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83편
사주와 누군가 상대한다. 훈련장은 삽시간에 둘 사이에 오가는 검의 궤적으로 뒤덮인다. 묶여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떤다. 저 칼 끝이 자신에게 닿지 않길 빌면서.
콱
"우으읍!"
방금도 사주의 상대였던 대원의 목도가 구속당한 사람 하나를 후려쳤다. 아마 주변 사람을 일일이 고려하다가는 사주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움직인 모양인데.
"이놈 대신 네가 묶여라."
"안 돼!"
그 선택은 패착이었다. 기절해 실려나가는 대원. 그 뒤로 남겨진 사람, 검격으로 환자를 만든 장본인은 세상 허망한 표정으로 서있다 고개를 떨군다. 그의 잘못된 선택이 한 사람을 병동으로 보내고 그 자신을 속박당하게 만들었다. 비록 목도를 사용한다지만 맞으면 부상을 면치 못하는 위험이 도사린다.
묶인 이들은 대체 왜 공포에 떠는가. 공포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주의 훈련장을 장악한 공포는 말하자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들지 모른다. 기이하게 꺾이는 사주의 검로는 예측을 불허한다.
분명 그가 멀리 있다 느꼈는데 코앞으로 칼날이 스쳐간다.
바로 근처에 있는데도 단 한 번의 칼질이 향하는 법이 없다.
사주의 공격에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은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예상이 힘든 검의 움직임은 결국 대련 상대를 향한다. 그럼 그 상대는 자신의 목도로 부딪혀올 수밖에 없다. 높은 확률로 사고는 검술이 어설픈 도전자쪽에서 일어난다.
게다가 묶인 이들의 시야는 한정적.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이 사주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렵다.
치명적이고 위험할 부상의 순간이 알지 못하는 때와 장소에서 닥쳐온다. 두렵기 짝이 없다.
그래서 묶인 모두는 촉촉한 눈망울로 자신만은 아니기를 빌고 있는 것이다.
'파문 수련에 대단히 좋은 환경이다.'
내 판단이었다. 묶인 채 생각한다. 신체의 단련, 근육의 증강과 같은 부분은 대체로 훈련 방식들이 다양하게 확립되어있다.
파문은 어떨까?
사실상 이 땅에서, 이만한 진도로 파문을 수련한 자는 자신이 유일무이. 보고 배우고 따라할 대상이 없다.
전투에서 유용한 파문 탐지나 상대의 빠른 움직임에 대응하는 파문의 유동적인 운용, 순간순간의 집중과 흩어짐. 그 감각을 수련할 방법을 고안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소가 최적이다.
전신의 감각을 끌어올리고 집중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공격.
사주와 대련 상대의 위치, 그들의 동작, 휘두르는 목도, 흐름, 공기의 변화, 되도록 많은 부분을 감지한다. 작은 단서조차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시각, 청각, 후각, 미세하게 공기가 흔들릴 때 옷감, 살갗에 와닿는 그 변화. 최종적으로 파문으로 관조하듯 광경을 그린다.
쉬익
온다.
왼쪽 어깨. 짧은 시간, 순간적으로 타격이 가해질 부위에 파문을 빠르게 모은다.
콰악
"으악, 제, 제발 한 번만!"
"쓸모없는 녀석. 너도 묶여라."
방금 내게 가한 검격으로 처벌받게 된 그의 표정은 차마 눈뜨고 봐주기 어렵다. 눈을 감는다.
전혀 아프지 않고, 되려 공격을 튕겨내는 듯한 느낌마저 있었다.
물론 목도. 그 정도뿐인 공격이다. 그래도 소득은 있다.
앞으로 상대할 혈귀들은 강하다. 상현급이라면 더더욱. 파문을 다루는 섬세함, 감각의 민감도를 더 키운다면. 인간의 몸으로 세월의 한계를 넘어선 괴물들의 공격을 받아냈을 때, 부상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춰 움직일 시간을 벌 수 있다. 애초에 받아내지 않고 상향된 감각의 도움으로 피할 기회를 더 많이 얻을지도 모른다.
우연으로 얻은 소중한 기회. 헛되이하지 말자.
다른 이들이 묶여 두려움에 떠는 동안 나는 가만히 있었다. 마치 소리내지 않는 바위라도 된 것처럼. 그저 집중한다. 몸은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다만 감각만은 능동적으로 정보를 모으고 현장을 탐색한다.
하루.
이틀.
사흘.
보고 느끼고 알아내는 범위가 확장한다. 먼지가 쌓인 그림 위를 조금씩 털어내듯, 점차 선명해진다.
"무라타 씨?!"
크게 놀라는 목소리. 고개를 들자 카마도 탄지로가 있었다. 그를 안심시키듯 눈인사를 한다. 탄지로는 무언가 결심한 낌새다. 결연한 표정. 목도를 붙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탄지로는 강했다. 음주와 함께 했다는 유곽에서의 임무, 겐야가 함께 한 대장장이 마을에서의 전투. 두 차례나 멀지 않은 간격을 두고 상현과 마주한 경험이 급격한 전력 상승으로 이어진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의 움직임은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가 있었다.
허나 사주는 그보다 강했다. 종잡을 수 없는 검의 궤적, 교묘한 동작. 오리무중이다.
처음 탄지로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런 상태는 나도 많이 봐왔다. 이전에 거쳐간 대원들 또한 그랬으니까. 팽팽한 긴장을 못 이겨 섣불리 덤비다 타인을 상처입히고 묶인 이도 여러 명.
그는 달랐다. 천천히 분위기에 녹아들며 수비 위주로 탐색전을 펼쳤다. 공간에 익숙해지고 머무른 시간이 길어지자 신중한 반격도 시도한다. 물론 실패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탄지로의 입장으로부터 나흘.
사주의 공격을 제대로 피하며 반격했다. 탄지로의 움직임은 정확했다.
슥
사주의 옷소매를 베었다. 공격이 닿았다. 한순간. 나는 그 일련의 움직임들을 읽을 수가 있었다. 어렴풋하게나마 파문의 감각이 사주의 영역에 닿은 것이다.
"가라, 쓰레기. 칸로지와 친한 척 말 섞지 마라."
사주의 말에 난처한 표정으로 탄지로는 내쫓기듯 퇴장했다. 나가면서도 그는 이쪽을 향한 시선에 미련을 두었다. 눈을 한 차례 깜박여주고 나서야 탄지로가 사라졌다.
식사, 음료,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 주위의 묶인 이들이 수 차례 교체되는 동안 그저 가만히 지켜본다. 사주의 움직임, 경로, 모든 부분을.
탄지로가 물러가고 사흘, 내가 묶인 지 열흘이 되었을 때.
슈우우욱
기이하게 꺾이며 뻗어나가는 사주의 검, 그 결이 보였다. 하나의 물체를 이리저리 돌려보듯 세밀하게 투시하는 괴이한 느낌. 만져질듯 선명하게 보인다.
"뭐야. 너 아직도 있었나? 대단한 놈이군."
목석같이 관찰에만 집중하던 나를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듯하다. 사주 이구로 오바나이는 그답지 않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풀어주었다.
조금 비틀거리며, 그러나 파문 덕에 비교적 멀쩡하게 걸음을 뗀다.
열흘. 드디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