상권을 틀어쥐고 있는 중앙 귀족인 린다 후작가와 북부의 정재계를 다잡고 있는 록스턴 공작가의 뜻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린다 후작가는 북부까지 상권을 넓히기를 원했고, 록스턴 공작가는 중앙까지 영향력이 확대되기를 바랐다. 클로에와 이든의 결혼은 두 가문의 뜻을 이뤄 줄 가장 쉽고 빠른 선택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틀어지면 막대한 손해가 나는 결혼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두 사람이 결혼을 할까 궁금해 했다. 결혼 상대가 그 클로에 린다였기 때문이다.
사교계의 망나니, 사교계의 창녀, 예쁜 쓰레기. 이 모든 게 클로에 린다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선대 후작 부인을 닮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이런 추잡한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남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문이 무성한 여동생을 둔 에드윈은 이 결혼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당사자들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다지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건지 록스턴 공작은 린다 후작가에 청혼서를 보냈고, 클로에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사교계가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주선했던 에드윈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한 혼사였으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1년 전 일이다. 어느덧 이든과 클로에가 결혼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갔지만 클로에는 여전히 제멋대로였고, 록스턴 공작은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더 진창으로 빠졌으면 빠졌지 나아진 게 없는 결과였다.
“이럴 거면 도대체 록스턴 공작과 왜 결혼한 거냐.”
결국 에드윈은 내내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찻잔의 금색 테두리를 매만지고 있던 클로에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사람과 저의 합의점이 일치했다고나 할까요?”
“똑바로 대답해, 클로에 린다.”
“아까부터 계속 그렇게 부르시는데 저 이제 클로에 록스턴이에요.”
에드윈은 입술을 몇 번인가 달싹이다 손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제 여동생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는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가끔은 울화가 치밀어 창문을 열고 거나하게 악을 쓰고 싶기도 했다.
안쓰러운 아이라고 생각하며 무슨 일이든 오냐오냐했었다. 아무래도 그게 문제였던 걸까. 이번만큼은 에드윈도 참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특별한 일 없이는 북부에서 제도로 내려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클로에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스쳤다.
“누구 마음대로요?”
“내 마음대로. 여기는 북부가 아니라 제도야. 내 앞에서 북부의 고명한 공작 부인 행세를 하려거든 록스턴 공작이랑 같이 있을 때나 해.”
그가 덧붙인 말에 클로에가 픽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바쁜 사람이에요. 북부에서 꼼짝도 않는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있나요.”
“안 그래도 후작저로 불렀다. 내가 살다 살다 제국의 삼공 중 한 명을 오라 가라 할 줄이야.”
“지금 누굴 불렀다고요?”
“록스턴 공작. 네 남편, 이든 록스턴.”
클로에의 얼굴이 일그러짐과 동시에 응접실의 문이 열렸다.
북부인들에게는 익숙한, 그러나 제도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흑발의 사내가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클로에가 세 달 만에 보는 남편의 얼굴이었다.
물론, 반갑지는 않았다.
* * *
이든과 인사를 나누고 에드윈은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응접실에는 클로에와 이든, 둘만 남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클로에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에드윈이 부른다고 쫄래쫄래 제도로 오실 줄은 몰랐네요.”
날이 선 클로에의 말투에 이든은 부드러운 말투로 받아쳤다.
“저도 부인께서 호르세 백작 영윤과 오페라를 즐기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생활을 지적당하자 클로에는 표정을 찡그렸다.
“서로의 사생활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우리의 결혼 조건 아니었나요?”
“물어보는 것도 안 됩니까?”
“그런 게 궁금하세요?”
이든이 언짢은 표정을 짓자 클로에는 비뚜름하게 웃었다. 역시나 이든 록스턴이 그런 것을 궁금해 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저 때문에 후작저까지 오게 된 건 미안하게 됐어요.”
대답이 없는 그에게 클로에가 덧붙였다.
“진심이에요.”
둘 사이에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이든이었다.
“세 달은, 너무 길었습니다.”
그에게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세 달이라니, 갑자기 무슨 말일까. 클로에는 그 세 달의 의미가 혹시 자신이 북부를 떠나온 세 달을 뜻하는 것일까 하는 우스운 가설을 세웠다.
“무슨 뜻이에요?”
클로에의 질문에 이든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 이렇게 길게 공작가를 비울 때는 집사한테 말이라도 남겨요.”
그 우스운 가설이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어째서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그녀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클로에가 나름대로 유추해 낸 이유들 중에는 이든 록스턴과 관계된 것들이 단 하나도 없었다.
클로에가 물었다.
“집사가 나를 찾던가요?”
그 북부의 거대한 저택에서 그녀를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찾는 이라고는 집사, 로더릭뿐. 그것마저도 까다로운 마님의 식사 메뉴를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제가 찾을 거라는 생각은 못 하셨나봅니다.”
이든은 어딘가 날 선 태도로 클로에에게 대답했다.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
찾는다.
그 말에 클로에는 문득 명치끝이 쑤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묵혀 두었던 불쾌한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내를 찾던 남편.
그를 피해 도망치던 아내.
그리고 남겨진 아이.
클로에는 불쾌한 기억을 털어 내려는 듯 대화에 집중했다.
“당신이 왜요?”
클로에의 물음에 이든의 반듯한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이것도 사생활 간섭입니까?”
“당신이 나를 왜 찾았는지에 따라서 내 대답이 달라질 것 같은데.”
잠시 클로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이든이 입을 열었다.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는 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러자고 했던 거였고-.”
말꼬리를 늘이던 그가 클로에를 흘낏 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세 달간 나는 불쾌한 일들뿐이었던지라.”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저급 가십지로 향했다. 형편없이 구겨진 사진 속의 클로에는 남편인 그가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가십지를 내려다보던 클로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공작 부인이라는 사람이 이런 저급한 가십지에 실려서 낯이 뜨거워지셨나요?”
클로에의 물음에 그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의 비딱한 미소에 조금 놀랐다. 그가 다정한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든은 살짝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
“본인만 할까요. 저보다는 부인 쪽이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그녀의 속을 긁는 대답이었다. 이 또한 그가 제도로 직접 내려온 것만큼이나 그답지 않은 일이다.
그의 대답을 곱씹듯 잠시 침묵하던 클로에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게는 익숙한 일이랍니다. 그러니 공작님께서도 얼른 익숙해지셔야 할 텐데.”
이쯤 되면 보통의 귀족들은 클로에와 상종도 하기 싫다는 듯한 부채 뒤로 얼굴을 숨겼다. 아마 그 부채의 뒤에선 그녀를 향한 비난의 말들이 소리를 죽인 채 구르고 있었을 거다. 클로에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든 록스턴은 그녀를 비난하는 대신 제도까지 몸소 방문한 원래의 목적대로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택했다.
이든이 일어나라는 뜻으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클로에에게 다가왔다.
클로에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뒤로 뺐다. 몸을 움츠리고 있는 클로에의 모습은 공포에 찬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이든이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고 오해해도 할 말 없는 모습이었다.
“…….”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클로에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이든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뻗은 채로 굳어 있었다. 마치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이든 록스턴, 그가 당황을 했다.
남과 다를 바 없는 사이지만 그래도 부인이랍시고 1년을 그의 옆에 있었던 클로에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그녀가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뻗었던 손을 조심스럽게 거둔 이든이 클로에를 향해 말했다.
“이만 공작저로 돌아가요.”
그렇게 말하는 이든의 얼굴에 조금 전 보였던 당혹감은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녀의 반응이 그에게는 그 정도의 일밖에 되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든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클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응접실을 벗어났다. 치부를 들킨 느낌이었다.
아까부터 쑤시던 명치끝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허리를 꽉 조인 드레스 탓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클로에는 명치 부근을 손으로 문질렀다.
그러다 문득 이든이 있을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이름뿐인 남편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클로에는 구기를 참지 못하고 결국 난간을 붙잡은 채 헛구역질을 해 댔다.
난간 아래, 후작저의 거실에서 클로에와 이든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에드윈은 계단 위에서 들리는 헛구역질 소리에 놀란 얼굴로 고개를 쳐들었다.
“클로에!”
에드윈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그 소란에 응접실에 있던 이든의 시선도 주저앉아 있는 클로에에게 향했다.
이든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로에는 헛구역질을 해 대는 와중에도 손을 뻗어 이든을 밀어냈다.
그녀는 제 나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약자 취급을 받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녀의 인생을 통틀어 그따위 취급이 도움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자신을 밀어내는 클로에의 손길에 이든은 제 속 어딘가가 선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불쾌해지기에는 충분했다.
제 오라비의 손길마저도 고집스럽게 밀어낸 클로에는 시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멀어졌다. 이든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뒤따르려 했다. 하지만 에드윈이 그를 붙잡았다.
“그냥 두세요. 지금 따라가도 별로 안 좋아할 겁니다.”
이미 이런 일이 익숙한 사람의 말투였다. 이든의 미간이 좁아졌다.
“자주 있는 일입니까?”
“이곳에선 자주 있는 일이죠.”
그러면서 에드윈은 작게 덧붙였다.
“이곳은 저 아이에게 끔찍한 곳이거든요.”
* * *
“서로 사생활을 간섭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1년 전, 이든 록스턴이 클로에 린다에게 했던 말이다. 소문에 따르면 린다 후작가의 영애는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졌다 했고, 그는 그것을 존중해 줄 의향이 있었다.
사생활에 대한 조건은 귀족들에게 그다지 유별날 것도 없는 결혼 조건이었다. 이든은 그에게 계약으로 묶여 있을 뿐인 배우자를 제 체면 때문에 구속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귀족들 중 정부 하나 없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이니, 서로에게 좋은 조건이었다.
그의 조건을 받아들인 클로에 린다는 심드렁한 얼굴로 그에게 툭 물었다.
“그럼 저도 한 가지 조건을 걸어도 되나요?”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