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80편
"강화 훈련... 시작이구나."
"사부님, 전 기대됩니다. 어떤 수련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겐야 형님... 아무리 그래도 좀 더 쉬고 하시는 편이..."
합동 강화 훈련 개시.
혈귀의 출몰이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시점. 귀살대는 최소한의 치안 유지와 순찰따위를 제외한 전력을 내부에 집중키로 결정했다.
본디 지주는 위치도 그렇거니와, 능력이 뛰어난 만큼, 더욱 넓은 지역을 담당하고 많은 일을 수행한다. 극소수의 직속 후계를 제외하면 짬이 나질 않는다. 지금이어서 오히려 대원들 전반의 훈련에 투자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훈련 방식은 순번제. 쉽게 말해 지주별로 돌아가며 굴린다.
지주보다 계급이 낮은 대원은 모두, 각 지주가 담당하는 단계의 훈련을 소화한다. 숙련도를 인정받으면 다음 단계를 담당한 지주에게로 넘겨지는 구조다.
훈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시련, 음주 우즈이 텐겐의 기초 체력 향상. 몸이 불편한 본인이 직접 나서진 않지만, 엄한 관리, 감독 하에 무지막지하게 단련시킨다.
연주 칸로지 미츠리는 유연성. 하주 토키토 무이치로는 고속이동을, 사주 이구로 오바나이는 검술 교정을 담당한다. 이어 풍주 시나즈가와 사네미와는 무한정 대결, 암주 히메지마 교메이의 훈련을 통해 근육을 강화한다.
집단 훈련을 거쳐, 일반 대원들은 개개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강고한 전력으로 거듭난다.
지주는 일선에서 수많은 대원들과 부딪히며, 심박수와 체온을 높이고 반점이 나오길 기도한다. 이미 나오거나 빠르게 발현에 성공한 지주는 반점의 유지를 꾀한다.
"사부님. 이거 자리가 좀 비질 않습니까? 지주는 다해서 아홉이고..."
"맞아요. 쿄쥬로 형님을 제외하면 두 분이 남는데요. 이 분들은 무엇을 담당하시는 거죠?"
"수주, 충주. 두 분도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토미오카 기유, 코쵸우 시노부.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유는 탄지로와 대면했다.
"기유 씨! 함께 훈련하시죠! 모두가 기다린다고요!"
탄지로의 활달한 권유.
'토미오카 씨는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라구요.'
"상관하지 마라.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던 토미오카 기유. 환청처럼 어디선가 울리는 충주의 목소리에 이내 입을 열고 냉막하게 받아친다.
떠나갔다.
탄지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부탁한다.'
병석에 누워 고통스러울 터인 우부야시키 카가야, 그가 간절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앞을 보고 혈귀와 맞서기 위한 노력에 심혈을 기울이는 현재, 홀로 과거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기유와 얘기를 나눠달라고.
'네!'
탄지로는 우렁차게 답했다. 그리고 실천한다. 귀살대 수장 나리의 바람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기유 씨!"
"기유 씨!"
"기유 씨?"
매일같이 따라다니며 붙들고 늘어지길 나흘째.
"나는 최종선별을 통과하지 못했어. 내 힘으로."
끈질긴 탄지로에 당황한 기유는 결국 손을 들었다. 과거의 그와 연주황 머리칼의 소년, 사비토의 이야기부터.
혈귀에게 죽어버린 누나, 츠타코. 고아가 됐다. 어쩌다 사비토와 만나 수련했다. 최종선별 시험에도 갔다. 통과했다.
친우 사비토는 그날 돌아오지 못했다. 선별 시험장인 등꽃산의 혈귀를 혼자 도륙내다시피 한 소년은 모두를 구하고 혼자 죽었다.
그렇게 살아남겨졌다. 귀살대에 들어왔다. 혈귀를 잡았다. 어느새 지주가 되어있었다.
수주 토미오카 기유.
"어쩌다 된 이 자리. 난 어울리지 않는다. 그... 녀석이 되었어야 했어.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탄지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뼈저리게 느꼈다. 그 마음. 소중한 존재 대신 죽었으면. 그 사람이 살았으면. 그래도 용기내서 말을 해본다.
"사비토 씨를 죽게 만든, 동기로 시험을 치렀던 무라타 씨도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던 그 혈귀... 제가 우로코다키 씨 밑에서 배우며 만났던, 혼인지 환상일지 모르지만 사비토, 마코모 씨, 그들마저 죽게 한 흉물. 그놈은 확실히 강했어요. 하마터면 당할 뻔하기도 했고..."
아찔했던 순간. 결국 베었고 살았다.
"힘든 순간들, 위기... 사라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 소중한 사람들이 바란, 남긴, 알아줬으면 한 뜻이 있잖아요. 사비토가 남긴 걸 잇지 않을 건가요?"
사비토는 화나있었다.
짜악
기유 자신의 몸이 붕떠서 날아갈 정도의 세찬 따귀. 얼얼함, 통증이 되살아난다.
'기유, 이 누나가 너만은 지켜줄게.'
츠타코 누나. 다음 날이 혼례식이었다. 행복했어야하는 사람. 그녀는 웃으며 죽었다. 숨어서 벌벌 떨던 자신의 먼 발치에서.
'누님은 알고서도 너를 숨겨 지킨 거다. 대신 죽었어야한다고? 그따위 소리 집어치워. 살아줬으면 했던 그 마음을 욕되게 하지 마라.'
뺨을 때리고 꾸짖던 사비토. 죽는 대신 살아서 이어라. 죽게 하지 마라, 자신도 타인도.
'목숨을 걸려면 미래에 걸어라. 그 칼과 함께 말이야.'
왜 잊고 있었을까. 강철로 된 가면을 덮어쓴 채 타인과 거리를 두기에 급급했던 건 아닌가. 나 자신의 심적 고통만으로도 벅차서.
뺨을 매만진다. 지금도 형태가 없는 눈물이 흐르는 착각에 빠진다. 생각하면 멈출 길이 없다. 그래서 잊었다. 외면했다.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혈귀가 떠나가고 참혹한 현장. 그는 사시나무처럼 떨며 기어나왔더랬다. 팔다리가 없다. 난도질당해 창자가 흘러나왔다. 살 도리가 없다. 뜨거운 눈물이, 본능적으로 구역질이 치민다. 츠타코 누나의 남은 몸뚱이는 피바다 위에서 경련하고 있었다.
"기...유...."
충격으로 말도 나오지 않아 입만 벌린 채 다가갔다. 아름다웠던 그 얼굴엔 흉하게도 상처가 났다. 대각으로, 가로로 깊게 파인. 주저앉고 말았다.
"이리... 오...렴..."
꺼져가는 숨. 꺼져가는 목숨. 눈물콧물을 쏟으며 어떻게든 귀를 기울였다.
"당...신의...누나...여...여서...행복...했어...요..."
그러니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윤회라는 게 있다지요. 내가 츠타코라는 이름을 잊어도, 당신이 기유라는 이름이 아닐지라도. 다음 생에서. 언제, 어디서라도 당신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의 누나로. 다시 가족으로.
"...부...디..살아...주..세요...그..때까...지..."
끊어질 듯한 목소리를 끝으로 동공이 풀리고 마지막 공기를 토해낸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왜 잊었나. 그녀의 하얀 머리끈을 움켜쥐고 손바닥이 붉게 물들었던 그 순간을.
미숙했다. 미숙한 자신은 도망쳤다.
더 이상은 도망치지 않겠다.
그 뜻을 잇겠다.
"탄지로, 늦었지만 나도 훈련에 참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