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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93편 (93/109)



〈 93화 〉93편

전투가 끝난 뒤.


일시적인 허탈 상태에 빠졌다. 단시간에 다량의 파문을 사용한 데다, 싸우며 입은 상처들이 괴롭힌다.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른다.

통증을 눌러참으며 탐지 범위를 넓힌 결과, 근방에 특별히 위협요소는 없다. 조금. 조금만 쉬자.


"...무...라타...씨"

희미한 음성. 옆으로 엎어진 채인 탄지로의 신체가 꿈틀거린다.


"움직이지 마라. 너나 나나 휴식이 필요해.  길은 바빠도 순서를 지켜야한다."


"...네...."

크고 깊게. 돌아누워 천장을 보는 탄지로에게서 숨소리가 들려온다. 살았다. 그토록 강한 상대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무라타 씨."

호흡이 전보다 안정된 그가 물어온다.

"아카자는... 죽었나요."


"...죽었다."

한동안 말없이 쉰다.

몸을 도는 파문이 느껴진다. 찢어진 살을 어루만지고 활기를 불어넣는다. 슬슬 움직일 만해졌다.

"으윽"

이쪽이 몸을 일으키는 걸 본 탄지로가 억지로 상체를 일으키려다 풀썩 넘어간다.


"도와줄게."

아마도 아카자의 공격이 남긴 후유증이다. 균형을 잡지 못하는 그를 부축해 일어선다. 그리고

"끄응"

"아니, 이럼 죄송한데... 제가 걸을"


"그냥 있어. 그나마  여력이 있으니 돕는 거고, 넌 도움을 받는 동안 회복에 집중해. 그게 돕는 거다."


탄지로를 들쳐업는다. 거동이 어려운 탓에 기운이 없는 그는 축 눌러붙는다.


까아악


꺽쇠까마귀 소리.

"부상자는 따라오거라아아!!"

메아리치며 앞서는 그 소리를 뒤쫓아 천천히, 점점 빠르게 걷는다.

복잡한 구조의 건물 사이를 뒤죽박죽 헤치며 나아간다.

"으앗! 어?!"

 나타난 이쪽의 기척에 놀라는 대원. 이내 사람, 같은 귀살대 소속임을 알아채고 표정이 개인다.


경계를 서듯 일륜도를 거머쥐고 선 대원 하나. 바닥에 누운 한 사람. 그에게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또 다른 한 명.

"젠이츠? 젠이츠가 다친 건가요?!"


등짝에서 탄지로의 탄성이 울린다. 바닥에 누인 자는  아는 사람이었다. 노랑 머리의 말많은, 졸면서도 신기하게 잘 싸우던 녀석. 아가츠마 젠이츠.

"그래. 상현의 6과 단독으로 맞붙어 입은 부상이다."


젖힌 상의 사이로 드러난 가슴팍부터 뺨에 이르기까지, 벼락을 형상화한 듯한 상처가 피어있다. 골은 깊고 상처는 점차 벌어진다.

"심하네."

"일단 혈귀 억제제는 써뒀다. 갈라짐이 계속되면 안구까지 찢어지겠지만."

구호와 치료 담당으로 보이는 그에게 맡기고자 탄지로도 옆에 고이 눕힌 상태. 탄지로의 낯빛이 창백해진다.

"살,   있는 거죠?"


"글쎄. 조치는 해뒀으니 그 뒤는 본인 팔자겠지."

단정한 머리의 대원은 능숙하게 처치를 이어가며 냉정하게 답한다.

그가 갖춘 도구함에는 척봐도 다양한 물품, 약품이 들어있다.

"그..."

"유시로. 유시로다.  말이 뭐지?"


"통증을 덜어줄 약도 있나? 회복을 돕는 그런..."

주먹을 집중 단련하며 사용했던 충주의 가루약을 떠올리며 묻는다. 조금이라도 수복 속도를 높일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그가 튕기듯 던져준 물건. 네모지고 길쭉한, 납작 막대 형태. 무슨 재질인지 매끄러운 겉면. 살짝 눌러보니 꿀렁대며 안에 액상의 뭔가가 들었다.


"통증은 가라앉고 편안함은 오래갈 거다."


단 맛에 미묘한 걸쭉함. 일러준 대로 위를 찢어 내용물을 빨아들이자 목을 넘어가며 퍼진다. 불길이 사그라들듯 통증이 급감한다.


한결 여유가 생기자 젠이츠의 상처가 눈에 든다.

"잠깐 봐도 될까."

혈귀술의 여파로 인한 균열. 그렇다면 상극인 파문, 그 재생력이라면 번짐을 상쇄하고 회복력을 돋울 수 있지 않을까.

젠이츠의 뺨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집중한다. 그저 소량. 이전의 심선맥 질주 수준은 필요치 않다. 극소량이면 충분.

전한다.


"대체 뭣하는 짓"

탄지로를 살피던 유시로가 놀라며 내 손을 붙잡으려 팔을 뻗는다.


치이익

"큿"

불에 덴듯 황급히 손을 거두는 그. 슬쩍 닿았던 피부는 그을렸다.


"너 설마..."


노려보는 그 눈. 무의식 중에 집중한 파문이 안개를 걷어낸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


"칫"

혀를 차며 뭔가 만지자 유시로의 화상과 눈이 되돌아온다.

"혈귀냐?"

"놀랄 것 없어. 나도 나름대로 무잔을 노리는 입장이라."

가까워지던 순간부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미약한 위화감이 있었다. 그게 이거였다. 유시로는 뭔가 술수를 써서 정체를 감춘 혈귀였다.

탄지로는 잠들고 경호하던 대원은 주위를 둘러보겠다며 자리를 비운 시점. 인간과 혈귀의 대화는 지속된다.

"무잔을 공격한 여성. 그분은 봤겠지. 가까이 있었다면 말이야."


키부츠지 무잔에게 손을 찔러넣은 그 여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분은 타마요. 나는 그분이 만든 혈귀지. 무잔 놈이 만들어낸 종자들을 제외하면 유일한 존재다. 인간을 귀신으로 바꾸는 건 무잔만 가능했거든."


서슴없이 일갈하며 무잔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시종일관 드러내는 유시로. 혼란스럽다.

"타마요 님의 적은 무잔. 그렇다면 나 또한 그놈을 적대하는 것은 당연."

이 자를 믿을 수 있는 건가.

설명에 따르면, 사전에 귀살대의 수장, 우부야시키 나리와 접촉이 있었고 얼마쯤 전부터 귀살대와의 협력관계를 이어왔다는 것이다. 유시로 자신은 타마요의 지시로 타 대원의 구호를 맡았고.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기까지 해야하냐며 툴툴거린다.

"...허튼 짓하면 죽인다."


"너야말로. 타마요 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방해하면 죽일 거다."


살벌한 입담을 주고 받은 후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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