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90편 (90/109)



〈 90화 〉90편

히노카미 카구라
원무 일섬

기본 검결인 원무에 젠이츠가 알려준 각력의 순간적 응축, 폭발. 아카자의 지척에 접근한 탄지로는 횡으로 칼날을 긋는다.


혈귀는 태연하게  사이, 빈틈으로 일권을 주욱 밀어넣는다.

"큭"


달려들던 때의 가속과 관성을  억지로 무시하며 방향을 튼다. 다리에 무리가 간다. 그래도 피하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환일홍의 수법을 써 신형을 흩트린다. 탄지로를 겨눴던 주먹은 허공을 찌른다.

파문의 호흡, 제 5형
파문질주 연타


 방이 묵직한 권격을 일순 십여 번 갈긴다. 쉽게 무시할 수 없을 위력. 그러나 아카자는 쉬이 받아치며 되레 그 이상의 수로 뻗어친다.

공세에서 수세로. 일방적으로 밀리다시피 하며 막기 급급하다. 저릿하다. 그러나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히노카미 카구라
벽라천


탄지로가 후방에서 아카자의 머리 위로 뛰어 기술을 펼칠 틈이 생겼다. 일륜도의 궤적은 태양을 그리고 테두리는 아카자를 가른다.


뻐억


"커헉"

팔꿈치로 가한 급습. 격통을 느끼며 밀려난다. 이조차 큰 움직임의 일부였던 것처럼 아카자는 자연스럽게

파괴살 각식
비유성천륜

거센 위력의 올려차기로 이어간다.


기술을 구사하던 탄지로는 멈출 새도 없이 얻어맞는다. 아카자의 공격은 자신의 육신을 돌보지 않는 형태.


스걱

칼이 다리를 세로로 파고들어도 상관없다는듯 거세게




탄지로를 날려버린다.

"악!"

손잡이를 놓지 않은 탄지로. 덩달아 뽑혀나가는 칼날. 쭉 뻗은 아카자의 다리는 피를 흩뿌리며 접힌다. 자상은 순식간에 되돌려진다.

초를 쪼갠 공방전.


얻어맞고 밀려난, 날아간  귀살대원은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상현은 고고히 서있다.

'틈이 없다.'

탄지로는 침음성을 삼킨다.

어디서, 어떻게 시도해도 감지한다. 가로막힌다. 배후, 사각에서의 공격도 어김없이 반응한다.

어쩌다 타격에 성공한들 대단치 않은 수준. 팔을 도려내도, 인간에게 있어서는 중상에 해당할 부상조차 수복한다.

방어는 절대적, 공격은 정확 무쌍.


시간이  수록 인간의 체력은 떨어져가고 급속도로 불리해진다.

지금도 누군가 싸우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도우러 가야 한다.

어찌 상대해야 하는가.

찾자.

탄지로는 고심하고 빠져든다. 이전에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단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맹렬하게.


단서는 분명히 있을 거다. 렌고쿠 씨와의 일전. 투기.


'조금 전 아카자의 입에서도 투기란 단어가 나왔어. 전의 싸움에서도.'

투기란 무엇일까.

이노스케는 말했었다.


- 얼얼하단 말이지. 적이 노리는 곳은.


하시비라 이노스케는 피부의 감각, 촉각이 대단히 예민하다.


어느 정도냐면, 전혀 돌아보지 않고도 등 뒤의 탄지로가 바라보는 방향이나 부위를 정확히 알아맞히는 수준이었다.


단순한 시선이 아닌 살기를 담은 공격, 해를 끼칠 의도의 행동은 더욱 감지가 쉽다 했다.


반대. 살의가 없는 자의 움직임은 읽기 어렵다. 이노스케는 탄지로, 젠이츠와 함께 묵었던 등나무꽃 문양 가문의 노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모르는 새에 주먹밥을 들고 자신의 뒤에 앉아있더라는 것이다.


- 살기를 내보이지 않고 다가간다면, 죽일 수 없는 녀석은 없을 거다!

투기. 아카자가  투기를 통해 모든 위해를 감지한다면. 투기가 살기와 같은 거라면. 나침반이 방위를 명확히 가리키듯, 인간의 급소로 자석처럼 빨려드는 아카자의 동세도 그 살기와 관련이 있는 거라면.


아버지는 생전에 말씀하셨다.


히노카미 카구라의 춤을 끝도 없이 추면서도 추운 겨울 공기를 아무렇지 않게 견디고. 긴 겨울 허기를  이겨 인가를 습격하던  곰, 사람보다 훨씬 큰 덩치의 금수의 목을 쳐내고. 그 모든 일을 해내면서도 어떤 감정의 기복도 비치지 않던 사람. 항상 온화하고 목석처럼 존재하던 아버지.


곰의 숨통을 끊던 순간에도 공포, 불안, 살의... 어떠한 감정도 품고 있지 않아보였다. 식물처럼.


내비쳐 보이는 세상.

허하고 병약한 그 육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일을 가능하게 했던 비밀에 대해 언급하며 나온 말.


소리를  들으려 눈을 감는 사람들이 있다. 시각의 차단으로 청각의 민감도를 향상시킨다.

몸의 구조. 혈관, 근육, 흐름과 동작, 감각. 그야말로 모든 사항을 머리에 넣고 익힌다. 집중한다. 원하는 움직임을 손에 넣기 위해 필요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잘라낸다. 그러면 투명해진다. 비쳐보인다.


몸놀림의 너머, 체내가 보인다.

조금  아카자의 일격. 예리한 올려차기는 틀림없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붕 떠있었고 피할 수 없었다. 없었는데 피했다. 빨려드는 듯한 불가피의 일격을, 무라타 씨도 미처 도와주지 못했던 순간에 회피했다.

피한다. 그저 하나의 사고에만 집중했다. 아무런 잡념도 위기감도 없었다. 한순간 발을 들였다. 내비치는 세계.


대장장이 마을에서 상현 한텐구를 베려했을 때. 분신의 심장 내에 위치한 그 녀석이 보였다. 아카자의 일격이 가해지던 찰나. 그놈의 결, 혈관과 근육이 맥동하는 내면이 보였다. 살격이 향할 지점과 시점이 또렷이 손에 잡혔다. 그래서 피했다.


회피에만 집중해서 다른 감각을 닫았다. 전에 없을 정도로 특이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감각.


이걸 다룬다. 구사한다.


무라타 씨가 상대하는 사이 익숙해진다. 아카자를 이긴다.











파괴살
난식


아카자의 매서운 공격이 퍼부어진다. 연타로 대응한다. 했다.


"컥!"

 방. 파문 집중으로 방어해도 상쇄하지 못한 여파가 온 몸을 할퀸다.

 번, 두 번. 교전할 때마다 아카자의 공격이 박혀든다. 놈이 이쪽의 공격에 적응하는 속도가 가속한다.


"이렇게... 하는 거던가?"

투웅


제대로 막았다 여겼다. 결과는 처참하게 나가떨어진 몸뚱이. 가볍게 손을 터는 아카자. 내지르는 주먹에 맞부딪친 혈귀의 주먹은 분명히 그 형태를 닮았다.


"확실히... 가하는 충격은 배가하면서 밀려나는 힘은 쇠하는군. 좋은 기술이다."


아카자는 방금 썼다. 그토록 오래도록 수련하며 신체 조건을 갖추고 시도해서 간신히 체득할  있었던 이중극점. 한 번도 써본 적 없었을 기술을 한  본 것만으로 사용했다. 그렇게나 강한데도 진화했다.


"선물을  보답으로, 잘 가라."


극심한 타격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상태. 애써 익힌 기술보다도 완성도 높게 구현해낸 아카자의 일권이 다가온다. 당한다. 뭐든 해야


히노카미 카구라
열일홍경




쾌속의 참격. 종으로 그려낸 원이 아카자의 손목을 스쳤다. 떨어진다. 잘려나간 손이.

스륵


곧장 솟아나는 손. 신체적 타격은 없어보이는 아카자.

베어낸 후의 자세 그대로 아카자와 마주  탄지로는 뭔가 다르다.

호흡의 소리, 머리색, 눈빛. 이마의 이글거리는 불꽃같은 반점은 더 진해지고 크다.

아카자도 조금 전과 또 달랐다. 눈은 똑바로 탄지로를 본다. 가라앉은 분위기.


실제로 상현은 경계하고 있었다. 탄지로의 변화. 아카자의 나침은 투기를 감지한다. 어린 아이의 미미한 기척조차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런데 방금은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탄지로의 투기, 공격의 행방을 읽어내지 못했다. 어린 아이보다도 미약한 투기. 극도로 흥분하던 이전의 탄지로와는 현격한 차이다.

죽여야 한다.


어떤 계기인지 알 수 없으나 탄지로는 성장했다. 싸움이 한창인 지금. 수백 년. 아카자가 바라마지 않던 지고의 영역에 다가가고자 자신을 갈고 닦은 시간. 얻어낸 강함. 이놈은 지금 그걸 뛰어넘었다.

히노카미 카구라
비륜양염


정면을 보고 대응함에도 어디를 향하는지 읽어내야할 나침의 반응이 없다. 투기가 없다. 순수하게 육안으로 대응한다.

혈귀가 되기 전부터 익혔던 기술. 아카자의 주먹을 우습게 본 검사들이 덤벼들 때, 그 검면을 거세게 때렸다. 방울 소리처럼 들리던 울림. 곧 검은 두 동강나고 자신만만하던 그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곤 했다. 이 기술을 방울 깨기라 불렀다.

원래라면 탄지로의 검도 예외는 아닐 터. 그러나 사라진 투기, 이어

피슷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검 끝에 상처를 허용한다. 종잡기 어려운 떨림이 목을 긁었다.


극도의 경계심이 치솟는다. 읽을 수 없다면 전부 때린다.

파괴살 종식
청은난잔광

순간적으로 토해진 충격파. 아카자를 중심으로 폭발한 도합  이상의 난타는 청은색의 잔상을 사방팔방으로 새긴다.

연격권을 사용해 최대한 막아내려 애써보지만, 속도가 차원이 다르다. 여지없이 꽂힌다. 막아내지 못한 타격은 사정없이 때려박힌다.

탄지로는 본다. 천천히 흐르는 심상의 세계에서. 무라타와 아카자. 모든 움직임, 피부 아래의 전부가 느리게 보인다.

아카자의 위력적인 난타를 전조부터 읽어내고 쳐내며 피한다. 비록 누구를 특정하지 않고 공간을 점하는 공격, 충격파를 살포하는 기술이기에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으나 힘은 남겼다.  번. 아카자의 핵심을 노릴 여력을.





'치명상은 피했다. 그러나...'


아카자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펼쳐낸 기술을 상회하는 위력으로 되갚아주며 계속 변화하는  녀석을. 어떻게?

막막하던 차, 이상을 감지한다. 나동그라진 자신을 웃으며 직시하는 아카자의 후방으로 탄지로가 접근해있다.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그 전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아카자는 태연했다.


"아카자, 지금부터  목을 베겠다!"

어처구니없는 선언. 무슨 심경인지는 모르겠으나, 감지를 전혀 못하던 아카자를 그냥 베었으면 될 것을.

이상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쓸 수밖에 없는 표현. 아카자는 뒤늦게 반응하고 움직였다. 탄지로 방향으로 자세를 취하고 팔을 둘러친다.

히노카미 카구라
사양전신

몸을 띄우며 회전, 공격을 회피한다. 동시에 공중에 거꾸로 뜬 상태 그대로 참격. 지면과 수평으로 지나간 검은 아카자의 목을 그대로 벤다.


틈이 벌어지며 혈액이 비산한다.


'아카자는 끊임없이 재생했다. 놓칠 수 없다.'

역시나 그놈은 분리되려던  머리를 두 손으로 붙들고 도로 접착시키려 한다.

파문의 호흡, 제 1형
황매화

터엉


혹시나 몰라 달려가던 탄력을 더해 머리통을 걷어낸다.

떨어져나간다. 허공으로 호선을 그리며 낙하하는 그것은 바스라지는 가루로 바뀌어 사라진다.

"드디어... 끝이야..."


탄지로는 검을 떨어뜨린다. 두 손은 부들부들 떤다. 호흡이 거칠고 낯이 창백하다. 어떤 변화인지는 모르나, 새로운 그의 시도가 그 몸에 부담을  것이다.

"탄지로!!"

몸. 때리고 지나온 머리 아래의 그 몸이 그대로. 머리가 없어졌는데 변화가 없다. 오히려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피를 뿜어내던 절단면을 메우는 살점들. 그 신체가 진각을 밟는다.

경련 탓에 움직이지 못하는 탄지로.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하다. 종전의 충격파가 남긴 피로때문에 이쪽도 움직임이 더뎌진 상황. 제  돕지 못한다.

후웅


뻐걱


머리를 잃은 그 몸이 돌려찬다. 탄지로의 다친 육신을.


"카하악!!"

벽에 옆으로 메다꽂히듯 충돌. 벽면이 으스러지며 거한 충격을 안긴다.

"아...아직..."


탄지로의 눈이 풀리고 돌아간다. 흰자위가 드러난다. 의식을 잃었다.




탄지로 쪽으로 한 걸음. 아카자의 몸이 움직인다. 그저 지켜보고 방관할 수는 없다. 막는다.


감지한 듯 무수한 권격을 때려오는 아카자. 아까는 둘이 막아냈다. 지금은 혼자. 연격권에 이중극점의 요결을 덧입혀 받아쳐보지만

쿠웅


결말은 내팽개쳐진다. 신음을 토하지도 못할 파괴력.

"약...자...죽인다..."

코 아래까지 재생성해낸 그놈의 입이 띄엄띄엄 단어를 토한다. 흉측한 단면에서 실지렁이들같이 자라나는 혈관이, 거슬러올라가며 남은 머리를 구성해내려 한다.

그놈의 발이 지면을 꾹 누른다. 압력만으로 우지끈 내려앉는다. 기술의 전조. 온다.

파괴살
멸식

콰앙


폭음. 튕겨나왔고 멀리도 떨어졌었다. 소리가 났다. 거의 동시에 정권이 지근거리에 존재했다. 폭발적 고속 이동. 공격. 끝에는 이제 막 벽과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지던 찰나의 내가 있다.

피하지 못한다.


재생한 머리. 아직 하나만이 생겨난 혈귀의 안구에 내 꼴이 비친다. 형편없고 다쳤고 공허한 표정. 희망도 미래도 아무 것도 없는 잃은 자의 얼굴.

안다. 강렬한 예감이자 현실이 될 결과. 아카자의 정권이 작렬할 자리엔  무엇도 남지 않는다. 내겐 막아낼 힘이 없다.

분하다.


그렇게나 노력했다. 했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다고 오판했다. 부족했던 거다. 상상을 넘어선 세월을 살았을 상현이 어마어마한 수련까지 했다. 이길  있을 리가 없다.


혈귀가 돼야 했나? 그렇게라도 강해지면 해결됐을까?


스승님. 사비토.  아이. 소녀.


'무라타.'

해맑게 미소지으며 불러주던 그 이름이 생각난다. 잘 어울리던 옷도.  위로 쏟아지던 핏물, 정신없이 안았던 그녀의 절단당한 머리도.


아니야. 아니다. 그것만은 아니야.


내가 약한  내 잘못이다. 지키지 못한 것도 결국 약했던 내 탓이다. 그래서 약한 자신에 분개하는  마음도 내 것이다.

살고 싶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서 혈귀를 잡는다. 그걸 바란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인간이다. 인간이어서 약하다. 인간이니까 후회한다. 그런 인간이라 노력한다. 인간인 채로 살고,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다.


제발. 누구라도. 아무도 없다. 나만 있다. 비참하고 처참한 나만이 있다. 도울 자는 없다고.

살려줘. 뭐라도 좋아.  번, 단 한 번. 기적이든 뭐든 상관없다. 신이라는 게 있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빌겠다. 하지만 그런 기연은 찾아오지 않음을 어디선가 직감한다. 그래서 돌이키고 후회하며 바란다.


내가 해왔던 모든 일.  하나하나가. 걸어온 발자국이 별이라면, 길 위의 흔적이 모이면 은하수. 살았다. 나는 살았다. 걸어오며 흘린 감정들은 오롯이 빛난다.

세상이 조용하다.


공기, 소리. 감지할 수 있는 정보들. 모두가 가라앉았다.

멍하니 본다.

여전히  앞의 주먹, 그 뒤의 아카자, 눈에 비친 상은 그대로. 정말 그대로다.

흘깃 본다.


탄지로가 벽에 박히며 나풀거리던 옷자락. 팔랑이던 순간을 박제해둔 것 같다.

위.


아카자가 폭사한 기술로 부서진 벽과 천장. 달랑거리다  떨어지던 잔해가 공중에 떠있다.

먼지  톨, 뿌연 무리가 형상을 바꾸지 않는다.

손가락. 까딱인다.


사물, 이외의 모든 것. 고정됐다.


멈췄다. 정지. 무엇. 무엇이.


움직임. 흐름. 시간.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홀로 움직인다.

흐르던 생명의 반짝임은 순백의 금속이 빛나는 것과 같으니.


형태가 없고 경계도 없다.

그 누구도 말해준  없고 어디서도 듣지 못한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입에서 흘러나온다.



파문의 호흡


무無형





"백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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