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77편
대장장이 마을에서의 전투. 격렬했던 일련의 사건 이후.
하주 토키토 무이치로와 연주 칸로지 미츠리가 병석에서 불과 며칠 만에 털고 일어난 시점,
"오늘 지주회의에서 우부야시키 카가야의 대리를, 저 우부야시키 아마네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귀살대의 수장, 우부야시키 저택에서 긴급 지주 회의가 열렸다.
"당주인 카가야의 병세 악화로... 앞으로 여러분의 앞에 나설 수 없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백색의 여인, 그리고 양 옆의 까맣고 하얀 머리칼의 아이 둘이 공손히 절한다.
"아마네 공도 마음을 굳건히 하시길..."
암주 히메지마 교메이의 심심한 위로를 뒤로 회의가 시작된다.
주된 안건은 당장의 상황.
"지주 여러분, 더해서 대원분들까지. 당분간 각종 장비 보급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있으니 세심한 관리를 당부드립니다."
곧게 허리를 편 아마네. 카가야의 아내이자 함께 자리한 차기 당주 키리야의 어머니. 그녀의 발언 하나하나가 또박또박하니 좌중의 귀를 사로잡는다.
"대장장이들... 많이 다치고 죽었어...."
하주의 나른한 음성. 어딘가 먼 곳을 더듬는 듯한 시선. 살짝 깨문 입술, 손가락은 떨린다.
비록 상현 5, 굣코를 분전 끝에 처단했다고는 하나 희생이 컸다. 인간을 소재로 기괴한 물체를 꾸며놓고 예술이라 일컫던 악취미의 소유자. 이미 여럿이 죽어나간 뒤였다.
"더 이상의 지주 결원이 생기면 귀살대가 위태로워진다... 안타깝지만 지주가 죽지 않고 상현을 해치운 건 귀중한 일이지..."
암주의 염불이 이어졌다. 하주는 눈을 감고 작게 한숨을 내쉰다. 다시 뜬 그 눈빛이 잔잔하다.
"대장장이 여러분들은 안전한 마을, 대피용으로 사전에 마련된 장소들 가운데 한 곳으로 이동해 재건에 열중하고 계십니다. 귀살대로서는 손실을 피하기 어렵죠. 물론 키부츠지 무잔에게 있어서 또한 손실인 것은 마찬가지."
아마네의 눈동자가 빛난다.
"그들의 주 전력의 일부가 사라졌으니까요. 그 영향인지, 혈귀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심상치 않다. 귀살대의 눈과 귀를 통해 전해진 혈귀들의 활동. 잦아들었다. 지나치게 조용하다. 이전과 대조하면 거의 멎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수준의 변화.
"그래서 도리어 불안하다...인가."
오른쪽은 노랗고 왼편은 푸른 눈. 하관을 두른 붕대로 감춘 사주 이구로 오바나이. 그의 목을 감싸듯 똬리를 튼 뱀, 카부라마루의 머리에 사주의 나긋한 손길이 닿는다.
"폭풍 전야라고 해도 되겠죠. 나리께서는 혹여 대책이 있으신 걸까요?"
나비 장식을 얹은 충주 코쵸우 시노부가 상냥한 음색으로 묻는다. 대응할 방안.
"있습니다. 아직 몸이 불편하심에도 모신 이유... 상현 4, 5와의 싸움에서 칸로지 님, 토키토 님에게 나타난 반점. 두분께 반점 발현 조건의 교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주들 사이에서 잠시 웅성거림이 지나간다.
"두 분의 회복 속도가 이상하리만치 빨랐던 원인이 혹시..."
충주의 시선이 두 사람을 조용히 훑는다. 양 뺨에 네모난 치료용 천조각을 붙인 하주, 이마를 거쳐 머리를 한 바퀴 빙 둘러 붕대를 감은 연주.
그들에게 나타났던 반점. 아마네의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오래된 과거. 키부츠지 무잔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첫 호흡의 검사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반점.
귀신의 문양과 유사한 반점이 신체에 드러났다. 동시에 강했다.
"두 분은 체감하셨을 겁니다. 반점이 나타나는 자는 탁월한 신체능력으로 혈귀를 압도한다. 귀살대에 전해오던 이야기입니다만... 조직이 괴멸 위기에 놓이기도 여러 번. 때문에 현재로선 아는 이가 거의 없었죠."
이야기의 중간, 풍주 시나즈가와 사네미가 거친 인상과는 상반된 태도로 질문하자, 아마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한다.
"태양을 극복한 혈귀, 카마도 네즈코의 등장... 키부츠지 무잔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만한 상황입니다. 환장하겠죠."
판도의 극적인 변동. 잠잠해진 혈귀들의 활동. 곧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 아마도 생사를 건 총력전. 전력 보강이 절실하다.
시초의 호흡 검사가 남긴 수기의 언급. 한 사람에게 반점이 나타나면, 들불이 번지듯 다른 이들도 연이어 발현한다.
"조건을 알고 이를 실현할 수만 있다면 크나큰 무기가 될 겁니다."
아마네의 시선에 하주가 말문을 연다.
사실 연주가 먼저 반점 발현에 대해 설명을 하긴 했다.
"심장이 마구마구" "귀가 띠잉" "뿌득뿌득" "으랴아앗, 꾹, 팍!"
온갖 의성어와 의태어의 향연. 다른 이들이 머리를 감싸쥐고 얼이 빠지도록 도통 이해가지 않을 설명에 연주는 금세 얼굴이 달아오른 홍시가 되었지만.
"쥐구멍에 숨고 싶어요...으으으..."
최초의 발현자, 카마도 탄지로와 동급의 부실한 설명을 보다 못한 하주가 나섰다.
체온 39도 이상, 심박수는 200 위.
"목숨에 지장이 생겨요. 그 정도라면."
놀란 표정으로 의문을 표하는 충주. 하주는 확신이 가득하다.
"평소와 다른 부분은 둘. 맞습니다."
회의는 막바지에 이른다. 큰 방향은 반점 발현에 심혈을 기울이는 쪽으로 정해졌다.
"다만 알아두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끝을 흐리는 아마네. 지주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는 이내 운을 뗀다.
"반점이 나타난 자는 예외없이 25세에 다다라 사망한다. 수기에 나와있는 내용입니다."
숙연해지는 분위기.
"어차피 내놓은 목숨. 상현과 무잔 놈의 목줄기를 벨 수만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굳은 포부를 풍주는 털어놓는다. 다른 지주들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는 못했으나 비슷한 의지를 내비친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흔들리던 아마네의 시선은 꾹 문 입술과 함께 정면을 응시한다. 이어 지주들에게 가없는 감사를 표하며 자녀들을 이끌고 물러간다.
"아마네 공도 퇴실하셨으니 실례하지."
침묵을 지키던 수주 토미오카 기유. 그는 조용히 일어선다.
"기다려, 행동 방침을 의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풍주의 말을 단칼에 자른 수주.
"지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군. 이미 결원이 발생한 지주 자리야."
사주의 말대로였다. 염주 렌고쿠 쿄쥬로는 병동 모처에서 엄중 관리. 음주 우즈이 텐겐은 신체 손상을 비롯한 중상으로 은퇴.
"이제 일곱. 널 제외하면 여섯. 모두가 뜻을 모아도 시원찮을 상황에 독단이라니, 기가 차는군."
사주의 냉랭한 음성에도 기유는 말없이 돌아선다.
"토미오카 씨, 설명을 할 거라면 제대로 해주세요. 그런 식의 이탈은"
"나는 너희들과 달라."
"...그러니까 친구가 적은 거라고요..."
충주의 지적에도 꿋꿋한 수주. 볼을 부풀리는 그녀.
"이 새꺄. 거기서."
풍주는 벌떡 일어서며 성큼 다가선다.
"토미오카. 우릴 깔보는 거냐? 하..."
길게 한숨을 내쉰 풍주.
"정말이지 구질구질하고 못 들어줄 개인사라 꺼내야하나 망설였지만... 네 놈 탓에 해야 성이 차겠다. 귓구멍에 쑤셔박아주마."
이어진 사네미의 한 마디.
"나에게 귀살은 살인이다."
모두가 충격으로 물들었다.