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108편 (108/109)



〈 108화 〉108편

삼 주차로 접어들 무렵.




지속적 보행에도 숨이 차지 않는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고려하던 그 시점, 식단이 바뀌었다.

쌀, 연한 두부, 부드럽게 데친 채소. 담백한 구성. 육류는 없을뿐더러 소금간마저 미미한 식사였지만

"맛있다"


한 입 물고 터진 일성은 감탄사였다.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나, 물리도록 죽을 먹어대다보니 변화가 반갑다.

"맛있다!"

먹어치우며 외친다. 쿄쥬로의  모습에 음식을 나르는 손길이 분주하다. 칸자키 아오이와

"이것도 드세요."


"음"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나카하라 스미는 능숙하게 돕는다.


염주의 회복이 차츰 가속하며 식사량이 증가할 조짐이 보이자, 충주는 인원 보충에 나섰다. 그렇게 오게 된 스미. 소문과 다른 쿄쥬로의 상태에 그 땡그란 눈으로 놀람을 가득 표하며 넘어지는 사건도 있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그릇이고 죽을 퍼먹는 식습관도, 그렇기에 예상가능할 현 상황도.

실로 오랜만일 식사, 그것도 고형에 양질인 영양 보충을 마친 그는 잠시 자리에 앉았다.

손을 쥐었다 편다. 더는 손떨림이 없다. 근력을 논할 단계는 아니나 최소한의 일선은 넘었다 봐야할지.

일어서 수련장 벽면에 가로 걸어둔 일륜도를 향한다. 두 손으로 받쳐든다.


한때는 익숙했을 무게가 낯설다. 들고 휘두르는 형상이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아직은 아니다.


되돌려둔 도신을 바라보다 몸을 튼다. 체력. 기초 체력이 절실하다.






다시  주.


"후우우"


그만 누워버린다. 일백 회. 윗몸일으키기 목표 달성. 등허리에 닿은 바닥이 축축하다. 손얹은 이마도 마찬가지.

그간 본격적인 근력 양성에 돌입했었다.


걷기에서 뛰기로 전환하며 다른 운동 또한 추가한다.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앉았다 일어서기. 각 백 회를 목표로.


모든 운동 과정은 철저한 정자세를 원칙으로 한다.  자세란,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자극은 충분한 동세.


다음 날 수련에 지장이 없을 만한 수준으로 휴식은 취해준다. 이외의 시간은 모두 신체 단련이다.

하루, 이틀, 사흘. 미처 횟수는 채우지 못한  마감하는 날이 길어진다. 매일 얼마쯤 양이 늘고는 있었던 것이 위안이다.


그리고 오늘.


세 종류 신체 단련 각 백, 도합 삼백. 달리기 10km. 전부 달성한 뒤에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웃음이 번진다.


근육통을 참으며 일륜도를 잡는다.

스릉

감각. 늘 곁에 두었던 그 무게감.


상현의 3, 아카자.  자와의 일전으로 박살나버린 도신. 다시는 볼  없을 것만 같았던 그것이, 여기 있다.

칼날은 적색. 새겨진 악귀멸살(惡鬼滅殺). 치러진 전투의 상흔이 역력한 코등이. 새로이 벼려졌으나, 다르면서도 같은 검이다. 이어졌다.

감사한다. 대장장이, 대원들.

도는 상당히 길다. 지면에서 어깨를 살짝 넘을 정도.  길이는 땅을 단단히 디딘 채 크게 베어내는 호흡의 특성과 맞아떨어진다.


점진적 향상. 기초 체력의 복원에 이은 호흡, 검술 훈련까지. 잃었던 조각을 채워간다.













독특한 향.


크르륵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 굵은 팔. 기형적으로 짧은 다리. 비대한 상체. 침을 질질 흘리며 놈은 다가온다.


십 보.

팔을 있는 힘껏 우그러뜨리더니

투웅


반동으로 튀어오른다.  팔은 위로. 짓눌러 뭉갤 듯이 덮쳐든다.




우로 일 보, 앞으로 다섯 걸음.

파고든 지점. 위로 혈귀의 목이 지나는 순간


불꽃의 호흡, 제 2형
상승 염천

하에서 상으로, 크게 그어진 원형 검기는 붉게 빛난다.


혈귀의 몸뚱이와 머리통이 떨어지고 사라진다. 재가 되기도 전에.

"성공하셨군요."

"고맙다."

감사를 표하는 쿄쥬로의 앞에  그녀도 혈귀. 타마요.


실전을 치를 여건이 되지 않아 고심하던 차에 그녀가 먼저 연락해왔다. 간간이 시노부를 통해 용태를 전해듣던 타마요는, 실전에 가까워진 그를 자신의 혈귀술로 돕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이걸 쓰시죠, 타마요님."


"고마워요."

유시로가 건넨 깨끗한 수건으로 드러낸 팔을 닦아낸다. 그녀의 하얀 피부에서 점점이 핏자국이 묻어났다.

혹혈. 자신의 피냄새로 상대로 현혹시켜 특수한 효과를 발휘하는 혈귀술의 소유자가 타마요였다. 시각에 간섭해 환영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혈귀를 이곳에 구현해낸 것이다. 다만 팔뚝을 찢어 피를 냈기에 불만을 품은 이도 있으니

"감히 타마요님을 상처입게 하다니..."

이를 드러내며 으릉 분을 드러내는 유시로가 그랬다.


"제가 결정한 일입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그의 화는 이제 온데간데 없다. 냉랭한 타마요의 표정도, 그에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니까!

'잘 적어둬야겠군.'

타마요의 미적 요소를 논하는 일기장에 기록을 내심 다짐하며 그는 떠나간다.








타마요와 유시로가 자리를 비우고.



돌이켜본다.

매일 수행하는 체력 단련. 소요 시간이 단축되며 자연 비는 구간이 생겼다.


쿄쥬로는 그 시간을 적응에 쏟았다. 호흡, 검술. 그러자 불거진 문제, 균형 감각.


좌안 소실로 원근감에 위화가 발생했다.

이는 몸을 움직이며 나아지는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검을 잡기 전까지는.


초 단위 공방에서 일순 판단 착오는 목숨을 앗아간다. 무기가 될 일륜도를 휘두름에 있어 공간 지각은 당연 중요하다. 이파리  장 간격으로 베냐  베냐가 결단날 터. 미세한 움직임에서 시각적 괴리가 두드러졌다.


- 평균대는 어떤가요?


나긋한 음성으로 추천해준 시노부. 그 물건은 가늘고 긴 막대, 겨우 발 하나 디딜 폭인 목재를 일정 높이에 고정시킨 도구였다.


상단을 오고 가는 것으로 균형감을 살린다. 체력 단련을 겸하려 추가 조치도 가해졌다. 어깨 위를 가로지르는 지지대 양쪽에 커다란 물동이가 달린 장치를 이고서.

넘어지고 떨어지고. 타박상은 일상에, 도장 구석의 수도로 일일이 물을 받아야만 했다.  반복해서. 될 때까지.

결국 적응했다.

뒤틀린 시야로 틀림없는 현실을 본다.
















어느 날.

까마귀는 날아든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꺾쇠 까마귀와의 재회. 그러나 전달 내용은 급박하고, 충격적이었다. 담당 까마귀인 카나메와의 감회따위는 아득하게 잊을 만큼.

"적스읍! 공격당했다아!!"


우부야시키 저택이 위험하다.


정확한 상황은 모른다. 다만 움직여야 한다.


제복, 일륜도.


가지런히 걸린 하오리.

'나는 준비되었는가.'

일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칼날은 날이 섰다. 체력은 충만. 부상에도 적응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 노력했다 여겨도 때가 오면 미진함만 눈에 띈다.




벽에서 뜯어내듯 걷어올린다. 단숨에 두르고 옷깃을 여민다. 하오리 끝단을 수놓은 불길이 일렁인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만 언제라도 소임을 다할 뿐.


터벅

한두 걸음.

지면을 박찬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소란스럽다.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 근접한 나무들보다도 키가 껑충한 기둥 위로 몸을 날린다.


중간 어디쯤 가지를 두 손으로 당겨 솟구친다.





상단에 오르자 사방의 시야가  트인다.

어둠이 덮은 대지. 숲, 그 너머 저편으로 타는 듯한 불빛. 한 점 빛이 불길하다.


발길을 재촉한다.

귓가를 할퀴는 바람.

악!


비명. 가까워진다.

이질적인 풍경이다.


풀, 나무, 돌 등 자연지물이 가득할 수림에 출입문이라니. 그것도 건물에 내달린 것이 아닌, 지면 바닥에 돌연 나타난 미닫이문.

활짝 열린 문틀에 아슬하게 걸쳐진 손가락.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빨려들어간다.


내민 손이 채 닿기 전에, 누군지 모를 소리가 저 아래로 멀어진다.

늦었다.


혈귀술.

얼핏 보이는 문짝  공간은 광활하다. 건축물이 내부를 부유한다. 인적도 없을 삼림에 느닷없이 나타난 인공물. 부자연스럽다.

충주의 연구실이 있던 저택. 기존 병동과는 또 떨어져 외진 곳에 자리잡은 위치가 문제였을까. 자신이  더 신속하지 못했던 탓인가.

이제와서 소용은 없다. 늦은 것만이 직시할 현실이니. 습격이 있었고 목전에  흔적이 남았다. 그마저 곧 사라질지 모른다.

구원을 바라던 손길이 떨어져내린 문틈을 돌파한다.

드르륵


타악



후방에서 문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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