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마왕-331화 (332/382)

제 331 화 이스키아 고성 방어전

날이 샘과 동시에 내리기 시작한 폭우 소리에 섞여 사람과 몬스터가 연주하는 장렬한 싸움 소리가 울려퍼진다.

언덕에 선 것은 미래의 스파다 군을 짊어질 젊은 엘리트 왕립 스파다 신학교 학생 삼백 명.

기습도 비책도없이 정면에서 성으로 쳐들어오는 것은 이스키아 구릉에서 끌어 모은 몬스터의 혼성 군단. 그 수는 불명.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갖추고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성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이다.

"우오오오오오! [슬래시]!"

성벽을 기어오르며 성내에 침입하려던 한 오크를 기사 후보생 소년인 에디가 장검을 휘둘러 잘라죽인다.

성벽을 넘으려던 상체를 무예로 깊이 베인 오크는 그대로 지나온 길을 따라 자유낙하하며 돌아갔다.

"시에나! 여긴 더 이상 못버텨!"

"그런 말을 해도 어디로 물러나야 되는건데 -[에르 사기타]!"

밝은 녹색의 땋은 머리를 휘날리던 안경쓴 마법사 소녀 시에나가 공격 마법을 성벽 아래를 향해 쏘기 시작했다.

목표는 날카로운 발톱을 돌 성벽의 틈에 끼우며 열심히 암벽 등반을 감행하는 고블린.

바람의 칼날에 팔이 잘린 고블린은 그 아래로 동료를 말려들게하면서 추락해갔다.

"물러설 수 없다, 싸워라! 성벽도 뚫렸다! 성내에도 적이 침입했다!"

어디로 도망가냐는 물음에 대답한 것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총대장 윌 하르트 트리스탄 · 스파다 제 2 왕자였다.

이미 전령을 보낼 정도의 인력도 없다. 대장 스스로 성벽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보를 전하고있는 것 같다.

"성내라니 ...... 이제 드디어 끝장이네"

지금까지 몬스터의 침공을 막던 것은 방벽이 튼튼한 *카라 홀과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성벽이다.

전투가 개시된지 약 30분만에 카라 홀은 몬스터의 시체에 묻혀버렸고 이 수직으로 우뚝 솟은 성벽도 이제 막 뚫리려하고있다.

남아있는건 성의 본체라고도 할 수 있는 건물인 "천수"뿐이다.

애초에 성벽을 뚫리면 그 성은 이미 함락된 것이다.

천수로 도망쳐서 끝까지 저항할 수도 있으나 전황상 싸우는 것 외의 선택지가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포기하지마, 시에나! 우리들은 아직 싸울 수있어! 절대로 어떻게든 될꺼야!"

하지만 희망이없는 것도 아니다.

윙로드가 구리도고아를 쓰러뜨려줄지도 모르고 스파다 정예 기사단이 도와줄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기에 나서서 싸우고있는 것이다.

비록, 절체절명의 궁지에 빠져있어도.

"오, 거기있는건 이몸의 기사 에디와 시에나 아닌가. 잠시 동안 호위를 부탁해도 되겠는가?"

명목상 직속 부대로 심고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윌 하르트가 명령인지 부탁인지 모를 질문을 하면서 달려왔다.

"알겠습니다 각하!"

"하지만, 잠깐, 호위라뇨?"

즉답하는 에디와 질문하는 시에나.

"북쪽 방어 타워가 철수 명령을 전할 마지막 장소다. 하지만 이미 성벽 위에까지 몬스터가 올라와 있어서 이몸이 혼자서 향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우리 둘만으로 괜찮나요?"

"그 이상의 병사를 데리고 갈 순 없다. 서두르자!"

진흙과 비로 더러워진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윌 하르트가 선두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 그 사람은 겁쟁이인건지 근성이있는건지 잘모르겠네"

시에느가 중얼거린다.

싸움 직전의 네로와 비교하면 같은 왕자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보기 흉한 모습을 드러내고있는 윌 하르트.

분명히 자신의 몸을 지키기에 과도한 호위를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황을 확실히 감안하여 최소한으로 좋다고 말했다.

신학교 초기부터 인기가 없던 왕자 윌 하르트. 시에나는 그의 사람됨을 잘 모른다.

과연 그가 소문대로의 유감 왕자인지, 아니면 그게 과장된 소문인지.

"나는 믿고있어. 그 역겨운 네로 왕자 따위보다 훨씬 말이야"

의외로, 에디가 윌 하르트의 지지를 단언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단언하냐고 물을 정도로 여유가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에나!"

"알고 있어!"

앞으로 성벽 위를 나아가자 통로에 내려선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내질러지는 검격과 내뿜어지는 풍인 - 그것에 섞여, 한줄기 화선도 반짝이고 있었다.

"훗, 우리의 앞을 막다니, 어리석군. 저승의 밑바닥에 후회하거라!"

윌 하르트의 손에는 라이플이 있고 그 총구에선 발사에 의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발사된 총알은 통로에서 튀어나온 고블린 한마리를 확실히 쏴죽였다.

소리 높여 승리의 목소리를 올리는 윌 하르트는 몬스터의 시체를 짓밟고 성벽 위를 나아갔다.

그 모습에 부하 두 사람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가 사영하는 무기의 위력은 틀림없다고 판단하고 고마운 원호 사격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고블린이나 슬라임, 때로는 하늘에서 변덕스럽게 달려드는 하피를 격퇴하길 몇 번. 세 사람은 예정대로 북쪽 방어 탑에 도착했다.

윌 하르트가 성벽의 통로에서 그대로 이어진 탑의 문을 부술기세로 열어재낌과 동시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성내로 퇴각이다! 성벽은 포기해! 서둘러, 시몬!"

방어탑에 있는 것은 몇 명의 궁수와 마법사, 그리고 최근 윌 하르트 왕자와 은밀한 사이라고 소문이 난 친구인 시몬 프리드리히 바르디엘이다.

요격용 작은 창에서 한발 쏘기를 끝낸 몸집이 작은 저격수는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며 되돌아보았다.

"아, 다행이네. 다른 층에서 몬스터가 들어오길래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시몬이 장대한 저격용 소총을 메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아래층에서 몬스터의 신음 소리같은 것이 들려온다. 계단으로 여기와 연결된 문도 심하게 손상됬으니 곧 부숴질다.

딱딱한 돌 벽과 강철의 문이 그렇게 쉽게 깨지지는 않겠지만 탑을 포기하는 타이밍 상 상당히 빠듯하다.

"서둘러, 늦겠어"

철수를 제촉하는 윌 하르트의 말에, 시몬은 탑을 지키는 다른 학생들이 성벽 측의 통로로 나올 수 있도록 움직이기 시작했다.

"...... 심한 부상이네"

"모두 물약을 마셨어"

탑에서 공격해도 몬스터가 반격하지않는 것은 아니다.

켄타우루스의 화살은 끊임없이 날아오고 최악의 경우엔 성벽을 기어올라온 슬라임이 창문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갑옷이나 유니폼에는 곳곳에 피가 배어있다.

데미지가 없더라도 한계까지 공격을 받아낸 마법사들은 이미 마력이 고갈되기 직전인지 긴 지팡이를 쥐고 비틀거리며 걷고있었다.

행운인지 실력인지, 시몬만 다치지 않은 듯 했다.

당연히 부상의 정도가 큰 사람부터 먼저 탑에서 나간다.

좁은 길에 일렬로서서 걸어가는 병사의 행렬. 그 마지막에는 시몬이 있다.

그렇다고해도, 원라부터 대단한 인원수가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전원이 성벽까지 나오는데는 나올 삼십 초도 걸리지 않는다. - 그럴 것이었다.

"- 앗!?"

갑자기 탑에 가해진 강렬한 진동에 시몬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다음 순간, 기세 그대로 철문이 닫히고 탑과 통로가 차단되었다.

"시몬! 젠장, 뭐야 지금 - 으읏!?"

또 다시 덮처오는 지진과 같은 흔들림.

윌 하르트는 간신히 발을 디디며 성벽에 기대어 바로 아래에있는 진원을 확인했다.

"도루토스 ...... 저놈이 ......"

거기엔 휘몰아치는 도루토스의 거체가 열심히 탑에 부딫히는 모습이있었다.

성문이든 뭐든 그저 벽의 일부분에 지나지않는데도 거기에 부모의 원수라도있는 것처럼 돌진하기를 반복했다.

윌 하르트는 다섯 발 전탄이 장전된 라이플을 겨누고 바로 밑에서 저돌 맹진을 이어나가는 몬스터를 쐈다

그 반격을 취한 것은 텁에 혼자 남아있언 시몬도 같은지 작은 창에서 삐져나온 야타가라스의 총구가 불을 뿜고있었다.

다섯 발의 라이플 탄과 한방의 저격용 대구경 라이플 탄, 총 여섯 발의 총알이 도루토스의 코끼리를 닮은 머리에 쇄도하고 돌진이라는 명령만을 반복해서 내리는 작은 뇌를 파괴했다.

"훗, 잡은 건가 ......"

윌 하르트는 난생 처음 대형 몬스터를 타도한 성과에 만족스러워하는 대사를 흘리면서 다시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한 번 닫힌 철문에 손을 댔다.

"끄으윽!"

하지만 열리지 않는다.

잠긴것도 아닌데 밀어도 당겨도 꿈쩍도 하지않는다.

원인은 쉽게 예상 할 수 있었다. 아까의 진동에 의해 문틀과 문 자체가 구부러진것이다.

"아, 잠깐 거짓말이지 ......"

문 한장을 사이에두고, 떨리는 시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되, 진정해! 사람을 불러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시몬! 에디, 에디이이!"

여기서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윌 하르트와 에디 두 사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 문에 전력 투구를 했다.

"윽 ...... 젠장 ......"

몇번이나 반복했지만 강철의 문은 그 본래의 역할을 아는 것처럼 길을 열지않았다.

"젠장! 젠자앙!"

이런 곳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초조감이 뇌를 지배한다.

"아직도 열지못한거야!? 빨리하지 않으면 여기도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버릴거야!"

비명과 같은 시에나의 목소리.

그녀는 먼저 나온 궁수와 마법사와 함께 지금도 성벽위에서 몬스터를 격퇴하고있다.

윌 하르트는 조금도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없이 이해하고 있었다.

동시에 여기에있는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이 구부러진 철문을 다시 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라는 것도.

"윌 ......"

"아냐, 괜찮아! 이런 문 정도는 금방 열 수 있어!"

"괜찮아"

"뭐?"

"이제 됐어. 날두고 -"

"바보같은 말하지마아아!"

문 너머로 들려오는 모든 것을 포기한 것같은 느약한 목소리를 윌 하르트의 외침이 긁어지웠다.

"바보 같은 말, 하지마.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 내가, 영광스러운 스파다의 둘째 왕자가! 친구를 버리고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꽉쥔 주먹이 철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않는다.

"고마워. 하지만 나 한명을 위해 여기에있는 모두를 희생할 수는 없잖아"

"큭 ......"

옆에는 지금도 열심히 문을 열려고 힘을 담는 에디의 모습이 있다.

돌아보면 시에니와 부상당한채로 불안한 표정을 띄우고 임ㅅ는 학생이 여러 명있다.

"네로 왕자는 불가능하겠지만, 윌이라면 가능할거야 ...... 동료를 버릴 각오를 하는게."

"시몬!"

"친구니까, 윌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서 한 생각이야"

경배는 커녕 누구에게도 이해되지않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 속뜻을 이해해주는 사람이있다. 얼마안되는 친구 중 하나가.

그래서, 그래서 그 결의를 할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을 위해, 그 외의 여럿을 버릴 수는 없다.

참으로 단순한 논리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알기 쉽다.

"...... 미안"

"괜찮아"

"미안해, 시몬"

"괜찮아 좀 더 버이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스니까"

그럴리가 없다. 희망찬 것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윌 하르트는 문 너머에서 쓴웃음을 지을 친구의 얼굴을 명확하게 구상할 수 있었다.

"큭, 우우 ...... 미안 ...... 미안 ......"

"안녕, 윌 - 형한테 미안해, 라고 전해줘"

그리하여 닫힌 방어 탑에 영혼의 동지를 두고온 윌 하르트는 성벽을 향해돌아섰다.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를 쏴죽이고 살기위해 달렸다.

"하핫 ...... 끝이야 ...... 이제, 전부 다 ...... 끝이야 ......"

윌 하르트는 공허한 눈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라이플의 총구를 몬스터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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