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3 화 푸르름의 달 7 일 12시
아쉬워도 스트라토스 대장장이 공방에서 크로노와 헤어진 릴리는 완전히 단골로 정착한 [페어리테일]을 방문했다.
약속의 상대는 미모의 다크 엘프이자 왕립 스파다 신학교의 이사장을 맡고있는 소피아 시리우스 빠시화루.
겸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예복 차림인 대귀족 부인같은 소피아와 신학교 유니폼을 입은 유녀 릴리. 두 사람이 나란히앉은 모습은 마치 부모와 자식같지만 갈색 피부와 빛나는 날개가 명확하게 종족의 차이를 나타내고있다. 두 사람은 친구사이인 것이다.
나름대로 바쁜 점심 시간이지만 비밀 정보를 주문할 수 있는 안쪽 포지션은 릴리의 지정석이나 다름없다. 기다릴 필요없이 앉은 두 사람은 그대로 요정의 수제 요리를 우아하게 맛볼 것만 같았다.
"이번 건은 제 실책입니다 ......"
소피아의 갈색의 미모에 깊은 후회에 의한 어두운 표정이 드리웠다. 애통한듯한 모습이다.
"어쩔 수 없지. 이스키아 고성에의 구호는 크로노가 아니면 늦었을테고, 긴급 퀘스트가 발행될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으니까. 무엇보다, 기사도 모험가도 아닌 네 입장에선 빨리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고"
냉정하게 설득하는 릴리의 모습은 어리지만 말은 의식을 성인으로 되돌렸다는 것을 증명하고있다. 그리고 지적인 소녀 릴리에의한 보충은 실로 정확하다.
"아니, 하지만 ......하지만 ......"
"좋아하는 사람을 돕지못한 아쉬움은 알겠지만 말이야"
시몬을 도울 수 없었다. 소피아의 후회는 그것이다.
릴리가 말한대로 상황적으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사단보다, 아니, 크로노보다 빨리 이스키아 고성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시몬은 무사했고, 네가 도와주러오지 않았던 것을 걱정하긴 커녕 생각도 하지않았을걸?"
시몬의 입장에서 소피아는 단순히 학생과 이사장이라는 관계일 뿐이다. 휴학하고 모험가 활동에 대해 운운하는 등 다소 신세를 지고는 있지만 결코 깊은 사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특별히 신뢰를 잃은것도 아니니 괜찮잖아.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아냐?"
부드럽게 미소짓는 릴리에 소피아는 각오를 다진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아, 그래서 이제부턴 빨리 행동할생각이에요"
"괜찮아? 사대 귀족 빠시화루의 당주가 경망하게 움직이면 귀찮아질텐데"
"최소한의 교섭은 끝내놨어요. 아니, 사실 그나마도 필요없어요. 이런 시시한 것에 시간을 할애할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그와 함께 있는게 낫죠. 귀찮은 일도 방해자도 전부 얼려버리면 되니까요"
이것이야말로 이웃나라인 다이달로스까지 용명을 떨쳤던 랭크 5 모험가라는 듯한 기백이 묻어나온다. 그녀의 크리스탈 블루의 눈동자가 요염하게 빛난다. 릴리는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매장을 얼려버릴만한 냉기가 깃들어있는 것을 느꼈다.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후, 불필요한 충고였었나보네. 나도 응원해줄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줘."
"감사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 "
" 시몬은 내일 기숙사에 돌아와. 그러니 소개하는 것은 그 때가 좋을걸?"
"당신은 뭐든지 알고있군요"
"급해진 소녀의 마음이라는 것은 잘 알지"
그렇게 우아하게 웃는 두 사람. 역시 사랑하는 소녀는 아름답다.
"아, 그러고 보니 매직 아이템은 돌려줄게. 내일부터라면 이 리본이랑 안경이 필요하지?"
아발론에서의 악당 삼매경 - 기본 수행을 위해 빌린 변장용 도구들을 돌려주는 것도 오늘 소피아와 만난 이유 중 하나였다.
머리 색깔을 바꾸는 리본 머리띠와 눈동자의 색을 바꾸는 안경 및 콘택트 렌즈. 모두 한개당 수백만 클랜에 달하는 일품이다.
"아뇨, 그건 필요없어요. 마침 좋은 물건을 발견해서 그것을 사용할 생각이에요"
"굉장한 자신감이네. 얼마나 좋은거길래?"
"아아, 제 승부복이에요. 이것을 장비하면 랭크 5 몬스터와의 대결에서도 문제없어요"
릴리는 승부복이 그런 단어였던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난 소피아를 보고 괜찮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내쪽도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괜찮으려나?"
물론입니다, 라고 흔쾌히 대답하는 소피아에 릴리는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새 침대를 살 예정인데, 어딘가 좋은 가게를 소개받고 싶어"
이제 릴리는 랭크 5 모험가다. 미스릴 플레이트 길드 카드를 제시하면 상층 부지 출입도 자유롭다. 대귀족인 소피아가 이용하는 고급 상점을 방문하기에 부족함 없다.
"고집한다면 가구 장인에게 맞춤주문을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만?"
"빨리 새로운 침대로 교체해야되"
"급한거군요. 음, 그 기숙사는 상당히 낡았으니 비치된 침대가 손상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더러워서 참을 수 없는겁니까?"
릴리가"후우"하고 고생스럽다는듯이 한숨을 내뱉은 후 마음 속에서 샘솟아오르는 불쾌감을 무리하게 감춘채 능글 맞은 웃음을 지으며 소피아에게 침대 구입의 이유를 말했다.
"그냥, 벌레가 꼬여서 매우 더러워져 버렸어."
"벌레가 꼬였나요? 그것은 터무니없는 재난이네요"
"그래, 빨리 치워버려야지 ......"
릴리는 다시는 그 지저분한 깃털을 흘리며 웅웅 크로노 주위를 날아다닐 수 없도록 벌레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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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는 가호를 시험해볼 예정이었다.
" - 그래서 저는 어떤 가호를 얻은거죠?"
"그건 스스로 확인해보거라"
라는 검은 마녀 엔디미온의 설명 포기에 의해 피오나는 아직도 자신이 얻은 가호의 힘을 모른다.
비밀로하는 것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을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파 ~ 아"눈앞에서 크게 하품을 하는 여신의 모습을 보면 그저 귀찮았을 뿐이라는걸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무래도 마녀의 신은 심하게 마이페이스인 것 같다.
"안심하거라. 그대에게 불필요한 힘을 준건 아니다."
피오나는 마지막으로 그말을 듣고 꿈의 연옥 세계에서 귀환한 것이었다.
애초에 정말로 가호를 얻었는지부터가 매우 의문스럽지만 그것은 이스키아 마을에서의 전투에서 증명되게되었다.
피오나는 다가오는 몬스터 군단에 [올 솔레]를 시전했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최대 최강의 원초 마법. 크로노도 릴리도 따라잡지 못하는 엘리멘트 마스터 최고이자 절대적인 파괴력을 품은 화염 마법은 한번 쏘면 마력 고갈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오나는 이스키아 마을에서의 싸움에서 [올 솔레]를 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마력량이 절반 이하로 줄은 것을 피로감과 함께 실감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 후에도 전투를 이어나가기엔 지장이 없었다.
마법 발동에 필요한 마력량의 감소, 보유 마력의 증가, 혹은 그 둘 다? 아직 정확한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가호의 힘이라는 것을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마법에 관한 신이라면 누구나 줄 수 있는 기초적인 강화일 뿐이니 마녀 엔디미온의 가호의 모든 것일 리는 없다.
피오나가 얻은 것은 수 많은 제물을 바친 끝에 나타난 악한 여신의 가호이다. 이 몸에 깃든 것은 무섭도록 사악한 것이지만 막강한 힘 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즉, 지금의 피오나는 미지의 가호의 힘을 즉시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어떤 극악한 효과가 발휘될지 모른다. 그래서 피오나는 누구의 눈길도 닿지않는 스파다 밖을 목표로 걷고있었다 - 그랬을 터였다.
"...... 제가 왜 이런 곳에있는 걸까요"
정신을 차려보니 피오나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눈 앞에는 물수건과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차.
카운터를 사이에 둔 맞은 편에는 엘리시온에서도 스파다에서도 본 적이없는 흰 앞치마를 두른 요리사가 "참치 일인분!"이라며 힘차게 주문을 외치고있다.
이곳은 스파다에 오늘 오픈한 룬의 유명한 전통 요리를 제공하는 음식점이다. 그 가게는 이렇게 불리고있다. "스시 가게"라고.
"아, 오늘 스시 가게[오에도] 스파다 지점에 내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픈 기념 이벤트인 스시 많이먹기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오옷! 라며 만석 상태의 가게에있는 손님이 일제히 들끓는다. 피오나는 이 상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듯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면서 우선 뜨거운 녹색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다소 밍밍한 차는 처음 마셔본 맛이었지만 나쁘지않다. 뭔가의 요리와 세트로 마시면 분명 굉장히 돋보일 것이라고 먹보의 직감이 속삭인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제한 시간 내에 가장 많은 스시를 드신 분에게 상금 십만 클랜과 - "
카운터의 중앙에 선 요리사가 한 권의 낡은 책을 높이 들고 선언했다.
" - 이 레드 윙 백작이 스스로 남긴 룬 문화의 진수가 적혀있다는 귀중한 비밀 문서를 선물하겠습니다!"
다시 술렁이는 관객들 틈새에서 차를 홀짝이는 피오나. 레드 윙 백작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있는 이름이다 라고 생각하며 기억을 헤집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밀 문서는 복사본이므로 원본이 아닙니다. 유감이네요."
곳곳에서 일어나는 낙담의 소리를 들으며 피오나가 생각해냈다.
룬의 귀족인 레드 윙. 크로노와 같은 니혼이라는 세계에서 왔다는 이방인. 하지만 오십 년 전에 사망했으니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
크로노는 그런 일을 신학교에 입학한 시기에 유감스럽다는듯이 말했다.
"...... 이걸 선물로 가지고 돌아가면 크로노 씨가 기뻐할까요?"
그 혼잣말에 긍정하듯이 피오나의 배가 큐웃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점심 시간이다. 가호 실험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몸이 본능에 따라 맛있는 것이 있을 것 같은 가게로 와버린 것이 틀림없다.
빈속에 들어간 뜨거운 차에 배가 더욱 굶주림을 호소했다. 구큣.
"컨디션은 나쁘지 않네요"
문제가 있다면 오늘 여기에 모인 라이벌들이다.
피오나는 던전에 들어갈때처럼 경계심을 머금은 진지한 졸린 얼굴로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갓핫하! 오늘은 이스키아에서 생환한 기념파티다! 스시도 먹고 상금도 타가주마!"
가게 안에서 울릴 정도의 큰 소리를 외치는 붉은 거인의 오크. 얼굴이 낯이 익다. 이스키아 마을을 지키고 있던 모험가 중 한 명이다.
"으응~ 나는 채식주의라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적네..."
"저, 저는 계란이 먹고 싶습니다."
"초록색은 빼고 부탁드립니닷!"
확실히 [철귀단]이라는 스파다에서는 유명한 랭크 5 파티였다. 네 사람 모두가 터무니없는 거구의 소유자이며 그 외모만으로 식욕도 랭크 5 일 것이라는걸 짐작할 수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그 큰 4 인방이 가게 자리에 앉으면 심하게 좁아질 것이다. 오크, 미노타우르스, 사이클롭스, 골렘. 마치 저쪽만 높은 랭크의 던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좋아, 카이, 절대로 그 비밀 문서를 입수하는거야."
"알고있어, 사피! 나에게 맡겨둬!"
저쪽 카운터 석에 앉아있는 것은 인연이 깊은 [윙로드]의 파티원인 카이 와 사피르의 2인조.
다른 멤버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 저 둘은 잘되가는 것일까 라고 피오나는 추측했다.
"그렇다 치더라도, 사피가 에로책이 아닌 책을 탐내는 건 드무네"
"죽여서 사역마로 만들기전에 조용히 스시나 먹어"
아무래도 커플설은 틀린것 같다.
그러나 그 카이라는 검사는 인간이면서 크로노 수준의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피오나는 알고있다.
그렇다면 그가 숨기고있는 식욕 또한 초인적인 것일 것이다.
"분명히, 강적인 것같네요 ......"
만원인 점내를 차근 차근 돌아보니 여기 저기에 진심인 듯한 눈빛을 머금은 심상치않은 기운을 발하는 사람이 하나 둘씩 보인다.
곧 이곳은 전쟁터가된다. 피오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초밥을 먹는건 오랜만이네~"
바로 옆 자리에서는 신학교의 남자 교복을 입은 귀여운 소년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메뉴판을 바라보고있다.
슬프도다, 라고 피오나는 약간의 동정심을 품었다.
이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한 크로노와 비슷한 색조합의 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식 대회가 목적인게 아니다. 순수하게 룬의 요리를 기대하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폭식의 연회에 휘말리면 천천히 식사를 즐길 분위기는 사라진다.
"그래도 저는 싸우겠습니다."
각오를 다진 피오나는 교복 벨트를 풀고 임전 태세를 취했다.
"그럼 주문을 받겠습니다!"
"크로노 씨, 저에게 힘을 주세요. - 잘 먹겠습니다"
이리하여 장렬한 싸움의 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