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82편
제 1시련의 현장.
"헤엑, 허어억"
"아이고 죽겠다!"
"더, 더는 못 뛰어..."
대부분 제복 상의를 탈의한 채 달리는 대원들. 땀을 비오듯 흘리며 뛰고 또 뛴다. 힘들어 쓰러지고 넘어지지만 쉴 수는 없다. 다가올 혈귀와의 거대한 싸움을 위해, 그리고
딱
"아악!"
따악
"악!"
뒤쳐진 대원에게는 어김없이 매타작이 날아들기 때문에.
"야, 야, 야! 그렇게 부실한 체력으로는 싸우기도 전에 죽겠다! 뛰어! 더 달려! 상현 근처라도 가고 싶으면!"
음주 우즈이 텐겐. 잃어버린 왼손과 눈은 돌아오지 않았다. 각각 옷자락과 안대로 가린 모습은 그 흔적. 그러나 번득이는 오른쪽 눈은 놓치는 것이 없고 오른손의 죽도는 세차게 휘둘러진다.
딱
"크엑!"
방금도 한 명. 차라리 쓰러진 김에 아픈 척해서 좀 쉴까 생각하다 얻어맞은 대원이 마지못해 일어나던 참이다.
"쯧, 그러길래 요령피우지 말라니깐... 지주님 서슬퍼런 거 안 보이냐."
앞서가던 한 사람이 되돌아와 손을 붙잡고 일으켜준다.
"에이... 죽었다 생각하고 뛰어야지. 진짜 죽도로 안 맞은 놈 한 명도 없는 거 아니냐? 이거 인간이 할 수는 있긴 해?"
"저기 맨 앞에 안 보이나? 안 맞을 만한 사람."
"앞?"
느닷없이 사이로 끼어든 다른 대원. 그의 말에 한 대 맞은 사람도, 그를 도운 이도 시선을 돌린다.
"이야, 겐야 형님! 정말 힘 하나도 안 드는데요?"
"인마, 이게 다 사부님의 안배다. 그 힘든 수행은 전부 우리를 위한 배려였다, 이거지."
고통과 고뇌로 찌든 현장의 분위기와 달리 가벼운 담소를 주고 받는 두 사람.
겐야와 센쥬로.
그들은 제복 상하의를 온전히 입은 상태. 옷에는 땀 한 방울, 먼지 한 톨조차 묻지 않았다. 다 죽어가듯 비척거리는 타 대원들의 몸놀림과 대조적으로, 그 둘만큼은 더없이 가뿐한 동세를 유지하며 제일 앞서 달려나간다. 장소만 아니라면 어디 산책이라도 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지옥같은 무한 질주가 끝나고 휴식 시간. 모두가 바닥에 퍼져 거친 숨만 들이쉰다. 한 줌의 힘이 없어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물통을 잡으려 애쓰는 사람들.
"형님. 전 저분들 물 좀 드리고 오겠습니다."
"오지랖도 참 넓다. 그래 말려서 뭐하냐, 어차피 할 건데. 다녀와."
커다란 물통을 끌어안은 채 안절부절못하는 센쥬로. 그에게 겐야가 손짓하자 밝아진 표정으로 달려간다. 이윽고 누워있던 일단의 시체들 위로 단비가 내린다.
꿀꺽꿀꺽
말도 못하고 그저 부어지는 물줄기를 받아마시기 급급한 그들의 눈빛은 촉촉하다. 감사. 끝없는 고마움.
그들의 눈에는 불꽃머리 소년의 뒤로 성스러운 광채가 비치고 있었다.
"일찍 토하는 새가 나중에 덜 토하는 법..."
겐야는 사부의 밑에서 겪은 고난의 나날을 회상한다. 어느 순간부터 껑충 뛰던 훈련 난이도. 매일같이 헛구역질하고 토하기 일쑤. 그럼에도 꾸역꾸역 먹을 걸 밀어넣고 다시 도전하길 반복. 결국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수많은 대원들이 죽겠다고 난리치는 이 훈련의 강도가, 겐야와 센쥬로 둘에게만은 마치 산들바람 속의 산보같았으니까!
그렇게 사부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에 젖어있던 그의 뒤로 누군가 다가왔다.
"어이."
"무슨...헉."
어깨 너머로 비스듬히 걸친 죽도를 까딱거리며 매섭게 내려보는 그 사람. 음주 우즈이 텐겐.
"무슨 일이신지..."
"통과."
"예?"
의문을 표하는 겐야. 음주는 턱으로 센쥬로 방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하고 쟤. 둘은 빨랑 꺼지라고. 여기서 더 해봐야 시간 낭비니까."
"그 말씀은..."
딱
"악!"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다음 단계 가라고."
얻어맞은 정수리를 문지르는 겐야. 그나마 닭벼슬같이 남겨둔 머리털 위로 얻어맞아 덜 아픔을 감사히 여기며 그는 센쥬로를 부른다.
센쥬로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나서야 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넌 참 사람이... 아니 됐고, 음주님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신다."
"벌써요? 가르침을 받은 지 고작 이틀밖엔 안 됐는데요..."
대원들은 저마다 단점이 다르다. 누구는 검술이 서툴고, 누구는 몸이 굳어있으며, 누군가는 체력이 허약하다. 각각의 시련에 머무는 시간차가 발생한다.
"지주님들이 생각하시는 기준이 있겠지. 그에 합당하면 통과, 미달이면 계속. 기초 체력에서만큼은 인정받았다는 얘기겠지."
겐야의 말에 센쥬로는 뿌듯한 표정으로 작게 주먹을 꾹 쥔다. 해냈다. 보람이 느껴진다.
"형님, 이 기세로 다음 훈련도 열심히 하죠!"
"그... 뭐더라, 다음이..."
사이좋은 그들이 헤매다 찾아간 그곳은 바로,
"으으아아아악!!!"
"끄아악, 더, 더는 안 찢어진다고요!"
곡소리가 터져나오는 저택.
"어서 와 우리 집에! 겐야 군 오랜만이야!"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 칸로지 미츠리. 이곳은 그녀의 거처이자 유연성 시련의 장.
"아, 네, 아, 안녕하십니까..."
"형님, 여기 맞는 거죠? 훈련..."
쑥스럽게 대답하는 겐야에게 속삭이듯 물어오는 센쥬로. 그도 그럴 것이
"아이고오"
"나 죽어...죽는다고..."
함박웃음을 띤 연주의 뒤로 비치는 실내에는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는 장정들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사타구니와 허벅지 부근을 부여잡거나 어깨, 팔, 허리 등 뭔가 구부릴 만한 신체 부위 하나씩은 감싸쥐고 고통스러워한다.
"어머! 넌 혹시 염주님의..."
"네넷! 렌고쿠 센쥬로입니다! 열심히 할게요!"
"기대할게에!"
이어진 연주의 훈련은 생소한 것들이었다. 팔다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최소한의 상하체만을 감싸는 형태의 옷을 입고 하는 훈련.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굳어진 신체를 쭈욱 늘리거나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한 번 굳은 몸이 저절로 풀리길 바라는 건 요행, 박힌 대못이 스스로 뽑히길 기도하는 행위와 같다.
최대한 다양한 방식, 춤이나 체조로 자극을 주어 유연함을 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자아, 더, 더! 힘내세요!"
"끼에에에에엑!!!"
연주에게 두 손을 구속당한 채 양 다리를 어거지로 벌려지는 저 희생양의 일그러진 표정처럼. 지옥도를 구경하게 된다. 스스로 안 될 자들의 종착역은 강제 유연성 주입이었다. 결국 힘으로 푸는 결말이다.
"괜찮을까요?"
"걱정마라. 이미 사부님은 통과하신 지 오래. 우린 그분의 제자아니냐. 해보자."
이미 연주의 훈련복장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부끄러움과 긴장감을 애써 가라앉힌다.
"겐야 형님. 사부님은 어디까지 가 계신 걸까요?"
센쥬로가 준비 동작을 취하며 묻는다.
"글쎄. 그래도 지주님마다 머무를 최소한의 기간이 있을지 모르니... 아마 세 번째인 하주님의 훈련 거의 끝물 쯤이실지도.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계실 거다. 빨리 따라가야지."
틀렸다.
겐야는 지주들의 위상과 사부가 보여온 능력에 근거해 예상했으나 틀린 부분이 둘 있었다.
하나는 그들의 짐작보다도 훨씬 빠르게 개개의 시련을 통과했다는 것.
'합동 훈련에 지나치게 묶여있어선 안 된다. 가능한 빠르게 통과해 개인 수련 시간을 늘리자.'
난 그렇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제 1시련.
"뭐 저런..."
훈련 첫 날, 타 대원들이 정해진 구간을 세 바퀴 돌았을 무렵, 몸풀이 겸 뛰었더니 가볍게 열 바퀴쯤을 돌파했다. 음주 우즈이 텐겐이 호출했다.
"야, 가."
"예?"
"신체 능력 뛰어난 건 잘 알았고. 너 혼자 그렇게 독보적이면 다른 놈들이 기죽으니까, 얼른 넘어가라고."
기초 체력 향상 부문 통과.
제 2시련은 연주가 주관한다.
"유연성이라."
얼마나 잘 늘어나는지를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칸로지 미츠리가 대원 하나의 다리를 찢어 고통스럽게 만들자, 주위 인원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파랗게 질려간다.
"여러분, 그렇게 겁내실 필요는..."
그런데 그들의 시선은 그녀가 아닌 그 뒤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연주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뚝
뚜두둑
그기기긱
거기엔 파문을 응용해 사지를 탈골시키고 뼈마디를 한껏 늘려 가지런히 신체를 늘어놓은 무라타가 있었다.
"히이이이이익!!!!"
"이 정도면 유연합니까?"
"토, 통, 토토, 통과예요!!"
그녀는 기겁을 하며 통과시켜주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로.
제 3시련.
"근육의 이완과 긴장 전환. 다리와 허리의 움직임 연동. 흠잡을 데 없네요."
하주 토키토 무이치로와 칼을 몇 차례 맞부딪치자 거리를 두고는 그가 입을 열었다.
기능 회복 훈련에서 츠유리 카나오와 진행했던 찻잔 가로채기, 암주의 수행 가운데 바위밀기로 터득한 하체의 사용, 그동안 파문을 수련하며 익힌 전신의 운용. 그것들을 섞어 움직임을 취하니 하주가 좋은 평가를 해준 것이다.
"다만... 그 검술. 어설프네요. 몸과 따로 노는데."
그 말에 통감한다. 미숙하니 티가 난다.
어쨌든 이것도 통과.
불과 사흘이 안 되어 세 단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가로막혔다.
여기서 또 겐야의 예상이 빗나간다.
두 번째로 틀린 부분.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한다.
제 4시련은 사주가 진행하는 검술 교정 훈련. 취약하기 짝이 없는 부문이었다.
"전 검술이 매우 미숙합니다. 처벌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검을 들어라. 보고 판단하지."
"실망하셔도 모릅니다."
"성가시게 하면 그냥 죽인다."
하는 수 없이 검을 든다. 내심 생각하는 구석이 있기에 망설임은 없다.
따앙
달그락
사주 이구로 오바나이의 목도는 마치 뱀과 같이 휘어지더니 내 손의 목도를 후려쳐낸다. 놓쳐버린 목도는 바닥에 나뒹군다.
"형편없음의 극치를 달리는군. 정말 봐줄 수가 없다."
진저리를 내며 사주는 가리켰다. 그 손가락은 뒤편의 구조물을 지목한다.
사주의 훈련은 간단히 말해 그와 목도로 겨루면 된다. 단, 장소가 특수하다. 가로로, 세로로, 천장과 바닥에 놓인 무수한 장애물들을 피해 목도를 휘둘러야 한다.
"읍!"
"웁! 웁웁!"
문제는 그 장애물이 전부 살아있는 대원들이란 거지만. 눈물짓고 몸을 뒤틀며 울부짖지만, 묶이고 입막음 당해 자유란 없다.
원래 이 장애물들 속에서 목도를 써서 사주에게 한 번이라도 닿으면 통과인 훈련. 내게는 방도가 없다.
"대충 보고 알았다. 너의 수준... 일단 넌 약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펴들었다.
"쓸데없는 말로 성가시게 했고, 보잘 것 없는 검술로 짜증나게 했다. 검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 이상 세 가지 죄. 가서 묶여라."
순순히 묶였다. 이건 내가 바라는 바였다. 처음 사주의 설명을 듣고 길이 있음을 알았다.
어차피 검술로 통과하지 못할 거라면, 훈련을 역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