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95편
아이가 태어났다.
"이것 좀 봐. 신기하지?"
"어머. 어쩜 이리..."
하얀 피부, 백갈색의 머리카락, 무지개빛을 띤 눈동자. 도우마. 아이의 이름이었다.
여느 아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외모. 그의 부모는 점점 이상한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신이 내린 아이.
이토록 독특한 모습은 드물다. 무슨 이유가 있을 거다. 선택받은 아이다.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가 틀림없다.
도우마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왜곡되고 비틀려 일그러진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만세극락교.
괴로운 건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살자. 단순한 가르침을 기반으로 세운 단체. 뜻은 좋아뵈지만 실상은 어린 도우마를 우상으로 내세워 섬기다시피하는 사이비종교였다.
세상은 언제나 어지럽고,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는 이들은 많다. 그런 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제발 제 얘기를 좀..."
"글쎄 그 사람이..."
"전 억울합니다! 어떻게..."
잘 꾸며진 공간, 그럴 듯한 복장. 화려한 병풍 앞에 놓인 옥좌에 올려진 채 사람들을 맞는다. 신도들은 저마다 속내를 털어놓으며 연꽃들 너머의 도우마에게 읍소한다.
이해하지 못할 감정. 무겁고 불편한 덩어리들이 던져진다. 축적된다. 포장도 뜯지 못한 상자들이 무수히 쌓여간다.
어느 순간부터 도우마는 그저 지켜본다. 다른 사람의 표현, 말, 감정이 사물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의문만이 떠오른다.
찾아오는 신도들 모두는 무언가 부족해하고 채우고 싶어한다. 저마다 소원을 빈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이들이 바라는 행복. 괴로움이 없다는 이상향. 극락이 그곳이라고 했다. 그런 건 없다. 도우마는 안다. 극락도, 지옥도 없다. 신도 없다. 있다면 왜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올까. 그 신이 그들이 바라는 걸 전부 들어줬을 텐데.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뿐. 뒤는 없다.
그래서 한없이 가엾다. 진심으로 도우마를 신이 점지한 아이라 여기는 부모도, 신적인 존재로 공경하고 떠받드는 인간들도. 불쌍해서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울면 따라 울어준다. 그럼 사람들은 웃는다. 같이 웃어준다. 행복하다고들 한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일시적이지만.
행복은 뭘까. 괴로움의 반대인가? 괴롭지 않으면 행복한가? 잠깐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인가. 사건은 일어났다.
"당신이... 당신이 어떻게... 몇 번이고 용서해줬는데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나한테!"
"그, 그 칼은 놓고! 놓고 이야기하자, 응? 내가, 내가 죽을 죄 지었고 다신 안 할게! 이렇게 빌게!"
도우마가 자리한 방 안에서 대치하는 두 사람. 선득한 칼날을 붙잡은 어미. 엉덩방아를 찧으며 손을 내젓는 아비.
푹
"끄윽"
파육음. 몸을 부르르 떨더니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도 죽고... 나도 죽는 거야...."
딸그랑 칼을 떨어뜨린 그녀는 품에서 무언가 꺼내들고 입에 털어넣는다. 시퍼렇게 질리는 낯빛. 거품을 물고 쓰러지더니 미동도 않는다.
"안 움직이네."
참혹한 현장을 무심하게 감상하던 도우마가 처음 입을 열고 한 말이었다.
"피때문에 지저분하잖아. 냄새도 나고. 환기해야겠다."
부모의 죽음을 두고 도우마는 한심하게 여겼다. 민폐가 아닌가. 신도들도 이용하는 장소인데 더럽히면 다들 괴로워한다. 그럼 행복하지 않아.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들을 차분하게 통솔해 정리를 마친 도우마는 본격적으로 극락교를 이끌어나간다.
그의 부모는 여자 문제로 다퉜다고 했다. 아비가 여색을 탐했고, 어미는 질투했다. 결국 사단이 났다. 신도들이 갖다바친 재물로 풍족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망을 키우다 그 꼴이 됐다. 행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건가. 일단 살아야한다. 멍청한 부모들처럼 죽으면 끝나버린다.
무잔이 찾아왔다.
자신을 키부츠지 무잔이라 소개한 그는 도우마에게 권유했다.
혈귀가 되라고. 그러면 영생을 얻는다.
거절하지 않았다. 도우마에게 시간은 필요했다. 오래도록 살아야 자신의 탐구를 끝마칠 수 있으니까.
혈귀가 된 뒤로 무잔의 지시에 따라 신도들의 수를 줄였다. 어차피 허기도 진 터라 맛있게 먹어치웠다.
"음... 여자가 더 맛있네. 아이를 키워낼 정도로 영양가가 높아서일까?"
무잔의 명으로, 때로는 자의로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인간을 잡아먹기도 했다.
"사람을 무수히 죽이고도 죄책감 하나 없다니.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도우마를 막아선 여자. 검은 제복 위로 나비의 날개를 닮은 겉옷을 걸치고, 두 마리 나비 장식을 머리에 올린 검사.
강하고 아름다웠다. 한 송이 꽃처럼 칼춤을 췄다. 도우마가 더 강했지만.
"아쉽네. 금방 해가 뜨겠어. 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피에 젖어 꿈틀거리는 그녀를 남기고 돌아서는 도우마는 생각한다. 고통을 덜어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코토하.
처음 만세극락교에 찾아왔을 때, 그녀는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허름한 옷은 찢어지고 군데군데 멍이 들었다. 열일곱, 열여덟, 나이는 그쯤. 얼굴이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있었다.
살려달라고. 그녀는 요청했다. 마침 도우마가 이끄는 종교는 불쌍하고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곳. 코토하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기 하나를 데리고 있었다. 아이는 어리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누구를 닮았나. 코토하의 부상이 가라앉고 원 모습을 찾자 곧 알 수 있었다. 한쪽 눈은 폭행으로 실명. 그럼에도 틀림없이 아름답다.
품행이 방정하고 목소리는 곱다.
노래도 곧잘 했다. 때때로 그녀의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는데 부를 때마다 가사가 달라졌다. 예쁘게 웃는다. 마음에 든다.
그녀를 두고 지켜보기로 한다.
한 번은 코토하의 남편과 시어미라는 자들이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그녀를 데려가겠다고.
죽인 뒤 산중에 내다버렸다.
이 여자아이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두고 관찰하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 성싶었다.
어느 날 이별은 찾아왔다.
"어, 어떻게... 도우마님, 무슨 짓을 하시는 건가요?!"
도우마가 신도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현장을 본 것이다. 코토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가렸다. 그녀의 온 몸은 떨리고 낯빛이 창백하다.
"아, 이거 말이야? 선행이야. 더 이상 무서워할 일도, 괴로울 일도 없이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지."
도우마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하려 애썼다. 혈귀가 된 그에게 있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평범한 인간인 그녀는 놀랄 만도 하다. 안심시키자. 그리 생각하며 웃는 표정을 지어보인다.
참혹하게 찢긴 시신 몇 구. 그중 하나의 팔을 잘라들고 해맑게 미소짓는 도우마. 호선을 그리며 살짝 벌어진 그의 입술 새로 핏물에 젖은 송곳니가 길쭉하다.
코토하는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질렀다. 도우마를 비난했다. 그러고는 뛰어나갔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그녀이기에, 도우마는 내버려뒀다. 자신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살도록 돕는 선행. 그 취지를 이해한다면 곧 돌아오겠지.
한 시간 뒤.
"도우마 님."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 신도. 그 자는 문너머로 보고했다.
코토하가 만세극락교를 떠났다. 그녀의 아이를 데리고. 평소 도우마가 아끼는 그녀임을 모두가 알았다. 언제나 자유로이 내버려뒀기에 이번에도 막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평소와 달리 표정이 심각해보여 걱정이 됐고, 도우마에게 알렸다.
"응, 고마워. 그랬구나... 그 아이 많이 놀랐나보네. 그건 그렇고 일단 들어오지 않을래?"
문 밖의 여인은 그의 말에 순순히 들어서다 까무러치고 말았다. 이어지던 도우마의 선행. 부족한 양을 채워줄 그녀에게 나름의 양해를 구하고 분해해 섭취한다.
"찾으러 가볼까?"
깨끗한 수건으로 입가를 정돈하고 외출한다. 물론 혈귀술로 현장은 깨끗이 정리하고.
혼란에 빠져있을 그 아이가 길이라도 잃으면 어쩔까.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 전에 돕자. 그리 맘먹고 도우마는 뒤를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발견한다.
막다른 길. 절벽. 아기를 소중히 끌어안고 노려보는 코토하. 놀라지 않도록 먼 발치서 조심스레 걸어갔다. 그럼에도 넘어질 듯 급히 달아나다 궁지에 몰린 것이다.
"헉, 허억"
숨이 헐떡이고 땀은 비오듯. 눈빛만은 차갑기 짝이 없다.
"코토하. 난 설명했어. 그건 착한 일일 뿐이야.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지 않게..."
"거짓말... 당신은 지독한 거짓말쟁이야! 어떻게... 사람들을...!"
입술을 꼭 깨무는 그녀. 거리를 둔 채 손만을 뻗어보는 도우마. 코토하는 황급히 아기를 뒤로 가린다.
"이해해주지 않는구나. 넌 착한 아이였지. 돌아와줄 순 없니?"
"나는... 바보야. 서툴고 모자라. 그래도, 이런 나라도 아는 게 있어. 당신같은 지저분한 놈이...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있어선 안 돼! 내가! 아이를 지킬 거야!"
지저분하다. 내가?
도우마는 표정을 지운다. 혹시나 혼란을 겪지는 않을까 조심했고, 정성들여 이해를 구한 내가 더럽다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을 하는구나. 아, 참 아꼈는데. 어쩔 수 없네."
성큼 다가설 수록 하얗게 질려가는 그녀의 얼굴. 부들부들 떨며 코토하는 아기를 꼬옥 안는다. 어린데. 아무 것도 모르고 옹알대는데. 조막만한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엄마를 찾는데. 아이의 눈망울에 비친 그녀는 울먹인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소중하디 소중한 아이의 뺨에 떨어진다.
"미안... 미안해... 엄마가 바보라서"
스무 걸음. 열 다섯. 열.
"이럴 수밖에 없었던 엄마라 정말 미안해..."
다섯.
"사랑해."
가만히 아이의 뺨을 매만진 손가락이 떨어지고 아기의 눈은 멍하니 바라본다. 멀어진다. 낙하한다. 방금 코토하는 자신의 아이를 떼어놓았다. 자신의 품에서 차가운 강물 속으로.
"정말이지. 끝까지 바보같구나."
가까이 다가선 도우마가 떨쳐낸 손짓 한 번.
촤악
코토하의 전신에 몇 가닥 혈선이 그어지며 피가 뿌려진다. 엎어진다.
"찬 물에 빠졌으니 아기도 살아날 길이 없는데. 어리석네."
모처럼 아끼던 아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비난한 여자. 피거품을 물고 숨이 꺼져가는 코토하.
"아, 미안.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나봐. 아프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드는 도우마. 얼굴은 다치지 않게 남겨둬서 다행이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 보이니까.
"괴롭구나. 슬프고. 피도 많이 나고... 이제 죽는 거네."
코토하의 떨림이 잦아들고 얼굴은 생기를 잃어간다.
그래도 마음에 들던 아이니까 잘 해줘야지.
도우마는 그녀를 꾸욱 끌어안는다. 세게, 더 세게
우득
쁘걱
"끄륵, 께흑"
코토하의 폐부에 남아있던 공기가 핏빛으로 토해진다. 정말로 뼈가 부서지도록 안아준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귓가에 나직하게.
"외롭지 않을 거야.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네 마음 속 생각, 감정은 비워도 좋아. 그것들이 시끄럽게 구니까 괴로움이 더해지는 걸. 함께 있자."
코토하의 신체는 점차 도우마의 몸으로 흡수된다. 녹아들고 사라져간다.
"자, 봐. 조용하잖아."
마지막으로 남은 상반신. 그녀의 두 귀를 양손으로 감싸주며 말해준다. 코토하의 동공은 풀리고 공허하다.
"행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