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102편
다박 다박
소리가 울린다.
귀살대의 의료 기능을 담당하는 나비저택. 기존의 건물에 인접한 땅, 그 위엔 몇 달 전부터 새로 지은 병동이 있다. 안에는 보다 전문적인 치료를 위한 시설, 연구실, 기타 다양한 역할을 띤 공간이 있는데,
걸음을 재촉하는 소녀의 행보는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서둘러야"
검정 제복에 방금 덧입은 하얀 겉옷. 먼지를 살짝 털어낸다. 눈 밑에 진 그늘을 살살 문지르며 고개를 젓는다.
복도를 가로질러 다다른 곳은 막다른 길. 볕 하나 들지 않아 어둡다. 저만치 뒤편 창가로 들이치는 빛줄기가 선명하다. 앞은 벽. 막혀있음에도 최소 열 걸음 이상은 더 뻗어있는 복도.
"다섯 걸음...이지."
하나, 둘, 셋,
속으로 세며 나아간다. 이윽고 다섯정도 남긴 시점.
미옹
작은 울음.
멈춰서 내려본다. 알록달록 삼색 고양이. 가만히 서선 이쪽을 응시한다.
보드랍고 윤기나는 털. 미미한 공기의 움직임에 흔들리는 입가의 몇 가닥 수염. 웅크려앉아 손바닥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다가와줄 것만 같다. 포옥하고 몽실한 뺨을 손에 담으면 가릉 울어줄까?
저도 모르게 내미려던 손을 무른다. 피어오르는 마음을 꾹 눌러담으며
"챠챠마루"
부르자, 타박 가까워진 고양이는 앞발을 올려놓는다. 발등이 간지럽다. 그러곤 홱 돌더니 사라지는 고양이. 문자 그대로 시야에서 한순간 사라진다.
볼 때마다 놀랍다. 숨을 크게 들이킨다. 내딛는다. 보폭을 넓힌다. 벽. 눈을 꼭 감고 더 한 걸음. 뜬다.
방. 잔잔한 조명이 불을 밝힌다. 지나온 복도는 그대로. 듣기론 아까 마주친 고양이의 접촉이 없으면 들어설 수 없는 모양이다. 혈귀술의 일종으로, 벽처럼 위장한 시각적 조치에도 혹여 남아있을 출입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한 가지 술수를 더 써두었다. 인간을 매혹해 물러서게 한다. 분명 벽을 보고 전진했는데 다음 순간 영문을 모른 채 후퇴한다. 왜 가려했는지 잊어버리고.
우측 벽에 자리한 세면대. 찬장에 쌓인 물체. 작고 네모진 각설탕같은 것들. 개중 한 갤 집어 껍질을 벗긴다. 칙칙한 정육면체에 물을 끼얹어 비빈다. 거품이 인다. 손끝부터 손목까지 꼼꼼하게 씻고는 정리.
수건에 닦아 마른 손으로 옆의 천자락을 든다. 입을 가리듯 둘러 고정.
고른 숨소리. 외부에, 그것도 지주급이나 관계자들에는 중상, 매일이 고비인 것처럼 알려져있다. 실제는 회복세가 완연하지만. 그래도 큰 부상을 입었던 환자이니만큼 조심해야지. 입가리개를 단단히 동여맨다.
좌우로 주사액 주머니를 몇 개씩 세워놓은 침대. 옆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하루종일 하던 병동업무와 잡일에 더불어 여기까지. 폐를 끼치기는 싫지만... 스미, 키요, 나호, 그 아이들만이라도 교대해줬으면... 장기간 교대 근무에 지쳐간다.
'힘내주세요.'
어깨를 두드리던 코쵸 시노부. 충주와 단 둘이 돌아가며 병석을 지킨다. 비밀 엄수를 위한 방법이라니 뭐라 말하기도 힘들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리깐다. 거의 반나절에 달하는 여정이 끝나면 내일을 위한 준비. 이어서 또. 그러고 나서야 씻고 잠에 들 수가 있다. 짤막한 단잠, 또 시작.
머리가 무겁다. 눈꺼풀이 감긴다. 힘내서 부릅떠봐도 잠깐. 고른 숨소리, 적당한 실온, 적막. 점차 시야가 흐릿해진다. 자고 싶다...
"핫!"
번쩍 뜨이는 눈. 얼마나 지났을까? 졸고 있었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지켜보라셨는데. 주기적으로 기록해야하는 일지도 그만 때를 놓쳐버렸다.
짝
뺨을 찰싹 때린다. 정신차리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려야.
침상 옆 탁자.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를 서책이 한 권있다. 만일 깨어나면 전해달라했지만 그게 언제일지.
시선을 든다. 뭔가 다르다.
전부 그대로인데. 오직 눈. 환자의 눈만이.
"히이익!!"
올곧게 천장만을 바라본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소리없이.
칸자키 아오이가 내지른 외마디 비명. 달음박질로 곧장 달려가 그녀는 알린다. 충주에게.
염주 렌고쿠 쿄쥬로가 깨어났다.
무한성 돌입 수개월 전, 어느 날인가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