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5편
험악한 분위기의 대련.
그 후 풍주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보였다.
"여기서 있어봐야 낭비겠지. 가라."
의외로 시원하게 통과시켜줬다. 하릴없이 묶여있기보단 이 편이 낫다. 어쨌든 수련 시간을 늘릴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나무아미타불... 다른 시련은 무사히 지나왔나보군..."
암주의 시련이었기 때문이다. 합동 훈련이 임박한 날까지도 밥먹듯 수행하던 일과의 되풀이다.
"으아아아, 추워죽겠어!"
"여기 바위를 안아보도록 해... 따뜻하다고..."
폭포수 아래 수련에 매진하던 이들이 하나둘 참지 못해 이탈, 온기가 도는 바위에 들러붙은 이끼 꼴이 되어버려도
솨아아아
나는 견딜 수가 있었다.
이제는 손쉽게 삼각을 넘어, 얼음덩이같던 물줄기를 뒤집어쓰면서도 한 시간을 향해 전진 중이다.
"저 사람 죽은 거 아냐?"
"야, 진짜면 얼른 깨워야지!"
수군거리는 대원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자 깜짝 놀란다. 오래 해오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불경을 외지 않았는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니 위기 상황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이어서 통나무 짊어지기.
예전에는 일단 등에 지고 몸을 일으키면 옴짝달싹 못하다 내려놓기도 했다. 이제는 한결 여유가 생겨서, 지게를 지고 나뭇가지들을 나르듯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는 게 가능했다.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해도 통증이 없다.
바위 밀기.
기억과 감정, 이걸 한데 뭉뚱그린 심상. 떠올리고 몸에 힘을 준다.
반복동작.
최근 겐야도 찾은 듯했다. 그에게는 불경을 외는 것이 반복동작의 시작이었다.
나 또한 내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고 적용했다. 그리고 꾸준히 해왔다.
구구국
이제는 큰 무리없이 밀 수 있다. 느리지만 끊기지는 않도록 민다.
"나무아미타불..."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암주의 개인 수행이 끝나길 기다린다. 시간에 맞추었으니 곧 끝난다. 뜨거운 모래를 이용한 주먹 단련.
이상한 물체가 잡혔다.
눈알이 걷는다. 나무 그루터기 옆 풀숲에서 언뜻 보인 그것은 충혈된 인간의 눈이 연체동물의 다리같은 걸 몇 개인가 달고 거미처럼 기어다니는 형상이었다.
휙 낚아채 손아귀에 파문을 집중하자 가루가 되어 바스라진다.
肆. 눈알에 새겨진 글자였다.
"방금 하나 당했습니다."
모처.
비파를 든 여인이 정좌해있다. 입술, 코, 그 위에는 커다란 눈 하나. 외눈에는 당해버린 종자와 같은 한자가 자리잡았다.
"상관없다. 계속 진행해. 나키메."
안락한 의자에 뒤돌아앉은 남자. 그는 손에 커다란 종이를 펼쳐들고 유심히 짚어간다.
"여기. 그리고... 이 부근인가. 범위를 좁혀야겠어. 현재 진척도는?"
동료들로부터는 비파녀라 불리는 상현의 4, 나키메. 당해버린 상현의 공석을 채운 그녀가 입을 연다.
"위치 파악이 된 사냥꾼 놈들은 대략 육 할. 아직 태양을 극복한 아이는 찾지 못했습니다."
"성실하구나."
"영광입니다."
"미탐지 구역을 중심으로 찾도록."
"알겠습니다."
나키메는 그녀의 뒤, 광활한 벽에 고목의 뿌리처럼 뻗어나간 검은 머리카락을 조금 더 늘리며 대답했다. 파견한 종자들을 이동시킨다. 찾는다.
"네즈코, 우부야시키..."
언젠가 탄지로가 마주쳤던 만악의 근원, 키부츠지 무잔은 중얼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암주가 물러난 자리. 주먹을 내리꽂는다.
빠짐없이 반복해온 일과. 최근 합동 훈련의 여파로 부족했던 양을 채우듯 성실하게 임한다.
주먹을 골고루 다지는 단련. 처음에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손을 잘라내고픈 충동이 일었다. 단단해지고 나서는 큰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만하면 슬슬."
직접 타격을 가할 주먹. 받쳐주는 신체. 전신을 감도는 파문. 시도해보자.
늘상 밀던 바위. 그 앞에 선다.
마음은 고요히. 자세는 굳건하게.
목표를 응시하며 주먹을 쥔다.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총 네 개의 손가락의 앞,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두 번째 관절의 앞은 모두 접고 주먹을 뾰족하게 세운다.
파문을 날카롭게 가다듬자. 정확한 순간에 정확하게 움직여야한다. 주먹에 힘을 불어넣는다.
"흡!"
그대로 바위 정중앙에 내지른다. 세운 주먹이 더없이 딱딱한 표면에 닿는다. 미미한 충격, 저항. 바로 이 때, 주먹을 온전히 움켜쥐듯 꺾어 한 번 더 친다.
극히 짧은 순간 충격을 상쇄함과 동시에 이차로 타격을 우겨넣는다.
꾸웅
처음 닿은 부분의 미통과 달리 다음의 가격에서는 어떠한 통증도 없었다.
쩌억
바위는 실금에서 틈으로, 깊은 골로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다 갈라졌다. 조각난다.
첫 시도. 괜찮은 결과. 다듬으면 좋은 기술이 될 것이다.
권사에게서 전해받은 타격기, 이중극점의 요령 습득.
손바닥을 펼친다. 바라본다. 상처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힘껏 움켜쥔다.
"준비는 완전히 갖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