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81편 (81/109)



〈 81화 〉81편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토미오카 기유. 탄지로는 걱정했다.


'지나치게 주제넘는 소릴 했나? 이미 의기소침해보였는데 추가타를 가한 건가?'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손바닥을 탁 쳤다.


기유는 말이 없다. 말 걸기도 힘들다. 그래, 많이 먹기 대결을 하는 거야. 말도 필요없고, 그걸 계기로 이런저런 말을 붙이면서 차근차근...


"탄지로, 늦었지만 나도 훈련에 참가하겠다."


"기유 씨! 자루소바 빨리 먹기 대결  하실래요?!"

"......뭐?"

급작스런, 이야기의 흐름과 관계없어뵈는 제안에 기유는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후루룩

"맛있네요, 그쵸?"


"왜 먹고 있는 거야...."

배가 터지도록 국수가락을 목으로 밀어넣었다.





"사범님."

불단 앞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던 시노부의 뒤, 열린 문 너머로 카나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지금부터 풍주님의 훈련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세요."

"저기...사범님의 훈련은 암주님의 뒤에 하면 될까요?"


"전 지주 훈련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네...네?"


무표정했던 얼굴. 눈은 약간 커지고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진다. 카나오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죠? 전 시노부 사범님과 훈련을...하, 하고...싶었는데..."


머뭇거리며 떠듬떠듬 입을 여는 카나오. 시노부는 그런 소녀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건가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다니. 좋은 변화입니다."

이리로. 시노부는 손짓하며 자신의 옆에 앉길 권한다. 카나오는 조심스레 다가들어 정좌한다.


"해둘 얘기가 있습니다."

침을 꼴깍 삼키는 카나오. 시노부는 살풋 미소짓다 정색한다.

"왜 훈련을 하지 않는가. 그 이유... 또한 이것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달그락

겉옷 안자락에 손을 넣어 무언가 꺼낸 시노부. 작은 통. 그 안에서 동그란 무언가를 집어든다.


"이게 뭔지 알겠나요?"


카나오는 한참을 바라본다.

"모르겠어요. 약..."


"그렇겠죠. 언뜻 약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독입니다."

카나오의 안색이 살짝 푸른 빛을 띤다.


"놀라지 마세요. 제가 어딘가 아픈 건 아니니까. 다만 준비물입니다. 제 언니, 카나에를 죽게 만든 혈귀를 상대하기 위한."


카나오는 애써 진정하고 귀를 기울인다.


"혈귀가 싫어하는 것. 태양, 그리고 등나무꽃.  물건은 등나무꽃의 독성분을 농축해서 만든 겁니다. 전 매일 이 정제한 독약을 복용하고, 여기"


가는 팔을 덮은 옷자락을 걷어 안쪽을 내보인다. 새하얀 팔뚝 위로 비치는 핏줄. 피부에 점점이 멍이 들어있다.

"주사로도 조금씩 독액을 주입하고 있어요."


도대체 왜. 카나오는 동요를 감추지 못한다.


"전 들었어요.  언니로부터 그 가증스런... 혈귀의 생김새를. 결코 약하지 않았던 언니. 지주였던 당시에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놈이죠. 분명 최소 상현급입니다. 그 자식은 언니에게 말을 남겼습니다."


먹어치우지 못해 아쉽다. 태양이 떠오를 시간만 아니었다면 흡수해 하나가 되었을 텐데.

"여성을 집어삼킨다. 놈의 습관입니다. 전 제 자신의 몸, 전신의 혈액을 등꽃 독으로 채우고 있어요. 잡스러운 혈귀는 소량으로도 버텨내지 못하는 이 독... 제 몸무게에 해당하는 양의 독액이라면. 상현도 버티긴 쉽지 않겠죠."

시노부의 예리한 눈빛은 칼을 품고 있었다.

"카나오. 혹여 제가 원흉과 조우한다면 아마... 전 죽게  겁니다."

"무슨 말을 하시는..."


카나오는 지금껏 마주하지 못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귀에 박히는 상냥한 음성, 내용은 전혀 상냥하지 않은  말의 꾸러미를 밀어내고 싶다. 그러나 카나오의 머리는 마음과 달리 그 말들을 써내려간다.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해 혈귀의 목을 베어내지 못하는 저로선 그간 독을 조합해 그 금수만도 못한 것들의 내부부터 파괴하는 전략으로 상대해왔습니다. 상현이라면 통하지 않겠죠. 어설픈 독이라면."


때문에 죽어준다. 자신의 몸을 먹인다. 얼마든지 내어주마. 그게 너의 마지막 식사가 될 거다. 독덩어리니까.

"제가 먹힐 때 카나오, 당신이 근처에 있다면 수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절대 감정적으로 덤벼들지 마세요. 승부를 가를 시점은 그 후. 독이 혈귀의 전신을 마비시키고 녹일 그 순간입니다."


공기가 더없이 무겁다. 카나오는 훈련하며 들어올렸던 돌덩이를 회상한다.  무게도 이만큼이었나? 오히려 지금 몸을 감싸는 공기가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디까지나 대비입니다. 뭐, 당장 지주 훈련에  나가는 건 후방 지원 역할이 본분인 이유도 있으니까요."

신체 개조도 한 몫하지만. 그녀가 미소를 머금고 덧붙인 한 마디에 카나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저, 저는, 후, 후, 후우"


제대로 말을 이루지 못하는 카나오. 읏차. 몸을 일으킨 시노부는 종종걸음으로 카나오의 옆을 스치며 살짝 손을 얹는다. 그리고 어깨를 토닥이고는 나간다.



"훈련을..."


한참 뒤에야 말을  카나오는 얼마간 멍한 상태로 머무른 뒤에야 밖으로 나설 수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