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84편
풍주의 시련은 무한 대결. 이름은 거창하나 내용은 단순했다.
"다 덤벼!"
풍주 시나즈가와 사네미가 소리친다.
"으아아!!" "이얏!" "우악!"
그를 둘러싼 다수의 대원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으랏차아아!!!"
풍주의 회오리치는 듯한 검격에 우수수 나가떨어진다.
이걸 반복한다. 구토를 하고 실신하는 이가 몇 명인가 생기고 나서야 휴식이다.
'그럴 만도 했네.'
풍주의 도장에 다다르기 직전 마주친 인물, 아가츠마 젠이츠.
그는 도장으로 접어드는 골목 어귀에 숨어있었다. 그 존재를 감지하고 먼 발치에서 무슨 일인가 관찰했다.
탄지로가 나타나 두리번거리다 그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섰다.
"여기 있었구나, 젠이츠! 한참 찾았어! 시나즈가와 씨가 기다..."
"아아악! 왜 찾아낸 거야! 기껏 도망쳤더니! 기척을 숨기고 도마뱀처럼 납작 숨어있었는데에에, 이 배신자가!!"
애써 찾아온 탄지로가 말을 걸자 젠이츠의 얼굴은 마치 저승사자라도 본 것처럼 죽상이 되었다. 난처한 표정의 탄지로 뒤로
"여기 숨었구나, 이 쥐새끼가..."
퍽
"깨액!"
나타난 풍주가 내리친 수도에 제압당한 젠이츠. 실신당한 채 탄지로에게 업혀간다.
"오늘도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네놈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네놈을 인정하지 않았어. 네즈코를 찔렀으니까!"
풍주와 탄지로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탄지로의 동생 네즈코의 존재를 귀살대에서 공인받기전, 그러니까 무해함을 인정받는 과정에서 풍주가 네즈코를 수 차례 찔렀다고 했다.
귀살대는 하나같이 혈귀라면 치를떠는곳이니 그럴 법도 했다. 감정의 앙금이 남은 상황인 거다.
도장에 들어서서 훈련을 지켜보니 젠이츠가 도망칠 만도 했다. 한도 끝도 없는 무모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풍주 본인만을 위한 훈련이다.
합동 훈련의 주목적은 일반 대원의 전력 상승과 지주 개인의 반점 발현.
풍주의 방식은, 떼로 덤벼드는 대원의 무리를 쳐내며 심박수와 체온을 상승시키기에는 적합하다.
그러나 개별 대원의 입장에서는 단순 체력 상승 이상의 의미는 크게 없어보였다. 일대일이 아닌 다대일. 개인별 할당 시간이 적다. 상대의 역량을 온전히 받아내는 일대일이 아니고서야 실전 감각 체감은 명목상의 일일 뿐이다. 지금의 이 형태는 대원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지주의 격차를 느끼고 그보다 강할 상현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심어주는 효과 외에는 특별히 남을 게 없다.
방침을 정했다. 집단에 섞여 적당히 훈련하다 소리소문없이 탈출한다. 탈주가 아니라, 대강의 합격선 정도만 노린다. 그밖의 여력, 시간은 자신이 익혀온 것들 되짚어보고 개선할 부분을 고민하는 데 투자한다. 흐르는 물처럼 묻어갈 요량이었다.
며칠인가 지났다.
"이야... 역시 풍주님이야. 강하다니까."
"그러게나 말야. 내일은 나아질지... 후..."
"힘내! 다들 힘들어하잖아. 너만의 문제가 아냐."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흩어지는 대원들. 그날도 훈련이 그렇게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어제 미진했던 구간을 다듬어야겠다.'
할 일을 떠올리며 돌아갈 채비 중이었다.
"어이, 강아지."
주변을 둘러본다. 지나가는 견공은 없다.
"아니... 꼬리 내린 개새끼인가?"
바보라도 대번에 알아챌 정도로 바로 앞에 서서 내려다보니 외면할 도리가 없다.
"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꽁지 빠져라 도망만 다니는 꼴이 개새끼 싸움지고 꼬리 축 내린 꼬라지랑 다를 게 뭐냐고."
풍주는 아마도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는 듯했다. 그의 도발적인 언사에도 정말로 아무 생각도 안 들어서, 별 반응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재미도 없군."
혀를 찬 그는 화제를 전환했다.
"듣자하니... 네놈이 그 호흡인지를 가르쳤다던데. 시노부가 그러더군."
충주 코쵸우 시노부의 언질. 사실 그 후에도 작은 사건이 있었다.
"형님!"
시나즈가와 겐야가 찾아왔었다.
"할 말이 있어... 사실"
"친한 척 말 걸지 마라. 그리고 네놈은 재능이 없으니 당장 귀살대를 그만둬라."
겐야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풍주는 내쳤다.
"아, 아니 난 형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이제 호흡도 배웠어! 얼마 전에는 임무에서..."
"아아. 들었다. 회의에서 들었지. 뭐더라. 총인지 일륜도 말고도 잡다한 장비들을 썼다지?"
풍주의 선득한 시선이 겐야에게 꽂힌다.
"넌 그렇게까지 주렁주렁 달고 다녀야 제 한 몫을 할까 말까한 놈이란 거다. 그러다 금방 죽겠지. 오래 살고 싶으면 귀살대를 나가라. 발악하는 꼴이 역겨우니까."
"겐야 말인가요?"
"그만하면 한가락 하는 녀석같은데 왜 제대로 안 하는 거냐?"
"득이 없으니까요."
"앙?"
"떼로 덤벼서 뭐합니까."
나는 훈련을 보며 느낀 점을 이야기한다.
"풍주님이야 집단을 상대하며 체력의 한계를 자극하고, 그것이 반점 발현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원들은요? 그들은 머릿수만큼 쪼갠 정도밖에는 대련 시간이 없으니... 훈련은 유명무실한 거죠."
잠자코 듣던 풍주.
"그래서."
그가 노려본다.
"일대일로 붙고 싶다?"
"...부정은 안 하겠습니다."
"오냐, 원대로 해주마. 칼 들어."
그는 목도를 하나 던져주며 자신의 목도를 치켜세운다.
"전 쓰지 않겠습니다."
제 주력이 아니니까요. 란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말에 가로채이듯 막혀버렸다.
"보자보자하니까 이 새끼가... 검 따위는 필요없다 이거냐?"
풍주의 얼굴에 투둑 핏줄이 불거지고 손가락이 꿈틀댄다.
"그 오만한 태도가 어디까지 갈지, 근거 좀 보자."
미처 오해를 풀 틈도 없이 그가 짓쳐들어온다. 문답무용.
바람의 호흡, 제 1형
진선풍 깎기
거센 소용돌이가 지면을 타고 쇄도하는 형상. 꽤 거리를 둔 터였을 그가 사라졌다.
뒤.
풍주의 참격이 지나간 자리는 튀어오른 돌자갈이 공중을 수놓고
'윽'
회피하던 도중 칼 끝이 닿은 팔뚝엔 아릿한 통증이 남았다.
빠르다. 그 움직임은 대원들과의 일전이 장난이라 여겨질 만한 수준.
"놀라긴 이른데!"
광기어린 표정. 쾌속의 검격을 몇 번이고 안겨온다. 작은 동작으로 빠르게. 연달아 날아드는 난도질.
슬쩍 몸을 틀어 피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비교적 단련이 된 주먹에 파문을 집중해 막고 또 막는다.
따다다닥
손등으로, 손날로. 그동안 해온 수련이 통한다. 굉장히 빠르고 파괴력있는 검.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큰 타격없이 막아내며, 움직임의 결을 감각으로 따라잡는다.
슈륵
공격의 변화.
풍주는 목도가 아닌 발로 바닥을 쓸듯 둥글게 휘젓는다.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았다면 놓칠 뻔한 변수. 몸을 후퇴한다. 걸려넘어지지 않도록 거리를 벌린다.
팟
다리에 힘을 주어 허공으로 솟은 풍주. 그가 수직으로 거세게 내려벤다. 낙하의 가속이 더해진 공습.
땅
두 주먹을 교차해 그 사이로 끼워넣듯 받아낸다.
탁탁
거리를 다시금 벌린 풍주.
"제법인데. 이건 어떠냐!"
그가 전신에 힘을 주더니 슬쩍 뛰어오른다. 손의 목도가 크고 작게 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바람의 호흡, 제 5형
늦가을 재넘이
몰아치는 돌풍. 검이 그린 원은 번져가는 파문이 되고, 한데 모이니 거센 기세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흉험해진다. 사방을 점한 궤적의 변동. 휩싸이니 더는 견디기가 어렵다.
신속하고도 수많은 검의 변이. 받아내려면 이쪽 또한 빨라야한다.
시험해봤고 가능성을 얻었으며 수련한 결과물. 그걸 쓴다.
뚜두둑
두 팔의 관절을 늘린다. 파괴력보다는 속도에 집중한 연격기.
투두두두두
전방에 쏟아붓는다. 무수한 타격으로 목도가 그리는 선을 잘게 부순다.
"너 이 새끼, 진짜는 따로 있었구나."
파스슷
풍주의 손에 들린 목도는 형체를 잃고 손잡이만이 남아있었다. 목도가 내구 한계를 못 이기고 부스러진 것이다.
장내는 움푹 파인 흔적, 흩뿌려진 돌, 흙먼지와 잔해로 엉망이다.
휙
부서진 목도를 던져버린 풍주.
"주먹 좀 쓰나본데. 그 기술은 이름이 뭐냐?"
어깨와 관절을 수축해 끼워맞추며 대답한다.
"연격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