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4 화 깊어진 골
"멈춰라, 이스키아의 영웅"
어떠한 이유인지 네로는 화난게 분명한 모습이다. 아니, 짐작가는게없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돕지않았다면 전 이미 죽었을겁니다. 감사합니다, 네로 왕자"
"그만둬. 그런 마음에도없는 경어따위는 쓰지도마"
젠장,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는데 이게 아니였던건가?
그러고 보니 경어를 쓰지말라고 들은건 이루즈 마을에서 니노와 만났을 때에도 그랬지. 내 경어는 그렇게 기분 나쁜건가.
그러나 네로 왕자덕분에 살았다고 감사하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훈장을 받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해봤자 비아냥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말하고 나서주의해봤자 이미 늦었지만.
"어차피 둘다 학생이다. 나에겐 경칭 생략으로도 상관없어. 너도 윌에겐 경칭을 생략하잖아?"
"아"
"게다가 넬에게도 말이지"
"...... 아"
네로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는 한 순간 희미하게 살기가 새어나왔다. 경칭을 생략해도 좋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의미에서 제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 릴리와 피오나에게 "참아줘"라고 핸드 사인을 보냈다. 그 두 사람은 네로를 불길한 모습으로 살피고있다 고 할까, 릴리는 이미 왕자님의 머릿속을 전력으로 스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당히 넬과 친해진 것 같네"
"넬은 내 친구야"
여기에 특별한 의미같은 건 없다. 애초에 내가 거짓말 따위를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을 그대로 정직하게 말했다.
그래도 안되면, 뭐, 릴리와 피오나를 안고 이 자리에서 속공 탈출할 뿐이다. 이제 될대로 되라지.
"그래, 어떻게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뭐, 지금은 아무래도 좋아. 그나저나, 크로노, 나는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있다"
네로의 진홍의 눈동자가 내 눈을 똑바로 겨냥했다. 질문이라기보단 결투 신청인 것 같은 기백이 느껴진다. 아, 젠장, 왕자의 허리엔 역시 그 깨끗한 흰 칼이 걸려있다.
네로가 발도하는 것과 내가 사로를 호출하는 것, 어느 쪽이 빠른 것일까 ......
"그리드고아를 쓰러뜨린 스킬, 그건 어떤 가호에서 비롯된 것이지?"
으아, 미묘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걸 물었잖아!
나로서는 솔직히 "미아야"라고 대답해도 좋지만 마왕의 가호는 아직까지 아무도 얻은 적없는 특별한 것이다. 당당하게 말하기 꺼려진다. 게다가 판도라 성전에서 공식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니고 말이지.
"대답하지않겠어. 모험가가 손패를 밝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권리니까"
먼저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뭐, 그거야 그렇지"
나의 대답은 예상했다는 듯이 수긍하는 네로. 자신도 현역으로 모험가를 하고있는만큼 나름대로 이해해주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가호에 대해선 묻지 않을 것이다. 네로는 다음 질문을 시작했다.
"피오나를 나에게 보낸건 어떤 이유때문이지?"
"응?"
한심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질문을 들으면 누구라도 이렇게 될 것이다.
피오나를 보냈다고? 누가 누구에게? 내가 네로에게?
랄까 피오나는 어느새 아발론의 첫째 왕자와 알게된거야? 나에게는 왕족에게 접근하는 행동의 위험성을 운운했으면서.
본인이 옆에 있으니 직접 듣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
"피오나, 네로와 아는 사이야?"
"아뇨, 전혀 모릅니다. 초면이에요"
피오나는 전혀 동요하지않고 평소같이 졸린 얼굴로 부정했다.
어이 어이 진짜냐, 단순히 잊어버렸을 뿐이 아닌거냐 - 라고 생각은 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상 어쩔 수 없다.
"...... 오해같은데?"
다시 정면을 향해서 일단 네로에게 전했다.
네로는 내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피오나에게 미아 짱과 같은 붉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지만 단념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피오나는 물론 무반응이다. ...실은 자고있는게 아닐까?
"칫, 뭐, 좋아...... 이제와서 물어봐도 어쩔 수 없지"
왠지 이상한 말을 한 것같지만 일단 납득해준 것 같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질문은 아직 남아있는 듯 하다. 네로는 일부러 틈을 두고 물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자 핵심적인 질문인 것 같다.
"- 왜 넬을 성까지 데려온거지?"
네로의 입에서 나온 그 질문에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되지? 예상한 것 중 하나였다. 랄까, 절대로 이 질문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 질문에 할 대답은 하나 밖에 없다.
"미안"
내가 사과의 말을 입에 담은 순간 네로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발도 - 아니, 그것은 주먹을 내 안면을 향해 내뻗는 동작.
내가 한 반응은 반사적으로 눈을 닫는 것 뿐이었다.
" - 앗!"
왼쪽 뺨에 힘이실린 딱딱한 주먹이 닿았다. 그 날씬한 체격과는 다르게 무거운 펀치다. [호루스 부스트]라도 사용한거냐.
만약 내가 보통 인간이었다면 이대로 몇 미터는 날아갔을 것이다. 튼튼한 지금의 개조 강화 육체때문에 힘을 실은 오른발만으로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뼈에 금이 갈 정도는 아니겠지만 입술이 터지는 정도는 될지도 모른다.
"쿠로노!"
"크로노 씨!"
릴리와 피오나를 손짓으로 말렸다 - 만 부족할테니 릴리가 텔레파시로 듣고있다는 가정하에 호소했다. 괜찮아, 릴리. 그대로 움직이지 말아줘.
그래도! 라며 즉시 돌아온 릴리의 목소리가 뇌에 메아리친다.
정말로 괜찮아. 나는 네로에게 한대만 맞을 뿐이야.
이렇게 얌전히 맞아주는건 한번 뿐이다.
" - 앗!?"
나는 간발의 틈도 없이 날아온 네로의 추격타, 왼쪽 주먹을 한 손으로 받았다.
뻐억, 주먹이 부딫히는 마른 소리가 크게 울렸다. 두 번째도 용서의 조각조차 없는 펀치력이다.
"나는 넬에게 힘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어. 그러니 오빠인 너에겐 여동생을 걸고 나를 때릴 권리가있다고 봐야겠지"
2격째를 막은게 의외였는지 네로는 약간 놀란 표정이다. 나의 변명을 납득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이해받을 생각도 없었다.
이건 단순히 나의 결심같은 것이니까.
"하지만, 그 선택은 넬 자신도 원했던거야. 다름 아닌 오빠와 친구와 거기있는 파티원을 돕기 위해 목숨을 건거야. 나는 그 의지까지 부정하지는 않겠어. 그러니 두 발 째를 맞아 줄 수는 없어"
손바닥에서 네로의 주먹이 떨어진다.
세 번쨰는 날아오지 않는다. 대신 아까보다 눈빛이 날카로워진채로 나를 노려본다.
"뭘 아는척 지껄이는거냐! 넬은 나와는 다르게 어떤 이유가 있든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면 안된단 말이다!"
"알지 못하는 건 네쪽이잖아"
"뭐야, 뭐라고...... "
네로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다. 만약 나에게 넬같은 동생이 있다면 아무런 의문도 품지않고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가족이 아니라 친구다. 그래서 나는 제일 먼저 그녀의 감정을 생각해줘야 것이다.
"넬도 같은 파티원이다. 자신만 특별 취급되서 기뻐할거라고 생각하는거냐?"
"닥쳐 ......"
"넬은 말했다. 저에게도 도와야할 사람이 있어요, 라고. 그 정도의 각오를 품은 사람에게 위험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진심으로 말할 생각인거냐?"
"닥치라고 말했지!"
네로의 오른팔이 다시 움직인다. 이번에는 멱살을 움켜잡은채 힘으로 몰아붙힌다. 끄드득, 옷이 찢어질 듯이 비명을 지른다.
"넬을 위험하게 만드는 녀석은 내가 용서하지않겠어. 그러니까, 크로노, 나는 네놈을 용서할 수 없다"
드디어 네로는 살기를 억제하지않고 진심으로 발하기 시작했다.
과연 랭크 5 모험가. 그 실력을 나는 조금이지만 그리드고아와의 싸움에서 목도했다. 찌릿 찌릿 피부를 찌르는 강렬한 감각. 내 육감도 "이제는 위험하다" 라고 경고하고있다.
아무래도 진심이 된 것은 네로뿐만 아니라, 내 뒤에서 참던 릴리와 피오나도 마찬가지인듯하다. 아직 아슬 아슬하게 억제하고는 있지만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살의가 소용돌이치고있다는 것을 어쩐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네로가 이끄는 두 멤버도 상당히 뛰어난 듯하다. 아마도 릴리와 피오나의 불온한 기운에 반응했는지 당장이라도 공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은근한 적의를 내뿜고있다.
위험한데. 나와 네로의 싸움만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서로의 멤버도 참전한 싸움, 그것도 랭크 5 모험가 정도가 되면 이 파티 회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변모할 것이다.
하지만 네로의 귀에 이제 내 말이 닿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빠진 것은 반성하지만 그래도 내가 네로에게 말한 것에 후회는 없다.
나는 알고있다. 만약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돕지않으면, 어떤 기분이 되는지. 얼마나 깊이 후회하게 되는지.
그래서 "돕고 싶다"는 넬의 기분만은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자신의 몸이 위험해도 싸워야하는 때라는게 있다. 그것이 랭크 5를 자칭하는 실력자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나는 네로에게 사과의 말을 입에 담지도, 발언을 철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오빠라면 역시 동생의 신변의 안전을 제일로 생각하는게 옳은 일이니, 네로, 너의 분노는 잘못되지않았어.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 감정에 몸을 맡긴채 주먹 다짐을 할 여유는 없다.
"어이, 넬은 네놈 때문에 지금 -"
네로의 적대감은 이제 한계다.
좋아, 우선 네로의 구속을 푼 다음 [흑안개]를 뿌리고 도망칠 수 밖에 없다 - 이렇게 각오를 다진 순간이었다.
쨍그랑! 성대한 파쇄음이 홀에 울려퍼졌다.
무슨 일이지! ? 반사적으로 소리를 향하여 고개를 돌린것은 나도 네로도 마찬가지였다. 랄까, 이 상황에서 그쪽을 보지않는 녀석은 아무도 없다.
홀에서의 시선을 모은 사람은 네로와 같이 붉은 망토를 걸친 남학생 한 명. 서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대리석의 딱딱한 바닥에 쏟아진 붉은 액체. 그것이 피가 아니라 스파다산 명품 와인이라는 것은 그 색과 코에 닿는 향기로운 향기로 바로 알 수 있었다.
퍼진 와인에는 부서진 병의 잔해가 섞여있다. 아무래도 소리의 원흉은 이것인 것 같다.
"파하ㅎㅏ하! 미ㅇㅏㄴ 미안, 이몸ㄷㅗ 조금 들떠ㅅㅓ 과음ㅎㅐ버ㄹㅣㄴ 것 ㄱㅏㅌ구ㄴㅏ"
미묘하게 혓바닥이 꼬인 어조로 말하면서 와인 병을 든채 바닥에 쓰러진 남학생 - -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난 지금 그 얼굴을 보니 누군지는 분명해졌다. 아니, 이제 대사만으로도 누군지 판단하기에 충분했다.
"어, 어이 윌 ...... 괜찮은거야?"
아직도 멱살을 잡힌 상태이지만 나는 만취 상태의 친구에게 그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ㄹㅏ! 이몸ㅇㅡㄴ 그 지ㅇㅗㄱ의 이스키ㅇㅏ에서 기적의 ㅅㅐㅇ환을 완ㅅㅜ한 불ㅅㅏ신인 둘째 왕자ㄷㅏ! 넘ㅇㅓ진 정도ㄹㅗ 다칠 ㄹㅣ가 없잖ㅇㅡㄴ가! 파하하하ㅎㅏ하ㅎㅏ!"
완전히 일어선 윌은 양손을 허리에 대고 어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혹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이상해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평소에도 이런 느낌이니 역시 괜찮은걸까.
"ㅇㅏ닛?! 파편ㅇㅣ 흩어져 위험하잖ㅇㅡㄴ가?! 게ㄷㅏ가, 누ㄱㅜ냐! 우ㄹㅣ 스파다 특산 와인ㅇㅡㄹ 낭비ㅎㅏ는 바보ㄱㅏ!? 어이! 세리ㅇㅏ! 어ㅅㅓ 정ㄹㅣ해라!"
"알겠습니다, 윌 님"
어느새 걸레가 든 양동이에 빗자루와 쓰레받이라는 청소 세트를 갖춘 호위 메이드 세리아가 윌 뒤에서 나타났다. 그렇게 눈에 띄는 메이드 차림인데, 지금의 지금까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난전중에 나타났던 스우 씨처럼 완벽한 은신이다.
어쨌든 주인의 지시를 받아 빠르게 정돈을 시작한 메이드를 뒤로한 윌이 매우 이상한 걸음걸이로 휘청 휘청 이쪽으로 다가온다.
"프으, ㅇㅣ몸의 소꿉친ㄱㅜ이자 샤ㄹㅡ의 보ㅁㅗ인, 라이트닝 ㄹㅗ드 나이트 네로 율ㄹㅣ우스, 에루로드 아ㄴㅣㄴ가!"
"누가 보모냐, 그리고 그 이명으로 부르는 것도, 이성한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그만둬"
"쿠쿠쿠쿠, 그ㄹㅣ고, 영ㅎㅗㄴ의 맹ㅇㅜ이자 오늘 밤 스파다에 탄생ㅎㅏㄴ 한 어둠의 영웅, 나이트 메어 버서커 ㅋㅜ로노! 파티의 주역인 ㄱㅡ대는 마시고 있는겐ㄱㅏ?"
"아니, 뭐, 앞으로 마시려하고있었어"
"그렇구ㄴㅏ! 마셔ㄹㅏ, 잔뜩 ㅁㅏ셔라! 술값은 모ㄷㅜ 스파다 국고ㅇㅔ서 대 방출되ㄴㅣ 거ㄹㅣ낌없이 마셔라아아ㅇㅏ! ! "
"그것은 정말 다행이네 ......"
눈치채니 윌은 눈앞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혼자 튀고있다. 이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한 듯이 행동하고있다.
"자ㅇㅏ, 네로오, 함ㄲㅔ 마시자꾸ㄴㅏ. 그ㄷㅐ에게는 성질ㄱㅡㅂ한 바보 같은 동ㅅㅐㅇ을 도와준 까닭ㅇㅔ 감사ㄹㅡㄹ 전하ㄹㅕ고 생각ㅎㅏ고 있었던 것이ㄷㅏ!"
"쳇,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 "
네로는 완전히 김이 빠졌는지 내 가슴팍에서 손을 떼고 곧바로 발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자랑스럽게 휘날리는 붉은 망토의 뒷면은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같았지만 두 명의 파티 멤버도 말없이 따라갔다.
역시 그 행선지에있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양보해, 그대로 쭉 홀 전면 도어로 퇴장해갔다.
"뭐어, 네로가 사람사귀기에 까다로운 것은 평소의 일! 자, 이스키아에서 생환한 학생 여러분, 걱정하지말고 그대로 만찬을 즐기세나! 파하하하하!"
네로가 퇴장한 것으로 분쟁의 불씨는 깨끗이 진화되어 파티 장소는 다시 활기찬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 위기를 사고없이 무사히 극복한 것을 실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이 술 취한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살짝 귀띔했다.
"...... 살았어, 윌. 고마워"
"훗, 알고있었는가? 영혼의 맹우여, 시몬과 마찬가지로 이몸의 생각을 헤아려주는군"
아, 나는 정말로 친구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구나. 이렇게 귀중한 실감을 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