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78편
"나에게 귀살은 살인이다."
시나즈가와 사네미의 발언에 분위기는 싸해졌다.
"사...살인이라고요...?"
코쵸우 시노부는 평소의 침착함은 간데없이 아연실색했고
"...미쳤군."
토미오카 기유는 차가운 시선을 보냈으며
"귀찮은 상황은 싫은데..."
토키토 무이치로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고
"하...또 무슨 이상한 소릴..."
이구로 오바나이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어떻게 그...런..."
이어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설인 독감자를 뱉을 뻔한 연주는 입을 황급히 틀어막는다.
"나무아미타불... 경을 칠 소리로고..."
으직
합장한 히메지마 교메이의 두 손바닥 사이의 염주알에 금이 간다.
"사네미... 자네의 말은 귀살대의 행적을 비하하는 의도로도 비칠 수 있다. 마땅히 해명을 해야할 것이다..."
"별 건 아닙니다. 전혀 그럴 의도는 없으니까. 다만 제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풍주는 수주를 지목한다.
"이 자식의 태도는 묵과할 수 없기에 말씀드릴, 그것과 직결되는 문장일 따름입니다."
그는 싸늘한 일동의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 보따리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어릴 적... 가족들과 살았습니다. 아버, 아니 그놈...만 제대로 됐다면 평범한 가정이었을 테지만."
사네미의 아버지는 속된 말로 인간 말종이었다. 그 큰 덩치로 멀쩡한 일은 안 하고, 가족을 수시로 때렸으며, 이웃이나 타인과도 울화를 참지 않고 충돌하곤 했다. 몹쓸 놈 그 자체였다. 결국 원한을 품은 주변 사람들에게 칼을 맞고 죽어버렸다.
"남겨진 어머니, 저, 동생들. 가난하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자, 살아야 한다... 강조하시던 어머니는. 그 작은, 심지어 제 동생...보다도 작던 그 몸으로 허드렛일을 하시면서..."
순간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하던 풍주. 어렵사리 입을 뗀다.
"...일을 하시면서 가족을 돌보셨고. 저도 맏이된 바, 이것저것하며 거들었습니다. 힘들어도 함께여서...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의 눈빛이 온기를 띠다 일순 급변한다.
"그날. 그 개같던 날. 괴물이 가족을 덮쳤고 동생들은 전부 죽어나갔습니다. 하나 남은 녀석도 다쳤고. 가족을 지키자... 지키자고... 그 약속을 했는데..."
동생들의 살점을 뜯고 파헤치던 날카로운 손톱, 이빨. 번들거리는 안광. 질질 흐르는 침. 한 조각의 이성조차 존재하지 않는 짐승. 어린 사네미는 식칼을 부여잡고 맞섰다. 생사를 건 드잡이질. 밤새 두들기고 찌르고 베어 어찌 제압은 했으나
"죽지 않더군요. 해가 뜨고 그놈은 사라졌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떠오르는 햇빛 아래 놓인 괴물의 얼굴은 그 정답기 짝이 없던 어머니였다. 정신없이 싸우던 흔적이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자상으로 뒤덮인 낯은 너무나 낯익은, 하나 뿐인 어머니의 그것을 하고 있었다. 사네미는 저도 모르게 칼을 떨어뜨렸다.
살인자.
충격에 빠져있던 생존자. 하나 남은 동생은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명처럼 외쳤다.
죽어라 싸웠고, 그나마 하나는 지켰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 때 내가 죽인 건 사람이었는지... 괴물이었는지..."
풍주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떨리는 손. 무언가 움켜쥘 듯한 그 손을 부들거린다.
"나중에야 어머니는 혈귀로 변했었단 걸 알았고. 내 피는 희귀혈... 귀신놈들을 취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 어렸던 당시 혈귀를 상대할 수 있던 거였고. 그렇게 귀살대에 들어왔고, 지주가 됐고."
그는 별안간 히죽 웃는다.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느낄 것이다. 거기엔 전연 기쁨이라곤 없다는 걸.
"되면...되면 뭐하냐고. 아직도 혈귀를 잡아죽이고, 목을 베고, 그 지랄을 할 때마다 대가리에서 떠나질 않아. 그날 어머니를 쳐죽인 칼자루의 감촉. 피로 범벅이 된 손의 끈적한 그 느낌... 한시라도 잡아다가 죽여버리고 싶다고."
사네미는 이를 뿌득 갈며 꾸득 주먹을 움켜쥔다.
"상현. 키부츠지 무잔. 그놈들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복수하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해방되고 싶다!"
그는 가슴팍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이 거지같은 생각에서... 놔달라고... 혈귀 새끼들 모조리 죽여버릴 수만 있다면..."
풍주의 시선이 토미오카 기유를 찔렀다.
"그런데도. 이 자식은 무잔을 족치려면 힘을 합쳐도 모자랄 마당에 혼자 따로 놀겠다, 이러질 않지 뭡니까. 난 혈귀를 죽일 때마다 머리 속, 가슴 속에서 매번 사람을... 어머니를 죽이는데... 그래도 눌러참으면서 지주로서, 귀살대원으로서 뭔가 해보려고 발광한다고."
침묵.
모두가 선뜻 말문을 열지 못한다.
"...잘 알았다. 오해했던 건 사과하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 차례 되뇐 암주는 흐르는 눈물 밑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 제안이 있다.... 반점,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훈련, 귀살대의 모두와 관련된 이야기를 진행하지..."
혈귀들의 출몰이 급감하고 적이 무엇을 노리든 대비해야하는 시기. 상현, 무잔과 맞설 핵심 전력인 지주들에게는 반점의 발현을 위한 훈련. 동시에 꾸준히 지적되어 온 귀살대 일반 대원들의 질적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수단이 될 훈련.
합동 강화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