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97편
까아아아악
울음소리가 메아리친다. 광활한 공간을 누비며 작은 전령.
'이상할 정도로 빨라.'
평소 날아들던 속도에 비하면 천양지차.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고속으로 비행하는 까마귀들. 그들의 움직임에 토미오카 기유도 서두른다.
"이곳인가."
따라붙은 까마귀가 알려준 장소. 이미 상현과의 전투 중이라고 했다.
"저건"
충주 코쵸 시노부. 그녀가 축 늘어져있다. 저 멀리 광장의 가운데. 천장에서 줄기를 뻗어내린 혈귀의 손아귀에 집어삼켜질 위기.
어떻게 할까. 구해야 한다. 어떻게.
거리는 상당하다. 통상의 몸놀림이라면 제 시간에 맞추지 못해 사람이 죽고 만다.
합동 훈련. 당시 카마도 탄지로는 이야기했다. 아마 풍주 시나즈가와 사네미와 오하기 건으로 실랑이를 벌인 뒤였을 것이다.
번개의 호흡에서 폭발적인 각력으로 운신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할까. 탄지로는 그걸 써봤다고 했다. 아가츠마 젠이츠로부터 배웠다면서. 요령을 알고 어떻게든 썼단다. 부담은 있긴 했지만.
타 호흡의 기술. 존재는 알고 지주가 되기까지의 시간 속에서 목격한 바도 있다. 그걸 일부분 응용한다라. 그저 참신하다고 할까, 신기하다고 해야할까? 기유에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만 들렸다. 그러나 탄지로는 열정적으로 전해주고 싶어했으며, 기유는 떠밀리다시피 배웠다. 정신을 차리니 배워지고 있었다.
- 다리에 꾹 힘을 주면, 근육이 막 꾸득꾸득하면서 발을 팍!
잘은 모르지만 대강 알아들었다.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감각. 대체로 검세의 유함이 특징인 물의 호흡과는 결을 달리하는 폭발력. 힘을 응축해 터뜨린다. 다리가 정말 부서질 듯이.
물의 호흡, 제 1형
수면베기
가장 기초적인 횡베기. 그것만으로는 상현의 손아귀에서 무언가 해보기란 부족하다. 더한다.
일섬
쾌속. 숱한 단련으로 다듬어진 참격과 한 가닥 화살처럼 쏘아내는 가속이 만나 뚫는다. 도우마가 한 점 의심없이 시노부를 집어삼킬 순간을 그리던 찰나를.
탁
내려선 기유. 그의 품에는 늘어진 시노부가 안겨있다.
이미 회복한 혈귀에게서 매서운 공격이 날아들 법도 하건만.
"와!"
도우마에게선 감탄사만이 터져나온다. 천장에 본체를 매달리게 해준 여러 갈래의 얼음 줄기가 형상을 바꾼다. 두 줄의 덩굴에 딸린 받침대. 마치 그네와 유사한 생김새. 도우마는 얼어붙은 덩굴에 팔을 걸고 다리는 꼬고 앉아 관조한다. 싱긋 미소지으며 편히 풍경 관람이라도 하러 나온 한량처럼.
"그거, 무슨 기술인 거야? 섞은 거야? 빠르네!"
흉험한 전투의 한복판에 있었다기에는 너무나도 순수한 표정과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상현에 토미오카 기유는 묵묵부답이다.
"아"
뜨겁다. 작다. 가늘고 떨리는 그 작은 몸이 기유에게 의지하고 있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진다.
"아, 아..."
냉기에 뛰어들었으면서도 가혹했던 움직임의 흔적인 땀으로 피부가 촉촉이 젖어있다. 시노부는 반쯤 감길 듯한 눈을 좌에서 우로 또르륵 굴린다. 눈빛이 돌아온다. 시선이 헤매다 기유의 얼굴에서 멎는다.
"아, 아니, 이게 무"
명백한 당황.
"내가 왔다. 안심해라."
"아니, 대체 무슨 짓을..."
그녀는 두 손으로 기유의 멱살을 잡다시피 틀어쥔다.
"무슨 일을 벌인지 아시는 건가요?! 이걸 방해하면!"
턱. 숨이 탁 막힌다. 아무 이유도 전조도 없이.
"하, 하며, 어언"
거머쥐었던 손이 풀린다. 떨린다. 별안간 속이 메스껍다.
"어어, 어으으"
요동치는 심장을, 하얗게 질려가는 낯을 손으로 덮는다. 숨이 가빠진다. 밀려드는 불안.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두려움.
행복한 가정이 산산이 부서진 날. 무력한 자신과 언니가 살아남은 그 날. 단 하나 남은 친혈육을 영영 잃고 만 그 때. 카나에를 죽인 자에게 몸을 희생하려던 그 순간.
기억의 조각, 순간마다의 압박감, 죽음의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다.
머리 속은 하얗고 시야는 좁아진다.
시노부는 가장 가까운 온기에 기댄다. 옷깃을 가는 손가락으로 움킨다. 필사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저 뒤에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의 나락으로 하염없이 떨어져내릴 것 같아서, 무섭다.
"잠시... 잠시만..."
흐느낌에 가까운 목소리로 그녀는 견딘다. 영원같은 순간을.
"흐으, 하아, 하아아"
숨이 트인다. 떨림이 잦아든다. 긴장이 풀린다.
"의외로군. 공격하지 않는 건가?"
진정 상태로 접어드는 시노부에게서 눈을 돌린 기유는 묻는다. 웃고만 있는 도우마. 그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가.
"글쎄, 지금"
- 으아아아아악!!!!
말을 끊고 터져나오는 고함.
"아차"
도우마가 가볍게 손짓하니, 한창 격렬히 전투 중이던 카나오 목전의 얼음 분신이 휘릭 사라진다.
"미안, 미안. 깜박하고 있었지 뭐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카나오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버티다, 그만 주저앉고 만다.
소강상태.
쿠장창
"으랏차아아!!!!!"
소리의 공백을 메우듯 높은 천장을 때려부수며 등장한 인물. 그는 공중에서 날렵하게 회전하며 착지한다. 듬성듬성 이빠진 쌍칼을 틀어쥐고.
"이 몸 등장이시다!!!!"
요란한 외침에 이어 휙휙 고개를 돌린 그, 멧돼지탈은 금세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뭐야, 안 싸워?"
착
칼 끝을 도우마에게 겨눈 그.
"왜 안 싸우고 있냐? 겁먹었냐!"
종전보다는 미소가 옅어진 상현.
"그게 지금"
"히이이야아아아아악"
쿵
괴상한 비명이 끼어들어 도우마의 말이 또 끊긴다.
"아이고오..."
먼지 속에서 신음하며 일어나는 작은 체구. 저만치 위에서 떨어진 고통을 호소하는 그는 소년. 불꽃이 옮겨붙어 타오르는 듯한 머리의 대원이다.
"어이, 만쥬로. 멋없잖아! 그따구로 떨어지면!!"
"몇 번 말씀드렸지만 제 이름은 센쥬로구요. 이노스케 씨가 지나치게 몸이 튼튼한 거라고요..."
뒤통수를 문지르던 소년은 볼멘소리로 받아친다.
"어, 어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놀란 센쥬로. 그도 그럴 게,
"충주님, 수주님,"
뒤를 돌아보며 히익 숨을 들이키는 센쥬로.
"사, 사, 상현의 2"
어버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작은 대원에게 손을 흔들어뵈는 도우마.
"이야. 자꾸 기어나오네. 바퀴벌레도 아니고."
도우마는 사실 눈 앞의 바퀴벌레 다섯 마리를 당장 쓸어버릴 생각이 전연 없었다. 그 이유는 뭐 언니에 이어 먹어주기에 실패한 저 아이가 정신차리면 이야기해주도록 할까.
사삿
정신이 든 시노부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기유에게서 서둘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화들짝 놀라고, 떨어지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찰나의 심리적 문제가 그만 침착함을 잃게 만들어버렸다.
"......"
"......"
침묵으로 마주하는 두 사람. 무표정한 기유의 고정된 시선에 시노부는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엇갈린다.
"...제가 무슨... 실례를 한 건 아니...겠죠...?"
생소한 심적 경험이 그녀답지 않게 사태 파악을 더디게 만든다.
"실례..."
고개를 갸웃하며 뜸을 들이는 기유.
"했지."
그는 미미한 손놀림으로 뭔가 붙잡는 시늉을 해보인다.
"이렇게 옷깃도 꼭 붙잡..."
"아, 아! 그만, 그만해요!!"
낯이 발개져선 허둥거리는 시노부. 잊었던 기억이 뒤늦게 떠오르듯 그 순간들이 수면 위로 살아난다.
"그럴 땐! 했어도 안했다고 해줘도!"
바락 소리치는 시노부. 그러다 인지한다. 이 사람이 누군가? 바로 그 수주 토미오카 기유가 아닌가?
"에휴..."
한숨을 길게 쉰 시노부는 기유를 찌릿 흘겨본다.
"토미오카 씨. 역시 친구 없죠?"
"아니, 있다."
"네?"
그에 대해 아는 이들이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답. 카나오의 입술마저 달싹 벌어지고 만다.
"누, 누군데요."
그럴 리가. 그 토미오카 기유가?
"시나즈가와 사네미. 풍주가 그 친구다."
무슨 조합이야?
"대체 어떻게?"
듣고만 있던 센쥬로마저 동감케 한 의문. 접점이 없는데? 없어야 할 관계 아닌가?
"탄지로가 말해줬다. 오하기를 좋아한다더군. 그래서 줬다. 선물주면 친구아닌가?"
확신. 그의 말에는 절대적 믿음이 깃들어있다.
"그가 좋아하던가요?"
"갑자기 칼을 휘두르며 난리치기는 했지만... 부끄러워서 그런 것 아닐까?"
근질거리는 심신을 가라앉히지 못해 콧김만 내뿜는 이노스케를 제외한 나머지의 심정은 장탄식으로 물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 시노부.
"저기"
경계심이 치솟는다. 상현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는 그만한 무게가 있다.
"아니 별 건 아니고. 난 너희를 당장 잡아죽이진 않으려고 해.
어차피 벌레 몇 마리가 뭉친다고 상황이 크게 바뀌진 않잖아? 그래도 기회를 주려고.
우선 최선을 다해 정비하도록 해. 부릴 재주는 다 사용해도 좋아. 최고조로 전력을 갖추고 덤비는 거야. 그 편이 나도 밟아주는 느낌이 좋을 것 같거든.
어차피 못 이길 건 뻔하겠지만... 어디까지 발버둥치는지 궁금하거든? 최선을 다해 날뛰길 바랄게. 그걸 밟아주는 편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벌레 취급. 상현의 제안은 듣는 이라면 응당 불쾌감부터 느껴야 마땅하겠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함부로 대응할 생각은 못 한다. 절대적 우위에서 나오는 자신감, 오만함이 근거였으니.
"얌마, 내가 벌레면 넌 뭐 왕벌레냐!!"
예외는 있는 법.
"이노스케 씨!"
어쩔 줄 모르고 말리는 센쥬로.
"아, 그 아까. 그건 쓰지 말아줘."
시노부는 침음성을 삼킨다. 수신호, 카나오의 반응, 기유와의 대화. 뭐가 됐든 도우마는 대략이나마 눈치를 챈 것이다. 무언가 하려 했고, 그건 그에게 확실한 타격을 줄 성질의 위험이라고. 공들여 온 책략은 봉쇄됐다. 터무니없이 강하고 눈치도 빠른 저 자라면 같은 방식은 먹히지 않겠지.
그나마 시간은 벌었다. 강자의 유희에 근접한 배려,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이 순간일지라도 활용해야한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약자로서 할 수 있을 최선이다. 사양하지 않는다.
"토미오카 씨, 저 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차가운 안개. 뿜어내는 냉기를 조심해야한다. 피가 녹아있어서 위험하다.
이제 막 합류한 터인 기유에게 필요할 조언들.
"이미 조심하고 있다."
어떻게 알고? 의문을 담은 시노부의 눈빛.
"척보면 알지 않나? 설마 마신 건가?"
너무나 당연해서 피하지 못하는 자가 이상한 게 아니냐는 말처럼 들리는 기유의 발언. 그는 도리어 물어온다. 들이마셨나. 그녀는 머뭇거리다 말을 꺼낸다.
"실수로 약간..."
초근접전 와중에 훅 뿌려진 혈귀술의 여파는 아릿한 통증으로 박혀있다. 위험하다. 모두가 사전에 인지하고 피해야...
"지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군."
팔짱을 낀 기유가 딱하다는 듯 지적하자 시노부의 내면에서 풍랑이 거세진다.
"그럼 그쪽은 지주로서 자각, 예전부터 부족하셨잖아요. 합동훈련도 멋대로 빠지고!"
"그거라면 코쵸 너도 빠지지 않았나?"
"거기엔 개인적인 사정이"
"그럼 나도 개인사정."
"이이익!!"
이를 빠득 가는 충주. 대체 무슨 표정인지 모를 수주.
"저기 지주님들... 진정하시고..."
센쥬로는 진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애를 써본다.
"아아! 언제 싸우냐고!!"
이제는 길길이 날뛰는 단계에 접어든 이노스케를 보던 도우마의 눈이 반짝 빛난다.
"거기 넌 사람이야? 멧돼지 머리는 뭐야? 얼굴이 궁금한 걸!"
"헹! 너같은 조무래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노스케의 목소리가 좀 더 뚜렷하게, 크게 들리고
"볼 수 없을 거다!"
정적이 찾아온다.
"어?"
이노스케만이 얼굴을 더듬는다. 본래 드러날 일이 없을 그 얼굴. 맨 살이 만져진다. 손으로.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회상에 잠기는 도우마의 손에 모두의 시선이 멈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멧돼지탈. 이노스케의 머리에 씌워져있어야 할 물건이 도우마의 손에 있다. 왜, 언제?
등골이 서늘하다.
카나오는 침을 꼴깍 넘긴다. 그녀의 독보적인 시력으로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 이 상현의 혈귀는 빠르다.
"언제더라... 음."
푹
인상이 찌푸려질 광경. 도우마는 빈 쪽 손가락을 머리통에 찔러넣고 내용물을 헤집는다. 심히 괴기스러운 모습이다.
"아아. 이거야. 그래. 코토하!"
아기를 안고 도망쳐왔고 그 아이를 살리려다 목숨을 잃은 여자.
"네 엄마일 걸. 코토하 그 아이."
"흥! 난 엄마같은 거 없다고! 산에서 자랐으니까!"
자신만만한 이노스케의 표정은 뒤바뀌어간다. 정확히 도우마의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은 뒤로.
"손가락~ 걸고~"
어디선가. 귀에 익은 노래. 어디선가 들었다. 기억도 안 날 옛날. 그런 게 있었던가?
- 손가락 걸고~ 지키도록 합시다~ 약속이에요~
아득한 음성. 따뜻함. 누군가 자신을 안아줬고 손가락을 매만졌다. 속삭였다.
- 이노스케는 엄마가
애달프면서도 티없이 맑았던 그 웃음.
- 지켜줄게, 목숨을 걸고서라도.
왜 이제야 생각난 걸까. 그렇게도 따스한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는데.
- 미안해, 이노스케, 정말 미안해.
바보라며 흐느끼고 뺨을 부비던 사람이 있었는데.
멀어지던 벼랑 위에서 피어난 혈화. 피바람 속에 무너져내리던 그 순간을 어떻게. 어떻게 잊고 살았을까.
"육질은 참 야들야들했어. 아끼던 아이라 뜯어먹진 않고 천천히 몸으로 녹여줬는데... 이제 영원히 같이 살아갈 테니 아픔도 없지. 좋은 일이야."
웃는 낯으로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떠드는 혈귀.
- 따뜻해. 내 보물.
뺨에 손을 댄다. 따뜻하다. 그 예전에는 더 따뜻했다. 두 번 다시 못 느낄 온기로.
엄마.
텅
데구르르 굴러오는 멧돼지탈.
"코토하가 남긴 그 얼굴을 감추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쉽다. 그래도 좋네. 오랜만에 재밌었어."
부드득
이 갈리는 소리. 이노스케는 쌍검을 부여잡고 지른다.
"지옥 바닥 끝까지 쳐박아준다, 너 이 자식!!"
분노로 가득한 이노스케. 일행도 마찬가지. 더구나 시노부는.
"카나오."
"네, 사범님."
이제는 많이 체력이 회복된 카나오가 차분히 대답한다.
"이제 그 작전은 잊으세요. 두 번 당해줄 놈도 아니니까."
시노부는 눈을 감았다 뜬다.
"전력으로 상대합니다. 사실 불확실한 전투로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요."
맹독 마비로 보장될 확실한 결과. 최소한 확실한 약체화. 기회는 사라졌다. 방법은 미래를 모르는 불확실. 자신의 역량에 기대야한다.
"사...범님..."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희생하지 않는다. 당장 죽지 않는다. 카나오, 그녀는 작금의 상황에 더없이 안도했다. 가슴이 뭉클하다. 아직 더 있을 수 있다.
"아직 방도가 있습니다."
시노부 자신을 먹이로 던져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싸워서 어떻게든 한다. 이를 받쳐줄 계획.
"전에 이야기는 해뒀죠?"
매일 등나무꽃의 독을 몸에 주입해 전신에 독이 돌도록 한다. 현재는 등꽃독이 가득한 상태.
말하자면 커다란 물동이에 물을 잔뜩 담아둔 거나 마찬가지다. 넘칠듯 말듯 수위는 그야말로 아슬아슬.
매일 약을 투약한다. 이는 넘칠듯 부푼 수면에 한 방울씩 물을 더하는 행위. 용량을 초과해 장력으로 유지하는 한계마저 넘으면 물은 흘러내린다. 등꽃독에도 소화 가능한 임계치가 있었다. 이를 넘길 시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의 소용돌이로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그걸 넘으면 위험해집니다."
먹는 약으로 치면 입 안 가득. 단번에 그만큼 우겨넣는다면 즉사도 가능하다.
시노부는 몸을 독으로 물들이면서도 최대한 부담은 줄이고자 실험을 해왔다. 일일 소화량의 임계치. 그게 얼마일지, 다양하게 양을 조절하며 시도를 거듭했다.
부작용이 나타나는 시점. 실체. 과정과 결과. 알아냈다.
죽지는 않으면서도 부작용이 발생하는 순간.
시노부는 품 안에서 달그락 소리를 꺼내든다. 작은 병. 안에는 알약.
"정확히"
손바닥에 털어
"네 알."
씹는다.
가능한 빠른 흡수를 위해 알약을 으깬다. 쓰고 아린 독액이 구강을 적신다.
"사범님!"
달라붙는 카나오. 이미 독약의 존재를 알고 있던 그녀로선 자해하는 시노부를 뜯어말리려 저도 모르게 붙들어봤지만 벌써 넘긴 뒤. 충주의 목이 움직이고 온전히 먹어버린다.
"어, 어째서...!"
"말했던가요, 부작용이 있다고. 그 증상은..."
심박수와 체온의 급격한 상승. 독으로 그득하니 채워진 그녀라서, 실험으로 수치를 계측한 그녀이기에 실현 가능한 방식.
뜨겁다. 심장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비명을 지른다. 어지럽다.
부축하는 카나오. 그녀는 본다.
"저는 여기, 목숨을 걸겠습니다."
충주 코쵸 시노부의 오른 뺨에 선명한 날갯짓. 나비 문양 반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