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 Prologue (1/8)
  • 0. Prologue

    클로에는 멍이 들어 욱신거리는 이마를 매만지다가도 배시시 웃었다.

    ‘엄마가 날 싫어할 리 없어.’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얼굴 옆에서 찰랑거릴 때마다 클로에는 제 어미의 다정한 손길을 떠올렸다.

    여느 다정한 어미가 으레 그러하듯, 그녀의 어미도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어미의 품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다음에도 그녀가 제 머리를 빗겨 준다면, 그때는 안아 달라고 해야지. 클로에는 그런 행복한 상상을 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날 것 같아서 클로에는 입 안을 꾹 깨물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제 딸을 미워했다면, 부드럽게 머리를 빗겨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클로에는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멍청한 표정을 했다.

    멍이 든 이마는 퍼렇게 얼룩이 졌고, 입가에는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이런 꼴을 하고서 뭐가 그렇게 기뻐. 스스로를 타박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그에 대한 반박뿐이었다. 클로에는 마음속에서 삐죽 튀어나오는 가시를 억누르고 열심히 변호했다.

    그동안 제 어미가 아비란 작자의 무자비한 폭력에서 그녀를 구해 주지 않았던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거다.

    아비의 두툼한 손에 머리를 맞고 바닥을 구르는 그녀를 무감정하게 내려다보던 것도 분명…….

    클로에는 머리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오늘 그녀의 어미는 클로에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미안하다 속삭였다. 그건 분명 무심했던 지난날에 대한 사과이리라.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에드윈은 그렇게 말했다. 곧 동생이 태어날 거라고. 어머니의 배 속에 아기가 들어 있다고. 그것은 그녀의 아비가 가장 바랐던 일이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녀의 아비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클로에는 막연히 그것을 기대했다.

    동생이 태어나면 잘해 줘야지.

    좋은 형제가 되어 주어야지.

    멀지 않은 미래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클로에는 즐겁고 행복해졌다.

    한참 동안 머리카락만을 만지작거리던 클로에는 문득 머리가 허전한 것을 느끼고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리본이 없었다. 하녀들이 매어 주었던 리본을 오늘 그녀의 어미가 머리를 빗겨 줄 때 풀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오늘은 더 리본을 매고 있을 필요가 없었지만 클로에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어쩌면 리본은 핑계였을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제게 다정했던 제 어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처음 보았던 어미의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릴 때마다 배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기대감에 노크도 없이 어미의 침실 문을 열었다.

    “…….”

    후작 부인의 침대를 향해 도도도 달려가던 클로에의 걸음이 천천히 느려지다, 이내 완전히 멈추었다. 어디선가 역한 냄새가 났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어둠 속, 허공에서 흔들리는 누군가의 피 묻은 발이었다. 클로에는 멍청히 뒷걸음질 치다 제 발에 발이 걸려 뒤로 주저앉았다.

    몸뚱이가 매달려 있는 줄이 흔들릴 때마다 끼이익, 하고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클로에가 바닥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려는 순간, 구름이 움직이며 달빛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왔다.

    줄에 걸려 있는 ‘그것’이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눈조차 감지 못한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클로에는 뒤꿈치로 바닥을 긁으며 그것에서 멀어지려 애를 썼다.

    비정상적으로 돌출되어 있는 안구는 흐릿하고 초점이 없었다. 살아 있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알던 것과 닮았으나 이형인 것은 기저에서부터 불쾌감과 더불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어미인 마리사 린다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것은 지나가던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이견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저것의 어디에서도 마리사 린다라 할 수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눈앞에 매달려 있는 저것이 그녀일 리 없다.

    방어기제가 작동하듯, 클로에는 눈앞의 것이 무엇인지 인지가 되지 않았다. 클로에는 그것으로부터 눈을 떼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

    뚝, 뚝-.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진득하고, 기괴한 울림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클로에는 그렇게 느꼈다.

    천천히 시선을 내리자 그녀의 다리를 타고 흐르는 붉은 핏줄기가 보였다. 그것은 그녀의 발끝에 다다라서 방울져 떨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창백하고 마른 발 아래의 붉은 웅덩이를 발견한 클로에는 돌연 구기가 치밀어 올라 헛구역질을 해 댔다.

    “곧 동생이 태어날 거야, 클로에.”

    다정한 오라비, 에드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클로에의 귓가를 울려 댔다.

    동생.

    줄에 걸려 흔들리는 저 여인의 아래로 고인 핏물에, 그녀의 동생이 있었다.

    클로에는 귀를 틀어막았다. 원망 섞인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야.

    클로에는 피 웅덩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보았다. 발악하듯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 핏덩이를.

    그것이 그녀의 발목이라도 붙잡은 것처럼 클로에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헛발질을 하며 거의 기듯이 그 앞에서 벗어나려 했던 클로에는 손톱을 바닥에 박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제 어미가 죽었다.

    어린 딸에게 다정한 거짓말을 하나 남기고서, 그렇게 도망쳐 버린 것이다.

    목을 매단 시체 앞에서 클로에는 울지도 못하고 비명만 질렀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저 끔찍하고 무서워서 미친 듯이 악을 쓰며 오라비와 집사를 불러 댔다.

    제일 먼저 달려 온 것은 집사였다. 그는 방 안의 참상을 보자마자 클로에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눈과 귀를 손으로 가렸다.

    집사의 손가락 사이로 보였던 건, 그녀를 기만하듯 어미의 손가락에 걸려 있던 분홍색 리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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