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79편 (79/109)



〈 79화 〉79편

암주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

회의가 파하고 지주들은 흩어졌다.


"저기"

풍주는 가서 칼이나  휘두를까 생각하며 걸음을 떼려던 차, 후방의 목소리에 멈춰선다.


"무슨 일이지?"

미미한 미소를 머금은

"시노부."

충주 코쵸우 시노부. 그녀가 불러세웠다.


"네가 나에게 할 이야기는 따로 없을 텐데."

시나즈가와 사네미의 무미건조한 대답에도 흔들림없는 표정.

"겐야 군. 그 아이가 다친 건 알고 계셨나요? 부상이 가벼운 편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잘 아물었어요. 알아두셔야할 것 같아서..."

"무슨 상관인데."

"...네?"

시노부의 눈이 커진다.

"지주 자리가 그렇게나 한가하던가? 쓸데없는 얘길 할 시간도 있고."


"아니 겐야 군은 당신의 가족"

"가족?"

시노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는 사네미. 눈빛이 매섭다.

"하...너도 들었겠지. 훈련말이야."


"뜬금없이 그 이야기는 왜..."


"난.  합동 강화 훈련에 전적으로 찬성이다. 대원의 질적 향상. 이 기회에...  따라올 떨거지들은 하루빨리 쳐내야지."

그게 가족이라도 말이다. 그는 차갑게 덧붙인다.


"이해가 안 되네요. 물론 저도 수준 미달인 자들은 전투 배제에 동의하고, 그 부분까지도 고려해서 이 방법으로 수준을 끌어올리는 취지니까..."

"그래서?"

"겐야 군은  이상 부족하지 않아요. 어쨌든 호흡도 제대로 익혔고, 지난 임무에서 꽤나 활약도 했다구요. 왜 인정해주지 않으시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쫑알쫑알 말이 길군."

"뭐요?"

성을 내려던 시노부를 가로막듯 한 마디 내뱉는다.


"카나에."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다.


"...갑자기 그 이름은  꺼내시는지...?"

"전대 지주였던 코쵸우 카나에.  거 아냐. 명석한  머리로 까먹진 않았겠지."


시노부는 말없이 입술을 깨문다.

"좋은 사람이었지. 온화하고 감히 다가가는 게 두려울 정도로... 맑고 깨끗한 사람. 가까이 하면 더럽힐까, 때를 묻힐까 무서울... 따뜻한 사람."

충주 코쵸우 시노부의 단 하나 뿐인 혈육. 다정했던 언니. 까칠했던 시노부를 품고도 모자라, 보기만 해도 답답한 츠유리 카나오까지도 보살펴준 고마운 사람.


"결국 죽었다. 그런 사람도 싸우고 싸운 끝에, 혈귀의 손에 당했다고."


"저의가 궁금하네요. 굳이 이 자리에서 지난 일을 언급하시는  이유가?"

사네미는 그녀의 눈을 직시한다.

"그 사람이 지금 네 모습을 보고 만족할까? 잘 컸다, 지주가 되었구나, 훌륭하다, 칭찬이라도 해줄까? 아니. 그저 안타까워할 거다."


"함부로 그 입 놀리지 마시길. 대율 위반이 뭔지 몸소 겪고 싶지 않으시다면..."


"시노부. 넌 항상 화나있잖아."


침묵.

"보면 느껴져. 화, 복수, 투쟁심...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나와 말이야. 그런 너의 그 모습을 카나에가 바랐던 건가? 삶을 포기하고 혈귀 도살에 미쳐버린 꼬라지."


시노부가 달려갔을 때. 태양은 떠오르기 직전의 새벽. 카나에는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녀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부르짖었다. 비통해하던 시노부의 머리에, 그 떨리고 힘없는 손을 애써 얹으며 언니는 웃었다. 미소짓는 눈으로 울며 말했다.

살아줘. 평범하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주렴.


"그래요. 말했죠. 전 싫었어요. 끝까지 캐물었고 그놈... 원수가 누구인가 용모를 알아냈어요. 언니가 바라지 않았던 복수를 위해서."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 혈귀놈들과 싸우다보면 언젠가 죽는다. 빠른가, 느린가.  차이지."


그녀를 뒤로 하고 사네미는 걸음을 옮긴다.


"그 녀석... 어서 나가떨어졌으면."

상기된 표정으로 충주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한다.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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