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9 화 광전사의 힘
왕립 스파다 신학교가 자랑하는 콜로세움. 그 단단한 흙바닥에 기절한 학생들이 쌓여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아발론 12 귀족의 일원인 장녀 헬렌은 그 시체 더미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 다음"
그녀의 동요 따위는 들리지않는다는 듯이 차가운 목소리가 투기장의 원형 공간에 울려퍼졌다다.
목소리의 주인 - 나는 중앙에 서있는 신학교의 검은 유니폼을 입은 남학생이지만 그 내용물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괴물이다.
"큿, 제가 가겠습니다!"
헬렌이 데려온 내 주변의 넬 공주님 친위대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검술 수업에서 사용되는 통일된 규격의 목검을 손에 든 기사 코스 남학생이 우렁찬 외침과 함께 돌격하기 시작한다.
그 속도를 보면 상당히 우수히 기사 후보생이라는걸 알 수 있지만 -
"그앗!?"
허공에서 번쩍이는 한 줄기의 검은 화선. 그 즉시 피어나는 자전의 꽃.
또 경기장에 쓰러진 희생자가 늘었다.
"다음"
"큭 ......그누누우......"
기품이 감도는 화려한 얼굴에 억울함과 초조함,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을 띄운채 이를 가는 헬렌. 몇몇은 그녀의 눈치를 보고있지만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고있다. 마침내 입후보하는자는 없어졌다.
"이게 끝인가?"
도전자가 끊어진 것을 불만스럽다고 말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듯이 평탄한 어조물었다. 하지만 똑바로 헬렌을 꿰뚫는 검정과 빨강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예리하고 차갑다.
"이, 익 ...... 악마 녀석 ......"
크로노. 그것이 악마의 이름이다.
경애하는 넬 공주를 괴롭혔지만 그러면서도 이스키아의 영웅이라는 겉으로는 화려한 영광을 치장한 교활한 남자.
헬렌은 예전부터, 식당에서 크로노가 말썽을 일으킨 시점부터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크로노의 동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순진무구하고 자애가 넘치는 공주의 경계심없는, 자신에게 접근해온 것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친오빠인 네로 왕자도 위기감을 느끼고있다는걸, 헬렌은 알고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자신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넬의 곁에는 항상 그 완전 무결하고 참된 영웅의 후손이자 아발론을 이끄는 왕인 네로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공주를 지키는 기사가 곁을 떠난다면 -
"크로노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크로노 씨는 제 소중한 친구예요. 나쁘게 말하는 것은 그만둬주세요"
잊고싶어도 잊을 수 없는 백금의 달 24 일. 불온한 움직임을 알리고자하는 뜻에서 경애하는 공주에게 간언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헬렌은 이때만큼 후회라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이렇게, 이 시점에서 이미 넬은 크로노의 독니에 걸려버렸으니까.
표면상으론 단순한 클래스 메이트에 불과한 그녀는 이제 방법이 없었다.
힐러로서 끔찍한 저주의 무기 투기 대회에 참가하여 아발론의 국보 [흰 날개의 천칭]을 크로노를 위해서 사용할 때도.
그리고 구출을 위해 이스키아 고성에 향하고 돌아올때는 그 상태였다.
같은 여자 기숙사에 사는 헬렌은 당연히 넬에게 병문안차 여러번 방문했다. 그리고 생기가 빠진 인형같은 그녀를 눈에 담을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같은 정도의 깊은 슬픔을 느낌과 동시에 생각했다.
크로노,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이스키아의 땅에서 크로노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넬 자신이 결코 자백하지않아서 밝혀져 있지않다. 하지만 크로노가 원인이라는걸 알기엔 충분하다.
넬 공주님을 슬프게한 이 남자만은 절대로 용서하지않는다. 그것은 기사의 자존심을 버리고 린치 뺨치는 습격을 걸정도의 각오였다.
분노에 불타던 헬렌이였지만, 결코 크로노의 실력을 얕잡아봤던건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랭크 5 몬스터를 죽인 실적이 있는것이다.
성적이 우수한 아발론 유학생이지만 결국은 학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일대일로는 만에 하나라도 승산이 없다.
하지만 연전에 연전이 쌓이면 실력자라 할지라도 피로가 쌓인다. 피로는몸을 둔하게 만들고 두뇌회전을 느리게 만들다. 마력이 부족해지는건 물론이고, 무예조차도 낼 수 없어진다.
실력은 부족해도 넬에 대한 충성심과 크로노 대한 분노에 의해 전의를 불태우는 친위대의 정예라면 누구라도 달려들 것이다.
그러나 헬렌 앞에 세워진 것은 그저 쓸데없이 쓰러져가는 친위대의 시체. 아무리 달려들어도 누구 한 사람조차 목검이 닿는 틈까지 크로노에게 접근조차 하지못하는 것이다.
크로노는 목검을 들고 자세조차 취하지않은 무방비한 상태이다. 하지만 일단 이쪽이 덤벼들면 아무런 예비 동작없이 쏘아낸 수수께끼의 검은 번개 마법으로 일격에 기절시켜버린다.
처음엔 좋아했다. 무영창 노모션인 일격 필살의 공격 마법이라면 그렇게 연속으로 계속 쏠 수 없다. 피로를 축적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강한 마법을 사용해주는건 바라던바다.
하지만 이제 모인 친위대원 수는 절반을 넘은 스물, 아니 서른 명이 전투 불능이다.
즉, 30 연전을 해도 크로노는 아직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않은채로 차가운 표정을 짓고있는 것이다. 그 몸에서 풍기는 마력의 기색도 전혀하지않았다.
"도대체 어느정도의 저력을 지닌겁니까 ......"
크로노의 클래스는 광전사. 모의전용 지팡이가 아니라 목검을 스스로 선택했으니 마법사 클래스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마법은 보조. 그 본실력은 그리드고아를 때려죽였다는 무예일 것이다. 랭크 5 모험가로 인증된 실력이라고해도 그 보유 마력량은 유명한 마법사 정도는 아닐것이다.
헬렌은 그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이미 이해하고있다. 알았으나 해결책은 없다.
가히 무한한 마력으로 일격 필살의 공격 마법을 연발하는 광전사에 어떻게 대항하라는 것인가. 번민에 사로잡혀 냉정함이 부족해진 헬렌이지만 정답을 이끌어내어줄 사람은 없다.
도대체 어느 누가 '도주'라는 선택지를 제외한 상황에서 절대로 이길 수없는 상대를 공략할 방법을 생각해낸단 말인가.
이렇게, 지금의 헬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패장같은 심경이었다.
"어이, 더이상 덤빌사람이 없다면, 나는 이제 돌아갈거야?"
너무나도 긴 침묵에 크로노는 싫증난듯한 어조로 말했다.
"큿, 기다리세요! 다음은 이 제가 상대해드리죠!!"
아즈라엘 가문은 왕을 섬기는 용기사의 가계. 자신은 용기사가 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미래엔 아발론의 기사단 마법사로서 근무하는 것이 정해져있다.
이대로 비참한 전멸의 말로를 걸을거라면 적어도 기사답게 스스로 도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귀족으로서 이 패전의 책임을 한몸에 짊어질 각오가있다.
결투의 주모자는 헬렌 자신. 크로노에 대한 친위대원들의 불만이 고조되어있긴했지만 친위대장으로서 숙청을 발안 · 계획 · 실행한 것은 자신이다.
"무리하지 않는게 좋을껄?"
"시끄러워욧!"
격앙, 하고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도 인식하고있다. 어쩔 수 없이 몸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 표정도 용감과는 거리가 먼 공포로 경련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도 각오를 다지고 싸우겠다고 말하는데, 이 남자는 일부러 공포를 지적해보인 것이다. 결의를 짓밟는 악마의 소행이다.
"하겠습니다, 할거라고요 ......"
친위대원 중 누구도 그녀가 패배의 두려움에 떠는 것을 겁쟁이라고 비웃지않는다. 결투라고해도 고작 모의전. 목숨을 걸고있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상대는 일국의 공주를 넘어뜨린 교활한 악마다. 아마도 크로노는 이미 간파하고있을 것이다. 아무리 헬렌같은 아발론 귀족의 자녀라 할지라도 이런식으로 싸움을 거는 난동이라고 불러야할 소행은 범죄 행위라는걸.
힘으로 크로노를 때려 부술 수 있다면, 그저 아무 뒤탈없이 힘으로 눌러서 협박하면 된다. 그러나 반대로 힘으로 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크로노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태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입장이 역전되어 이번에는 이쪽이 위협당할 차례다. 아니, 이미 상황은 박차를 가하고있다.
그러니 적어도 피해는 주범인 자신만 받을 거이다. 그것이 책임이다. 귀족으로서, 기사로서, 무엇보다 넬 공주님의 친위대 대장으로서.
헬렌은 이미 각오가되어있다. 질 각오. 그것은 즉, 자신의 몸을 크로노에게 내미는 것.
엄격한 명문 귀족의 자녀로서 결혼할 때까지 굳게 순결을 지켜온 이 깨끗한 몸을 흉악한 촉수 남자가 마음대로하게......
"그럼, 이제 남은 전원이 한꺼번에 덤벼봐"
악마가 속삭였다.
"실력 차이는 분명해.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균형이 맞질않아. 게다가, 시간 낭비야"
모처럼 수업을 땡땡이쳐가면서까지 어울려주고있는데, 라며 진심으로 불만스런 모습으로 중얼거리는 크로노.
"한꺼번에 ......?"
모두 일제히 덤비면 혹시 - 이렇게 생각해버린 직후, 헬렌은 주의했다.
이것은 함정이다. 이기에 이르러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짓밟고 더욱 깊은 절망에 떨어뜨리려고하는 악마의 간계임에 틀림없다.
자못 자연스럽게 제안해보인 크로노의 그 연기력에 감탄하지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넬 공주님도 이렇게 넘어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고있어도, 이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일대일로 싸우면 패배는 필연. 조금이라도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려면 모든 전력을 투입하는 것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다.
"...... 정말 좋은건가요? 거기까지 말한 이상, 이쪽도 봐줄 생각은 없어요."
"아아, 죽일 각오로 덤벼봐"
죽을 각오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않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단언하는 크로노에 분노가 치밀었다.
"전원 전투 태세! 돌격 준비! !"
아발론 식 전투 지령에 사기 떨어졌던 친위대에 전의가 돌아온다.
헬렌이 자세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검사, 전사 클래스는 앞에. 궁수, 마법사 클래스는 뒤쪽으로 빠르게 진형을 갖췄다.
모인 친위대 중엔 간부 후보생도 있고 단순한 모험가 코스의 사람도있다. 당연히, 모두 함께 전투 훈련을 한 경험 등은 없다.
그래도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짜 순식간에 포위 섬멸 자세를 취한것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숙련도의 높이를 나타내고있다.
흔들림없이 겨눠진 목검. 소리 높이 울려퍼지는 공격 마법 영창.
아레나는 이제 마력과 살기로 가득찼다.
팽팽한 공기 속에서 손에 쥔 지팡이 끝에 불덩어리를 만든 헬렌은 보다 크게 호령을 내렸다.
"돌격! !"
진짜 기사에 뒤지지않는 기세의 격렬한 공격이 시작되려던 찰나, 크로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탄*배럿 아트] 풀 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