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마왕-370화 (371/382)

제 370 화 비밀스런 병문안

" - 하지만 생각보다 밝아보여서 다행이야"

"우우 ......, 네 ......"

침대에서 넬이 왠지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비 맞기를 수십 분, 나는 어떻게든 무사히 넬의 방에 초대되어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고 우선 "컨디션은 어때 ~"같은 무난한 화제를 꺼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분주하게 준비하던 넬의 모습을 봐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는 소문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실제로면 자신을 향해 명랑한 미소로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지니 안정감이 달랐다.

"안색도 거기까지 나쁘지 않은 것 같네"

"하앗...... 아,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

역시 남자에게 얼굴을 응시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인지, 내 시선을 차단하듯이 양손으로 얼굴을 덮는 동시에 하얀 날개도 바스락 상반신을 덮었다. 귀여운 철벽 방어다.

"그래, 이거, 괜찮다면 먹어줘"

그렇게 그림자에서 꺼낸 것은 미소짓는 여성의 로고가 그려진 작은 휴대용 종이 봉투. 이것이 바로 윌이 슬쩍 건내준 병문안 물품이다.

"아앗 그거 혹시 [스위트 스마일] 푸딩입니까!?"

"아아, 그걸 좋아한다고 들어서 말이야"

제대로 전부 "읽었"으니까. 그 편지는 정말 윌의 정보력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네, 이거 정말로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크로노 군!"

넬은 만면의 미소를, 그 부스스한 눈가에 작은 눈물조차 맺을 정도로, 크게 기뻐했다. 이야, 여기까지 기뻐해주다니, 일부러 어렵게 구입한 보람이 있었네.

푸딩이 룬의 명과로서 평범하게 판매되고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스위트 스마일]이라는 사탕 가게앞의 여성 고객들의 줄 길이가 더욱 놀라웠다.

그렇게 젊은 아가씨들의 행렬에 섞인 나이트 메어 버서커가 되었다. 아니 정말 고생했다. 정신적으로.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작은 컵 크기 한 개에 1500 클랜이라는 초절한 가격이었지만. 과연 상층 부지에 가게를 지은만큼 가격 설정도 상류스러웠다.

"저, 먹어도 ...... 괜찮습니까?"

물론,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흔쾌히 대답했지만 잘 생각해보니 이런 깊은 밤에 오래 머물러도 될까 하는 곳까지 생각이 미쳤다. 뭐, 문제없을거라고치자.

"그렇네요, 차도 준비할께요. 크로노 군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아니, 그렇게 무리하지는마"

매우 좋아하는 푸딩을 먹는데 남다른 열정을 쏟다가 생글 생글 웃는 얼굴로 허겁지겁 침대에서 벗어나려는 넬을 말렸다.

병문안을 왔는데 환자 스스로를 움직이게해서 대접받으면 본말전도다.

거기다 나는 이 세계의 차종류따윈 전혀 모른다. 무엇이든 맛있게 마실 각오는 갖고있지 않다.

"아뇨, 정말로 괜찮아요. 몸도 아프지않고, 지금 바로 퀘스트를 하러 갈 수도 있어요"

그렇게 상냥하게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은 내가 잘아는 넬 본연의 것이었다. 확실히 안색은 약간 창백하지만 그랜드 콜로세움의 의무실에서 이스키아 고성으로 향할 결심을 했을 때처럼 기력과 활력과 의욕이 넘치는 기색.

즉, 거침 것도 없다는 것이다.

"아, 요리는 아직 서툴지만 차는 제대로 맛있게 끓일 수 있어요!"

차에 관한건 왕후 귀족의 몸가짐같은 걸까. 기본적으론 종자에게 시키겠지만 외국의 귀족과 환담을 나눌 때나 친한 친구가 찾아왔을 때 등 대등한 상대라면 주인 스스로 행동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상류층의 교류에 요구되는 예의 범절 중 하나일 것이다.

공주인 넬이라면 나름대로 엄격하게 교육받았음이 틀림없다.

"알았어, 그럼 기다릴게"

특별히 원하는건 없으니 전부 알아서 해줘. 차정도라면 역시 괜찮을 것이다.

그리하여 깨끗이 정돈된 방 안을 바라보거나 차를 준비하는 넬과 이야기하면서 기다리길 몇 분.

"자, 드세요"

내 앞에 설치된 작은 원형 테이블에 티 세트가 마련되었다.

김과 함께 우아한 향기를 발하는 황갈색의 차는 이쪽 세계에서도 차라고한다. 과연 찻잎이나 제법까지 동일한 지는 모르겠지만 맛과 향기는 그대로이고, 우유와 레몬, 설탕 등의 옵션을 넣는것도 똑같다.

사랑스러운 꽃무늬 주전자와 차가 담긴 세트 디자인 컵, 그 밑에 받쳐진 접시. 옆에는 설탕과 머들러가 세트로 배치되어있다.

꽤 솜씨가 좋네. 샬롯과 사피르, 여성 멤버들과 곧잘 다과회를 하곤한다는 것은 사실인 것같다.

왕족인 귀족 소녀이지만 이렇게 바닥에 쿠션을 깔고 책상앞에 앉아있으니 과연 여학생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비슷한 나이와 신분을 가진 사피르가 있다고 생각하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그 녀석은 두개골이 가득쌓인 언데드 공방에 틀어박혀 사악한 미소를 띈채 실험 삼매경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참 제멋대로인 상상이지만, 왠지 그렇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고마워"

굉장히 반짝거리는 눈으로 내가 차를 마시는 장면을 응시하고 있어서 조금 부담스럽지만 노력해서 평정을 가장한다. 혀를 디지않도록 살짝 한 모금 마셔 본다.

"...... 맛있다"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네요"

넬이 마음의 기쁨이 스며나온듯한 부드러운 미소를 띄며 말했다.

확실히 아첨을 빼도 맛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맛이 있었지만, 왜 일까, 지금 조금, 아니 꽤 두근거렸다.

오, 진정하자, 넬은 결코 마음에 둔 남자에게 칭찬받기위해 노력한 결과, 보답받았습니다, 같은 사랑하는 소녀의 기특한 감정을 품고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즐거울뿐이다.

그러나 이런 순진한 표정을 보여서 진심으로 착각할 것 같게되는 것이 넬의 무서운 점이다.

"그런데 말이야, 왜 내 몫의 푸딩도 있는거야?"

나는 마음을 달래기위해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차 옆에 마련된 [스위트 스마일]의 로고가 들어간 푸딩이 시야에 들어온 시점에서 신경이 쓰이고는 있었다.

내가 구입한 푸딩은 하나뿐. 아니, 결코 인색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매진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어느새 냉장고에 들어있던거에요. 병문안 와준 누군가가 가져다놓은게 아닐까요?"

"내가 먹어도 괜찮은거야?"

"네, 함께 먹는 것이 맛있으니까요."

큭 한 개에 1500 클랜이나 하는 푸딩이니 독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싫어지려한다. 넬은 역시 자애가 넘치는 공주다. 그에비해 나는 랭크 5 모험가 되어도 소시민스럽다.

"아, 제가 먹는건 제대로 크로노 군이 가져다 준 것이에요"

킥킥과 아이처럼 웃는 넬, 나는 적절한 반환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채널을 생각 푸딩을 사다 준 사람은 마음 속으로 사과 두자. 미안, 내가이 높 푸딩을드립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그래, 나도 잘 먹겠습니다"

푸딩은 비쌌던만큼 맛있었다. 내가 어설픈 기억으로 레시피에 따라 직접 만든 것과는 격이 다르다. 레드 윙 백작, 아카바네 요시카즈 씨가 푸딩 제조법을 전하고나서 룬에서 독자적인 진화를 이루어갔던 것같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맛본 적이없는 푸딩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있자 내가 사용하던 하얀 깃털의 부조가 새겨진 숟가락이 어느새 컵의 바닥을 긁었다. 음, 역시 용량은 적은 편인가.

보면 넬이 손에 쥔 붉은 번개가 새겨진 숟가락도 마찬가지로 컵 속의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조금 배가 고파서 ......"

상당히 중얼거리며 먹고있었던 나와 같은 속도로 완식한 넬은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는 실로 애처로운 몸짓을 보이며 변명했다. 젠장, 평소보다 3할 정도 더 넬이 귀엽게 보인다 ......심장이 멎어버리겠어!

그리하여 나는 넬과 함께 저녁 간식 시간을 즐겼다. 이스키아 고성에 가기 전에 매일 함께했던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져나갔다.

계속 침대에 있던 넬은 지루했는지 그 어느때보다도 그녀 쪽에서 다양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 윌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와 가호를 얻었을때의 감동, 첫 퀘스트의 실패담. 혹은 다른 좋아하는 디저트나 좋아하는 레스토랑, 잘하는 과목, 싫어하는 수업 등의 일상적인 화제들.

그러던 중, 나는 문득 중요한것을 기억해냈다.

" -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을 잊었네"

"고맙다니요?"

고개를 갸웃 거린다는 미소녀에게만 허용된 행동을 자연스럽게하면서 넬이 되물었다. 본래 말할 타이밍에서 크게 어긋나 버렸으니 짐작가는게 없는 것도 당연하겠지.

"이스키아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넬덕분이었어. 힘을 빌려줘서 고마워"

"어, 그런 ...... 전 그냥 ...... 당연한 일을했을뿐이고, 그래서 ......"

이제와서 감사받을 줄은 생각도못했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짓는 넬. 물론, 그녀의 상냥한 마음씨와 상당한 실력을 감안하면 당연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제대로 말해두고 싶었다.

"아니, 넬이 준 부적 [아리아 가드 페더]가 없었다면 나는 스로우스기루에게 기생당했을거야"

그러고보니 넬은 그리드고아를 조종하고 있던 스로우스기루라는 기생 몬스터를 알고있었나?

우선 가볍게 설명하고 그로 인해 얼마나 내가 위험했는지를 말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다.

"정말 고마워. 넬은 생명의 은인이야. 나 혼자였다면 아무도 구할 수 없었을거야. 아니, 애초에 [커스 카니발]도 무사히 넘길 수 없었을거야. 넬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거야 ......"

"후 ...... 후후, 괜찮아요, 크로노 군. 뭐든지 혼자서 완벽하게 하려고하지말아요"

감사를 표하려다가 약한 소리를 뱉게된 나에게 넬이 진짜 여신같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해 주었다.

아니, 말뿐만이 아니다. 넬은 작은 테이블 너머로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쌌다. 고뇌하는 어린 양에게 다가가는 듯한 진짜 성녀같은 자세다.

"동료는 서로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하는거죠? 그러니 크로노 군은 좀더 의지해도 좋아요. 저도 크로노 군의 힘이되고 싶어요"

나는 릴리와 피오나, 지금은 넬도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 아무래도 나 혼자만 너무 많은걸 짊어지고 있던거같다.

응석 부리는 것과 의지하는 것은 별개, 그렇게 알고는 있지만 그 선긋기가 심하게 애매해서 헷갈리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네."

"저도 크로노 군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어서 ...... 기뻐요"

내 손을 잡은 넬의 양손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섬세하고 하얀 손가락이 따뜻하게 감겨온다. 조금 두근거려버리는 것은 내가 불순한건가?

아니, 넬의 선명한 푸른 눈동자로 들여다보아지면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지만 ...... 참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이상은 조금 위험하다는 결론에 이르러서야 자연스럽게 손을 떼려고했지만, 그 의도는 전혀 전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넬의 양손이 내 오른손을 부드럽게 구속해온다.

"크로노 군 ...... "

기분 탓 일까? 약간 열정적인 듯한 물기띈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내가 눈을 돌린 그 때였다.

" - 넬 공주님?"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온 소녀의 목소리에 등골이 오싹했다. 지금까지 방을 감싸고 있던 따뜻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산됬다. 잡은 손을 한순간에 떼어냈다.

사람이다. 아니, 누가와도 위험하다. 위험한 것이다.

넬도 상황을 이해하고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고있다. 아마 나도 똑같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그도그럴게, 나는 이 여자 기숙사에 홀로 병에 걸려 앓아누운 공주의 방에 있어도 좋을 존재가 아니다.

방에 침입하려고 촉수 등반하는 모습을 목격당하는 것도 위험했지만, 실제로 방 안에있는 것을 들키는 쪽이 더 위험하다. 현행범 체포다. 변명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주무시고있는 것 같네요 ...... 들어갑니다?"

자고있으면 들어오면 안되잖아! 마음 속으로 절규하지만, 그렇다고 문 너머의 그녀가 돌입을 포기해 줄 리도 없다.

젠장, 이렇게되면 창문을 뚫고도 도망가야겠어 - 빠르게 일어선 그 때.

"크로노 군, 여기에 숨으세요! "

작은 소리로 외치는 묘기를 선보이는 넬. 그녀가 가리킨 숨을 곳은 침대.

그렇다. 넬은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몸을 숨기라고 외치고있다.

이, 이건 ...... 방에서 발견당하는 것보다 같은 침대에서 발견당하는 쪽이 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단지 발견당하는 것만으로 처형, 침대에서 발견당하면 고문을 가한 후 처형당할 것 같다.

그렇지만, 창문을 뚫고 도망 것도 결코 최선책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숨을만한 곳도 눈에 띄지않는다. 젠장, 내가 릴리 크기였다면 저 옷장에 숨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동안에도 방에 들어오려는 소녀가 문을 열기 시작하는 소리가 울려온다. 젠장, 고민하고있을 틈이 없다.

"크로노 군, 빨리! "

"큭!"

나는 창문으로 - 뛰어내리는 대신 침대에 뛰어들었다. 발견당하지않기를 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후와 ...... 아, 아 ...... 크로노 군 ......"

"미안, 넬. 조금만 참아줘"

이불 속으로 숨어들자 자연스럽게 포옹하는 듯한 자세가되었다. 물론, 내 머리는 내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탓에 얼굴에 넬의 가슴이 맞닿아있다. 아니, 닿았다기보단 압박당하고있다.

순백의 잠옷을 크게 부풀린 쌍 언덕이 내 얼굴을 감싼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냄새가 나고, 그리고 약간 답답하다. 이런 긴급상황이 되자 심장의 고동 또한 몇배속으로 쿵쿵대기 새기기 시작한다.

떠나고 싶지는 않지만, 벗어나고싶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넬은 굳게 나를 가슴에 끌어안고 떼어놓으려하지않는다. 엉망이 될 것 같다.

"실례합니다"

긴장이 극에 달하고 이성이 붕괴하기 직전에 도달한 나를 아랑곳하지않고 마침내 그녀가 방에 발을 디뎌왔다. 필사적으로 숨을 죽이고 기척을 감추고, 오직 이 위협이 떠나길 한마음으로 기도한다. 아, 뭔가 실험 시설에서 탈출할 때 사리엘에게 쫒기던 때가 생각나네 ......

"뭣, 불이 켜져있다니! 게다가 차도 그대로 ...... 참, 마지막 문병객은 터무니없이 무례한 놈이네요"

아마도 그녀는 같은 여자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 중 하나로 요양 중인 넬의 방을 관리하고 있는듯하다. 지금은 기숙사의 취침 시간이므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러온 것이 틀림없다.

그나저나 방의 모습을보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하는 것을 들으며 생각났는데, 이 목소리의 주인은 나에게 결투를 표방한 린치를 가해온 헬렌인가 뭔가하는 소녀가 틀림없다.

과연, 넬 공주님 친위대 대장. 잘난 귀족의 자녀인 그녀라면 공주를 돌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숭배심만으로 스스로 나서서 그녀를 돌볼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그 충성심에 의해 시달리고 있다. 투기장에서 그런일을 당했으니 헬렌은 이제 정말 나를 죽일 기회를 잡고있겠지 ......

"...... 나가"

"넬 공주님!? 일어나계셨나요?"

이 궁지를 극복하기 위해, 넬이 애드리브 연기를 시작했다. 그 과연 짜증나있다는, 증오까지 느껴질 정도의 목소리로 나가길 요구했다.

"됬으니까, 빨리"

"죄, 죄송합니다 ...... 실례했습니다 ......"

경애하는 공주에게서 진심어린 거절을 받자 헬렌은 명백히 슬프다는 듯한 음색으로 사과하고는 나갔다 .

문 닫는 소리와 다시 잠기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마음이 침착해진 것은 난생 처음이다.

그렇게 방에 정적이 흐르길 수십 초.

"...... 넬, 이제 괜찮은거아냐?"

"우우 ...... 크로노 군, 크로노 군 ......"

이제 적당히 떨어지는 것이 좋겠다. 침대에서 빠져나가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해서 얘기했지만, 넬의 구속이 풀리질 않는다. 긴장한 나머지 혼란스러워 하는걸까.

"저기, 이제 놓아주 -"

"하아, 학!"

"어, 어이, 진정해 넬. 됬어, 이제 괜찮으니까"

묘하게 흥분한 모습의 넬을 달래면서, 나는 부드럽게 포옹을 벗어나며 아쉽게도, 같은 발칙한 생각을 품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넬의 매력적인 몸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한 상황의 부끄러움을 재인식했다.

"저, 저기 ...... 크로노 군, 전 ......"

긴장과 수치로 훌륭하게 새빨갛게 물든 얼굴의 넬. 지금은 너무 부끄러워서 직시하지를 못하겠다. 싫어도 의식하고 만다.

스스로도 얼굴이 뜨겁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돌린 시선 그대로 말했다.

"고마워, 넬. 어떻게든 잘 속여줘서"

"네 ...... 그렇네요"

정말, 정말로 살았다. 침대에 두 사람 숨으면 당연히 들킬꺼라는 선입견을 갖은 나는 가장 먼저 그 선택을 포기했으니까.

"설마, 이런 형태로 넬의 날개가 도움이 될줄이야"

그렇다. 헬렌을 속일 수 있었던 비밀은 그녀의 날개에있다. 트릭은 간단하다. 넬이 누우면 당연히 그 큰 날개가 상당한 부피를 차지한다. 접혀 있어도 나름대로의 면적과 체적을 차지하는데다 조금 움직이니 일인분 정도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날개로 자연스럽게 이불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내가 숨어있어도 위화감이 없도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로노 군의 도움이 되서, 기뻐요."

시야의 구석에서 꺅꺅 거릴듯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꼬고있는 넬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도 긴장이 덜풀려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건지, 흥분이 완전히 식지않은 건지 모를 분위기다.

하지만 위기를 넘긴 지금에와서야 생각했다. 침대에 잠입했을 때 몸을 [섀도우 게이트]에 넣었다면 이런 도박을 하지않아도 좋았던 거 아닐까. 그래, 내가 판도라 대륙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그 사과 나무 상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때처럼.

완전히 뒷북이지만, 그래도 무사히 사태를 해결했으니 된건가.

"미안, 여기 오래 머물고 있으면 또 위험해질테니 이만 가볼께"

"아 ...... 그, 그렇네요 ...... 알았습니다"

낙담하는 듯한 목소리의 넬. 그럼 조금만 더 있어볼까, 라고 말하고 싶어 지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위기를 경험하고나서 그런 것을 제안할 수 있을리도 없다.

"넬은 건강해보이네. 그 상태라면 바로 학교에 복귀할 수 있는거지?"

"...... 아! 네, 네, 그래요. 그렇죠! 괜찮아요, 잔 내일부터 다시 건강하게 학교에 갈 수 있어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 이제 또 점심 시간이나 방과후에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네, 전 ...... 크로노 군과 언제나 함께에요 ...... "

열띤 시선을 향해오는 넬에게 발칙한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온다. 안되겠다, 한시라도 빨리 해산하지 않으면 자신이 뭔가 저질러버리는게 아닐까 불안해서 어쩔 수 없다.

허겁지겁 창가로 가서 다시 천둥이 치는 밤의 어둠에 뛰어드려는 각오를 굳힌 그 때 문득 생각났다.

"저기, 넬. 이번에 또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지 않을래?"

최근의 가호 실험 결과로, 나는 알게되었다.

[강철의 마왕=오버 기어]와 [천둥의 마왕=오버 악셀]을 잘 다루려면 각각 [프로텍트 부스트]와 [콘세스 부스트]의 술식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호루스 부스트]를 바탕으로 명확한 술식 이미지가 뒷받침되는[불꽃의 마왕=오버 드라이브]가 두 가호에 비해 발동과 효과 시간이 안정하고 반동도 적었다.

마왕인 미아 짱의 특훈에 의해 두 번째, 세 번째 가호는 술식의 이미지가 없음에도 실전 감각으로 발동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렇게 불안정하고 소모가 격하면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매우 불안하다. 하물며 사도를 상대한다면 더욱 더.

나는 다음 가호를 찾아 습득한 후 가호를 잘 다루는 단련도 필요하다.

아무튼, 그것을 넬에게 부탁해 버리는 것은 조금 한심한 이야기이지만.

"예, 물론입니다! 저 ......하지만, 크로노 씨 파티에는 그 ...... 마녀 분이 있지요?"

기분 좋게 대답하던 넬이 갑자기 표정을 흐렸다.

과연, 확실히 옆에서 보면 마법에능한 멤버를 놔두고 가르치는 건 조금 거북하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다. 참, 어디까지나 상냥한 공주다.

"아니, 아무래도 넬이 아니면 안돼"

"어 ...... 아, 제가 ...... 특별, 한건가요?"

"아아, 넬 밖에 부탁한다. 다른 녀석이면 절대 무리야"

이렇게, 나에게 제대로 현대 마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잘 가르치는것은 둘째치고 텔레파시에 의한 직접 지도가 가능한 넬 밖에 없다.

그 멋진 개인 수업을 받고나면 피오나의 판독할 수 없는 기괴한 수업을 들을 생각은 조금도 들지않는다. 고유 마법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릴리는 논외이고.

"네, 네! 감사합니다 크로노 군, 저, 노력하겠습니다!"

넬은 나를 기꺼이 도와준다. 다시 날개를 파닥 파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걸보면 진심으로 기뻐하고있는 것같다.

"고마워. 그럼, 내일보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크로노 군"

그렇게 나는 넬의 방을 떠났다. 원래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없이 빠르게 여자 기숙사에서 벗어났다.

다시 폭우를 맞으며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넬은 평범하게 건강했는데, 왜 지금까지 드러누워있었을까 ......"

특별히 내가 병문안을 가지않아도 그 모습을 보면 내일은 건강하게 등교했을 것같다 . 윌이 말한대로, 어딘가 정신적으로 상처받았다는 듯한 느낌도 없었고.

이스키아 전은 힘들었으니 아무리 넬이라도 좀 쉬고 싶었던 것일까.

"뭐, 건강라면 뭐든지 좋을까"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불안 하나가 해소된 기분으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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