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79편
암주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
회의가 파하고 지주들은 흩어졌다.
"저기"
풍주는 가서 칼이나 더 휘두를까 생각하며 걸음을 떼려던 차, 후방의 목소리에 멈춰선다.
"무슨 일이지?"
미미한 미소를 머금은
"시노부."
충주 코쵸우 시노부. 그녀가 불러세웠다.
"네가 나에게 할 이야기는 따로 없을 텐데."
시나즈가와 사네미의 무미건조한 대답에도 흔들림없는 표정.
"겐야 군. 그 아이가 다친 건 알고 계셨나요? 부상이 가벼운 편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잘 아물었어요. 알아두셔야할 것 같아서..."
"무슨 상관인데."
"...네?"
시노부의 눈이 커진다.
"지주 자리가 그렇게나 한가하던가? 쓸데없는 얘길 할 시간도 있고."
"아니 겐야 군은 당신의 가족"
"가족?"
시노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는 사네미. 눈빛이 매섭다.
"하...너도 들었겠지. 훈련말이야."
"뜬금없이 그 이야기는 왜..."
"난. 이 합동 강화 훈련에 전적으로 찬성이다. 대원의 질적 향상. 이 기회에... 못 따라올 떨거지들은 하루빨리 쳐내야지."
그게 가족이라도 말이다. 그는 차갑게 덧붙인다.
"이해가 안 되네요. 물론 저도 수준 미달인 자들은 전투 배제에 동의하고, 그 부분까지도 고려해서 이 방법으로 수준을 끌어올리는 취지니까..."
"그래서?"
"겐야 군은 더 이상 부족하지 않아요. 어쨌든 호흡도 제대로 익혔고, 지난 임무에서 꽤나 활약도 했다구요. 왜 인정해주지 않으시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쫑알쫑알 말이 길군."
"뭐요?"
성을 내려던 시노부를 가로막듯 한 마디 내뱉는다.
"카나에."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다.
"...갑자기 그 이름은 왜 꺼내시는지...?"
"전대 지주였던 코쵸우 카나에. 알 거 아냐. 명석한 그 머리로 까먹진 않았겠지."
시노부는 말없이 입술을 깨문다.
"좋은 사람이었지. 온화하고 감히 다가가는 게 두려울 정도로... 맑고 깨끗한 사람. 가까이 하면 더럽힐까, 때를 묻힐까 무서울... 따뜻한 사람."
충주 코쵸우 시노부의 단 하나 뿐인 혈육. 다정했던 언니. 까칠했던 시노부를 품고도 모자라, 보기만 해도 답답한 츠유리 카나오까지도 보살펴준 고마운 사람.
"결국 죽었다. 그런 사람도 싸우고 싸운 끝에, 혈귀의 손에 당했다고."
"저의가 궁금하네요. 굳이 이 자리에서 지난 일을 언급하시는 그 이유가?"
사네미는 그녀의 눈을 직시한다.
"그 사람이 지금 네 모습을 보고 만족할까? 잘 컸다, 지주가 되었구나, 훌륭하다, 칭찬이라도 해줄까? 아니. 그저 안타까워할 거다."
"함부로 그 입 놀리지 마시길. 대율 위반이 뭔지 몸소 겪고 싶지 않으시다면..."
"시노부. 넌 항상 화나있잖아."
침묵.
"보면 느껴져. 화, 복수, 투쟁심...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나와 말이야. 그런 너의 그 모습을 카나에가 바랐던 건가? 삶을 포기하고 혈귀 도살에 미쳐버린 꼬라지."
시노부가 달려갔을 때. 태양은 떠오르기 직전의 새벽. 카나에는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부르짖었다. 비통해하던 시노부의 머리에, 그 떨리고 힘없는 손을 애써 얹으며 언니는 웃었다. 미소짓는 눈으로 울며 말했다.
살아줘. 평범하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주렴.
"그래요. 말했죠. 전 싫었어요. 끝까지 캐물었고 그놈... 원수가 누구인가 용모를 알아냈어요. 언니가 바라지 않았던 복수를 위해서."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 혈귀놈들과 싸우다보면 언젠가 죽는다. 빠른가, 느린가. 그 차이지."
그녀를 뒤로 하고 사네미는 걸음을 옮긴다.
"그 녀석... 어서 나가떨어졌으면."
상기된 표정으로 충주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