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100편
"나라도 힘드네."
만년결빙.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동결시키겠다는 거창한 명명. 위력만큼은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혈귀술이었다.
단 한 방에 무력화시켰다. 공간 전체를 얼리는 무식한 기술로. 드넓은 바다에 빠뜨리고 통째 빙결된 것처럼 인간들은 옴짝달싹도 못한다. 사로잡힌 채로, 다가오는 자신을 보며 미동조차 하지 못한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실컷 갖고 놀다 죽이는 건데.
"아카자 공. 설마하니 죽어버릴 줄은. 쯧."
아쉽다. 상현의 자리가 비어버린 건에 대한 도우마의 감상이다. 잠시 생각했다. 그래도 오래도록 지내온 사이이니만큼 눈물이라도 흘려야하나? 그냥 넘기기로 한다.
자신은 그간 꾸준히 충고해왔다. 여자아이는 영양가가 높다. 그러니 먹는 게 어떠냐. 한사코 끝끝내 그 쇠심지보다 질긴 고집은 꺾질 않았다. 결국 아카자 자신이 꺾이지 않았던가? 조언을 거절하고 허망하게 당했다. 게다가 잔뜩 일해줘야할 시기에 공석이라니. 다른 이들, 특히나 도우마 본인의 부담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그 자의 생전에도 이득을 주고 받는 사이는 아니었다만, 마지막까지 폐만 끼치고 가는 건 좀 아니지. 침통해해줄 가치도 없다.
오히려 그 사단이 나는 바람에 목전의 장난감과 즐길 시간이 대폭 줄어버렸으니... 정말이지 아쉬운 일뿐이다.
"자, 마무리는 어떻게 해줄까?"
쥐어짜서 죽일까? 동사? 숨을 못 쉬고 얼굴이 질려가는 것만 보고 끝낼까?
서열 2위의 상현은, 그들 사이에선 지고한 존재일 무잔의 독촉마저 잠시 구석에 밀어두기로 한다. 오래 걸릴 일도 아니고 고작 수 분이면 끝날 일. 잠깐의 여흥은 즐겨야지. 무얼 고르면 좋을까?
각지에서 산들을 누비며 짐승을 사냥하는 이들. 개중에서도 화승총 따위를 다루는 자들을 일컬어 포수라 부른다.
그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유령이란 존재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어쩌다 전해들은 민초들은 하나같이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귀신도 아니고 유령? 미신을 주워섬기는 자들조차 미신 취급하기 일쑤였다. 실상을 알고서는 더욱.
그러나 포수들은 믿었다. 실존한다. 아주 드물게 체험한 이들의 경험담이 퍼뜨려지며 신앙에 가까운 믿음은 더더욱 굳어졌다.
말하자면 일종의 경지나 마찬가지였다. 허나 실감의 순간에 그 존재감은 너무나 뚜렷해서 '무언가 있다' 외에는 설명이 어려웠다.
이를테면 한 사례. 사냥꾼을 농락하기로 소문난 산짐승이 있었다. 영특하기 짝이 없어, 다수를 동원한 인간들의 손아귀에서 유유히 빠져나가며 전리품까지 챙겨가길 여러 번. 이윽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기에 이르렀다. 이후 주변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위에 이상이 없길 기도하거나, 살던 땅을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손 쓸 도리가 없어보였다.
그 때 나타났다. 언뜻 볼품없어 뵈는 사람. 허름한 옷차림새. 자연을 쏘다니기에만 최적화한 방랑자. 길동무라곤 한 자루의 총뿐.
그나마 남아있던 이들조차 비웃었다. 바보 천치가 아니고서야 어찌 달려든단 말인가. 이미 무수한 이들이 나가떨어진 사안을 혈혈단신으로 도전하겠다니.
포수는 침묵을 지키며 산중으로 향했다. 사전에 수집할 정보는 모두 모았다. 그놈의 생김새, 다니던 길, 주로 찾던 먹잇감, 정말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사항까지 빠짐없이.
자리잡는다. 위장한다. 숨조차 조심한다. 그렇게 바위처럼 가만히 있는다.
하루, 이틀.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기다린다. 인내의 한계는 이미 오래 전에 왔다. 무시한다.
사흘. 이제는 자연지물과 하나가 된 것이 아닌가. 산새가 앉아 찌르르 울다 날아가고 자그마한 길짐승이 눈치채질 못하고 옆을 스친다.
나흘.
그가 하산했다.
잡았다. 다만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떠났다.
반신반의하던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을 탔다. 놀랐다. 진실로 죽어있었다.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산신 취급까지 받던 그놈이 정말 혀를 빼물고 누워있지 않겠는가. 사인은 총상. 심장을 파고든 자리로 길게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고 만다. 단 한 명의 도전으로 인해서.
후일 동료들이 그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성공했나. 그의 입이 열리며 나온 말은 짤막하고 강렬했다.
멀다.
시나즈가와 겐야가 혈귀 무리를 뚫어내며 헤맨 끝에 도착한 곳은 상현의 거처 인근. 까마귀의 언질에 따르면 저 앞에 다른 대원들이 있다. 그들은 치열한 전투 중.
눈에 파문을 돋워 집중한다. 빠르게 점멸하는 인영과 쏟아지는 얼음들.
이 자리에서 무엇이 최상의 선택일까? 혹시나 서투른 합류가 도리어 해가 되진 않을까? 아직 하지 않은 일이 남진 않았나?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이 상황. 한 걸음 걸음을 내딛는 데 신중을 기해야한다. 고민하고 고심한다. 짧은 시간에 최선을 다해.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파문을 익혔고 총기를 다뤄왔다. 그 덕에 괴이한 공간에 진입한 이후로 마주친 혈귀들과의 일전을 어떻게든 치러냈다. 탄환과 폭발물까지 총동원해서. 그렇게 해왔는데.
문득 생각이 든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남았다. 근접전에는 적합하지 않아 남겨둔 무기.
등으로 손을 뻗는다. 장착해둔 총기가 닿는다. 무게가 꽤 나가는 편이라 특히 신경써서 고정해뒀던 탓에 분리에 시간이 얼마쯤 소요된다.
그간 다뤄본 총기와 궤가 다르다. 규모, 길이, 무게, 어느 하나 범상치 않다.
구경 12.7mm. 총열 74cm에 전장은 144cm. 중량 14kg. 가슴팍까지 와닿는 길이.
탄환은 단 두 발. 99mm의 총알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있어선 안 될 시기와 장소건만, 우부야시키 일가의 예지와 대장장이들의 혼이 실체를 일구어냈다. 그럼에도 부족함은 어쩔 수 없다.
분명 장거리에서, 뚫지 못할 대상을 꿰뚫기 위해 만들어졌다. 상대는 인간을 넘어선 괴물이니까. 더구나 그중에서도 상현 상대라면. 위력만큼은 절륜해서 두터운 철판도 관통할 거란 언질이 있었다.
그러나 있어야 할 것이 없다. 멀리서 적을 노릴 망원 장치, 조준경. 화력 투사에 뒤따를 어마한 반동을 받쳐줄 양각대. 빠져있다. 모자란 시간과 미숙한 기술력의 결과였다. 실사격조차 거치지 않은 총기에, 빠듯하게 만들어진 총탄까지. 필요할 부속은 없고 기초적인 발사에만 충실한 구조. 소지 자체가 용한 상황이다.
현장을 관망한다. 작은 티끌이 어지럽다. 조건없는 맨눈이라면 인물이 점으로만 비칠 거리다.
머리 속으로 그린다. 초장거리. 거대한 반동. 망원경처럼 대상을 크게 보여줄 보조장치도 전무. 조준기라고 붙은 요철 둘에만 의지해야한다. 얼핏 봐선 분간이 난감한 난전 가운데 혈귀만을 노린다. 두 번의 기회 안에.
망설일 시간은 없다. 엎드린다. 적당한 곳에 거치하고 총신을 끌어안는다. 오른팔은 뒤, 왼팔은 앞. 힘껏 움켜쥔다. 흔들림은 육신으로 어떻게든 한다.
차갑고 무겁다. 어깨에 묵직하게 얹힌 몸통에 뺨을 바짝 댄다. 시선이 가까운 가늠자를 지나 거친 표면을 훑어 총구 언저리의 가늠쇠를 찌른다. 일직선. 끝에 현장을 올린다.
아군과 적을 가려낸다. 그렇지 못하면 오인사격으로 누군가 다친다. 죽을 거다. 반드시 그놈만을 뽑아내야만 한다.
할 수 있을까? 망설일 틈도, 고민할 여백도 주어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떨린다. 언제라도 당길 수 있게 방아쇠 가까이 위치한 검지가 긴장했다. 최대 두 번, 상대의 경계를 생각하면 최초 적중이 최선.
여전히 전장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잠깐이라도 멈춰준다면 수월할 텐데, 요행을 바라는 건 사치겠지.
이건 일반적인 사격이 아니다. 이토록 먼 거리에서 노려본 일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공산이 크다. 모든 게 불확실한데 결과는 확실해야하는 불합리함을 그럼에도 감수해야만 한다.
돌이켜본다. 사격. 기본은 쏴서 맞히는 것. 거리가 멀 수록 조건은 다양하게 따라붙는다. 풍향, 풍속, 온도, 습도, 탄의 궤적, 탄도의 굴절, 사수의 심적 상태, 신체의 안정도, 인식이 힘든 변수들이 무수하다. 넘을 문턱이 아득하니 많다.
파문을 돌리며 집중한다. 총탄에 막대한 양을 밀어넣는다. 기운을 머금은 탄두가 빛난다. 삽입.
총기에도 마찬가지로 작업한다. 탄환을 파문두른 총열이 감싸는 형세로. 끌어당기는 성질의 파문이 총탄을 단단히 붙든다.
기다린다.
본다.
눈에 한층 집중한다. 파문의 응집도가 올라가며 맺히는 상의 정밀도 또한 향상된다. 아프다. 시리다. 그래도 감지 않는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맥박이 요동치며 망막에 비치는 상이 확장한다.
티끌, 점, 원, 면, 형태, 인간, 칼, 얼음조각, 혈귀의 손짓, 부채, 핏방울.
모두가 움직인다. 급속히 빠르게. 사격의 일점은 정지한 채 허공 어딘가에 도달해있는데, 그 위에 대상은 얹혀주지 않는다.
일순간. 미세하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준선을 정렬하고 대기한다. 원거리. 세밀한 조작으로도 크게 엇나간다. 노린다면 순간뿐.
찰나같은 현재가 쭉 늘어진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혈투가 열기를 더해간다. 찔리고 찌른다. 베이고 벤다.
의문이 든다.
가능한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어야하나?
끝모를 기다림, 오지 않을 끝.
급변한다.
가루가 흩날리며 혼란스럽던 장내가 얼어붙는다.
투명하다.
공중에 붙박힌 귀살대원들. 관조하는 혈귀.
수정한다.
놓였다.
깨끗하다.
조준기 너머 표정이 맑다.
아래. 노린다면 몸통. 빗나갈 확률을 줄인다. 머리통을 날린다해도 끝이 아닐 수 있다. 끝내지 못한다면 판을 만든다. 저지하고 순간을 창출한다.
숨소리. 모든 소리가 아득한데 오직 자신의 숨만이 규칙적이다. 오르고 내린다.
멀다. 저편에서, 내게서.
잡다한 상념이 옅어진다.
나라는 존재조차 희박하다.
인식의 꺼풀이 하나씩 벗겨진다.
신체는 고정된 채. 넋은 잠잠하게.
표적을 쏜다. 행위.
쏜다. 목적만 남는다.
호흡이 멎는다.
당기면 끝나.
누군가, 무언가 있다. 머리 위로, 어깨를 감싸며, 흘러내린 그것이 손가락을 매만진다.
당겨.
속삭인다.
방아쇠에 검지를 붙인다. 파문 반전. 인력을 척력으로. 꺼끌한 마찰음이 뺨 너머로 느껴진다. 터지지 못한 총탄이 진동한다.
쏴.
격발. 굉음이 터진다. 일점의 총구는 파문의 반탄력, 장약의 폭발을 더한 화력을 토한다.
공기에 달라붙은 탄두는 허공을 찢는다. 소리보다 빠르게, 음속의 몇 배는 넘을 탄속으로.
파문가속탄.
한 발. 방아쇠를 작동하고 알았다. 두 발째는 필요없다.
사격과 동시에 파열한 총열의 파편이 스쳐갔다. 뜨끈한 핏물이 재사격은 불가능함을 말해준다.
어째선지 알았다. 숱한 이론을 넘어, 부족한 경험으로는 어림짐작도 못할 무언가가 직감케 했다. 맞았다. 명중 외에는 없다. 이미 그렇게 결정지어져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런 감각이다.
한마디.
유령이 온다.
빙결이 무너진다.
도우마는 이상을 감지했다. 대규모 혈귀술의 시전으로 생긴 힘의 공백에도 주변만큼은 지각이 가능했다. 신체가 비었다. 후방이 파였다. 일직선의 빛이 모두 꿰뚫고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자신의 몸에는 참을 수 없는 불쾌감과 마비를 새겼다. 인식의 직전에.
지금.
모두는 직감한다.
더 이상 기회는 없다.
거력의 빙벽에 압사당할 위기에 갑작스런 해방. 떨어지고 반사적으로 착지한다.
원흉일 도우마는 서서히 허물어지려 한다. 사족을 푸들거리며 떤다. 상체엔 커다란 구멍이 횅하다. 도려내진 것처럼.
이유는 모른다. 원인도 모른다. 다만 움직이라고 다리가, 움켜쥔 손이 외친다.
푸욱
뒤로 넘어가던 신체를 이노스케가 떠받친다. 목덜미에 꽂아넣은 칼로.
카나오의 연분홍 검이, 기유의 푸른 칼날이 벼락처럼 혈귀의 목을 가른다.
센쥬로가 휘두른 혁도가 남은 불꽃을 찔러넣는다.
푹
몇 자루고 교차하는 중심으로 시노부가 검촉을 맹렬히 내쏜다.
진즉 떨어져나갔어도 이상하지 않을 목줄기. 본래 그 자리를 채울 도우마의 생체 조직보다, 꽂아넣은 무기물의 면적이 더 큼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기긱
검신을 타고 오르는 감촉. 혈귀의 목뼈와 맞닿은 날이 마찰로 울린다. 파고든 검들이 헤집은 틈새를 메우려 살점이 피어난다. 검면 위로 스멀스멀 긴다. 터무니없이 끈질기다. 재생하는 힘이, 속도가 가속한다.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알고 있는데. 아는데.
뿌득 깨문다. 이가 깨진다. 치아 사이로 핏물이 비친다.
모자라. 모자란다. 힘이. 다섯이나 달라붙었는데. 해내야만 하는데. 교착상태는 퇴보한다.
전신을 뒤틀고 몸부림치고 용을 써봐도 꿈쩍 않는다.
언니. 지금 해야만 한다고 정했는데. 여기까지인 걸까. 그런 거야? 나는 안 되는 걸까?
땀인지 눈물인지 시야가 따갑다.
아니야. 여기까지 왔어. 이만큼 했어. 이제 뒤는 없어.
해낸다. 반드시. 모든 걸 걸고.
"윽"
근육이 찢어진다. 견딜 수 없는 과부하에 팔이 비명을 지른다. 절감하며 멈추지 않는다.
뿌득
금이 간다. 한계를 넘은 힘에 뼈가 나간다. 오른팔은 이 순간 칼날을 지지하는 받침. 못쓰게 될지라도 지금 쓴다.
"으긋, 으아아아악!!"
뚝
몸을 틀어 사력을 다하자, 감각이 소실한다.
찌르기에 특화한 시노부의 검. 본디 베는 목적으로는 도무지 써먹지 못할 일륜도. 기유, 이노스케, 카나오, 센쥬로가 죽을 힘을 다해 찔렀다. 거기에 더한 벌레의 검. 반점의 발현으로 폭발한 힘을 실었다. 오로지 베기 위해, 오른팔에. 신체 기능의 영구적인 상실을 대가로 가져간 칼날은 마지막에 본분을 거슬렀다. 베었다. 그리고 끊었다. 도우마의 뼈를, 목줄기를.
질척한 점착음. 액체를 흘리며 미끄러진 머리통은 바닥을 구른다.
"아, 하."
빙글 눈을 돌린 머리는 한숨을 뱉는다.
"진 거네. 죽는 거야? 아쉽다."
자신의 죽음조차 담소 거리 정도로 여기는 그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야, 대단해. 인정할게. 결함덩어리도 해낼 수 있구나! 혼자 봐서 아쉽다. 그치?"
축늘어진 오른팔을 다른 손으로 붙든 채, 검을 질질 끌고 온 시노부가 차갑게 내려본다.
"그래. 네 언니... 뭐더라, 아무튼! 그 애도 같이 봐줬다면"
푹
주저앉듯 무릎꿇은 시노부는 칼끝으로 찌른다.
"에겍"
"죽어."
도우마는 더 말을 잇지 못한다. 혓바닥과 턱까지 꿰고 바닥을 찍은 그녀의 칼때문에.
"죽어"
눈.
"죽어"
귀.
"죽어, 죽어"
거꾸로 쥔 칼이 무수히 꽂힌다.
"죽어 죽어 죽어 죽"
헤아릴 수 없을 칼날이 내리박힌다.
"그만, 그만...해주세요..."
문득 뒤에서 다가든 따스함. 카나오가 그녀의 뒤에서 떨리는 손을 얹는다.
"죽어..죽..."
그제야 깨닫는다. 마지막 한 자락 가루로 화한 도우마의 머리는 사라졌다. 그러고도 자신의 칼은 애꿎은 바닥을 찍어내리고 있었다.
"...죽...주..."
딸강
칼이 손바닥에서 떨어진다. 떨림이 번진다. 그나마 남은 손으로 입을 가린다. 토할 것 같다. 허리를 구부린다. 엎어지다시피 바닥으로 숙인다.
"후, 흐, 흐으"
자그마니 벌어진 입새로 숨이 샌다.
"읍, 으읏"
토하고 싶다. 뱉고 싶다. 괴롭다. 아프다. 쓰리다. 쓰다.
"끄흣, 으으윽"
숨이 막힌다. 가린 손틈으로 비치는 바닥이 흐리다. 자작자작 젖는다.
"으으아아아, 아아아앙!!!"
쓰러진다. 주체 못 할 감정이 쏟아져내린다. 어린 아이보다도 서럽게.
시노부의 뒤를 안은 카나오의 어깨도 가늘게 떨린다.
중얼거리는 이노스케가 벗어던진 탈 아래로도.
쓰러진 센쥬로와 지쳐 앉은 기유에게도.
흐른다. 한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