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8 회 나태한 장군
"정말로 네로가 올까 ......"
지난 밤, 이스키아 고성에서 혼자 튀어나온 샬롯 트리스탄 스파다는 새벽이 되자 내리기 시작한 폭우 속에서 라스의 거체를 지붕 삼아 덤불에 숨어있었다.
임시지만 이렇게 혼자서 던전에 오는건 도대체 얼마만 일까.
자신의 역량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진 샬롯이지만 그 나잇대 소녀이기도 하기에 혼자 있으면 외로워지는 것이다.
빨리 동료가, 네로가 따라와주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소심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의 입에서 불평이 흘러나온다.
"이제 이걸로 안되면 사피라도 용서하지 않을꺼야"
구리도고아 강행 토벌 계획을 세운 것은 멤버 중에서도 특출나게 똑똑한 히드라의 영재인 사피르다.
그녀는 샬롯이 혼자 성에서 빠져나가면 절대로 동료를 내버려두지않는 네로는 망설임없이 도우러 나올 것이다, 라고했다.
샬롯은 어디까지나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호소하는 사피의 말을 뺨을 약간 붉히며 들었던 것이다.
그 나태한 네로가 자신을 위해서 -
"벼, 별로 기쁘건 아니야!"
뜬금없이 수줍어하며 얼굴을 가리고 옆에있는 라스의 붉은 팔을 퍽퍽 두드리는 샬롯.
라스가 어딘가 귀찮다는듯이 긴 귀를 흔들고있는 것은 과연 기분 탓 일까.
"그건 그렇고 그 구리도고아라는 녀석. 계속 뒹굴거리기만하고 전혀 의욕 없잖아 ......"
이미 샬롯은 작은 연못가에 누워 검은 거구의 구리도고아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작은 언덕 위에 잘 자란 녹색 덤불은 몸집이 작은 샬롯은 물론이고 거대한 라스의 거구까지 잘 숨겨주고있다.
연못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이 자리는 적을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여기 숨어있은지 약 한 시간 째. 샬롯은 구리도고아의 모습을 가만히보고있었다.
성과 마을의 동시 공격을 지휘하는 대장은 분명히 바쁠거라고 생각했지만 구리도고아는 가끔씩 뒤척일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않는다.
고작 누운 채로 코끝을 연못에 대고 벌컥 벌컥 물을 마시는 정도이다.
샬롯은 이렇게 게으름의 대명사같은 몬스터를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기가 막힌 생각까지도 떠올랐다.
"혹시, 나 혼자서라도 쓰러뜨릴 수 있지않을까 ......"
여기서 최대, 최강의 번개 마법을 한발 맞추면 그것만으로도 결착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샬롯도 자신과 네로를 비롯한 윙로드의 파티원들이 성에서 떨어지면 방위력이 현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구리도고아를 잡아야한다. 이렇게 기회가 있으면 네로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아도.
"...... 아니지 드물게 의욕을 나는 네로를 보고싶기도 하네"
그런 결론을 냈을 때 바라보고 있던 연못의 전망에 변화가 일어났다.
"저것은 사일런트 시프 무리네"
줄줄이 줄지어 나온 것은 검은 모피가 특징적인 사일런트 시프.
10, 20, 30 마리 쯤이 몰려너왔다. 더 세고있었다간 잠들었을 샬롯에겐 다행이었다.
그리하여 양들은 주인에게 불린 것처럼 똑바로 누워있는 구리도고아에게로 향했다.
"왜 사일런트 시프만 ......"
구리도고아의 행동도 이상하다. 그러나 더 위화감이 느껴지는 점은 이 자리에 다른 몬스터가 하나도없다는 것이다.
장군과 참모, 혹은 그 주변을 지키는 근위병 역으로 켄타우루스나 오크같은 적당한 몬스터를 배치해놨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리드고아는 이 사일런트 시프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혼자였다.
뭔가 직접 명령을 내리는 것인가 - 라고 생각한 그 때,
"먹었다고!?"
사일런트 시프가 먹혔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스스로 먹혔다 라고 해야할 것이다.
구리도고아는 여전히 누워서 움직이지않은채로 그 큰 입을 열고 있을 뿐이였다.
거기에 양고기가 뛰어들어 간 것이다.
칼 같이 날카롭고 큰 송곳니가 칠흑의 양모를 찢고 고기를 맛본다.
"혹시 기생충이 입으로 유도하고 있는걸까 ...... "
아무래도 양이 먹히러 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구리도고아의 입안으로 양이 한 마리, 양이 두 마리 - 차례로 뛰어들어가고있다.
병아리가 부모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것과는 다르다. 먹이 쪽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저 몬스터는 도대체 어디까지 게으른 것일까.
샬롯의 마음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혐오감이 솟아오른다.
식사를 마친 구리도고아가 피비린내 나는 트림을 내뱉는 장면을 보자 더욱더 오한이 치밀어 올랐다.
무심코 눈을 돌리려고 한 샬롯이었지만 그 시야가 옆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보라색 불꽃이 반짝였다.
자세히보니, 그 보라색 빛은 구리도고아의 입에서 쏟아져나오고, 아니, 솟아나고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입가에서 파직 파직 튈뿐인 빛이 아니라 길이 1 미터 정도되는 보라색 뱀이였다.
위장 속으로 사라져간 양만큼 보랏빛 뱀이 스르륵 송곳니 사이로 기어나왔다.
"저게 기생충인가보네"
양에게 기생하고있던 녀석이 그대로 밖으로 나온건지, 아니면 새롭게 만들어낸 녀석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신경이 쓰이는 점은 거기가 아니다.
사일런트 시프를 완식한 이상 이 자리에있는 몬스터는 다시 구리도고아 단 한마리뿐이된다.
저렇게 신체를 방출하여 이번에는 누구에게 기생시려고 -
"- 에엣!?"
그때 구리도고아의 보라색 눈동자와 자신의 금빛 눈동자가 교차했다.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부정하고 싶었지만 기어나온 서른 마리에 가까운 기생뱀은 곧바로 샬롯이 숨어있는 숲을 목표로 질질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야 끝자락으로 몇 가닥의 보라색 줄이 기어오는 모습은 마치 자동 추적 능력을 자랑하는 빛 공격 마법의 표적이 된 듯했다.
"큭 처음부터 발견당했던건가 ......"
여기까지오는 동안 몬스터에게 들키지 않도록 세심한주의를 기울여왔다.
자는 틈을 찔러 몬스터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도록 포위를 뚫고, 바람 마법을 이용하여 발소리와 냄새도 지웠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감안하면 어딘가에서 포착되어버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없는 사실이다.
"이게 다 네 커다란 덩치 때문이야!"
샬롯은 손에 든 짧은 지팡이로 라스의 팔을 때리며 화풀이를 하면서 더 이상 숨어있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과감히 일어섰다.
"네로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 어쩔 수 없네, 내가 혼자서 상대해줄께!"
샬롯은 새빨간 트윈 테일과 망토를 자랑스럽게 휘날리며 덤불에서 기운차게 튀어나왔다.
그리드고아는 전의가 넘치는 랭크 5 모험가를 보고도 연못가에서 가만히 누워있다.
그 모습에 조금 화가 난 스파다 공주.
"흥,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롭게 있을 수 있나 보자구 -"
공격할 방법은 즉시 떠올랐다.
바로 조금전에 생각해냈고 폐기한지 얼마안된 방안, 즉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위력이 가장 강력한 번개 마법을 발사하여 일격에 끝장을 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샬롯은 애용하는 [크림슨 볼트]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랭크 5 모험가에 어울리는 마법의 힘을 주는 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 - 우렁찬 붉은 천둥 [붉은 번개의 라인 하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