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88편
달린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뛴다.
- 긴급 소집!! 긴급 소집!! 우부야시키 저택 습격!! 우부야시키 저택 습격!!
귀살대의 지주와 대원들에게 급파된 까마귀들이 비명처럼 내지른 급보.
나리가 습격당했다.
"젠장!"
괴상한 물체를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 불안함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사태로 번질지는 몰랐다. 현재로서 최선은 뛰는 것.
평소 기밀로 다뤄지던 수장의 거처. 그 위치가 모든 대원들에게 알려져야했다. 위중하다.
숲을 헤치고 나오자 탁 트인다. 거대한 저택. 앞서 달려나가는 인영들. 지주들.
쿠아아앙
이어진 충격. 어마한 폭발.
"윽"
귓전을 때리는 폭음에 저도 모르게 손으로 귀를 덮는다. 후욱 끼쳐오는 바람. 타는 화약내. 살갗을 달구는 열기.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 어렵게 정면을 본다.
폭발의 진원지로 짐작되는 폐허의 중앙. 고고한 저택이 있었을 자리는 타다 남은 잔해들만이 너저분하다. 여전히 타오르는 불길.
누군가 서있다.
가시나무에 꼬챙이에 꿰인 것처럼 박제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그 자.
"대체 저건..."
말로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수준의 생명력. 혈귀이며 동시에 상상을 넘는 거대한 생명력의 덩어리. 직감한다.
"무자아아안!!!!!"
고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그 자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은 여성의 말대로, 키부츠지 무잔이다.
"나무아미타불!!"
암주 히메지마 교메이가 덤벼든다.
뒤이어 속속 모여드는 지주들.
"네 놈이냐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풍주 시나즈가와 사네미의 고함에 답하듯 암주가 부르짖는다.
"무잔, 키부츠지 무잔이다!! 녀석은 목을 잘라내도 죽지 않아!!!"
그의 말이 신호탄이 되어 지주들은 일사불란하게 기술을 펼친다.
연주, 수주, 사주, 암주, 풍주, 하주, 충주. 그들의 절기가 무잔의 주변을 점하고 노도처럼 쏟아지려 한다. 탄지로도 가세한다.
'무잔은 꼼짝 못한다. 지금. 그가 행동불능에 지주를 비롯한 전력이 집결한 이 때.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정면으로 붙으면 생존을 장담치 못한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한다.
"파문의 호흡, 제"
타악
부웅 하고 허공을 디디는 감각. 발 밑이 없다. 함정인가?
탄탄한 지면이었을 바닥이 기묘하게도 어느 건축물의 미닫이 문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게 활짝 열렸다. 내부는 끝없는 허공.
추락한다.
"네놈들은 개죽음을 당하러 여기에 온 거다!! 벌레같은 우부야시키의 개들을 처리하고, 인간 따위는 이 무잔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오늘 밤 증명해주마!!"
광소하는 무잔이 멀어진다. 한없이 떨어져내린다.
떨어지며 빠르게 주위를 훑는다.
무한하다시피 뻗어나가는 건물의 연속.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어디선가 봤을 법한 평범한 방, 건축물의 일부, 부속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좌우상하 모두가 뒤틀린 건물의 소용돌이.
으아악
끄아아악
퍼억 터져나가는 피보라.
근방에서 추락하던 대원들은 착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하거나, 이동하는 건물의 틈에 삼켜져 짓눌린다. 결과는 참혹하다.
집중하자.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저 아래, 이대로라면 끝도 없이 추락할 처지였을 낭떠러지 옆으로 두터운 목재로 형성된 난간이 보인다. 저걸 붙잡는다.
파문을 불어넣는다. 손에, 팔에. 낙하하던 여파를 견디고 멈추려면 충격을 견뎌야 한다.
터억
"크악"
정확히 짚었다. 다행히 놓치지 않고 손바닥을 난간에 얹고 손가락을 감아 잡았다. 그러나 충격이 가볍지 않다.
왼팔로 이어지는 어깨부터 옆구리까지의 부위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파문을 집중해둔 덕에 행동이 불가능해지는 수준의 부상은 피했다.
잠시 대기하다 힘을 주어 몸을 끌어올린다.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솟구치며 올라서, 넘어간다.
가벼운 통증은 금세 사라졌다. 재생의 효능. 파문이 가진 장점이다.
기척.
상방에서 고속으로 떨어지는 무언가.
"흐읍!"
다시 한 번 집중해 잡는다. 아슬하게 옷을 움켜쥔다. 귀살대의 제복이 튼튼함이 증명되는 순간. 쉬이 찢어지는 옷감이었다면 손아귀에는 천조각만 남았을 것이다.
"무라타 씨!!"
탄지로였다. 그는 긴장, 당황, 반가움이 뒤섞인 표정이다.
"도와주셔서 고맙"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뒤로 나타난 형체.
물의 호흡, 제 1형
수면 베기
힘줄돋은 커다란 손.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탄지로의 머리를 쥐어터뜨리려던 건 혈귀였다. 그는 침착하게, 거의 반사에 가까운 대응으로 피하며 일격을 가한다. 뿔이 솟고 흉측한 이빨을 한 대가리가 베여 바닥을 구른다.
잡스러운 혈귀가 아니다.
분명 생김새는 인간의 이성과 외형 따위는 오래 전에 잃은 짐승. 그런데도 생긴 것만은 그간 봐온 잡졸급의 혈귀일 터인 그것은, 상당한 수준의 생명력을 띠고 있다.
방심할 수 없다.
"탄지로!"
어리둥절한 그의 옆, 방금 베어낸 머리통과 몸통이 스러진 위치. 그 앞의 거대한 문이 개방되며 쏟아져나오는 혈귀 떼.
즉각 대응한다.
물의 호흡, 제 6형
비틀린 소용돌이
탄지로가 몸을 격하게 틀며 회전하는 참격을 몸에 감는다. 달려드는 혈귀는 갈가리 찢긴다.
수는 꽤 되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하나하나의 권격에 힘을 싣는 연타. 그보다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연격이 적합하다. 성장한 지금의 자신이라면 이 정도의 힘이면 맞을 거라는 계산이 선다.
파문의 호흡, 제 7형
연격권
두 팔을 변형해 후려갈긴다.
탄지로의 검권의 틈을 비집고 나오려는 것들을 견제하며 덩어리처럼 뭉쳐나오는 무리의 표면에 신속한 난타를 뿌린다.
키에엑
탄지로의 일륜도, 파문이 실린 주먹.
떼거리는 단숨에 제압당해 소멸한다.
"우왓, 무라타 씨! 그건 대체 무슨...?"
내 주먹을 바라보며 탄지로가 탄성을 터뜨린다.
"혈귀는 태양이나 일륜도가 아니면 죽이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내 기술을 본 적이 없다.
열차 임무에서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싸우느라 마주치지 않았다. 함께 전투한 젠이츠는 잠든 채 싸웠고, 네즈코는 혈귀라 봐도 뭐가 뭔지 모른다. 목격자는 없는 거다.
암주도 직접 본 일은 없고, 겐야나 센쥬로는 하루종일 수련하느라 바빴다.
의도치 않게 비밀이 지켜진 셈이었다.
"...구사하는 호흡의 특성이야."
"히야... 우로코다키 씨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모로 가도 목적지만 가면 된단 말이 있다. 뭔 짓을 하건 지금은 혈귀를 상대하는 게 최우선. 탄지로도 더 이상의 의문은 없이 동행한다.
"으아앗!"
"조심해! 떨어진다!"
"아, 네! 집중!"
추락할 뻔한 탄지로는 모서리를 지렛대삼아 몸을 튕겨올린다.
수시로 변하는 구조물. 어떤 의도를 지닌 것처럼 일행을 분리시키려는 듯한 위치의 장애물을 생성해낸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복도를 달려나간다.
"다른 분들과, 어서 합류해야해요!"
동감이었다. 현 상황에서 전력의 분산은 위험하다.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
진동.
디딘 바닥면을 통해 흔들림이 느껴진다.
쿠과과과
굉음이 가까워진다.
"탄지로, 위다!"
내지른 동시에
콰앙
천장이 터져나가며 뭔가 뚫고 나온다.
인간의 형상. 강대한 생명력. 놈은 다리를 쭉 뻗어 세차게 내리찍어온다.
파문을 양 팔에, 주먹에 집중한다. 교차한다. 풍주의 목도를 받아낼 때 취한 자세. 그 때보다도 파문의 양은 수 배 더.
쩌엉
그놈의 발꿈치가 만전의 태세를 취했던 교차지점에 꽂히자, 육중한 쇳덩어리와 충돌하는 감각이 인다.
꾸웅
어찌나 충격이 강한지, 디딘 바닥이 움푹 발모양으로 패이며 내려앉는다.
주먹과 손목에서 막아낸 타격의 여파가 등허리 다리로 찌르르 쓸고 지나간다.
"커억"
간신히 숨을 내쉬자, 그 소리는 신음과 닮아있었다.
"호오."
그 자는 타격의 반동을 이용해 뒤로 빙글 돌며 떨어진 거리에 착지했다.
얼굴과 드러난 상반신, 팔에 기묘한 문양을 그린 녀석. 급이 다른 혈귀.
놈은 한자가 아로새겨진 그 눈을 굴리더니 이채를 띤다.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너같은 약자가."
탄지로는 극도로 흥분해있었다. 죽일듯이 노려보는 눈빛은 그에게서 보기 어려웠던 모습.
"저 자를... 알고 있냐?"
놈의 가격이 가져온 충격을 수습하며 물었다.
"저 놈은... 렌고쿠 씨를..."
이를 부득 갈며 탄지로는 힘들게 내뱉는다.
염주 렌고쿠 쿄쥬로. 열차 임무를 끝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 그 강력했던 지주에게 치명상을 입힌 녀석이 바로 이 놈인가.
상현.
두 글자가 뇌리를 스친다.
"조우했습니다!"
전대 염주 렌고쿠 신쥬로와 은퇴한 음주 우즈이 텐겐이 삼엄하게 경비 중인 모처의 안가.
내부에는 세 사람이 앉아있었다.
복잡한 도면을 실시간으로 그려나가는 소년과 두 소녀.
어린 나이로 당주의 자리를 이어받은 우부야시키 키리야. 그 옆을 지키는 카나타와 쿠이나.
그들은 언뜻 눈의 형상을 그린 듯한 종이를 머리에 부착하고 정보를 집약하며 지시를 전달해나가는 작업 중이었다.
귀살대에 합류한 혈귀 타마요의 종속인 유시로. 그의 혈귀술을 빌어 감시와 정보에 유용한 망을 구축했다.
귀살대의 잘 훈련된 까마귀들이 무잔의 무한성을 누빈다. 새들에게도 동일한 장치가 붙어있다. 까마귀들의 시선이 곧 지휘하는 키리야 일행의 눈이 된다. 까마귀들은 일선에 갖가지 정보를 알리고 지시를 전달하는 통로 역할도 해낸다.
변해가는 내부의 구조를 시시각각 그려나가며 상황에 대처한다.
카나타의 붓을 든 손이 멈칫한다. 떠올린다. 따뜻했던 가족. 아버지, 어머니, 두 언니. 그들을 앗아간 폭발. 크나큰 희생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무잔.
막막함이, 답답함이 작은 마음을 짓누른다. 시야가 흐리다. 뜨거운 물기가 눈을 적신다.
"손을 멈추지 마라, 카나타."
"...네!"
정신을 차리는 소녀. 울음을 삼키며 전해지는 상을 그린다.
"쿠이나, 조우한 대상과 마주친 이들은?"
"상현의 3, 아카자. 현장의 대원은 탄지로와 무라타입니다. 시급히 다른 지주를 추가 투입해야하는 것이!"
키리야는 판단한다. 가까운 위치의 인원은 없다. 다른 전력도 저마다 위기와 맞닥뜨려 도움을 줄 상황도 아니다.
"어렵다."
"하면! 이들만으로는 상대가... 후퇴를 지시하는 편이!"
눈가가 붉어진 카나타가 다급하게 의견을 개진한다.
상대는 상현. 그것도 상위. 지주가 아닌 이들로는 힘들다. 어찌보면 타당한 건의.
키리야는 조용히 입을 연다.
"아니, 강행해. 그들이 상현을 상대한다."
"오라버니!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으실 건가요?! 이대로는 무의미한..."
당황한 나머지 거칠게 항의하는 쿠이나에게 키리야는 굳은 눈으로 답한다.
"우리는 지지 않아. 이긴다. 그들은... 강하다."
"아카자아아아아!!!!"
탄지로의 고성이 울리며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