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마왕-372화 (373/382)

제 372 화 악몽의 각성

"...... 고대의 마왕 미아 엘로드 로군"

"그쪽은 판도라 대륙에서 온 흰색 용사 아벨이지"

더 이상 정체를 숨기는건 무의미하다 고 생각했는지 회색 로브의 남자는 후드를 벗었다. 드러난 모습은 빛나는 은발에 검은 색과 푸른 색의 오드아이를 지닌 용맹스러운 미중년. 신탁을 받아 판도라 대륙까지 아득히 먼 거리를 이동해온 사도 아벨.

"설마, 진짜를 만날 줄은 몰랐다"

"이쪽이야말로 용사가 암살자의 흉내낼거라곤 생각지도 못 했어"

그 반대편에 선것은 흑발 적안의 어린 아이. 검은 신들의 한 기둥인 고대의 마왕 미아 엘로드이다.

"용사가 빛나는 것은 전설 속에서뿐. 내가 걸어온 길에 영광따윈 없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말이다."

"성실하네. 저런 신을 섬겨도 좋은 일 따윈 하나도 없는걸?"

"그 정도는 백년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용사와 마왕 서로의 얼굴에 떠오르는 아이러니한 미소.

"그래서, 어떻게할거야? 아직도 이 아이의 목숨을 노리는거야?"

쓰러진 네로를 보지도 않은채 미아가 아벨에게 물었다.

"기대에 어긋났으니 죽일 의미는 없다. 게다가 지금은 건드리지도 못할테고 말이지."

"역시 두 번째 사도쯤되면 감이 좋다는 점은 특별하네. 그리고 몇 cm만 더 발을 내딛었다면 엘로드 제국의 영토 침범으로 사살할 수 있었을텐데"

이 자리는 확실히 스파다의 학원 지역에있는 광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만큼은 고대 엘로드 제국의 영토이기도했다.

"사도가 이교도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짓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지."

이렇게, 검은 신의 한 기둥인 미아가 나타난 시점에서 그 자리는 신역화한다.

신은 사람이 사는 현실 세계에 직접적인 간섭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신의 세계 안에 있다면, 당연히 그 힘의 전부를 어떠한 제한없이 행사하는게 가능해진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사람의 몸으로 신을 이길 도리는 없는 것이다.

광장의 모습도 경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차원을 초월한 이변이 일어나있다.

아벨의 발끝 몇 cm 저편은 신의 이치가 지배하는 신의 세계이다. 그가 서있는 이 자리까지가 자연의 이치가 구축된 현실 세계인 것이다.

지금 이 광장은 인간 세상과 신의 세상의 경계가 되고있다.

"그럼, 이제 얌전히 돌아가주면 고맙겠는데?"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그 왕자가 새로운 마왕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밖에 짐작가는 것도 없다. 내일 아침에 스파다를 나가지."

"솔직해서 좋네. 블랙 발리스타 한방으로 용서해줄께."

미아가 평온한 미소로 공언한 순간 용사 아벨의 가슴이 터졌다. 공격 마법 시전의 예비 동작은 없었다. 발동의 징후도 없었다. 오히려 아벨이 스스로 자폭 마법을 사용했다고 하는 쪽이 납득이 갈 정도로 갑자기 폭발했다.

탄 살점이 흩날리고 피가 증발한 연기가 감돈다.

아벨의 가슴 한복판에 바람 구멍이 뚫려있다. 미아의 방향에서 반대편이 보일 정도의 크기.

누가 어떻게 봐도 치명상. 아벨은 신음 한번 흘리지않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 시체에 붉은 색과 검은 색의 불길한 섬광이 파직 파직 희미하게 용솟음 치고있는 것만이 [블랙 발리스타]라는 고대 마법의 잔재였다.

"...... 역시 신의 눈은 속일 수 없었는가?"

직후에 들려온 것은 아벨의 목소리.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목소리는 쓰러진 시체의 바로 뒤에 있는 허공에서 들려왔다.

"시체까지 재현하다니 정교한 분신이네"

"그만큼 약하지만 말이지. 지금의 일격에 약간 정도도 반응하지 못했다"

다시 아벨의 목소리가 울린 그때 땅에 쓰러진 시체가 눈부신 빛에 휩싸여그대로 하얀 입자로 무산되어간다.

동시에 그와 같은 흰 빛을 발하면서 목소리가 들려온 공간에서 오체 만족 그대로인 아벨이 출현했다. 볼품없는 회색 로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럼 이것으로 실례하지, 고대의 마왕이여. 다시는 만날 일이 없도록 기도하겠다."

"안녕, 흰색의 용사. 신을 만나면 전해줘, 아리아에 대한건 포기해, 라고."

그렇게 아벨은 가버리고 미아도 오벨리스크의 저편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는 비가 내리는 광장에 쓰러진 아발론의 왕자만이 남아있었다.

" - 푸애취!"

"어이, 어떻게 된거야, 네로. 감기걸렸어?"

익살스럽게 묻는 친구 카이의 말에 네로는 "시끄러워"라며 가볍게 코를 훌쩍였다.

"어젯밤에 흠뻑 젖은채로 돌아왔으니 그렇지. 우산도 쓰지않고 도대체 어디를 헤맸던거야?"

"아 ...... 어디였지?"

"아직 잠이 덜깬거냐"

카이의 츳코미를 받으며 네로는 둔해진 머리를 흔들었다.

(어라, 진짜로 나, 어젯밤은 뭘하고 있었던 거지?)

심란해진 마음을 안고 스파다 밤의 거리로 나간 것까진 기억하지만, 결국 무엇을하고 있었는지는 거의 기억이 안난다.

비 내리는 거리를 정처없이 방황하던 것만이 어렴풋이 뇌리에 떠오를 뿐이다.

게다가, 재채기를 한 지금 이 순간에 깨어난 것 같은 기분 마저든다. 기억이 혼탁하다는 것은 명확했다.

(뭐, 아무래도 좋은가 ...)

쿠하암, 하품을 흘리면서 네로는 생각하길 포기했다. 지금해야 할 것은 생각이 아니라, 먹기이다.

여긴 왕립 스파다 신학교 본교의 식당. 아침 시간의 식당엔 기숙사생들이 모여 아침 식사를 취하고있다. 나름 번잡해보이지만 모든 학생이 밀려드는 점심 시간과 비교하면 우아한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시야의 가장자리엔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윌 하르트 둘째 왕자가 혼자 테이블을 독점하고있는 모습이 비쳤다. 모두가 언제나처럼 아침 풍경이다.

(아니, 달라. 아직 원상복구되지 않았어...... 넬이 없으면 뭔가, 나는 -)

"그래도 다행이네! 넬이 나아서 이제 시스콘인 오빠의 고민도 해결됬으니말이야!"

앗핫하, 쾌활하게 웃으며 갓 구운 식빵을 뺨을 부풀려가며 먹던 매너 나쁜 카이의 말에 네로가 무심코 물었다.

"......응? 너 지금 뭐라고했어?"

"응응? 뭘 무서운 얼굴을하는거야, 보기안좋잖아. 뭐, 평소랑 다를바 없지만. 자,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야, 어이 넬, 사피, 이쪽이야!"

"아침부터 소란스럽네, 바보. 먹으면서 말하지말고, 오히려, 평생 말하지않으면 좋을텐데. 안녕, 네로. 좋은 아침이야"

"사람한테 욕해놓고 '좋은 아침'이라고 말하는게 아냐!"라고 항의하는 카이의 목소리따윈 네로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눈을 빼앗긴다. 물론 사피르가 아름다운 미소를 띈채 아침 인사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뒤에 오는 하얀 날개를 가진 한 소녀의 존재를 믿고 싶지 않기에시선을 돌린다.

"후후, 카이 씨와 사피 씨는 오늘도 사이가 좋네요. 아, 오빠, 안녕하세요"

그것은 야외 연습에 가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던 윙로드의 일상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바보 카이와 독설가인 사피 두 사람의 말다툼을 눈부시게도 부드러운 미소로 지켜 보는 -

"...... 넬"

넬 율리우스 엘로드. 성녀와 같은 미소를 띄운 동생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그녀의 몸을 감싼 것은 요 근래 계속 잠옷 대신 입던 신학교의 검은 재킷과 빨간 망토. 등교했다는 사실은 설명할 것도없이 이해하게됬다.

"어떻게 된건가요, 오라버니. 왜그렇게 멍한 얼굴을 하고계세요? 혹시 아직 잠에 취해있는 건가요?"

카이와 똑같은 내용의 대사이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로 들리는 것은 오직 넬의 미모로부터 묻어나오는 품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남자라면 그 미소에 매료 될테지만, 그녀는 친동생이다. 저런 모습을 보는건 익숙하다.

그렇게, 지금 눈앞에있는 넬은 마음의 병에의해 비정상적으로 피폐해진모습이 아니라 완전히 나은 정상적인 그녀임을 네로는 마침내 이해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넬! 너, 괜찮은거야!?"

말하던 도중 의자에서 일어설 정도로 당황한 모습으로 따지는 오빠에게여동생은 명랑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제 괜찮아요"

천연덕스러운 대답은 네로가 바라마지않던 것이지만 어이없을 수 밖에 없다.

그토록 고민하던 상황이 완전히 자신이 모르던 사이에 시원스럽게 해결했으니까.

기쁘다기보단 맥이 빠진다 같은 감정이 앞서는건 어쩔 수 없다.

"그, 그런가 ...... 아니, 이제 괜찮다면 아무래도 좋아 ......"

자신의 고민은 도대체 뭐였냐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네로. 이 하룻밤사이에여동생의 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은 되지만, 그런 이유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복잡한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넬은 그대로 순진한 얼굴로 사피르와 함께 자리에 도착했다.

"이제 샤르만 돌아오면 윙로드 완전 부활이네"

그릇의 모퉁이에 쏠린 크림 스프를  마시며 카이가 말했다. 수프를 마시는데 사용하는 숟가락은 사용하지않았지만 아무도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샤르는 잠시 폐하에게 조교 - 기본 지도를 받고있는 듯하니 이대로 한 달은 왕성에서 돌아오지않지 않을까."

"아, 과연. 마음대로 성에서 나온 것을 용서받지 못했나"

"어머, 독단이 문제라는걸 이해하고 있었다니, 의외네요."

"그 정도는 나도 분위기 읽고 알 수 있거든!"

또 다시 말다툼을 시작 한 카이와 사피르를 바라보면서 조금씩 네로의 텐션도 평소의 것으로 회복되었다.

"약간은 제멋대로인 행동이 교정되면 좋겠네."

"폐하, 꽤 진심인 눈을 하고계셨지. 분명 굉장히 우울해져서 돌아올테니 부드럽게 위로해주는게 어때? 아, 침대에서"

"아침부터 그런건 그만둬."

"아니요, 오라버니. 정말 기운이 나므로, 강력히 추천해드려요"

"......응?"

설마했던 긍정. 그것도 그 순진 무구가 하늘을 찌르는 넬에게서 튀어나온 것이기에 믿기 힘들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라고 따지고 싶지만, 우후후 웃는 넬 앞에서 네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인지 사피르가 엉큼한 의도를 숨기고있을 때의 냉소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 자, 일단 샤르가 돌아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자고. 나는 잠시 퀘스트에 갈 기분도 아니니말이야."

"아니, 나는 녀석을 이기기 위해서 강해지지않으면 안되! 더 위험한 랭크 5 퀘스트를 마구마구 받자구!"

"그래, 나도 놓친 라스푼을 잡고싶으니 말이지."

"아 잠깐, 너희들, 라스푼 못잡았던거냐!"

은근히 드러난 동료의 실수.

이스키아에서의 싸움은 다양하게 많아서 기생당해서 납치된 사피의 사역마가 어떻게되었는지 따윈 네로도 상관할 여유가 없었다. 금시초문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카이가 너무 한심해서 ...... 아무리 나와 샤르가 있어도 커버하지 못했어"

"웃기지마! 네가 다시 한번 되찾고 싶다고 무리하니까 - "

"시끄러워. 나이트 메어 버서커에게 한방에 날아간 약자가 불평하지마"

"커흑! "

아픈 곳을 찔린 카이는 그대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조용하지만 식사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오로지 식빵과 크림 스프를 흡입할 뿐이다.

"사정은 알았어, 그렇지만 -"

"네, 오라버니. 저도 어려운 퀘스트에 도전해서 경험을 쌓고 싶어요"

넬의 말에 의해 찬성 의견이 과반수를 넘어버렸다.

이제 퀘스트를 적극적으로 받는다는 방침으로 결정됬지만 귀찮다기보단 병상에서 일어난 직후인 넬이 묘하게 의욕을 보이는 데에서 기인하는 불안감이 더 크다.

"넬, 너는 너무 무리하지마. 이스키아의 일도, 결과는 좋았지만 잘못했으면 전멸했을거야."

"네, 그래서 그런거에요, 오라버니. 저는 더 강해지고 싶어요.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게 되고싶어요 - 그 전투를 통해 좀 더 강해지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거에요."

가끔 넬은 무섭게 완고할 때가있다. 아니, 그것은 제대로 각오를 다졌다,라는 것임을 오빠인 네로는 알고있다.

넬은 결코 온실 속에서 연약하게 자란 공주가 아니다. 스파다에 유학와서 모험가 활동도하는 할때는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있다.

그래서 네로는 이럴 때 항상 넬의 결정을 지지해왔다. 그것이 아무리 귀찮은 일이라도, 아무리 힘들어도. 오빠로서, 한 남자로서 그녀의 소망에 부응하는 것이다.

"...... 그래, 알았어. 그럼 오늘부터 다시 [윙로드]의 출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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