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7 화 독단의 대가
새벽과 함께 이스키아 고성으로 밀려오는 몬스터의 대군단을 앞둔 신학생 삼백명. 그들을 이끄는 총대장 윌 하르트 트리스탄 · 스파다 셋째 왕자의 호령이 울렸다.
"총원, 전투 준비!"
연일 간헐적인 습격에 의해 수면 부족인 윌 하르트. 그 눈은 약간 충혈되어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최대의 위기를 앞두고 피로 따위는 느껴지지않는다는듯이 한껏 소리지르고 있었다.
윙로드처럼 강한 힘이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사기를 유지하고 스스로 진두 지휘하여 필사적으로 버티는거라는걸 알고있었다.
"이 공격을 버티면 반드시 스파다의 기사단이! 우리 아버지, 위대한 레온 국왕이 도우러 올것이다!"
신학생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도 무기를 손에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궁수와 마법사는 물론이고 검사와 전사의 까지도 성벽 위에서 적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있다.
"초조해하지 말아라! 적과의 거리는 아직 멀다! 침착하게 요격하라!"
끝없이 펼쳐진채 언덕 기슭 너머에서 천천히 성을 향해오는 몬스터들. 마치 케이크에 달려드는 개미처럼 사방에 흩어져있다.
감질나게 발이 느린 몬스터에 맞추는건지 아니면 느린건지, 어느 쪽이든 다양한 종족이 대열을 흐트러지않고 한꺼번에 공격해올것이다.
"이번에는 공중 전력도 투입하는건가 ...... 드디어 진심이됐다는건가?"
두꺼운 비구름에 덮인 회색 하늘에 페가수스와 하피 등의 비행 몬스터의 모습이 점점이 비친다.
저 유달리 커보이는 그림자는 샐러맨더일까.
"고비다 ......"
구리도고아가 비행 몬스터를 이용하여 부하에게 명령 전파를 보내고있는 것을 생각하면 공중 전력을 추가했다 라기보다 대장이 직접 지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며칠동안의 산발적인 습격은 자신을 포함한 신학생들에게 확실한 피로를 강요했지만, 적의 피해에 상응할 정도의 효과는 없었다.
구리도고아는 성 주변의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몬스터를 배치했을뿐이고 나머지에게는 지시를 일절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성에 접근하고 어이없이 사살당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대장의 지휘하에 들어간 몬스터 군대의 조직적 움직임을 보자 그 예측은 올바른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일어날 총공격의 위험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회색의 두뇌엔 최악의 상황인 '전멸' 이라는 두 글자만이 남는다.
"아니, 괜찮다. 아버지를, 크로노를 믿자. 그리고 여기에는 윙로드도"
이렇게 스스로 다짐하여 필사적으로 생각을 짜낼 수 있었다.
윙로드는 전력의 핵심을 담당하는 중요한 존재로 그 배치는 백명의 병사와 동등한 가치가있다. 적당한 지시는 내릴 수 없다.
"우선 전위인 네로와 카이. 이 두 사람은 정문쪽이다"
가장 공격이 집중됯 정면의 성문은 그들에게 지켜달라고한다.
그 전투 능력은 물론이고 단순히 그 두 사람이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사기가 오른다.
"사피르는 뒤쪽과 주변 일대 커버담당이다"
그녀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부릴 수 있는 사역마의 수이다.
사방에서 쳐들어오면 갑자기 방어선을 깨져도 눈치채기 힘들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면 네로와 카이 등의 최대 전력을 움직이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녀의 의사 언데드 병에게 맡기면 전선을 확실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동생 샤르여, 그대에게는 대공 공격을 맡기겠다"
왜인지 동생에게만은 잘난듯한 어조의 혼잣말이되지만 그 역할은 적절하다.
아군을 말려들게할 위험이있는 광범위한 번개 공격 마법이 그녀의 특기이지만 상대가 공중에 떠있으면 아군이 말려들 걱정은 하지않아도된다.
무엇보다 하늘에서 다가오는 적들에겐 산발적인 화살이나 마법의 효과가 적다.
화살이라면 일제 발사로, 마법이라면 범위 공격 마법으로, 혹은 다른 요격 수단을 강구하여야 공중의 적들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좋아, 완벽한 배치다!"
생각이 정리된 윌 하르트는 오가는 학생들의 파도 사이에서 네로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이, 네ㄹ -"
"어이, 윌! 혹시 샤르 봤어?!"
선수를 친 네로의 대사를 들은 윌 하르트. 그 순간 싫은 예감이 전신을 앞질러간다 -
몬스터의 대군이 다가오는 가운데 성문 앞에 학생들이 술렁이면서 모여있다.
"뭐, 뭐, 뭐가 어떻게 된거야 ......"
그 중앙에있는 것은 안면이 창백해진체 식은 땀을 폭포처럼 흘려보내는 윌 하르트와
"아무래도 진짜로 가버린 것 같네."
드물게 초조한 표정을 띄우는 네로, 두 사람이 있다.
"샤르가 ...... 구리도고아를 잡으려고 성에서 나간건가 ......"
처음에는 뭔가의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니, 샬롯의 모습을 성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미안해, 내가 구리도고아를 발견했다고 샤르에게 말해줬어. 설마, 무모하게 혼자 뛰쳐나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사피르 · 마야 · 히드라.
완고하게 구리도고아 토벌 방안을 주장했던 샬롯이 그리드고아의 위치를 알고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녀는 이스키아 고성에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바보라도 그녀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멍청한 바보는 그런 행동을 한 본인이지만.
"지금 당장 데려올께"
네로는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샬롯에 어느정도 책임이 있는 사피르에게 한마디도 불평을 하지않고 진홍의 망토를 펄럭이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 진지한 표정은 파티원을, 동료를, 소꿉 친구를 반드시 구출해오겠다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박력에 자연스럽게 주위의 인산인해가 갈라져 네로가 지나갈 길을 열었지만 -
"기다려! 샬롯을 쫓아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어!"
두 팔을 벌린 윌 하르트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비켜, 윌"
네로가 살의가 배어나오는 것 같은 차가운 음성으로 단언했다.
윌 하르트는 그 박력에 순간 움츠렸지만 소리쳐 대꾸했다.
"네로, 여기서 너까지 성에서 빠져나가면 어떻게 될지 알고있잖아! 봐라! 적들이 눈앞까지 다가왔다고!"
"그게 어쨋다는거야"
" 우리를, 이 삼백명의 학생들을 버리려는건가!"
"그럼 네놈은, 샬롯을 버리라고 말하는 거냐"
그 물음에 윌 하르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숨이 막혔다.
몇 초의 침묵을 거쳐 드디어 대답이 나왔다.
"...... 샬롯을 포기해"
"네놈! 그러고도 오빠냐!"
네로가 분노하며 포효하는 동시에 오른손을 꽉쥐고 윌 하르트의 뺨을 후려렸다.
그억, 윌 하르트는 한심스럽게 신음하며 순간적으로 공중에 뜨고 보기흉하게 바닥에 처박혔다.
"윌!"
조용히 추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학생들 중에 단 한 명, 넘어진 윌 하르트에 달려드는 사람이 있었다.
"크 ...... 쿨럭 ...... 시몬..."
하지만 쓰러진 채로 오른손을 들어 친구를 제지했다.
"저자식 - "
"괜찮아 ...... 총을 내려 ......"
시몬의 손에는 소총이 쥐어져있다.
잘못하면 분노에 몸을 맡기고 그 총구를 네로에게 향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피하고싶다. 보기 흉한 역할을 맡는 것은, "망상 왕자"라는 한심한 이명을 가진 자신이 맡으면 된다.
그렇지만 작은 친구의 우정에 윌 하르트의 몸엔 일어설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랭크 5 모험가의 한방은 더할나위없이 강력했지만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윌, 두 번 말하지않겠어"
"샤르는 내 소중한 동생이다 ......하지만 샤르는, 샬롯 트리스탄 스파다는 왕족이다. 자신의 제멋대로인 행동이, 독단의 대가가 여기에있는 삼백의 생명이다!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어!"
"......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인가?"
네로의 붉은 눈동자에는 때릴 때의 타오르는 분노가 아닌 차가움이 깃들어있었다.
네로는 그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그냥 지나칠 - 듯했지만, 윌 하르트를 지나칠 때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샤를 돕고 이놈들도 도울 수 있으면 그렇게하지 -"
윌 하르트는 그 말에 천천히 되돌아봤다.
" - 구리도고아를 잡으면 해결된다. 그렇지?"
"...... 아아"
윌 하르트는 고개를 숙인채로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잠시동안, 우리들을 빼고 버텨줘"
네로는 지금 당장 열리려는 성문을 향한 채로 말했다.
그 시선 끝에는, 대검을 짊어진 카이 에스트 · 갈블레이즈가 자신의 기마인 2뿔 짐승 바이콘에 탄채로 하얀 유니콘의 고삐를 당기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옆에는 어느새 가짜 슬레이프니르에 탄채로 출발 준비를 갖춘 사피르도 있었다.
"그럼, 다녀올게"
이리하여 성문이 열렸다.
네로가 유니콘에 탄채로 수많은 몬스터 군단이 늘어선 저편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사기 직전,
"네로! 여동생을 샬롯을 도와줘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윌 하르트가 엎드린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더러워진 조약돌 바닥에 이마를 문지르는, 왕족이 보여서는 안될 것 같은 모습으로 그저 가족의 안전을 바랄 뿐이었다.
"아아, 나에게 맡겨둬"
다시 한번 이렇게 단언한 네로는 두 명의 동료를 데리고 힘차게 성문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성에 남아있던 학생들로부터 일제히 환성이 끓어오른다.
샬롯 공주를 구출하고 구리도고아를 토벌한다. 영웅 파티 [윙로드]라면 그 기적을 이룰 수 있다 - 학생들은 주저없이 동료들을 도우러가는 네로의 모습을보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희망을 믿은 것이다.
"이럴 수 밖에 없었어 ......"
윌 하르트는 피곤함이 날아간듯한, 눈앞에 적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듯한 학생들의 함성을 듣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이마를 바닥에 댄 채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고 - 원통한 눈물을 흘리며.
"이럴 수 밖에, 없었어 ......"
네로를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은 확정 사항이다.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아니, 계산에 넣어놨었다, 라고해야할 것이다.
윌이 생각해야했던 문제는 윙로드가 빠진 탓에 남겨진 학생들이 동요하여 사기가 폭락이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적이 쳐들어오면 가뜩이나 피곤한 학생 군단은 저항도 못하고 성은 전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었다.
적어도 사기만은 어떻게든 지켜야했다.
이렇게, 자신이 아무리 질나쁘고 비참하고 꼴사나운 광대를 하게되었다고해도.
동료의 위기에 과감히 맞서는 영웅을 살려주는 한심 역할.
하지만 자신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 밖에 할 수 없었다.
윙로드의 출발을 최대한 멋지게 연출해야 학생들이 희망을 가진다.
시몬이 난입하여 멈춘 것도 네로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인상을 갖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전략은 성공했다.
사기는 떨어지긴 커녕 오히려 상승 일로를 걷고있다.
그 네로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진정한 희망을 안겨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이러면 모두 해결되는 거이었다.
"이제 ...... 이제 ...... 큭, 우우 우우 ......"
그렇지만 윌 하르트의 금빛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보기 흉하고 해학적이다. 이렇게까지 추태를 보이는 스파다 왕족이 존재했던 것일까.
윌 하르트는 이날 왕족이라는 유일한 자존심마저 스스로의 손으로 저버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