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4편
짤막한 막간.
숨가쁘게 일전을 치른 일행에 있어서, 잠깐이나마 숨을 돌릴 기회였다.
"이쪽으로."
유시로의 지시에 따라 눕혀지는 부상자. 까마귀의 인도를 따라 옮겨진 이들은 차례대로 응급조치 후 간소한 치료를 받는다. 임시 거점인 셈이다.
파문 탐지에 특별히 걸릴 만한 위협 요소가 없음을 감지하고 휴식을 이어간다. 물론 구조물의 변화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니 한편으로는 주의를 기울이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끄으윽!"
"이 사람 못 움직이게 좀 잡아. 치료 못해, 가만 안 있으면."
"야, 제발 가만히 좀 있어! 금방 끝나!"
깊이 베인 상처에 가루가 뿌려지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몸을 뒤트는 대원. 함께 온 다른 이가 두 팔을 짓눌러 제압하자 유시로가 처치를 계속한다.
어디선가 전투는 일어난다.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최선은 그저 다음 순간을 대비하는 것.
'백금의 세계는 쓰지 못해. 부담이 크다.'
확실히 대단한 영역, 경지의 기술임은 틀림없다. 다만 기술 사용의 대가가 너무나 컸다. 단지 몇 번. 그것만으로 전력을 소진하고 뻗어버릴 것이다. 무방비한 상태로 전락한다.
발생할 전투의 횟수, 소요 시간, 그 어느 하나 예상이 불투명한 현재로서는... 사용이 꺼려진다. 내 수련이 세월을 거듭해 성취를 보인다면 무리없이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몰라. 그게 지금은 아니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새로운 경험, 인식. 이걸 어떻게든 활용한다면...'
깊은 생각 속으로 잠겨든다.
"환장하겠네."
골목에 몸을 숨긴 시나즈가와 겐야는 한숨 돌린다. 슬쩍 눈까지만 내밀어 살피곤 재빨리 숨는다. 열 마리 가량의 혈귀.
다행히도 어느 하나 빠진 것 없이 장비는 챙겨뒀다.
'습관대로 하지 않았다면...'
하루 훈련을 마친 뒤. 늘 하던대로 총기, 탄환, 단검과 같은 장구류 일체를 점검하고 착용해 움직인다. 그 무게에 적응한다. 합동 훈련 기간, 새로 받은 장비들도 추가했다. 거의 장정 하나를 짊어진 듯한 무게. 그럼에도 보행에 지장이 없다. 그간 해온 수행에 더해 파문의 강화 효과 덕택이다.
쿠워엉
미로. 실시간으로 구조가 변하는 악의적인 공간이다. 득실거리는 혈귀까지. 매우 좋지 않다.
만약 장비를 완착한 상태로 지내는 습관이 없었다거나, 잠시 벗어둔 순간 낙하당했다면... 아찔하다.
겐야는 고민한다. 이곳은 어디인가. 왜 혈귀들이 우글거리는 것인가. 까마귀의 소집령과 관련이 있는 걸까. 혹시라도 자신만이 이런 지경에 처한 건 아닐까. 탈출은 가능한가.
온갖 상념이 머리 속을 헤집어놓는다. 어지럽다.
눈을 질끈 감는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나는 귀살대원이다. 혈귀가 있다. 잡는다.
눈을 뜬다.
주먹 크기의 동그란 물체를 꺼내든다. 언뜻 검은 김으로 감싼 주먹밥처럼도 보이는 그것. 움킨 손에 파문을 모은다. 검정 구체는 금빛으로 도색된다.
'터지려면 고리를 뽑고 몇 초. 던진다.'
구체 상부에 불룩 튀어나온 요철을 관통하듯 꽂힌 쇠붙이. 손가락 하나가 꼭 들어갈 법한 직경의 반지를 닮은 원에 검지를 걸어 당긴다. 뽑힌다. 열쇠와도 비슷한 안전고리. 손만 내밀어 휙 던진다. 초를 세면서.
땅
땅
떠그르르
튕기고 부딪히고 구른다.
우웅
구어엉
몇 마리 혈귀들의 이목이 굴러온 잡동사니로 모여든다.
'지금!'
콰앙
폭산. 흩어지듯 폭발한다. 수류탄이란 무기. 산산조각난 외피의 파편, 내부에 심어진 철제 구슬들이 터져나가며 사방을 찢는다.
무리가 이렇다 할 반응을 미처 보이기도 전, 한가운데에서 폭발한 폭발물의 여파로 혈귀들의 몸체는 잘리고 절단돼 곤죽처럼 무너진다. 수류탄의 외피와 내장된 쇠구슬은 전부 요코 산의 강철로 만들어진 것. 파문을 머금은 폭발에 휩쓸린 귀신들은 재생하지 못한다.
"끝이 없네, 없어."
펑
금방도 후방 측면에서 기습해온 한 마리를 처치했다. 가까이 다가들기를 기다리다, 초근접한 시점에 짤막한 산탄총을 안면에 틀어박아 탄환을 터뜨린다.
정말 새로운 장비와 도구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온천마을에서의 사건 이후 이전한 대장장이들. 그들은 사상자의 발생으로 의기소침한 분위기였다. 그 무렵 귀살대로부터 색다른 주문이 들어왔다. 무기를, 도구를 만들어달라.
주문 물품의 목록과 재료, 설계 등을 담은 문건을 접한 일동은 당황했다. 이전에는 해보지 않은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이 많았다. 다행히 겐야를 돕던 대장장이는 그 방면에는 트여있는 편이었기에 나섰고, 그를 중심으로 분업하기로 결정됐다.
마을 구성원의 상실, 혈귀를 향한 분노,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 대장장이 본연의 불타는 열정. 모두가 뒤섞여 깊이 몰입해간다.
여기에 우부야시키 일족의 힘이 더해진다. 귀살대를 이끌어올 수 있었던 배경. 어찌보면 사조직이나 규모만큼은 상당한 귀살대. 이런 조직을 뒷받침하려면 수완이 꽤나 좋아야한다. 그러나 대대로 당주를 맡아온 우부야시키 일가는 단명. 제 아무리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고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지혜를 갖추기까지 필요한 세월만큼은 얻지 못한다. 시간이 없다. 다행히 이를 보완해줄 힘이 있었다.
미래를 안다.
우부야시키 일족이 계승해온 능력. 저마다 발현 강도는 달라, 누군가는 어렴풋이, 누구는 선명하게 감지한다. 원래라면 알 수 없는 지식,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얻는다. 미래로부터의 속삭임을 듣는다고 일컬어도 과언이 아닐 그 능력 덕분에 귀살대의 기반은 든든해졌고 수많은 위기도 헤쳐나왔다.
다만 예지의 힘으로 얻은 정보가 모두 쓸모있지는 않았다. 시초의 호흡이 생겨낸 이래, 다양한 호흡의 검사들이 혈귀와 대적했다. 호흡의 힘으로 전보다 수월하게 상대한다. 반대로 호흡 없이는 상대하기 힘들어졌다. 신체를 극도로 단련한 검사가 일륜도를 다루는 경우가 아니라면 극히 비효율적. 모든 지원의 방향성은 강력한 검사의 양성과 이에 맞는 장비 개발에 맞춰졌다. 그 외의 가능성, 지식과 정보는 기록만 남긴 채 잠들어있었다. 이를테면 일반인이 특수한 무기로 혈귀와 맞서는 것 같은.
파문을 익히고 검 이외의 장비를 다루는 대원이 등장하면서, 때맞춰 대장장이 마을의 여력이 신장비 개발에 투입되기 시작하며, 잠자던 지식은 제대로 된 용처를 찾는다.
찰칵
짤막한 산탄총보다도 약간 작은 총기. 탄환은 개별 삽입하지 않는다. 방아쇠 뒤 손잡이 하단에 몇 발쯤 실린 납작 막대, 탄창을 밀어넣는 것으로 장전 완료. 이후의 추가 장전은 격발 시마다 내재된 장치들이 알아서. 자동 장전 체계인 셈이다.
텅텅텅
바닥의 판자가 울릴 정도로 뒤뚱거리며 뛰어오는 놈.
겨눈다.
타당
탕
우선 몸통에 두 발, 머리통에 한 발. 산탄총보다는 미약한 총성. 혈귀 상대, 특히나 이 공간 내의 강화된 녀석들 대상이라면 충분치 못할 위력이지만,
푸슈욱
배때지와 낯짝의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짙어지며 혈귀는 몸을 부르르 떤다. 관통 부위가 시커멓게 변질되며 놈은 뒤로 넘어간다. 탄창을 쥐며 힘껏 불어넣은 파문. 귀멸의 효능이다.
뒤틀리는 건축물.
꾸구궁
가려던 길이 막히고 다른 길이 열린다. 신속히 몸을 감추는 겐야. 하필 새 길 너머에는 더욱 불어난 이형 혈귀 무리가 넘친다. 얼추 이십.
딸깍
마지막 수류탄. 투척.
"아니.. 왜...!"
이미 던졌고 무리의 눈길은 물체로 집중된 상태임에도 안 터진다. 불발. 외부에서 충격을 가해보자.
타앙
정조준해 격발. 권총탄은 명중한다. 그런데
우르릉
진동이 퍼지며 모습을 바꾸는 구조물. 총격의 여파로 뒤로 튕긴 폭탄은 벌어진 틈새로 삼켜진다.
꽝
뒤늦게 터진다. 그러나 이미 빨려들어가던 차. 둘러싼 절벽이 폭발의 각도를 수직 상방만으로 좁혀버렸다. 고작 세 마리 정도만 피해를 입는 선에서 그친다.
몇 마리는 벌써 총성이 들렸던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돌파한다. 어차피 저놈들을 제치지 못하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추후 방해받거나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항상 신중해야한다. 그렇게 사부님은 말씀하셨으니까.
근접전을 치르기 위한 모든 총기에 총탄을 밀어넣는다. 하나하나 파문을 주입한다. 자동권총의 탄창들에 손을 댈 무렵, 짐승들의 돌진은 시작됐다.
쿵 쿵 쿵
그어어어어
콰롸라락
작업이 끝난다. 혈귀떼가 돌진해올 경로. 그 일직선에 폭은 제한된 공간으로
타다닥
탄창들을 뿌린다. 좌우로, 저만치 뒤편까지, 어지러이 흩어진다.
돌진하는 짐승들은 먹잇감에 눈이 멀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손바닥에 닿는 권총의 감촉이 살짝 미끄럽다. 매끄러운 겉면에 배어난 땀이 축축하다. 옷에 슬쩍 문질러 닦는다. 간다.
탁
세찬 첫 걸음. 흉측해 인간의 잔재조차 뵈지 않는 놈. 총탄 세 발.
정면에서 덤벼든 얍실한 놈. 기다란 손톱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장전해둔 산탄총, 온천마을에서 활약한 총기를 왼손으로 치켜든다.
쾅
적의 상반신 위로 대강 겨누고 쏘자, 목 위로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관성 탓에 몸뚱이만 목표를 잃고 널브러진다.
좌상. 산탄총을 든 손을 내릴 틈도 없이 잇달아 덮치는 녀석. 오른팔을 왼팔꿈치 위로 교차하듯 끼워넣고 곧장
타당 탕탕
연속해 네 발. 몸체가 있는 편인 혈귀는 파열된 안구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몸부림치며 표현하나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상체에 꽂은 곳에서부터도 불길이 일었으니.
간격을 두고 뒤의 무리가 돌격한다. 잔탄을 마저 털어낸다. 시간벌이용 견제였기에 기세만 늦췄을 뿐. 앞서 당한 녀석들을 보고 움찔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그저 대응한다.
구르듯 선두의 혈귀가 가한 급습을 피해내며 근접한다. 바닥에 떨군 탄창. 주워들고는 삽입. 위험하다.
자세를 잡을 틈도 없이 세 마리. 놈들이 한꺼번에 시야를 메우며 뛰쳐온다. 세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 기형적으로 솟아난 살점의 기둥, 다양한 공세가 쏟아진다.
쓰자.
장전 완료된 또 다른 무기. 권총과 언뜻 닮은 듯도 하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큰 총기. 총구가 셋. 수평쌍대형 산탄총의 그것에 위로 하나를 더 얹은 형상. 구경은 성인의 손가락 두 마디는 될 법한 크기. 손바닥에 두툼하게 쥐어지는 정도의 묵직한 탄환이 셋 들어간다.
대장장이 중 화약에 심취한 자가 순수한 장약의 힘만으로 어디까지 가능할지 궁금하다며 밀어붙인 개발의 산물. 갖은 작업으로 단련된 그들의 팔로도 감당하기 힘들 반동이 예상돼 시험사격조차 해보지 않았다 들었다.
이 순간. 가장 적절할 무기가 아닐까. 뇌리를 스치는 짧은 생각을 믿는다. 자동권총을 손에서 떨어뜨리며 등허리 측면에 비치한 그걸 든다.
두 팔에 꾸욱 힘을 주고 파문도 더한다. 쏜다.
콰과광
굉음이 울린다.
단 한 차례. 사격이라기보단 포격에 가까울 그 일격은 위력만큼은 끝내줬다. 단숨에 시야가 확 걷힌다.
투두둑
몰려오는 떼거리 위로 사격에 휩쓸린 녀석들, 이제는 내용물이 전부 산산이 찢긴 핏물과 육편으로 화한 그 잔해가 비처럼 뿌려진다.
반동은 무시무시해서 뼈가 부러졌나 싶었다. 다행히 아직 얼얼해도 말은 듣는 손을 옮겨 떨어뜨린 권총을 덮는다. 움킨다.
몸을 낮추며 한 손으로 권총을 든다. 다른 손에는 단검을.
푹
거칠게 박는다. 눈 앞에 불현듯 나타난 팔뚝. 거무죽죽한 비인간의 피부에 단검을 찌르고 그으며 팔꿈치로 밀어붙인다.
피빅 피비빅
워낙 가까이에서 달라붙다시피 격발하니 혈귀의 육체에 소리마저 묻히는 듯하다. 멀어지는 악취, 쓰러지는 놈.
탕 탕 따당
속사로 떨쳐낸 둘. 하나는 한 발만 박혀 아직 움직인다. 미쳐날뛴다. 횡으로 훙 후리는 공세를 엎어지듯 피하며 접근한다. 그 자리엔 또 다른 탄창. 갈아끼우고 쏜다.
큰 덩치에 기세를 잃지 않은 놈. 저보다 작은 두 마리를 들이박으며 퉁겨낸 그 돌진은 거의 거대한 곰을 연상시킨다.
탕 탕
몇 발인가 쏴봐도 덩치 탓에 타들어가는 속도보다도 먼저 충돌한다.
파문의 호흡, 제 1형
파문질주 황매화
손아귀의 권총탄의 잔량을 소진하자마자 두 주먹에 한껏 모은 파문.
떠엉
부딪친다.
전신의 근육을 뻣뻣할 정도로 부풀리며 버틴다. 주먹은 정면의 적의 품속으로.
츠즈즈
바닥에 디딘 발이 밀린다. 육중한 무게. 상당한 충격.
그거걱
버텼다. 놈의 아가리에서 꾸륵 소리가 토해지며 혈액과 체액이 흐른다. 거꾸러진다.
쿠궁 쿠웅
흔들린다. 남은 혈귀들의 뒤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난다. 근육질의 전신. 창백한 피부는 혈귀라는 증표.
얼굴이어야 할 안면과 머리통 둘레로 커다란 눈알이 보인다. 전신의 겉에 크고 작은 점처럼 눈알들이 비집고 들어차있다. 그것들이 수시로 번갈아가며 주위를 둘러본다. 마치 사각이 없는 듯한 움직임.
신장이 어림잡아 장정 셋은 합쳐놓은 듯한 높이다. 놈은 큰 걸음을 떼더니 앞선 혈귀들에게 급속 접근한다. 이상한 행동. 큼지막한 손으로 한 마리씩 움켜쥔다. 거대한 녀석에게 잡혀 발버둥치는 혈귀들이 작은 들짐승처럼 작아보인다.
쩌억
그놈 가슴팍에 가로로 길쭉하게 그어진 선이 짝 벌어진다. 그건 입이다. 자글자글한 이빨들이 꿈지럭거리는 그 안에 두 마리를 우겨넣는다.
키엑
꾸악
애처러운 비명이 그치고 섬뜩한 파육음만이 들린다. 눈치를 채고 도망치려던 나머지도 잇달아 놈의 먹이로 전락한다.
우드득
뼈가 뒤틀리는 소리 뒤로 변화. 거대 혈귀는 조금이지만 더 커졌다. 이 놈을... 상대해야한다.
찰칵
탄창을 주워들어 갈아끼고 연사.
찰칵
재차 삽입 후 잔탄 소모.
어지럽게 박힌 총알들은 얼마쯤 손상은 입혔다. 타격 부위의 안구는 파괴되고 체액이 터져 질질 흐른다. 그러나 이는 전체로 보면 미미한 수준. 파문의 효과도 조금 퍼지다 그치고 만다. 그 흔적이 거무스름한 반점처럼 군데군데 생겼을 뿐.
카카카카카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그 소리는 거대 혈귀가 다문 아가리 사이로 툭툭 새나오는 공기가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쿵
걷는다. 다음 목표물일 이쪽, 시나즈가와 겐야란 인간에게 전신의 눈알이 빙그르 모여들며 빠르게 걷는다.
허리춤을 매만진다. 정확히는 거기 묶어둔 물건. 색은 거무튀튀. 실보다는 많이 굴고 밧줄이라기엔 꽤 가는 편인 줄을 둘둘 말아놓은 외형. 뜨개질용 실뭉치를 떠올리게 하는 외양의 물체는 대략 주먹 넷을 합쳐놓은 부피다.
- 폭발은 예술이라고!!
단언하던 대장장이. 그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며 떠넘긴 물건. 부디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떠맡듯 맡아두기는 했다. 옆의 다른 장인이 폭탄에 미친 놈이라며 혀를 차긴 했지만...
써보자. 결심하고는 달린다.
뭉치의 끝을 푼다.
푸슉 슉
아가리의 입김 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나마 다행히도 놈은 둔중한 축에 든다. 놈의 다리 주위로 고속 질주하니 한두 박자는 느리게 움직임이 따라온다.
후웅
밟으려는 듯 다리 한 짝을 드는 거인. 그 동작에 바람이 인다. 그놈을 지탱하는 다른 다리를 감싸고 돌며 줄을 늘어뜨린다.
쿠우웅
내리찍는 발의 충격음. 피하며 계속한다. 서너 바퀴 돌고 당긴다.
꾸득
매듭지어지듯 기둥같은 다리에 고정된 얼마쯤의 줄. 움츠리고 힘껏 도약하며 좌수의 단검을 꽂는다.
몸뚱이 겉면의 눈알들이 겐야를 직시한다. 따라붙는 시선을 무시하곤 진행한다. 후방 허벅지 부근에 매달린다. 팔에 힘을 주어 당기며 솟구친다. 거꾸로 튕기듯 더 높이. 단검을 뽑으며 다시 위쪽에.
슬핏 보니 지나온 자리에 그놈의 커다란 손바닥이 내리친 뒤. 몸에 붙은 날벌레를 잡으려는 그런 움직임. 다시 한 번. 어깨까지 올라선다. 목덜미.
휘청인다. 흔들어 떨어뜨리려는 의도일 것이다. 파문을 집중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며 뛴다.
휙
어깨에 걸치듯 뛰며, 줄의 반동으로 반대편 어깨로 안착. 반복하며 거대 혈귀의 목줄기에 칭칭 감는다.
손에는 이제 두 주먹 가량의 뭉치가 남았다.
고공 낙하.
주르륵 줄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오자
쩌어억
바로 앞의 아가리가 벌어진다. 등 뒤로는 거인의 양완이 으스러뜨릴 기세로 날아온다. 마침 입가에 인간이 다가오니 옳다구나 삼킬 생각이겠지만.
훅
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남은 뭉치를 아가리 너머 놈의 위장 속으로 던져넣는다.
칙
순간 과하게 집중한 파문이 맺힌 단검의 검촉으로 줄덩이에 생채기를 내면서. 완전히 놓아버린다. 떨어진다.
터엉
거대 혈귀의 두 팔은 품 안에 방금까지 있던 인간을 놓친 채 제 몸만을 애꿎게 때린다.
착지하자마자 달린다. 멀어진다.
놈은 그런 겐야를 뒤쫓으려 하나, 늦었다.
허리춤의 그 물건. 줄뭉치같은 그 물건은 폭탄 그 자체. 줄은 길게 뽑은 폭발물이라고 했다. 제작자는 이를 도폭선이라 불렀다.
쿠과과광
현란한 폭발. 폭풍에 삼켜진 거인의 목과 다리는 절단당한다. 특히 아가리로 던져넣은 양은 상당한 분량의 폭탄덩어리. 커다랗기 이를 데 없는 그 덩치가 한층 기괴하게 부풀어오르더니
뻐버엉
팽창 끝에 터진다.
푸샤아아아
폭우에 가까운 핏빛 비가 내린다. 몸에 묻은 잔해는 금새 치익 타더니 사라진다. 참담한 현장. 겐야는 오히려 좋았다. 혈귀가 죽을 수록 사람들은 더 살아남는다.
걸음을 재촉하며 장비를 점검한다. 소모품의 양만큼 몸은 가볍다. 그만큼 위기감이 더한다. 전투가 오래 지속된다면 대항할 무기의 소모도 극심해진다는 소리니까. 점검 후 장전. 빠짐없이 확인.
까아아아악
익숙한 울음소리가 메아리친다. 귀살대의 꺽쇠까마귀. 그들이 있다는 건.
"빨리"
합류할 사람들이 있다. 서두른다.
머리 뒤로 얹은 나비 장식. 찌르기에 특화한 일륜도. 나비의 날개를 닮은 옷자락을 팔랑이며 걷는 그녀.
"여기는..."
칼 손잡이에 얹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총총 걸어가던 그녀는 멈춘다.
비린내.
벽처럼 여럿 이어진 미닫이문. 문 손잡이에 손가락을 넣어 민다.
드르륵
자욱한 혈향이 훅 끼친다.
지극히 아름다울 연못. 연꽃이 떠있다. 물 위의 다리처럼 얼기설기 놓은 나무들. 그 위로 쌓인
"큭"
시신. 입술을 깨문다. 혈액이 똑똑 떨어져 연못물을 적빛으로 물들인다. 먹물이 수중에서 퍼지는 것처럼. 잔잔했던 마음이 일렁인다. 혐오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쩝쩝
쩝
살풍경의 가운데. 시신들이 방치된 길이 만나는 교차점, 그 중심에 뒤돌아앉은 인영.
쩝쩝
무언가 먹는다. 그자의 양옆으로 삐져나온 신체. 훼손된 그 일부가 푸들거린다.
화려한 복장. 일종의 예복같은 그 옷.
- 머리에서부터 피를 뒤집어쓴 것 같은 혈귀였어.
저놈. 저놈이구나.
자신의 언니가 말했던 그놈이 틀림없다.
"와아, 여자애네!"
이미 눈치챘을 텐데도 여유있는 동작. 돌아보는 그 입가는 피범벅. 손에는 뜯다 만 여성의 팔뚝.
참을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를 노려보는 충주 코쵸 시노부의 눈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도우마, 내 이름. 이야... 싱싱한 여자아이를 데려온 나키메 쨩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싱긋 웃는 그놈.
상현의 2, 도우마와의 불쾌하기 짝이 없는 대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