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화 네 전황
"살았어 스우 씨."
"피차 일반이야, 그렇게 주의를 끌어주지 않았으면 나도 노릴 수 없었어."
그 말만 남기고 다시 스우 씨는 전장의 배경에 녹아들 듯이 그 모습을 감추었다.
굉장하네, 조금이라도 시야에서 벗어나면 모습도 못쫒겠어.
무서운 것은 가호의 힘인가, 아니면 그녀의 실력인가.
"그렇지만 좋지 않네, 이대로라면 아슬 아슬하게 전멸할 것 같아."
아마도 부대의 대장이라고 생각되는 중기사를 죽였지만, 이 난전 속에서는 그다지 사기 저하 같은 효과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뒤섞여 싸우면 저쪽도 물러날려고 해도 못할 테고.
"아파라..이렇게 상처 투성이가 된 적이 언제였지......"
일단 지금은 전황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치료에 전념한다.
전사도 아닌데 무리한 접근전을 반복하며 중기사 부대와 싸워 왔지만, 그만큼 적의 칼날에 베여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가볍게 칼날이 닿는 정도라면 이 <악마의 포옹>이 막아 주지만, 아무리 그래드 무투기의 일격을 맞으면 다소 데미지를 줄여주는 효과 밖에 발휘되지 않는다.
부상을 입으면 내가 가진 유일한 치유 마법(?)인 《육체 보전》으로 즉시 상처를 젤리 형태의 흑색 마력으로 막아 출혈을 최소화하면서 조심조심 싸우고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한 것이고, 그걸로 어떻게든 싸울 방법도 있으니 거침없이 돌진한 것이다.
그 방법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릴리 특제 <요정의 영약>이다.
이걸로 큰 상처도 즉시 회복 되기때문에 성립되는 돌격 전법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써보네, 어느 정도 일려나――"
꺼낸 것은 작은 주머니, 포션과 달리 <요정의 영약>은 가루이다.
살짝 봉을 풀고 주머니를 펼치니 안에는 반짝 반짝 빛을 발하는 백설탕 같은 가루가 들어가있다.
발해지는 빛은 릴리의 피부를 덮고있는 그 눈에 편안한 흰색 발광과 비슷하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유심히 관찰하고 있을 겨를은 없다, 빨리 분말을 손바닥에 두고 그대로 직접 상처에 바른다.
"우옷, 이거 굉장하네, 통증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그 효과는 바로 그 말대로, 상처에 닿는 순간부터 단번에 통증이 줄어들고, 라기보다는 사라진다.
육체 보전으로 뒤덮은 흑색 마력도, 그 치료 효과를 건너뛰고 흉터는 완전하게 재생했다.
또한 몸에 쌓인 피로감도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도 느껴진다.
"이건 확실히 만능약이네, 고마워 릴리."
[――천만에요, 크로노가 기뻐해줘서 나도 기뻐.]
갑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잘 못들었다는 것은 아니고, 목소리의 주인은 상공에서 천마 기사 부대와 싸우고 있을 터인 릴리의 것이다.
"일부러 통신하다니, 무슨 일이 생긴거야?"
전투 중에는 통신을 자제하라고 말해뒀다, 조금 싫은 예감을 느끼지만,
[조금 좋지 않은 일이 생겼어.]
아무래도 예감은 적중한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어?"
[천마 기사 부대는 분명히 내 가호의 시간 제한에 눈치채고 시간이 끝나는 걸 노리고 공격해오지 않아.
지금 상황에서, 이대로 내 가호가 끝날 때까지 계속 대치할 수 밖에 없어.]
"......그런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호의 효과 시간 안에는 확실하게 발을 묶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릴리와의 전투에 의해서 상대 소모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좋지 않다.
"가호는 얼마나 남았어?"
[<퀸 베릴>은 이제 10분도 못 버텨.
용가죽 두루마리(스크롤)는 앞으로 2개 밖에 안남았으니까, 그걸 써서 가호를 발동시키면, 남은 시간은 전부 40분 정도 겠네.]
"한 시간 안에, 멀쩡한 천마 기사 부대가 공격해온다는 건가."
[응.]
"알았어, 어쩔 수 없지, 그대로 시간 제한까지 발을 묶어줘."
[라져, 그런데 그쪽은 괜찮은거야?]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이쪽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알자스는 끝이야."
[그래......그럼 크로노,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줘.]
"약속하긴 어렵지만, 일단 알았다고 말해둘게."
그리고 릴리와의 통신이 끊긴다.
"정말로 좋지 않네......"
현재 알자스 방어선에는 크게 네 가지의 전황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우리들 돌격 부대와 중기사 부대의 전투.
두번째는 릴리와 천마 기사 부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공.
세번째는 마술사 부대와 길드에서 지원 사격을 하고있는 시몬들과의 포격전.
네번째는 방벽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못 씨의 기관총과 보병 돌격의 공방.
이 네 가지는 현재, 압도적인 전력 차이임에도 기적적인 대립을 유지하고있다.
이것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천마 기사를 막고있는 릴리, 하급에서 중급 정도의 마법이라면 꿈쩍도 하지 않는 견고함을 자랑하는 흑화된 길드, 보병을 일방적으로 배제시킬 수 있는 기관총, 그리고 모든 모험가가 사력을 다해 싸워주고 있음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 아주 조금만 틈을 들어내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릴 가능성은 어느 전황에라도 있다.
아니, 이 상태로 계속 전투를 하면 확실히 알자스는 함락된다.
"그걸 뒤집는 건 우리들 뿐인가."
우리들의 상대인 중기사 부대, 이를 완전히 부숴버릴 수만 있다면 승기가 생긴다.
이대로 마술사 부대에 돌진하는 것도 좋고, 방벽으로 돌아가 방어로 돌아서도 좋다, 특히 나는 지난번처럼 마탄의 십자 포화가 된다면, 단번에 보병의 돌격을 막아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오늘을 지키기에는, 어찌됐든 여기서 우리들이 중기사 부대를 쓰러뜨려야 한다.
그것이 안되면, 다시 이 압도적인 병력에게 삼켜진 채로 패배할 것이다.
"중기사는 상당히 쓰러뜨렸다고 생각하는데――"
시선을 강 건너편로 돌리니, 피투성이가 되어 베어넘겼던 갑옷과 같은 장비의 무리들이 뗏목을 타고 이쪽으로 건너오는 것이 보인다.
"앞으로 한 부대 더 있나......"
무심코 숨을 내뱉는다.
상당한 희생을 치루어 겨우 중기사 부대를 괴멸 직전까지 몰아 넣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당연하다는 듯이 새로운 부대를 투입시켰다.
가뜩이나 인원이 줄어들고, 나를 포함한 돌격 부대의 멤버는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드디어 전멸이라는 두 글자가 현실이 되어 나늘 압박해온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응?"
각오를 다지고 중기사 부대에게 덤벼들려고 하는 참에, 나의 품 속에 숨겨둔 텔레파시 통신용 수정 조각이 전언이 온 것을 빛과 진동으로 나에게 알렸다.
이 상황에서 통신해올 줄이야, 아마도 예상외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 틀림 없다고 즉시 깨닫는다.
릴리에 이어서, 또 다시 불측의 사태가 발생한 것인가 하고 내심 불안해하면서도 빠르게 통신에 응한다.
"무슨 일이야?"
"크로노 씨, 큰일입니다――"
수정 조각을 통해 전해진 내용은,
"뭐......라고......"
나에게 패배를 내미는 절망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