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3화 〉103편 (103/109)



〈 103화 〉103편

"하"


한숨.



"혹 제가 잘못이라도..."

작은 목소리로 물어온다. 표정과 눈길에 걱정이 가득하다.  의미없는 한숨에 애꿎은 이가 죄인처럼 울상이 되어가는 모습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아뇨! 아니에요!"

손을 내저으며 비명처럼 부정한다. 더불어 입가에 힘을 주어 미소를 지어보인다.


의도가 통했는지 밝아지는 모습. 내심 맥이 풀린다.

잠시 정적. 공기 맛이 껄끄럽다. 참다못해  뱉는다.


"일은 어떻게... 돼가시는지."


"네, 네. 이것만 마무리되면 성분 은닉이 수월해질 테니... 아마 쉬이 알아차리진 못하겠죠."

짤막한 말의 교환이 끝나고 다시금 종이뭉치에 파묻혀가는 그 얼굴.

"..하..."

탁상 위에 엎어지며 미약한 한숨을 뱉는다.

더없이 일상적일 문답. 어디선가 동료 사이에서는 오갈 법한 그런 부류. 아무런 문제도 없을 터였다.


상대가 혈귀이고, 이곳이 그걸 때려잡는 귀살대이며, 자신이 대 소속의 지주라는 것만 빼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힘없이 내리깐 시야 저편에서 적대심 가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조금 전 이야기한 타마요, 그녀를 따르는 유시로. 그 자가 소리없이 눈으로, 낯으로 으르렁대며 노려봐온다. 불만가득한 눈빛으로 대응. 연구에 몰입한 타마요  뒤에서 벌어지는 신경전.



사실  대면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귀살대 수뇌, 우부야시키 카가야의 허가가 떨어지고 확충된 시설. 더해서 새로 합류할 협력자까지. 코쵸 시노부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당일 밤. 연구실의 설비를 둘러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찰나,


드륵

문이 열리고, 기척이 났다.


둘.

분명 협력해줄 이들이 올 것이라 들었는데 어째서, 왜, 시노부 자신의 앞에 들어서는 둘에게서 이질감이 드는지.


혹여 그들이 도와줄 거라던 인원인 것인가, 미미한 가능성 또한 염두하긴 했으나, 뿌리깊은 증오는 뿌리칠 수가 없다.


손이 떨린다.

찰칵


반사적으로 빼든 칼날을 내지른다. 쾌속의 일격은


"그만두세요!"


외마디에 정지한다. 뾰족한 칼끝은 이미 유카타 차림의 그녀에게 도달해있었다. 하얀 목에 한 점 핏방울이 불거지다  흐른다. 살짝, 아주 조금만 힘을  준다면 살해 가능하다. 그럼에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 시선은 온전히 옆의 일행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마요님!!"

"그만... 멈추세요, 유시로. 저희는 싸우러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상황에도, 그녀는 도리어 자신의 동행을 만류한다. 혈귀라면 응당 자신의 목숨이 최우선일 터인데. 동공과 기색이 흉흉한 혈귀의 형상이던 유시로란 자는 곧 가라앉혔다. 다만 적대감만은 여실히 드러낸 채.

이어 때마침 도착한 전갈. 타마요와 유시로가 바로 그 협력자라는 증명. 덕분에 하마터면 칼부림으로 번질 뻔한 첫대면은 그렇게 넘어갔더랬다.

귀살대 내부에 혈귀를 들이는 전대미문의 상황.  탓에 당사자일 시노부에게까지 자초지종 설명이 늦어질 만큼 비밀리에 추진된 일. 허나 그로 인해 마찰이 있었고, 잠시간 닿았던 칼날에서 스민 미량의 독으로 타마요가 이틀 앓아누웠으며, 혈귀의 병시중을 들어야했다. 천성인지 타마요 본인은 번번이 미안하다, 죄송하다며 사과했으나, 옆을 지키는 유시로의 눈총에 시달리는 그 시간은 정말이지 불편 그 자체.

이후로도 사건의 앙금은 남아서, 유시로는 만날 때마다 시노부를 적대시했다. 물론 타마요가 눈치채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어째서 이런 고행을 겪어야할까.


수장의 결정이 이해가  가는  또 아니었다. 타마요의 능력은 탁월했다.


협력자란 당초의 지시대로 그녀는 시노부의 일을 다방면으로 도왔다. 기존의 의료체계를 조금  효율적으로 움직이게끔 손봐주거나. 오래도록 풀리지 않던 의학적 의문을 풀어주거나. 혈귀를 죽이는 독성분의 개량 또한 도왔고. 상상했던, 혹은  이상의 약물 개발에도 성과를 내고. 약을 관장하는 신선이 존재한다면 그녀의 모습이지 않을까, 마음 한구석에서 넌지시 호평까지 하던 시노부다.


더할 나위 없는 협력자, 어쩌면 스승.


하필 귀살대. 하필 혈귀. 배배 꼬인 과거, 상황, 심경이 생각할 수록 복잡하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머리론 납득했다. 충분한 이해도. 타마요의 기여가 만들어낼 결과물, 그것이 혈귀.. 나아가 무잔에게 무엇보다 날카로울 무기가 되리란 점도.


감정이 동요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놈들이 앗아간 삶이 너무나 무겁다. 같은 공간에서 귀멸을 위해 손잡은 그들이 단  글자, 혈귀란 사실이 때때로 눈을 가린다.

불쌍. 생전 언니가 혈귀를 언급하며 입에 올린 말. 어렴풋이 알아들었다. 무잔의 폭거에 휘말려 의도치 않게 가족을 잃고, 어쩌다 지배를 벗어나, 원한을 갚으려 몸부림치는 그녀야말로 불쌍한 혈귀일지 몰라. 그렇지만... 어쨌든 누군간 죽었다. 자의든 타의든 불의를 저질렀다. 수없이 많았을 생명들도 그렇게 사라졌다.

어쩌면 좋을까.


어색하고 불편함에도 협력한다. 기묘한 공존. 그 속에 있다.






자신조차 들릴 듯 말듯 숨을 놓는다.

어항. 짜여진 틀에 얹은 유리상자. 유유히 노니는 금붕어 몇 마리. 물고기 밥을 살살 뿌리자 몰려든다. 뻐끔거리는 입에 물고 흩어진다. 무얼 보는지 모를 눈을 빛내면서.


'너희들도 살아있으니 무언가 고충 있을지 모른다만... 지금은 이쪽이 더 커보이는구나.'


엎어진 탁상바닥에 힘없이 달라붙어 뺨이 약간 차다.


타악


"하악!"


거센 발걸음, 거칠게 열리는 문짝. 숨소리.

"아오이?"

숨도 못 고르고 낯빛이 창백하다. 급히 다가선다.


"무슨 일인가요? 이리 급... 혹시"


"학, 아, 네헷"

 한 잔을 가져다주는 유시로. 자의가 아닌지 모래알이라도 씹은 표정. 아랑곳않고 뺏어들어 넘기자, 단숨에 비우는 아오이.


"후아. 말씀, 하신 그 일이"


띄엄띄엄 이야기했으나 잘 전해졌다.


"깨어났나요. 서둘러야죠, 그럼."

"아, 저희도 같이."

유시로와 함께 이것저것 기구를 챙겨드는 타마요를 보며 내심 걱정한다. 혹시 일이 터지지는 않을지.

'동행하고 설명하면 별 일 없겠지.'

애써 털어버리고 시노부는 앞장선다.












"오랜만이네요."


"..코쵸."


바로 누워 천장만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눈빛. 가라앉은 음성. 타는듯한 머리칼.

"정말이지... 심했다구요."

의자를 끌어다 침대 가에 붙여 앉는다. 시노부는 말을 이어간다.


"복부 관통, 의식 소실."

그녀는 시립한 아오이를 바라본다.

"이 아이도 고생이 심했고요."


"고맙다."

따라붙는 감사. 힘이 실리지 않은 음성에 실린 진심에 아오이는 고개를 슬쩍 숙인다. 볼이 발갛다.

"객관적으로는 가망없을 부상이었지만... 현장에 있던 대원의 조력으로 치명상만은 막을  있었습니다. 원리는 불명인 방법으로.

어찌 됐든 현재도 완벽한 정상은 아니니까요."


시노부는 뒤를 향해 손짓한다.

"지금부터  가지 검사를 하게 될 텐데, 지시에 따라주세요. 그리고 말씀드릴"

짤강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벌어진 뒤.

놀란 아오이는 입을 틀어막고, 시노부는 그만 머리를 감싸쥐고 만다.


바닥에 떨어져 흩어진 기재들 위로 끓어올라 터지기 직전인 유시로.


"아직 정상이 아니라 말씀드렸잖아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시노부는 중얼거린다.

오랜 시간 누워있던 몸. 그렇다기에는 너무나도 쉽게 움직였다. 빨랐다.

그러나, 혈귀의 기척을 감지하고 목줄기를 틀어쥐었어야할 뻗은 손은 엇나가 그 옆. 움켜쥔  타마요가 무의식중에 내민 손목.

놓는다. 숨은 흐트러져있다. 손이 떨린다.

불충분한 악력, 실명, 신체 불균형.


"...확실히."


렌고쿠 쿄쥬로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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