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4화 〉104편 (104/109)



〈 104화 〉104편

"진정하고, 일단 누워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쿄쥬로는 풀썩 누워버린다. 수긍해서가 아닌, 탈력감 때문에. 부상 이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움직임이었음에도 상체는 기진맥진. 고꾸라지듯 침대보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식은땀, 가쁜 숨.


충주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치명상이었어요. 현장에 있던 인원들의 보고에 따르면요.  소견으론 도저히 살아날 길이 없을..."


염주는 호흡을 길게 이어가며 돌이킨다.


상현의 3, 아카자. 이어진 전투. 격통. 출혈. 대화. 어두운 시야.

온기.


어렴풋이 와닿았던 뜨거움. 지금은 희미해진, 그 순간만큼은 분명했던 감각.

"모종의 조치로, 그게 원인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시 있었던 변수들을 하나씩 배제해나가다보면 결국... 유일한 특이점이니까요.

옮겨지고,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까지. 외견상으로는 정상에 가까워졌죠. 거의."


그녀의 시선이 소실된 왼눈 위에 머무른다.


"이제 아시겠지만 겉모습만이에요. 척 봐도 체력을 비롯해 여럿 문제가 있어보이죠? 관련된 검사를 저희가 진행할 거구요."

심호흡으로 안정을 찾은 쿄쥬로.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문을 튼다.


"그 전에 의문이 있다."

"뭐죠?"

"귀살대는 망했나?"


그대로 얼어버린 시노부. 몇 초가 지나서야


"...뭐라고요?"

답한다. 당황. 무슨 의도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혈귀떼가 들이쳐 전부 죽어버리기라도 했나?"

"아뇨."


"혈귀술에 코쵸, 네가 당해 조종당하기라도"


"절대 아닌데요."

슬슬 짜증이 치미는 걸  눌러담는다.


"제가 허술해보이나봐요? 그놈들한테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는데."


"모두 아니라면,"


그의 외눈이 시노부의 어깨너머를 직시한다.


"여기에 저들이 있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겠나."

타마요의 몸이 흠칫 떨린다. 기운 하나 없을 환자. 그뿐일 텐데. 올곧은 염주의 눈이 자신의 심장 언저리까지 파헤치는 느낌.


오래도록 전투와는 담을 쌓아온 그녀에게 있어, 실전에서 한없이 죽음과 가까웠던 자의 견디기 어려운 살기.


"감히.."

"유시로."


이를 갈며 성을 내기 직전의 유시로를 제지하는 타마요.


"그건 제가 설명"


"제게 기회를 주세요."

시노부의 말을 가로채듯 한 걸음 타마요가 나선다. 살짝 고개숙여 무례를 사과하면서. 얼떨결에 맞인사한 충주는 약간 옆으로 의자를 옮긴다.


"말씀하셨듯이 저는"

짧게 말을 멈추고 눈꺼풀을 닫는다. 조금 침을 삼키고


"혈귀입니다."


눈을 뜬다. 떨림을 가다듬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응시한다.

"이곳. 귀살대의 우부야시키 카가야, 그분의 제안으로 여기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싸우자고. 감사하게도.


전 도움이 되고자 왔어요. 결코 당신을, 이곳의 다른 분들께 누는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답니다."


손을 꼭 쥐며 차근히 언사를 이어간다.

"...어떻게 믿지?"


혈귀는 믿을 수 없다. 열이면 열, 욕구 충족에 충실할 따름일 추악한 존재들이다. 최근까지도 그러했다.   명. 카마도 탄지로의 여동생, 사람을 먹지 않는 카마도 네즈코를 제외하면.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타마요는 털어놓는다. 과거 인간이었던 시절. 불치병. 구원의 손길. 비극.

가족을 잃고 무잔에게 지배당하던 시기.

어느 검사의 등장. 해방.

지금.


격해지기도, 음울해지기도 하던 얘기는 어렵사리 끝났다.


"전.. 사람을 죽였습니다. 셀  없겠죠.  가족마저... 그래서 더 용서하지 못해요.  자신을. 그렇게 만든 키부츠지 무잔을!"

그녀의 옅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훗날 이 몸은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그놈, 그놈만큼은, 무잔.. 그 자식만은... 반드시..."

눈빛. 일렁이는 촛불. 젖어들어간 그녀의 눈가가 반짝인다.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

쿄쥬로가 단언한다. 그 말에 시노부의 눈이 이채를 띤다.

"이제 불만없으신 거죠?"


미미하게 끄덕인 염주는 위로 고개를 돌린다.


진심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마음은 쉬이 알지 못하는 법이니. 그럼에도 하나는 확실하다.

진실은 있다.

귀살대의 대원들은 혈귀와 충돌하며 각양각색의 정보를 모은다. 이들은 보고되어 취합, 분류를 거친다. 이후 활용된다.

탄지로가 초기 겪은 임무에서 혈귀가 보인 행태에는 특이한 점이 몇 있었다.


사람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 사냥하는 늪. 구체를 다루며 강력한 신체능력을 기반으로 원거리 공격에 특화한 색실공. 그들은 하나같이 무잔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심지어 색실공 혈귀는 그 이름을 말하자, 몸을 뚫고 나온 거완 다수에 으깨져 죽고 말았다.

키부츠지 무잔. 그자의 수하, 통제하에 있는 권속은 무잔을 거스르지 못한다. 행동, 언어, 감정,  어느 하나도. 이성이 있는 혈귀들은 그러하다.

반감을 여과없이 표출한 타마요. 적어도 그녀만큼은 무잔의 지배로부터 자유롭다. 하물며 본래 무잔 본인만이 가능할 인간의 혈귀화를, 별도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낸 결과물인 유시로라면.


유시로와 타마요는 흩어진 기재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재차 소독한다.


"시작할까요?"

명랑하게 운을 띄우며 시노부는 도구를 건네받는다. 다소 복잡한 기구들을 단 하나의 착오없이 다뤄내는 모습.

타마요 자신은  세월을 살아왔다.


무잔의 아래 있을 적, 그가 애타게 찾아 헤맨 '푸른 피안화'. 그놈의 피와 강하게 연결되었을 당시... 때때로 강한 감정의 흔들림과 동시에 기억의 편린이 흘러들어오곤 했다.

그것은 혈귀의 시작. 병석의 무잔이 의사를 만나 처방을 받고 섭취한 약물로 신체가 변형된 과거.


되새길 수록 불쾌하기 그지없을 놈의 기억 가운데 유달리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대목이다. 약이 사람을 혈귀로 만들었다. 원료는 피안화라는 꽃. 약에 그런 힘이 있다니.

자유를 되찾은  그녀는 의학에 본격적으로 몰입했다.

인간이 약으로 혈귀가 되었다면, 역으로 되돌릴 방법도 있지 않을까?


의문에서 시작한 학구열은 피와 살을 탐하는 혈귀의 본능을 제거하고 소량의 혈액만으로 연명가능한 신체개조로 이어졌다. 한 생명을 살리고 그가 동료가 되기도 했다. 계속해나간다면 도달할지 모른다.


그렇게 통상 인간들은 버티지 못할 오랜 시간을 보내고 쌓아왔다.

이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을 살아낸 시노부. 유아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시기를 제외하면 불과 몇 년.

타마요의 방대한 지식, 그 초입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때로는 제안하기도 한다. 그만한 경지. 그것만으로도 어마한 노력을 짐작케 한다. 분명 피를 토할 지경으로 시간을 씹어삼켰겠지. 목표를 위해. 혈귀를 죽인다. 그리고 무잔을.

그녀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시노부의 처치를 보조한다.








조용하다.

귀살대원 둘과 혈귀 둘이 퇴장한 뒤.


잠이 오지 않는다.


쿄쥬로는 말없이 허공에 시선을 던진다.


- 푹 쉬셔야 해요!


으름장을 놓으며 시노부는 일러주고 갔다.


체감했듯 당분간 격한 몸놀림은 불가하다. 경과를 지켜보겠다.

스으


공기를 들인다. 줄줄이 걸린 저것들. 수액이라 했던가. 그 덕인지 배고픔도 없다. 오히려 여태껏 식사 자체를 잊고 있었다. 실온은 적당하다.

요컨대 살아있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짤막하게 듣기로 열차 임무에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부상자는 다수. 상현과 맞붙었고 패했다.

- 렌고쿠 씨는 지지 않았어!!!!!

비통한 외침.


동틀 무렵.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 아래 내리 외치던 소년. 피흘리며 주저앉은 검사. 저멀리  속으로 도주하던 상현, 아카자.

카마도 소년은 질러댔다. 한 명도 빠짐없이 지켜냈다. 승객들, 네즈코, 대원 넷. 모두를 염주인 자신이 구해냈다며 변호했다.

결과는 그러한가. 수없이 잃어왔던 목숨들. 처절한 과거에 비하면 준수한 결말이라 위로해도 괜찮겠지.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겠다. 이 마음만 없었다면.


- 네!!

입을 모아 대답하던 남매.


최종선별 시험에서 혈귀를 만났다. 그 앞에서 다가온 죽음에 떨던 그들. 부러진 칼날. 목숨이 경각에 달한 그 시각. 몸은 움직였고 베었다.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하고 물어왔다. 당신처럼 강해지고 싶다, 모두를 구하고 싶다.

섣불리 답이 나오지 않아 쥐어짜냈다. 힘내자고.


 그랬을까. 그들의 낯을 스친 혈흔이, 부서진 칼을 쥐고 움츠리던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불안했다. 그래서 힘을 주어 끄집어낸 것일지도. 죽게 하기 싫다는 간절함에. 함께 힘내자던 이들이 당연히 옆에 있는 일상이 더는 지속되지 않으리란 초조함을 애써 무시하며 격려했다.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같은 대원으로서.

처음 맡은 임무에서 그 남매는 죽었다. 다른 동료대원들 또한.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내일을 희생한 그들. 서로에게 기대어 맞이한 최후. 그 앞에서 다시 절감했다. 보기 싫다. 죽게 하기 싫다. 다치게 하기 싫다. 불합리한 폭력에 생의 자유를 위협당하는 현실이 더없이 싫다.


열차에서는 최선을 다했던가. 그래서 모두의 목숨은 지킬 수가 있었다. 조금 더 강했다면. 어쩌면 달랐으리라. 어떤 이의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상하는 일도 없었겠다. 어쩌면 이 몸의 부상도 막았겠다. 그리하면 어디선가 인명이 스러지는 참상도 조금은 더 틀어막았을지도.  순간에도 혈귀는 돌아다니고 사냥한다. 인간을.

강해지고 싶다.

타마요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혈귀의 근원, 무잔을 베어버린 자. 호흡의 시작이자 최초로 검에 호흡을 덧입힌 귀살검.


염주. 당대에도 염주가 있었다. 불꽃의 호흡을 익히고자 독자적으로 학습한 서적들에는 이따금 역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호흡의 탄생, 그 시기는 귀살대 창설 후 대략 반절이 지난 시점이라고. 이전에도, 이후로도 렌고쿠란 이름은 전해져왔다. 그 사람과 귀살대가 연이 있었다면, 호흡을 전수하며 교류 또한 있었으리.

아오이란 소녀가 전달한 서적들. 동생인 센쥬로, 그 아이가 부탁했다는 물건이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부탁드린다고. 언제 깨어날지 기약조차 없었음에도. 탁자 위에 놓일 때 얼핏  기억이 있다. 거기, 염주의 서가 있었다.


"미안하다, 코쵸."

지금은 일어나야만 한다. 쉬어두라 일러두던 광경이 선하다. 알면 성화를 내겠지.

안간힘을 쓴다. 팔뚝으로 침대바닥을 밀어내며 어떻게든 상반신을 일으킨다.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팔을 죽 뻗어 목적한 서책을 고른다. 당겨온다.

낡은 질감. 가만히 쓸어본다. 이 안에 답이 있기를.


어디쯤일지 짐작이 안 간다. 대강 손가락을 찔러넣는다. 두툼하게 묶은 종이뭉치 어딘가. 펼친다.


- 실패다.


눈에 든 첫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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