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107편
이틀째.
"으으음"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샌다. 집어든 바늘이 미세하게 떨린다. 한 방울 땀이 흐르는지도 모를 만큼의 집중력. 되려 지켜보는 사람이 위태로운 심정이 될 지경이다.
줄로 묶어둔 환자의 팔뚝. 주먹을 쥐고 폄에 따라 불거지는 혈관. 비어있는 손가락이 핏줄 위를 타고 더듬어가다, 위치를 잡는다. 조심스럽게, 깃털이 내려앉듯이... 주삿바늘은 무사히 안착한다.
"다음은 재차 소독, 봉합."
"네!"
뒤편에서 어깨를 두드리는 음성에 움찔 떨며 다시금 집중. 마무리까지. 아오이는 방금, 처음으로 링거액 투입을 위한 삽입 실습을 해낸 것이다.
긴장이 풀리자 주저앉을 뻔한 아오이. 그녀의 머리를 작지만 따스한 손길이 스친다.
"잘 해줬어요."
시노부의 칭찬. 우물거리던 아오이의 입술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핫"
어쩔 수 없이 웃음지어버리는 입가를 황급히 가리며 물러선다.
흐뭇하게 지켜보는 시노부의 시선은 액이 흐르는 관, 더 위에 걸린 주머니를 향한다.
'약재를 첨가한다면...'
생명 유지를 넘어 회복 과정에 있는 염주. 세를 북돋을 수단에 대해 타마요와 이야기를 나누자. 다짐하며 시노부는 병동을 나선다. 환자에게 당부하는 말은 잊지 않고.
일주일.
그릇에 숟가락이 딸려왔다. 큰 변화다. 이제는 제법 죽다운 모양새를 띤 그 음식물은 점성 또한 상당하다. 이전보다.
"맛없다."
여전히 밍숭맹숭한 맛만큼은 그대로지만.
"안 돼요."
자신을 바라보는 쿄쥬로의 눈. 매몰차게 거절한다. 제대로 된 식사는 아직이라고.
딸각
내려놓은 숟가락에 애꿎은 사기그릇만 울린다. 염주의 고개가 조금 기울어진다. 힘없이.
며칠 뒤.
야밤을 틈타 은밀한 이동이 이어진다.
그들은 은(隠).
상당한 규모의 저택.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 그들은 마주보고 끄덕, 신호를 주고 받는다. 이어 진입한다.
충주의 관할 하에 있는 연구실을 지난다. 목적지는 내부.
미야앙
느닷없이 나타난 고양이에
- 귀여워!
- 윤기나는 털 좀 봐...
- 이것들아, 한눈팔 새 없다고!
한바탕 소란이 일었으나, 진정하고 통과.
"누구인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
소스라치게 놀라 신음성을 토할 뻔한 대원의 입을 틀어막고 머리통을 내리눌러 인사시키는 다른 이.
- 죄송합니다.. 저희가 지금 이러저러해서...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눈빛이 한 차례 깜박이더니 이내 보이지 않는다.
소리없이 한숨을 주고 받은 이들은 뒤로, 너머로 나아간다.
저택 한편, 외부에서는 창문도, 출입구도 없는 창고. 일단의 부대원들은 조용히 작업에 착수한다.
칠흑같은 야음. 은은한 달빛. 기자재를 들고 나르는 무리.
한동안 계속된 공사는 염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디디기 시작할 무렵, 끝이 났다.
기우뚱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조심하시길. 균형이 안 맞는 건 당연...하니까요."
말을 흐린 충주는 그의 눈을 본다. 더는 빛을 볼 수 없을 왼눈.
다시 자세를 잡고 힘을 주어 내딛는 걸음. 몇 보 안 가 멈춰선다.
"무리하시면 안"
"괜찮다. 이 정도는."
식은 땀을 내비치면서도 굳이 걸음을 고집하는 모습에 입술을 깨문다. 자신은 그저 최선을 다해 보조한다. 그는 더 이상 멈춰 서있지 않을 테니.
먼지를 덮어쓴 기물들만 가득했던 창고. 이제는 깔끔한 도장으로 탈바꿈한 공간. 창 하나 없음에도 어디선가 소슬한 아침 공기가 새어들어온다.
끊임없이 이어진다.
비틀대고 때로는 벽을 짚으면서도 걷는다. 천천히, 느릿하게. 휴식 후에는 이전보다 꼭 한 걸음은 더한 뒤에야 내려앉는다.
걷고 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