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92편
센쥬로는 정신이 없었다.
"으아아아! 사부님, 형니임! 어디 계세요!!"
까마귀의 급보에 달려가다 뚝 떨어졌다. 건축물이 끝도 없이 뻗어나가는 공간. 어떻게 안착은 했는데.
"이게 다 뭐냐고요!!!"
온통 혈귀투성이다.
방금도 한 놈을 제압했다. 돌아서 길을 꺾는데,
크르륵
쿠우우우
울음소리를 흘리며 눈알을 번득이는 혈귀 무리와 마주친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이전에 상대했던 것들보다도 강한데 여럿이라니. 도주해야한다. 침을 꼴깍 삼키며 돌아선다.
쿵
크워어
길게 늘어진 눈알이 팽글 회전하는 괴물. 또 다른 녀석이 퇴로를 막았다.
"으으..."
식은 땀이 난다. 이토록 많은 수의 혈귀와 맞닥뜨린 적도 없다. 이겨낼 자신도 없다. 도망치지도 못한다.
"어떻게든...해야하는데..."
손가락이 떨린다. 다시 힘주어 칼을 붙잡아본다.
쿠와악
개중 한 놈이 펄쩍 뛰며 덤벼온다. 쩍 벌린 아가리로 토해내는 악취. 망설이면 죽는다.
파문의 호흡, 제 6형
파문연검
돌진해 온 녀석과 교차하듯이 스친다. 혈귀의 몸뚱이를 할퀴는 검흔. 기세좋던 놈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처박힌다. 전신의 주요 근육에 손상을 입고 쓰러진다. 다행히 수련의 성과는 있어, 그 정도의 파문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는 잡아낸다.
문제는 지금부터지만.
섣불리 나섰다 당해버린 놈에 다른 혈귀들은 잠시 멈칫하며 음울한 울음을 낸다. 그것도 잠깐. 슬그머니 움직이는 한 마리에 공명하듯 다른 놈들도 꿈지럭거린다. 그러더니 떼를 이루며 도약한다.
"위험한데..."
머리 한구석이 싸하다. 어쩔 도리도 없다. 살고 싶으면 싸우는 수밖에. 울며 겨자먹기로 검을 쥔다.
"으랴아아!! 비켜, 비켜! 이 몸 행차하신다!"
별안간 등장한 사람. 상의는 벗어던지고 머리에는 멧돼지탈을 뒤집어쓴 검사. 이가 다 빠진듯 기묘한 형상의 두 자루 칼을 꼬나쥐고 체공 중의 혈귀떼 중심에 난입한다.
짐승의 호흡, 제 5엄니
마구 찢기
공중에서 거세게 몸을 회전, 사방팔방으로 거친 칼질을 내뿜는다. 일방적인 도륙.
후두두둑
"읏차"
살점 몇 갠가를 붙인 채 내려선 그의 주위로, 갈려나간 혈귀의 조각들이 비처럼 내린다.
"아, 저, 저기..."
"음, 좋아좋아. 써는 맛이 아주... 어. 너는 그! 아 누구더라!"
센쥬로를 발견하고 버럭 소리를 터뜨린 그는 자신의 머리...로 보이는 탈을 움켜쥐고 괴로워한다.
"아, 그 강한 녀석! 레, 레, 레무리 오지로!"
"대충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네요. 그건 제 형님이신 렌고쿠 쿄쥬로. 전 동생인 센쥬로예요."
으음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내리친다. 뭔가 깨달음을 얻은 모양새다.
"그래! 그렇게나 강한 인간이 요녀석처럼 비실하고 쬐끄만할 리가 없지!"
"...맞긴 하지만요..."
한숨을 쉰 센쥬로는 문득 정신을 차리곤 서두른다. 빨리 합류해야한다. 한 명이라도 함께 해야 이 이상사태에 대응하기 수월해질 것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이노스케! 하시비라 이노스케다!"
"저 이노스케 씨. 다른 분들과 서둘러 합류해야할 것 같은데요. 여기 꽤 위험해보여서 도와드려야"
"좋은 방법을 알려주지."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며 사뭇 진중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노스케. 저도 모르게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된 센쥬로.
"닥치는대로 베고 죽인다. 혈귀들을 잡아족치다 보면 사람만 남겠지! 어때, 근사하지 않냐!"
"네... 틀린 건 아닌데..."
양손의 칼을 휘적휘적 흔들며 덩실 춤추듯 앞장서는 이노스케. 그 뒤를 축 처진 어깨로 센쥬로가 따른다.
"혹시 저희 사부님을 아시나요? 무라타라고..."
생각만 해도 든든해지는 이름. 센쥬로의 정신적 지주.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지만,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참기 힘든 이 불안도 싹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항상 자신을 지켜봐주던 겐야 형님도.
"뭐어? 초콜라타?"
"아, 네... 그냥 찾아보죠!"
해맑게 웃으며 센쥬로는 깔끔히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